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크 모노(Jacques L. Monod, 1910-1976)

1965년 앙드레 르보프, 프랑수아 자코브와 함께 유전자가 효소의 생합성을 지배함으로써 세포대사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그들은 1961년 세포 내에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염기서열과 상보관계(相補關係)에 있는 물질인 전령 RNA(m-RNA)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령 RNA가 단백질의 합성장소인 리보솜에 염기서열로 암호화된 정보를 전달하며, 여기서 전령 RNA의 염기서열은 생화학적 촉매인 단백질 효소의 아미노산 서열로 변환된다.

오페론이라 부르는 유전자복합체의 개념에서 자코브와 모노는 전령 RNA의 합성에 영향을 주어 다른 유전자들의 기능을 통제하는 유전자의 존재를 가정했다.

이 연구가 세균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 이들은 1965년 노벨상을 받았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필연인가 우연인가 …

근대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탐구대상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찾는 일이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으며,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결과를 이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이러한 필연성의 근저에는 신-인간-자연이라는 관계가 가정돼 있다.

인간은 천태만상의 다양한 자연현상을 연구하고,다양한 현상에 숨겨져 있는 질서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적 탐구는 자연현상을 연구해 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가정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현대 과학은 더욱 눈부시게 발전했다.

거시세계에서는 약 150억년 전에 있었던 빅뱅(Big Bang)이라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상당 부분 풀었고,미시세계에서는 세포와 분자,원자,소립자의 세계까지 어느 정도 설명해냈다.

그렇다면 과학의 기본 전제인 필연성은 계속 확장되고 있는 것일까? 모든 현상의 원인들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가지(可知)의 영역은 커지고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은 계속 줄어들어야 할 것 같지만,과학의 지식이 발달하면 할수록 아는 영역만이 아니라 모르는 영역도 늘어나고 있다.

이 기묘한 현상을 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모노는 『우연과 필연(Le Hasard et la necessite)』(1970년)에서 생명의 기원과 진화과정은 필연이 아닌 우연의 결과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1969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포모나대에서 열었던 초청 강연을 토대로 이 책을 구성했다.

아울러 여기에 실린 내용은 1967년부터 1970년에 걸쳐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열었던 강연의 중심 테마이기도 하다.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 강연이 과학자 자신에게 자신이 종사하는 학문을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는 경우가 많은데,모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생명 원리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간에 대해 평소에 품고 있던 무신론적 휴머니즘을 표현한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부모와 완전히 똑같은 자식은 없다.

다시 말해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필연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자기 고유의 우연성을 지닌다.

미시적인 세계로 가면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시 세계에서는 필연성과 우연성이 중첩되어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인 것인지조차 불분명해진다.

200개의 아미노산 잔기(殘基)를 가지고 있는 단백질에서 199개까지의 아미노산 잔기의 배열순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아직 분석에 의해 규명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하나의 단백질 잔기의 성질을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 또는 경험적 법칙을 세우기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단백질 구조는 임의적인,다시말해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개의 기능적 단백질의 개체 발생 안에 생물권 전체의 기원과 그 혈통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단백질의 1차 구조는 그 기원이 임의적인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줄 뿐이다.

생명체는 인공물과는 달리 이미 규정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생체의 합목적성이나 진화의 방향은 미리 결정된 것도 아니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도 아니다.

아무리 분자를 쪼개고 원자를 나누고 유전자를 들여다봐도 왜 인간은 눈이 두 개이고 코와 입은 하나인지 설명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런 형태가 인간의 삶에 적합한 방식이 됐지만,그렇다 해서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 원문 읽기

수많은 종류의 아미노산 기(基) 가운데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은 불과 20여 종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생물의 단백질 구성이 유사하다는 사실은 생물의 '거시적' 구조가 지니고 있는 엄청난 다양성이 근본적으로는 놀랄 만큼 '미시적인' 단일 구조에 의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해설=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의 신체는 단백질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단백질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느냐에 따라 세포 조직의 모양과 기능이 달라진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결합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특별한 성질 같은 것이 아니라 분자 구조의 모양이다.

