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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 Keith Jenkins, Re-thinking History, 1991 ) 케이스 젠킨스는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의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에 있는 치체스터 대학교의 역사담당 조교수다. 그는 '포스트모던' 역사연구 분야에서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다른 역사학 이론서를 제쳐두고 듣도 보도 못했을지도 모를 이 책을 읽을 것을 제안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전(古典)'이라는 딱지가 기존의 권위와 관습에 근거해 붙여진 이름이라면,바로 그러한 고전을 비판의 눈으로 상대화해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을 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할 것이다. 적어도 논술의 필수적 구성요소로서 '비판'의 기능을 인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질문 바꾸기 "그래서 이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누구'로 대체하고,'위하여'를 뒤에 덧붙여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바꾸어야 제대로 된 물음이 될 것이다.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역사란 다른 집단에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 논쟁적 용어 혹은 담론이며,따라서 역사는 필연적으로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책은 질문에 대한 문제제기다. 질문은 답변의 범위와 가능성의 경계를 이미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잘못된 질문에 올바른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바로 이 점이 젠킨스가 역사학 입문자에게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했던 이유'인 것이다. ◆ 객관성과 주관성 역사가의 임무가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혀내는 데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를 위한 역사'를 쓰는 역사가는 애초부터 바람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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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엔탈리즘과 배타적 민족주의는 닮은꼴

    [가] 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고 싶군요. 제국주의 시기에 서양인들은 자원 착취와 시장의 확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 문화 지리 사상 등과 관련된 해외 원주민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죠. 이런 식으로 제국주의 시기에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동양에 관한 지식의 체계가 '오리엔탈 스터디' 곧 '동양학'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서양 동양으로 나누고 '서양=문명,동양=야만'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양을 폄하했습니다. 그들은 불상에 대한 경배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 숭배나 미신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서양 종교가 정말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서양의 종교도 기적의 염원과 마술이 팽배했던 전통시대 의례와 관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잖아요. 향을 피우고 물을 뿌리고 하는 것들도 원래는 주술적인 관습들이 종교적으로 의례화된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것들이 고등 종교로 발전하면서 세련되고 멋있게 보이는 것이지요. 이런 행위만이 문명적인 것이고,동양의 종교에서 향 피우고 절하는 것은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우상 숭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렇게 만들어진 서양의 동양관을 내면화해서 스스로의 문화와 사상을 미신,비합리,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내면화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엔 힘의 논리,강자의 억압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 작용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건대 서구적인 근대화에 몰입하다 보니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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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스웨덴의 스톡홀름 근교에 가면 방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궁전을 만나게 된다. 드로트닝홀름이라는 이름의 이 궁전은 18세기에 건축된 왕궁과 넓은 정원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궁전을 거닐다 보면 재미있는 별궁이 나오는데 그 양식이 중국풍이다. 이 이국적인 궁전은 왕비를 위한 왕의 특별한 선물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적어도 당시의 유럽에서 중국풍이라는 것이 대단히 고급스럽고 값비싼 '트렌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상 속의 동양 근대 초기 유럽의 예술과 사치품을 지배한 동방 취미 풍조를 일컫는 말이 '오리엔탈리즘'이다. 본래 이 말은 동양에 대한 유럽 사회의 동경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양의 동경 대상이었던 중국은 '실재하는' 중국이었을까? 스웨덴의 이 중국풍 궁전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중국 건물이지만 기와는 없고(단지 기와 흉내를 내기 위해 지붕에 굴곡을 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류(적어도 동양에는 없는)와 용(서양의 불 뿜는 용)이 동양을 상징하는 동물로 벽에 조각돼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실제 중국이 아닌 그야말로 상상 속의 중국이다. 전해 들은 풍문으로 그려낸 중국이 실제 중국과 같을 리 없겠지만,이 상상 속에서 동양의 상을 조각한다는 오리엔탈리즘의 근본 동기는 실제 동양을 보고 온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다음의 구절을 보자. "벵골인의 신체조직은 여성과 같다고 할 정도로 유약하다. …여러 시대 동안 그는 용감하고 대담한 남자들에게 짓밟혀왔다. 용기,독립,정직과 같은 특질들은 그의 체격과 상황에는 한결같이 적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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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 해제

    다음 제시문 (가) (나) (다)에는 죽음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태도가 각기 다르게 드러나 있다. 이들의 다른 점을 기술하고,이를 논거로 활용하여 인간이 죽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논술하라. ---------------------- [가] - 플라톤 '파이돈'에서 "오오 나의 벗이여"라고 소크라테스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라고 하면 이제 인생의 여로의 마지막에 이르러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감에 있어,일생 동안 추구해 온 것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충분한 이유가 있네. 그러므로 나는 큰 기쁨을 가지고 내 갈 길을 가는 걸세. 나뿐만 아니라 마음에 각오가 되어 있고 마음이 정화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갈 걸세." "아주 옳은 말씀이외다"라고 심미아스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정화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즉 영혼이 모든 방면에서 육체로부터 떠나 자기 자신을 수습하고 저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도,될 수 있는 대로 자기만으로 사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면 육체의 쇠사슬로부터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그렇습니다."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고 해방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요." "참 철학자들만이 오로지 영혼을 이와 같이 해방시키려 하는 거야. 육체로부터의 영혼의 분리와 해방이야말로 철학자들이 특별히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말한 것처럼 될 수 있는 대로 죽음의 상태에 가깝게 살려고 애쓰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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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

