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가 암을 이긴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장 거룩한 것은

장재선


겨울 끝에서 봄이 일어나는 것처럼
명랑 투병으로 희망을 일으킨다는
당신,
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단정한 시를 쓰는 분이
그렇게 말이 빠를 줄은 몰랐지요.
암을 다스리는 분이
그렇게 많이 웃을 줄도 몰랐지요.

교도소 담장 안의 이들과
편지를 나눈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 떠난 이들이 사무쳤던
당신,
끝내 눈시울을 붉혔지요.

가장 거룩한 신앙은
가장 인간적인 것임을 알려준
당신,
웃다 울다 하는 모습이
예뻤어요.

* 장재선: 1966년 전북 김제 출생.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로 만난 별들>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장재선 시인은 문학 담당 기자이기도 합니다. 암 투병으로 고생하던 이해인 수녀를 만나고 나서 ‘가장 거룩한 것은’이라는 시를 썼다고 해요.

‘시 쓰는 수도자’ 이해인 수녀에게 암이 발병한 것은 2008년 여름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 것과 달리, 정작 그는 ‘명랑 투병’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밝고 명랑했지요. 이 시의 첫 구절 ‘겨울 끝에서 봄이 일어나는 것처럼’ 맑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명랑 투병? 하하. 제 이름이 명숙이에요”‘명랑 투병’이란 표현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해인 수녀가 문화부 기자인 장재선 시인에게 들려준 얘기는 이렇습니다.

“명랑 투병? 하하. 제 주민등록상 이름이 명숙이에요. 밝을 명, 맑을 숙. 암센터에서 진단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수술 먼저 하겠느냐, 방사선 치료 먼저 하겠느냐고 묻더군요.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즉시 표정을 밝게 하고 답했지요. 60여 년 살았으니까 됐어요. 선생님 좋은 대로 하셔요.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을게요.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더니 수술한 의사 선생님이 ‘수녀 시인이 너무 화통하고 명랑하더라’고 주변에 얘기해서 소문이 났나 봐요. 그러면 그에 맞게 명랑 투병하자, 목표를 정했죠. 마음먹으니까 되더라고요.”

그는 아픈 중에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신저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교도소 담장 안의 이들’과 ‘세상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무기수로 복역 중인 신창원과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고, 직접 면회를 가거나 전자우편과 화상면회로 만나면서 마음을 어루만져줬지요.

열네 살 위인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뒤 그를 만나 심신을 의지하면서 슬픔을 이겨냈습니다. 박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9개월 전 편지에 이렇게 썼지요. “당신은 고향의 당산나무입니다. 내 생전에 당산나무가 시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꼭 당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주십시오. 주여 제 욕심을 불쌍히 여기소서.”‘살기 싫다’는 편지 보내온 사람도그의 글방 창고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몇 십만 통의 편지가 보관돼 있습니다. 보낸 사람의 직업에 따라 색깔별로 분류해놓은 편지에는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지요. 가출 소녀와 미혼모,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 ….

아픈 그에게 ‘살기 싫다’는 편지를 보내온 이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한 줄이라도 답을 해주려고 애쓴다고 했지요. “거기엔 죽은 사람의 편지까지 있다”는 말끝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금방 환하게 웃으며 병상에서 쓴 시 ‘새로운 맛’을 가만가만 들려줬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어하는 나에게/ 어느 날/ 예쁜 영양사가 웃으며 말했다.// 물도/ 음식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 그 이후로 나는/ 바람도 햇빛도 공기도/ 천천히 맛있게 씹어 먹는 연습을 하네 ….’

그는 “생사의 기로에 있어 보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모든 게 새로운 ‘보물’이 된다”며 “누군가의 비난을 받으면 내가 겸손해지니까 그것 또한 보물”이라고 말했죠.

이런 그의 모습에 감명받은 장재선 시인은 시의 마지막을 ‘가장 거룩한 신앙은/ 가장 인간적인 것임을 알려준/ 당신,/ 웃다 울다 하는 모습이/ 예뻤어요’라고 장식했습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결구(結句)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와 삶은 험한 세상을 건너는 우리에게 새로운 봄과 큰 숲,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갓 태어난 어린 새들’의 날갯짓까지 함께 선물해주는 것 같습니다.√ 음미해보세요
시인
시인
이해인 수녀는 “생사의 기로에 있어 보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모든 게 새로운 ‘보물’이 된다”며 “누군가의 비난을 받으면 내가 겸손해지니까 그것 또한 보물”이라고 말했죠. 이런 그의 모습에 감명받은 장재선 시인은 시의 마지막을 ‘가장 거룩한 신앙은/ 가장 인간적인 것임을 알려준/ 당신,/ 웃다 울다 하는 모습이/ 예뻤어요’라고 장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