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6명 '에로스(사랑의 神)'를 두고 '사랑'을 논하다

'향연' 그리스어로 'symposion' … '함께+마신다'는 뜻

◆책소개


[고전 속 제시문 100선] (29) 플라톤 '향연'(Symposion) (상)
『향연』은 그리스어로 ‘symposion’인데 이는 ‘함께(sym)+마신다(poison)’는 뜻이다.

즉 술자리를 뜻하는 단어이다.

이 책의 배경을 이루는 사건은 아가톤이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후에 그를 축하하기 위해 펼쳐진 향연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플라톤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향연에서 참석자는 사랑의 신인 에로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나씩 하기로 한다.

여기서 에로스(eros)는 에로스신을 가리키거나 사랑 또는 욕구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고전이란 우리에게 지루하고, 길고,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나 유명한 고전 중에 매우 쉽고 짧은 책(200쪽)도 있다.

바로 플라톤의 ‘향연’이다.

저자나 제목만을 봐서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영화나 뮤지컬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뮤지컬 ‘헤드윅’에서 오만석. 조승우 등의 스타 배우가 부른 ‘Origin of love’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영화 속의 애니메이션도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노래 가사와 영화 속 애니메이션이 플라톤의 향연 속의 이야기 한 토막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헤드윅’의 이 노래는 사랑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랑하는 관계인 두 사람(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고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일 수도 있다)은 원래는 한 몸이었지만 둘로 나누어 졌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함께 노래를 들어보면 뭔가 애절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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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원에 관한 이 이야기를 2000년이 지난 지금 사용하게 된 것은 다소 의도적인 측면도 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니라 이성애처럼 자연스런 본능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향연에 나오는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논증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헤드윅'이 이 이야기를 삽입한 것은 결코 예술적인 의도에서만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술자리에 모인 6명이 각자 에로스(사랑의 신)에 대해서 찬양하는 연설을 기록한 것이다.

먼저 파이드로스와 파우사니아스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연설을 하고,에릭시마코스는 동양의 음양오행설과 유사한 우주 만물의 조화로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는 그 유명한 쌍체인간 신화를 들려주며 사랑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 뒤에 아가톤이 사랑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아리스토파네스와 아가톤의 논의를 종합하고 발전시켜 플라토닉 러브에 대해 논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니,순수하고 고결한 것이라고 말하며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적인 목적에는 분명 욕망(섹스)도 포함될 것이다.

이 책에서 플라톤도 사랑이 결국 욕망이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고상한 철학자도 인간의 본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향연의 연설자 중에서 사랑의 기원에 대해 설명한 인물은 아리스토파네스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유명한 쌍체인간 신화를 통해 아주 그럴 듯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인간은 태초에 남자와 남자,여자와 여자,남자와 여자의 쌍으로 결합된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반으로 쪼개어서 남자·여자의 두 가지로 분리되었고,쪼개진 남자나 여자는 원래의 반쪽인 남자나 여자를 다시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성서에서는 남자의 신체 일부를 떼어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야기는 성서의 이야기에 비하면 훨씬 세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성애뿐만 아니라 동성애까지 설명할 수 있고 남자와 여자 사이를 수평적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욕망의 본질에 대해서는 언어적 분석에 의해서도 같은 원리를 엿볼 수 있다.

영어로 '원하다'의 의미인 'want'는 명사로 빈곤·결핍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원한다면,그 무엇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물이 부족할 때 물을 원하고 영양이 부족할 때 밥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의 반쪽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떨어져 나간 반쪽을 찾기 위해 몰입하게 된다.

사랑에 관한 많은 영화들이 다루는 내용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기의 반쪽 찾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팔이나 다리의 한 쪽이 없다면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2분의 1을 결하고 있다면 그 고통과 그리움은 팔이나 다리와 비교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랑이 그토록 강렬한 행복을 주기도 하고,그토록 강한 슬픔을 줄 수도 있는 이유이다.

사랑의 이야기가 모든 희극과 비극의 흔한 주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바로 앞 순서의 연설자인 아가톤은 다른 연설자들의 에로스에 대한 찬양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에로스에 대한 찬미를 늘어놓는다.

에로스는 가장 아름답고,선하며,훌륭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연설이 끝난 후 지금까지의 에로스에 대한 찬양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원문 읽기

우리는 처음부터 정말로 에로스를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찬미하는 척하기로 했나 보군.그래서 자네들은 천지를 들쑤셔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찬사를 에로스에게 갖다 붙이고,그의 본질이 뛰어나고 그의 선행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 같네.그렇게 해서 그를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신인 듯 표현하고 있는 거지.그러나 그건 무지한 자들에게나 통하지 철학자에게는 통하지 않아.

첫째,에로스는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야.둘째, 에로스는 자기에게 결여된 것에 대한 사랑이겠지? 자네가 주장한 대로라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지 추함에 대한 사랑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고 소유하지 못한 것이지? 그러면 자네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에로스가 아름답다고 주장할 텐가?

▶해설=이 논증은 '사랑은 욕망이다'라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에 대한 전제를 이용하여 아가톤의 주장을 논박한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아가톤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 자체를 바꾸어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보다 진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비극 작품을 만들어 내며,아름다운 외모까지 소유한 아가톤의 연설 자체는 아름답지만 그것은 진리에 기초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이나 연설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진실을 결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기일 뿐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논하고 싶어하는 사랑은 신이 아닌 인간의 사랑이다.

신은 완벽하지만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아가톤은 신적인 것에 대한 찬양만 늘어놓을 뿐 인간의 객관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 기원론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것이 동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객관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인간의 진실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동물적 존재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이른바 중간적 존재이다.

인간은 추함과 아름다움의 중간물이며,무지와 지혜의 중간물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인간론은 동물적 측면만 밝힌 반면,아가톤의 에로스론은 신적인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둘은 모두 부족한 절반의 진실이다.

에로스는 양극이 아닌 그것의 중간적 존재이다.

풍요로운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에로스의 탄생 배경은 이러한 에로스의 중간적 특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에로스의 특징은 추하고 무지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음 회에 계속)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