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에이미 <나는 공부를 못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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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내놓고 떠들 만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못해>의 주인공 도키다 히데미는 공부는 못해도 여자에게 인기 많은 게 자랑스러운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이다. 회사원인 엄마와 살면서 아빠의 존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함께 사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애인이 자주 바뀌는 엄마, 도키다의 옷을 입고 나가 여자친구에게 칭찬받았다고 자랑하는 할아버지, 알바하던 가게의 여자 사장님과 애인이 된 도키다, 세 사람은 서로의 연애사를 터놓고 지낼 정도로 친밀하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공부 못해도 자신만만한 소년의 질풍노도
여성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는 7편의 연작소설 모음집이다. 야마다는 고등학교 때 물리 시험에서 0점을 두 번 받았다. 집에 찾아온 담임은 부모에게 “수업 태도가 나쁘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도 듣지 않고, 수업 중에 소설책이나 보고 있고, 방과 후에는 남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론가 갑니다.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세계에 빠져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 야마다는 나중에 작가라도 되는 게 좋을 성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선생님의 예언(?)대로 야마다는 메이지대학 문학부를 4학년 때 그만두고 작가가 되었다. 1987년 <솔뮤직 러버스 온리>로 나오키 상을 받은 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와 비견되는 작가로 성장했다. <나는 공부를 못해>는 1996년 출간 당시 10~30대 독자 사이에서 ‘도키다 히데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100만 부 넘게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한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도키다 히데미는 한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공부는 대충하고 수업이 끝나면 애인 모모코와 노느라 바쁘지만, 친구들과는 잘 지낸다. 대학입시를 앞두고도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담임 사쿠라이 선생의 영향으로 철학책이나 소설책은 즐겨 읽는다.

도키다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순간, 독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늘 새로운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할아버지가 “여자의 입을 열고 싶으면 칭찬하고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고 하는 말, 정치가가 되려는 고토에게 도키다가 “사람에 따라 무엇을 소음으로 생각하는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말 같은 것이다.

친구들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즉물적 인간’이라고 해도 도키다는 ‘고뇌할 틈이 없었다. 나는 허무라는 사치품과 놀 만한 환경에 놓여본 적이 없다’라며 영향받지 않는다.

도키다는 언제나 일등하는 와키야마에게 “넌 굉장한 인간이야. 인정할게. 그런 성적은 절대로 보통이 아냐”라고 말한 뒤 “그렇지만 넌 여자에게 인기가 없잖아”라며 위축되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게 지내던 도키다가 심한 감기에 걸려 학교에 못 간 날, 가타야마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에 가려고 했지만, 감기가 더 심해져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얼마 후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심장이 약해졌다”는 진단을 받고 퇴원한다.시간은 흘러가는 것두 번의 일을 겪은 도키다는 부쩍 성장한다. 가타야마를 떠올리며 ‘너무 애석하다. 봄 공기는 이렇게 기분 좋게 매년 우리를 배반하지 않고 찾아오는데,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한다.

할아버지 병실로 달려갈 때는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간을 위로 올려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에너지라는 이름의 오만일 뿐 사실은 흘러가는 것이고, 온갖 착각이 교차하는 것이 인간의 일생’이라는 생각도 확고해진다.

쌍꺼풀 수술을 한 마리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며 도키다에게 “나는 대학생 따위는 보기도 싫지만 대학생이 된 너는 좋아할 거라고 확신해. 넌 반드시 다른 사람과는 다른 공부 벌레가 될 테니까”라고 기대한다. 자신에게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는 사쿠라이 선생에게 도키다는 드디어 “대학에 갈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문학잡지 ‘신초’와 ‘분게이’에 발표한 연작 단편소설 7편을 모은 작품집 <나는 공부를 못해> 속의 도키다 히데미는 어쩐지 속 시원한 인물이다. 공부를 못해도 얼마든지 잘하는 걸 찾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기며, 열심히 달리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