예를 들어 뾰족한 모양의 단백질 분자가 있다면 그 부분을 감쌀 수 있는 움푹한 모양의 분자가 있어서 서로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모노는 "분자의 '모양'이 다른 분자를 '인식'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생물의 종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단백질의 결합 방식이 결국은 분자의 모양이라는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생물 종은 그 발생 자체에도 우연이 개입하지만,흔히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돌연변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원문 읽기

돌연변이의 발생률은 1만~10만분의 1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개체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지만 성적 재결합에 의해서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략] 이 모든 것을 합하면 현재 30억의 인류(필자 주:모노가 이 책을 쓸 당시의 세계 인구)는 세대마다 1000억~1조의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해설=돌연변이는 대표적인 '우연'의 예이다.

돌연변이는 유전된다.

그러므로 우연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는 일단 생겨난 다음부터는 자기 복제의 필연성을 따르게 된다.

우연으로부터 출발한 진화의 과정은 자연도태를 거치면서 선택되는 것이다.

즉 진화라는 합목적적 현상은 미시적 수준에서의 교란에 해당하는 돌연변이 때문이고,진화는 거듭되는 창조의 과정이다.

우연과 필연의 힘,다시말해 유전과 돌연변이는 이렇게 모든 생물에 내재해 있다.

그동안의 과학이 필연성에 치중해 왔다면, 이제부터 더 중요한 것은 우연성의 해명이다.

교란은 결코 어떠한 법칙이나 예측 가능한 방향성을 지니지 않고, 이러한 우연성이 진화의 근본적 원동력이 된다는 모노의 주장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비교할 수 있다.

교란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근원은 물질의 양자적 구조에서 비롯한다.

불확정성의 원리야말로 돌연변이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따라서 이러한 사건은 '본성에서부터 본질적으로 예견 불가능한 사건',즉 전적으로 우연적인 결과다.

하이젠베르크가 현대 물리학을 개척한 대학자로 물리학 개념을 토대로 인류문화의 총체적 측면에 대해 논했다면,모노는 생물학의 거두로서 분자생물학 개념에 기초해 현대문명을 비평했다.


◆ 원문 읽기

길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문제가 되면 그렇지는 못하게 된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필연적이고 불가피적이며 합목적적이라야 한다고 바라고 있다.

모든 종교,거의 모든 철학, 그리고 과학의 일부까지도 인류가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안간힘을 다해서 부인하려는 인류 전체의 끈질기고도 영웅적인 노력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해설=인간은 이 우주를 하나의 필연적인 것으로서,즉 종교적인 신의 섭리나 혹은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기호로서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우연성을 기본전제로 삼는,즉 당연한 현상이라고 인식하는 모노에게 이러한 노력은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는 신-인간-자연의 수직적 관계를 전제한 근대 과학의 철학적 가정을 비판한다.

자연과학은 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과학은 그 자체의 가치적 원리를 따라 자율적으로 전개돼야 하며,이때 객관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지식의 윤리가 존중돼야 한다.


◆ 원문 읽기

인간은 결국 자기가 우연히 출현했던 바로 이 무감각하고 망망한 우주 속에 홀로 서있음을 알게 됐다.

그의 운명이나 그의 의무는 어떤 곳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위에는 왕국이,그리고 발밑에는 암흑의 함정이 가로놓여 있다.

그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오로지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해설=『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부분이다.

모노는 이 책을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다"라는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의 말과,"나는 시지프스를 산록에 남겨두고 떠나련다! 인간은 자기의 무거운 짐을 또다시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신(神)을 부정하고,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일에 더 충실하도록 가르친다.

[중략] 이제부터는 주인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더 이상 삭막하지도 공허하지도 않게 생각된다"라는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로 시작했다.

시작 부분을 반복하는 듯한 이러한 결론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모노의 입장에서는 우리 모두가 카뮈가 해석한,내려온 돌을 다시 계속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와 같은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임혜빈 S·논술 서대문학원 원장 imhaeb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