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명에 유전자 조작이 이뤄지면…

◆위르겐 하버마스(Habermas,Jurgen)


1929년 독일 출생. 현존하는 최고의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의 하나.

이성의 해체가 아닌 완성을 통해 근대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했다.이 점에서 상대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적 조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표적 사상가이다.

주요 저서로 『공론장의 구조변동』,『의사소통 행위이론』,『사실성과 타당성』 등이 있다.

미래에 다음과 같은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까.

2050년 겨울,고3 학생 A는 예상치 못한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된다.그는 높은 지능과 강한 집중력으로 고교시절 내내 성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수능성적도 이에 걸맞게 나왔고,그는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그의 꿈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들은 A가 법대에 진학한 후 판·검사가 되어주기를 원한다.

출세와 성공에 대한 세속적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 적성이 판·검사에 맞아. 영화감독은 거기에 맞는 소질을 가져야지 할 수 있는 것이지,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A는 숱한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동을 가슴에서 지워내지 못한다.

더욱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님이었다.

A는 영화 관련학과 진학에 대한 소신을 꺾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주장을 꺾지 않는 부모님들의 애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다.그러나 이것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기 전까지였다.

그것은 판·검사에 맞는 소질을 가지도록 A의 유전자가 조작되었으며, 그것이 대형 병원의 유전자 조작 시술에 대한 제안을 그의 부모가 흔쾌히 받아들인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하버마스의 논점에 접근하기 위해 색다른 상황을 제시해보았다.

일단 A에게 시술되었을 PID(착상 전 유전자 검사)에 대해 알아보자. 부모가 될 이들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배아가 생긴 후,이것이 자궁의 내벽에 파묻히는 것을 착상이라고 한다.

PID란 체외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배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말한다.

PID를 통해 부모는 유전적 질환을 지닌 배아를 걸러내고 건강한 배아만을 착상시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유전공학의 발전에 따라 PID를 토대로 배아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 시도될 수 있다.

A처럼 소질마저도 조작된 인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는 바로 이 PID에 입각한 유전자 조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원문읽기

과학연구의 자율성은 자유주의적 헌법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자연에 대한 기술적 통제가 점점 더 광범위하고 심층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생산성의 진보에 대한 경제적 약속이 지켜질 뿐만 아니라 좀 더 큰 개인의 결정공간에 대한 정치적 전망도 충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가 증가함으로써 개인들의 사적 자율성도 촉진될 것이기 때문에,지금까지 과학과 기술은 모든 시민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삶을 자율적으로 꾸려 갈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근본 관념과 아무런 강제 없이 결합할 수 있었다. (중략)

생물학적 연구와 유전공학의 법률적 간섭은 사회적 근(현)대성을 지배하는 자유의 경향을 막아보려는 무모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인간 자연의 도덕화가 의심스러운 재신성화(재종교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해설=하버마스가 이른바 '자유주의적 우생학'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이 입장은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지고,이로써 경제적 발전이 가능해져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 우생학은 생명공학의 발전마저도 손쉽게 자유의 확대에 연결시킨다. 생명공학의 발전 방향에 대한 간섭은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고 중세의 무지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로 간주된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유전자 조작에 의한 변형을 자율성 신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을 각기 고유한 삶을 영위하는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 인격체로 봐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유전적 변형이 이러한 관념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원문읽기

로널드 드워킨 (Ronald Dworkin)은 그와 같은 사정을 지금껏 최종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조건에 대해서 유전공학이 이끌어낸 관점의 변화를 통해 설명한다; 우리는 진화를 포함하여 자연이 (중략) 창조한 것과 우리가 이 자연이 준 유전자의 도움을 받아 세계에서 만들어낸 것을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모든 경우에서 우리가 원래부터 그런 것과 우리가 이 유산을 이용하여 스스로의 책임 아래 산출해 낸 것의 경계를 긋는다. 우연과 자유로운 선택 사이의 이 결정적 경계야말로 우리 도덕의 지주다. (중략) 우리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기획할 수도 있다는 전망에 경악해 한다.

왜냐하면 이 가능성은 우리의 가치척도의 바탕에 놓여 있는 우연과 결정의 경계를 허물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한다. 자연적인 것은 또한 우리에게 우연적인 것이기도 하다. 부모의 염색체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자신의 유전적 소질과 성향 역시 우리에게 우연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우연적이다.

또한 인위적인 것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드워킨의 주장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에,또한 우연적인 것과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 사이에 경계가 존재함으로써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버마스 역시 드워킨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는 PID를 기초로 한 유전자 조작이 두 가지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도덕의 존재조건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 두 가지의 경계가 존재함으로써만 도덕적 판단과 행위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원문읽기

인격체가 자신의 몸과 하나임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그 몸은 자연발생적인 것으로서 경험될 수 있어야만 할 것처럼 보인다. (중략)

자신의 자유는 어떤 자연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과 연관하여 체험된다. 인격체는 자신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자기 행동과 주장의 최종적 원천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 위해 자기 자신의 유래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시초로 환원시켜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그가,신이나 자연처럼,다른 인격체의 통제를 벗어나 있을 때 단지 그 때에만 자신의 자유가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게 되는 바로 그런 시초로 말이다. 출생의 자연성 또한 그와 같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초에 대해 개념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충족시킨다.

▷해설=자신의 몸이 타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으로 느껴져야만 인격체는 자신의 몸을 진정한 자신의 것으로 느낀다.

자연적인 것은 자신도 타인도 마음대로 조작하지 못한 어떤 것이다. 종교적 창조론에 의해 우리 몸의 시원을 설명할 경우에도,타인에 의해서나 자의에 의해서 조작되지 않은 것이라는 점에서 몸은 우리 자신의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듯 몸이 자신의 것으로 느껴져야만 인간은 자신이 자신의 행동과 주장의 주체라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해,몸의 자연성으로 인간의 자율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덕은 인간의 자율성을 전제로 가능하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사실 자체는 자율성,다시 말해 자유로운 판단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영역이다. 반면에 살인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정당하게 일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에 관해 생각해보자. 이 결정은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의 영역이다. 이러한 자율적 영역이 존재함으로써 도덕이 존재한다.

서두에 제시한 상황을 다시금 상상해보자.

자신의 유전자가 조작되었음을 안 뒤 A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 사실을 알기 전,그는 자신에 있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과 자신의 의식적 노력과 선택에 의한 것의 경계를 배경 삼아 삶을 영위하였을 것이다. 또한 그 점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한 배경 속에 그는 자신을 제 삶의 주체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진정 자신의 것으로 느낄까? 그는 삶의 계단을 하나하나 '자신의 방식' 대로 오르면서,그 선택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것임을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자신의 도덕적인 판단과 행위마저도 유전적 조작의 결과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그는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A와 같은 인간들이 넘쳐날 때 인간관계는 또 어떠할까? 우리는 과연 서로를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대우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은 하버마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PID에 기초한 유전자 조작이 기존의 '인류의 규범적 자기이해'를 붕괴시킬 위험성으로 요약된다.

하버마스는 이로부터 부지불식간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유주의적 우생학―PID에 기초한 유전적 소질 변형―을 법적으로 통제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전공학의 발전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유전자에 대한 조작을 치료 목적의 한도 내에서만 허용하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이석연 S·논술 수원학원 원장 blachand@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