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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프랑스어로 그린 속초, 감미로운 침묵의 대화가…

    작가에 대해 모른 채 <속초에서의 겨울>을 읽으면 ‘쓸쓸함이 감도는 속초의 겨울을 평이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필자의 독특한 이력을 알고 나면 속초의 겨울을 섬세한 침묵 속에서 속속들이 건져 올린 예리한 시선에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결국 추운 겨울 바다와 차가운 바람 속에서 문장 사이사이 스며든 감성들이 뜨겁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소름이 돋는 소설이다.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와 서울, 스위스 포랑트뤼를 오가며 자랐다. 스위스에서 학위를 받았고 현재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13세 때 어머니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여행했고, 그때 자신 안에 있는 두 문화가 조화로운 결합이 아닌 ‘단 하나의 영토에서 살려고 애쓰는 두 개의 개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뒤사팽은 ‘유럽에서는 아시아인, 아시아에서는 서양인’으로 살며 어디에 있든 자신의 일부는 ‘낯선 이방인’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저자에게 글쓰기는 ‘현실에서 찾아내지 못한 거처를 창조해내는 방법’이었다. 그 거처에서 자신이 ‘일상을 통해 알고 싶었던 만큼 한국을 속속들이 아는 젊은 여인’을 상상했고 그 상상이 <속초에서의 겨울>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이 소설은 뒤사팽이 어릴 때 사용하던 한글을 잊어버려 프랑스어로 썼고,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인 <속초에서의 겨울>은 출간 즉시 유럽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24세 때인 2016년 로베르트 발저 상, 프랑스 문필가협회 신인상, 레진 드포르주 상을 수상했다. 뒤사팽은 엄마의 나라에서 찾은 소재로 작가로서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태어나지 못한 아기가 전하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최근 ‘36주 태아 낙태’ 경험담을 올린 유튜브 영상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다 자란 아기가 태어나지 못한 일에 많은 사람이 가슴 아파했고 보건복지부에서는 낙태한 여성을 살인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우리나라에서 매년 3만 건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니 “원치 않는 임신, 부모의 형편, 여성과 아이의 인생, 낙태 찬반” 등 질문이 잇따라 떠오른다. <톡톡톡>을 쓴 공지희 작가는 “잉태된 순간 목숨의 주인은 그 아이입니다. 목숨의 주인 의견이 궁금하네요. 사람은 누구라도 배 속의 아이였으니, 나도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봅니다”라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쉽지 않은 소재를 다룬 <톡톡톡>은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톡톡톡>이 “이미 죽어버린 태아가 현실 공간에 나타나서 문제 제기를 하고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는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라고 평했다.낙태라는 문제 앞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의 행방과 그들의 생각 아닐까. 아무리 궁금해도 들을 수 없는 답을 공지희 작가가 상상의 나래로 풀어내 우리에게 전달한다. 생명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톡톡톡>을 읽다 보면 마음이 아려오면서도 안도하게 되고, 저며오는 슬픔 속에서도 가녀린 희망을 갖게 된다. 귀신놀이터에서 만난 노랑모자한적한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달림은 자신을 콩쥐라고 생각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가 성적 좋고 예쁜 언니 해림을 공주처럼 모시면서 달림은 마구 부려 먹기 때문이다. 고교생 해림의 방은 예쁘게 꾸며주었지만 달림은 오래된 가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언어감수성을 발휘하면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한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때 나는 얼마나 신중할까. 행여 내 말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건 아닐까. 이는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의 저자 신지영 교수는 사람들이 “피부 좋으시네요” “동안이세요” 같은 인사를 주고받을 때 피부처럼 언어도 예민하게 가꾸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언어감수성’을 떠올렸다. 신지영 교수가 오랜 기간 책을 출간하고 언론 인터뷰, 대중 강연, 방송 출연, 팟캐스트 진행 등을 하며 언어감수성을 강조하자 어느덧 많은 사람이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정제하게 되었다.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인 신지영 교수는 ‘언어감수성 전파’의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다양한 상을 받았으며 국립국어원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 옥스퍼드영어사전 자문위원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그간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언어를 밀도 있게 분석한 저자는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을 통해 우리의 언어생활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장을 마련했다. ‘관계는 말에서 비롯된다’ ‘언어에도 감촉이 있다’ ‘타인을 부를 때 생각해야 하는 것들’ ‘대화가 필요한 당신에게’ 등 10개 장으로 나누어 실생활에 바로 접목할 수 있는 언어생활을 촘촘히 배열했다.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언어감수성은 대체 왜 필요한 걸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옥탑방의 대책 없는 네 남자, 어쩐지 그들을 만나고 싶다

