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 테 ]

파우스트는 1480년에서 1540년 사이,콜럼버스와 코페르니쿠스,다빈치,루터와 같은 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이 시기는 지식인들이 여전히 중세적 과거에 사로잡힌 상태였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어렴풋한 예감을 갖던 시기이다.

그래서 적지않은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각자 희망과 절망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변혁기였다.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인 요한 파우스트는 강신술의 원조이며,점성술,수상,바람점,불점,수점 등의 대가로 기록되어 있다.

또 그는 연금술사,예언자,마법사 그리고 박사학위를 지닌 의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체적인 윤곽을 갖춘 파우스트 전설은 15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중적인 이야기 책으로 출판되었으며,영국에서는 크리스토퍼 말로(1564~93년)가 파우스트를 극의 소재로 쓰기도 했다.

괴테(1749~1832년)는 어린 시절 『파우스트』 인형극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결정적으로는 청년 시절에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족의 혼과 힘이 과거에 더 순수하게 구현되었다는 말에 자극을 받고 새삼 파우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괴테는 1772년부터 『파우스트』의 초고를 쓰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에 제2부를 완성한다.

『파우스트』의 형식은 오래 전에 사라진 '서사시'의 새로운 등장으로 규정된다.

『파우스트』가 서사시가 된 것은,당시 유럽의 후진국 독일에서 격변한 서구 세계를 통시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즉 괴테는 거시적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당대의 합리적 논리 대신 자유롭고 비역사적인 구성 방식을 택했다.

괴테는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어 서술자의 개입이 필요치 않게 했다.

파우스트의 다양한 모험은 독자들에게 제시되기만 할 뿐이다.

특정 장면에 대한 설명이나 작가의 의도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도 없다.

사건 전개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작품의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은 독자나 관객의 몫이다.

1.삶의 의미를 잃은 지식인삶의 의미를 잃은 지식인

◆원문 읽기

파우스트 : 아! 나는 철학/법학,의학/그리고 신학까지/열과 성을 다해 두루 공부했지./그러나,지금 여기 서 있는 난 가련한 바보! (중략) 그 대신 또한 모든 즐거움을 잃어버렸구나./그렇다고 재산이나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이 세상의 명예나 영화도 누리지 못하니/개라도 더 이상 이 꼴로 살기는 원치 않으리라!

▶해설=끊임없는 정진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최고의 경지에 오른 노학자 파우스트는 서재에 앉아 지나온 삶에서 얻은 것은 허무뿐이라고 한탄한다.

학문을 통해 궁극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인생을 바쳤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죽음을 결심한다.

그러나 괴테는 허무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일 뿐 아니라 또 위대한 문학의 공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 시작한다.

인간의 절망은 악마에게는 희망인 법.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로 한다.

이제 파우스트는 현실 세계에 등을 돌리려고 한다.

2.인식욕에 사로잡힌 근대인 인식욕에 사로잡힌 근대인

◆원문 읽기

파우스트 : 지식에서 벗어나 나의 마음은/앞으로 어떤 고통도 감수하면서 인류 전체에 주어진 것을/내 내면의 자아로 깊이 음미해 보려네./내 정신의 가장 높고 깊은 것을 파악하고,/그 기쁨과 슬픔을 내 가슴에 쌓아 올리면서/나의 자아를 온 인류의 자아로까지 확대시키려네./마침내 인류와 더불어 나 역시 파멸에 이를 때까지.

▶해설=파우스트는 보편적 이성의 존재를 믿은 근대인의 전형이다.

그는 신이 지배하던 중세적 가치를 거부했다.

인간이 신과의 사이에 난 경계선 저편의 것을 얻으려고 하는 거인적 노력은 신에 대한 모독이 되고,그로 인해 비애와 고뇌를 얻는다는 것이 비극의 토대이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되고자 하는 영웅적 충동이 생기면,즉 개별화의 속박을 넘어서 세계의 본질 자체에 동화되고자 할 때,그는 사물 속에 내재하는 근원적 모순을 떠맡게 된다.

즉 고통받는 영웅이 된다.

헤겔에 따르면 서사시에는 어떠한 행위를 통해 세계의 총체성이 드러나는데,이 서사시적 총체성은 개인들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개별성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즉 고대 서사시의 영웅은 일종의 세계 정신의 체현자인 셈이다.

영웅 덕분에 형식을 얻고 영웅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세계가 서사시의 공간이라는 것.

그런데 역사의 전개는 영웅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근대 세계는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을 해체시킨다.

