(154) 애거서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더위를 쫓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로 ‘추리소설 읽기’도 빠지지 않는다.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공포와 함께 과연 누가 악마일까, 추리하느라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이 소설은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39년 출간 이래 1억 부 이상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미스터리 소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이자,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최고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작가 자신이 뽑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는 장편 66권, 단편집 20권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수작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준다. 실제적인 캐릭터로 충격적 결말을 만드는 데 능란한 천재여서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만난 적 없는 오웬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각기 다른 직업인 10명이 병점섬으로 초대받으면서 일어나는 10건의 살인사건이 주를 이룬다.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연락받거나, 거절할 수 없는 묘한 제안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병점섬의 현대식 별장에 도착한다. 벽에 걸린, 열 꼬마 병정이 차례로 사라지는 내용의 시를 읽으면서도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들키지 않은 살인사건10명이 다 모였을 때 ‘아무런 경고도 없이 폐부를 찌르는 비인간적인 목소리’가 축음기에서 울려 퍼진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죄인들입니다”로 시작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지적한다. 어떤 사람을 죽였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10개의 죄가 낭독된 후 “법정에 선 피고 여러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할 말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
‘두려움과 당혹감이 어우러진 침묵’이 흐른 뒤 사람들은 ‘중상모략, 악의에 찬 거짓말’이라며 각자의 죄를 부인한다. 식사 후 얘기를 나누던 중 가장 젊고 건장한 매스턴이 소다수를 탄 위스키를 마시다 사레가 들려 죽고 만다.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라는 시의 내용과 똑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모두 경악하고 만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가 ‘들키지 않은 살인사건’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핑계를 만들어 스스로를 위안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과 함께 ‘사적 제재’가 떠오를 수도 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 44명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자 20년이 지난 지금 유튜버가 그들의 얼굴과 직장을 공개해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무죄판결만 받으면 죄가 사라지는 걸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질문 앞에서 죄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가운데 범인이 있다루이스 부인이 두 번째로 죽자 전직 경찰이거나 군인이었던 남자들이 범인을 찾기 위해 섬을 수색하지만 바위섬에는 비밀스러운 공간 자체가 없다. 속히 섬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폭풍우로 배가 오지 않는 가운데 세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냉철한 위그레이브 판사는 “남은 일곱 사람 중 한 사람이 오웬인 것 같다”라고 판결하듯 말한다. 그때부터 서로에 대한 의심이 시작된다. 둘씩 셋씩 모여 “저 사람이 오웬인 것 같다”라며 험담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밑바닥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함께 연대하며 경계를 철저히 하지만 열 꼬마 병정 시의 내용대로 남은 사람도 차례로 죽고 만다. 뒤늦게 이들을 발견한 경찰이 온갖 추리를 하지만 대체 오웬이 누구인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내지 못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그레이브 판사의 추리대로 섬에 초대된 이들 가운데 오웬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다. 오웬이 자초지종을 기록한 종이를 병에 넣어 바다에 던진 것을 고기잡이배의 선장이 건져 런던경찰국에 보낸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도중에 누가 오웬인지 알아낸다면 추리작가나 강력계 형사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독자는 마지막에서야 무릎을 치며 작가의 탁월함에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정교하게 기술한 최고의 미스터리에 푹 빠져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