    망원동 8평 옥탑방에 사는 서른다섯 살의 무명 만화가. 이 한 문장에서 이미 이야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하다. 그걸 한 단어로 줄이라면 어렵지 않게 ‘한심’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 한심한 공간에 더 갑갑한 인물들이 모여든다.무명 만화가 오영준이 만화를 출간했던 회사의 김부장은 퇴직 후 캐나다로 갔다가 못 견디고 귀국해 옥탑방에 기어든다. 오래전 만화 스토리 강의를 들은 인연으로 영준이 싸부라 부르는 50대 백수 아저씨도 슬그머니 기생을 시작한다.동네 가야마트 오픈 이벤트 ‘빨리 먹기 대회’에서 김부장과 대결해 승리한 20대 고시생 삼척동자. 그는 영준의 대학 동아리 후배로, 고시원에 방이 있지만 거의 옥탑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상품으로 받은 TV를 옥탑방에 기증해 함께 야구를 본다는 명목으로.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 30대 무명 만화가,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백수 아저씨, 대책 없는 네 사람이 8평에서 같이 지낸다고 생각해보라. 30평 아파트에 산다 한들,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마당 넓은 옥탑이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눈앞에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집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그들의 케미에 합류하고 싶게 하는 작가의 놀라운 글솜씨 덕분이다.<불편한 편의점> 작가의 첫 소설<망원동 브라더스>는 국내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해외로 뻗어가는 중인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후 11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시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다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익인 소년과 도시 소녀의 우정과 사랑…판타지로 풀어낸 성장 스토리 흥미진진

    요즘 영어덜트 소설이 자주 거론된다. 청소년소설 당선작인 손원평의 《아몬드》,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가 갑자기 영어덜트 소설로 분류되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독자들도 있다. 카카오페이지와 창비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영어덜트 소설 공모’ 요강을 보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스토리의 재미와 감동을 즐길 수 있는 소설, 몰입감 넘치는 페이지터너이면서 동시에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작품’을 기다린다고 나와 있다.영어덜트 소설은 ‘12세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18세 이상의 성인 독자층이 절반 이상일 정도로 넓은 연령대에 인기 있는 장르’를 뜻한다. 주인공이 고난과 시련, 모험과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어덜트 소설로는 《헝거 게임》 《메이즈 러너》 《트와일라잇》을 들 수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청소년소설 속 주인공의 갈등이 여러 장르로 뻗어나간 것이 영어덜트물이다. 즉 외국에서 영어덜트물의 주인공으로 청소년이 선택된 것은 청소년이야말로 장르문학의 모양을 빌려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이 되기에 최고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익인들의 신비하고 신기한 기운여러 전문가가 ‘한국에서 영어덜트물을 잘 쓸 기대작가 1순위’로 구병모 작가를 꼽는다. 《버드 스트라이크》를 읽으면 왜 그가 기대 작가로 부상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읽는 동안 영화 ‘아바타’와 소설 《정글북》이 떠오르면서 디즈니 영화와 마블 영화 여러 편이 눈앞을 휙휙 지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매우 구체적인 묘사로 인해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