    1. 플라톤의 철학적 방법 플라톤의 '대화편' 속 주인공인 소크라테스(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라 해야 할 것이다)는 아무리 하찮은 사람의 이야기도 그냥 흘려 듣는 법이 없다. 그 사람이 아무리 멍청하고 우스운 질문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무뢰배,도통 귀를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에게도 좌절하지 않는다. 장소와 사람은 다르지만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본질을,이데아를 찾아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가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자신의 무지를 토로하면서 끝나는 대화편도 있고 모호한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진정한 철학이란 바로 이런 플라톤의 태도에 있는 것 아닐까?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탐구라는 거창한 언명보다 내 삶에서 느끼는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을 함께 고민해 주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의 의미일 것이기 때문에. 오늘 소개되는 플라톤의 '파이돈' 대화편은 상기론 증명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바로 이 파이돈 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돈에 나타난 상기론 증명은 이데아론의 밑바탕 위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상기론 증명을 살피는 일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인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2.파이돈에서의 이데아 파이돈 편의 대화는 감방에 갇힌 소크라테스가 죽기로 되어 있는 날 아침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뤄진다. 대화의 주제는 죽음이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는 대담하고도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슬퍼하는 그의 추종자들을 위로한다. 소크라테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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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고려대 정시 논제

    다음 네 개의 제시문에 공통되는 주제를 말하고 제시문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시오. 그리고 그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2005년 고려대 정시 논제) 1. 우리가 가진 근본 욕구들 중에는 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큰 조직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를 불가피하게 억압받고,조직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요받는다. 그 규칙은 인간에 의해 고안되었지만 인간 자체는 아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만들어졌어도 거기에는 '사람의 손길(human touch)'과 같은 유연성이 없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조직의 구성원은 도덕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게 된다. "미안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건 제가 받은 지시 사항입니다." 이처럼 큰 조직들은 아주 불량하고 부도덕하게,또는 아주 어리석고 비인간적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는 그 구성원들이 본래 그래서가 아니라 그들이 조직의 크기에서 오는 하중을 받기 때문이다. 큰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게 되지만 이런 비판은 마치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배출한다고 해서 운전자를 나무라는 것과 같다. 천사라도 공기를 더럽히지 않고 차를 운전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결국 잘못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있다기 보다는 조직의 크기에 있는 것이다. 개인들로 하여금 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가진 사회는 부도덕하다.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거대주의에 의한 합리화'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너무 커진 규모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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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것이 아름답다

    E.F 슈마허(이상호 옮김, 문예출판사, 2001)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성장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생태계의 파괴를 지양할 수 있는 반성과 전망을 담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 문명 전체에 대한 하나의 명백한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파생된 사유체계로서의 경제학',즉 메타경제학적 관점으로 현실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성장과 생산에 대한 근대인의 일방주의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지난 100년 동안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회보다 위험을 좀 더 빠르게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이미 자연의 저 위대한 자기균형 체계가 특정한 측면과 지점에서 점점 더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러한 해결의 결과로서 열 가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코모너(Barry Commoner) 교수가 강조하듯,이 새로운 문제는 우연한 실패의 산물이라기보다 기술적 성공의 산물이다." ◆모든 집단이 무한히 성장할 수는 없다 발전과 번영이 양적인 의미의 증가만을 의미하는 순간 우리는 예견된 실패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근대 이후 경제학에 새로운 과제로 부각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근대사회의 기술적 성공의 산물이다. 모든 나라와 민족,집단이 무한히 성장할 수 있으며,물질적 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슈마허가 간디에게서 빌려 온 "대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지혜로운 말은 오늘날 풍요 속 빈곤의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성장은 여전히 모든 국가의 목표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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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성균관대학교 정시 논제

    - 영문 제시문은 한글 번역문으로 바꾸었음. 1. 은 한 학자가 문화와 관련해 음악에 대해 쓴 글이다. 이 글의 논지를 자세히 기술하시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강조했듯이,문화산업의 본질적 특성은 반복(재연)이다. 아도르노는 '대중적' 음악과 '순수한'음악을 대비시켜 이것을 설명한다. 아도르노의 초기 작업에 해당하는 1936년도 논문 '재즈에 대하여'에서 그는 "대중음악의 본질적 특성은 표준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1941년 씌어진 '대중음악에 대하여'에서 이 점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대중음악의 전체 구조는 표준화를 회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조차 표준화되어 있다. 표준화는 가장 일반적인 작품에서부터 가장 독특한 작품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표준화는 부분적인 것들의 교환 가능성,즉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대조적으로 아도르노에게 있어 순수음악(고전음악)은 '구체적 전체성'이다. 그것에 따라 "모든 세부적인 것이 곡의 구체적인 전체성으로부터 음악적 감각을 이끌어 낸다." 이것은 변증법적 관계로,그에 따라 전체성은 특수한 것들의 유기적 상관 관계로 구성된다. 순수음악의 경우 교환 가능성은 가능하지 않다. 하나의 세부 사항이 빠져도 "모든 것을 잃는다." 대체 가능한 에피소드를 가진 연속극,정형화된 틀을 가진 공포영화 등과 같은 다른 사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독점 자본주의 산업의 표준화되고 반복된 과정들이 문화적 생산의 영역에서 반영되기 때문이다.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여가 시간에 그러한 반복에 접근함으로써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근무 중에 일어나는 일을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