예컨대 고대 영웅들이 그 시대의 윤리와 정의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였다면,근대의 경우 이런 것들은 국가의 법과 기구 속에서 객관화되고,개인은 여기에 그저 순종해야만 함으로써 더 이상 총체성에 형식을 부여하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여전히 세계를 총체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근대의 서사시'에서 궁극적으로 영웅은 존재하지 못한다.

3.구경하는 자에서 행동하는 자로 변하려 했으나경 자에서 행동하는 자로 변하려 했으나

◆원문 읽기

메피스토펠레스 :그러고 보니 당신의 소원도 알겠소이다./그건 확실히 숭고하리만큼 웅대한 것이었지요./그렇게 달 가까이까지 날아간 당신이니,/역시 같은 병이 당신을 끌어올리는 모양이군요?

파우스트 : 당치도 않은 소리! 이 지구엔 아직도,/위대한 일을 할 여지가 남아 있다./놀랄 만한 일을 해 내야겠단 말이다./나는 모험적인 노력을 해야 할 힘을 느낀다.

▶해설=파우스트는 큰 세상을 두루 다니며 인류와 하나가 되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그래서 요한복음 서두의 말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즉 루터가 '말씀'으로 번역한 '로고스(logos)'를 '행동'으로 바꾸어 읽는다.

'기쁜 마음으로 선언하노니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괴테는 행동적인 주인공을 원해서 그에게 합당한 말까지 끌어 대며 지옥의 힘까지 그를 돕도록 만든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좌충우돌하며 온갖 향락을 경험하지만, 장면이 이어질수록 그 행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함을 알게 된다.

여기서 고대 서사시의 영웅과 다른 점이 분명히 나타난다.

파우스트의 무기력 속에서 근대인의 한계를 볼 수 있다.

근대 세계에서는 수동적인 상태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 개인'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인류의 운명에 개입하기보다는 그것을 함께 나눌 뿐이다.

그의 관심은 인류 전체의 경험을 개인의 내적 자아로 느끼는 데 있다.

4.그러나 실패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실패한 것은 아니다

◆원문 읽기

파우스트 :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메피스토 : 영원한 창조란 도대체 무엇이냐?/창조된 것은 무(無) 속으로 휩쓸려 가게 마련이다./(중략) 난 오히려 영원한 허무가 좋단 말이다./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천사 : (파우스트의 불멸의 영혼을 나르면서 더욱 높은 공중에서 떠돈다)/영혼 세계의 귀하신 분이/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게다가 이 분에겐 천상으로부터의/사랑의 은혜가 관여하여 왔으니,/축복받은 사람들의 무리가/진심으로 환대할 것입니다.

신비의 합창 : 일체의 무상한 것은,/한낱 비유일 뿐./미칠 수 없는 것/여기서는 실현되고,/말할 수 없는 것/여기서는 이룩되었네.

▶해설=『파우스트』는 현실과 비현실,논리와 비논리 세계를 넘나드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인류에게 가능한 삶의 다채로움,다양성,가능성과 아울러 삶의 한계와 기본 가치에 천착하도록 해 주는 작품이다.

파우스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를 총체적으로 경험하려 했으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얻은 것도 실패와 허무뿐이었다.

그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했지만 그 노력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실감하였고,그 또한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닫고 삶을 마무리한다.

인생은 덧없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고,그 안에서 노력하며 애쓰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괴테는 '인간의 한계'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태초의/성부가/굴러가는 구름에서/의연한 손으로/축복의 빛을/지상에서 뿌릴 때/나는 그의 옷섶 끝에/입맞추노라/어린아이 같은 두려움이/가슴에 꽉 찬다.//그럴 것이,어떤 인간도/신들과/겨루어서는 안 되니까./그가 만일 고개를 위로 들어/정수리가/별에 닿는다면,/불확실한 발바닥은/어느 곳에서든 붙지 못하리라/구름과 바람이 그와 함께 놀리니.//기반이 단단하게/계속 버티는 땅 위에서/견고한,기골 있는/뼈대를 갖고 그가 설 때에/그저 참나무나/포도 덩굴에게나/비길 정도로밖에/되지 못하리니.//무엇이 신들과/인간을 구별짓는가?/그들 앞에서/많은 파도가 변화하지만,/영원한 흐름 하나 있도다!/그 파도 우리를 들어올리고/그 파도 우리를 삼키네//그리고 우리는 가라앉는다./우리의 삶은/작은 고리의 경계를 이루고/그리고 숱한 세대들은/신들은 그들 현존재의/무한한 굴레에/끊임없이 연결짓는다.

임혜빈 S·논술 서대문학원 원장 imhaeb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