  • 교양 기타

    조선시대로 날아가 외모 콤플렉스를 던져버리다

    중학교 3학년 강체리는 ‘길고 가느다란 외까풀 눈, 동글납작한 코,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 작아서 답답해 보이는 입술’을 볼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세울 거라고는 맑고 흰 피부뿐인 체리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오조미. “신윤복 <미인도>에서 ‘갑툭튀’한 것 같지 않니?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최고 미녀였을 걸!”이라며 ‘오리지널 조선시대 미녀’ 딱지를 붙인 것이다.‘초긍정녀’를 자처하는 체리는 ‘본판마저 망치고 후유증에 시달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성형수술 대신 유튜브에서 성형 메이크업을 익힌다.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자신도 꾸미고 친구들도 치장해주지만 ‘촌발’날리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린다. “조선 시대라면 먹힐 미모인데, 차라리 조선 시대로 가버렸으면.”순간 블랙홀처럼 캄캄한 미로 속으로 휙 빨려 들어간 체리는 진짜 조선 시대로 와버렸다. 체리에게 “너 스스로 조선에 오고 싶어 해서 왔다”고 말하는 도무녀는 “막중한 임무가 있어 조선 시대로 왔으며, 임무를 완수하면 1년 후 미래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선언한다.체리의 임무는 효림대군의 동생 효연공주를 치유하는 것이다. 외모 콤플렉스로 절망에 빠진 공주마마를 치유시킬 방도를 궁리하는 내내 한숨만 내쉰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지하철도 수세식 화장실도 라면도 피자도 없는 조선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깊지만 “선녀처럼 곱다, 절세가인이다”라는 칭송에 체리는 점차 조선에 스며들게 된다. 조선 최고의 미모 덕에 꽃미남 효림대군의 관심을 받게 된 것도 두근거리는 일이다.체리는 연구를

  • 교양 기타

    세 살 아이가 바라보는 흥미롭지만 위험한 세상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는 건 외교관 아버지 덕분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아버지의 임지인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등지를 돌아다니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작가들의 작품에는 자신들의 경험이 어떤 형태로든 녹아들기 마련이다. 2000년에 발표한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의 화자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이며 작품의 무대는 일본이다. 자신이 태어난 일본을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나는 일본 사람이었다. 두 살 반에, 간사이 지방에서, 일본인이라는 것은 아름다움과 경배 속에서 사는 것을 뜻했다’라고 표현했다.이 소설의 첫 장에 기록된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신은 절대적인 만족이었다’는 문장에서부터 독자는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46개의 언어로 번역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독창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신랄하고도 빈틈없는 문체, 인간 내면을 한없이 파고드는 과감한 주제 선택’ 때문이다. 화이트 초콜릿을 먹고 깨어나다첫 장부터 비유와 상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태어나서 삼키고 소화시키고 배설만 해 파이프라는 이름을 얻는다. 울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아 의사가 식물인간으로 판정한 파이프는 두 살이 되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부모를 당황시킨다. 파이프는 가족들처럼 자신도 말하고 싶지만 잘 안되자 더 격하게 노여움을 표출한다. 자신을 막강한 힘을 가진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파이프

  • 교양 기타

    (55) 안 소피 브라슴 '숨쉬어'

    《이방인》에서 영감을 얻다명작 소설을 읽은 뒤 영혼이 주인공과 함께 멀리 떠나버린 듯 아득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으리라. 책을 읽고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에서 끝나는가, 내가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가.지난주 소개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강한 영감을 얻은 프랑스 소녀 안 소피 브라슴은 소설쓰기에 들어갔다. 열일곱 살 브라슴이 쓴 《숨쉬어》는 프랑스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판돼 돌풍을 일으켰고 17개 언어로 번역됐다.프랑스 문단에 데뷔한 최연소 작가의 작품 《숨쉬어》는 ‘이미 거장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소르본에서 문학을 전공한 브라슴은 스물한 살에 두 번째 소설 《몬스터 카니발》을 발표해 역시 호평을 얻었다.1984년생인 브라슴이 열일곱 살 때 딱 그 나이 친구들을 그린 만큼 《숨쉬어》는 10대의 정서를 날 것 그대로 풍긴다. 미묘한 마음이 방향 없이 흔들리다가 곤두박질치는 모습이 현기증 날 정도로 선명하다.긴 인생에서 10대는 어떤 나이인가. 아직 배우고 충고를 들어야 할 때라는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지금이 인생의 정점’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아직 인생의 초입이고, 많은 것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 보길 권한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 샤를렌 보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서 지내고 있다. ‘확실히 나는 잔인했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잔인했다’고 읊조리면서.풍족한 가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