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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 생글 시선

    자승자박이 되는 '멸칭'의 역사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편찬된 <국어(國語)>라는 책에는 미개한 습지에 사는 야만족인 적(狄)과 융(戎)이 등장한다. 이후 고대 중국인의 사고에서 이민족은 거주 지역에 따라 남쪽의 만(蠻), 동쪽의 이(夷), 서쪽의 융, 북쪽의 적으로 정형화했다. 동시에 이들은 흉포한 습성을 지닌 동물에 비유됐다. ‘적’과 ‘만’이라는 글자는 ‘개와 벌레의 종족’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자신이 속한 집단을 높이고, 외부 세력을 폄훼하는 사고방식은 동서고금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쟁 관계인 상대를 비하하는 멸칭은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선 이웃 나라 국왕을 신하라는 뜻의 ‘노객(奴客·노예 손님)’ ‘궤왕(跪王·꿇어앉은 왕)’으로 낮춰 불렀다. 적대국 백제를 겨냥해선 ‘백잔(百殘)’ ‘잔국(殘國)’ ‘잔주(殘主)’ 같은 비칭을 총동원했다.경쟁 집단을 폄훼하는 것은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가 크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기생충’ ‘바이러스’ ‘흑사병’ 같은 수식어를 덧붙였다.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은 독일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불쏘시개였다.멸칭을 쓰는 것은 타협의 가능성을 줄이는 자승자박이기도 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도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험한 말을 주고받은 사이에서 관계 회복의 열쇠는 비난의 굴레를 끊은 인물에게 쥐여졌다. 미·중 수교를 위해 중국을 찾은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내뱉은 “미 제국주의자 중에서 중국 땅을 제일 먼저 밟는다”는 한마디에 수십 년간 쌓인 적대 감정이 녹아

  • 회원 테샛 공부합시다

    한번 늘어난 복지 지출, 왜 못 줄일까?

    지난 8월 말, 정부가 추진하던 기초연금 개편 논의가 사실상 백지화됐습니다. 현재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고령자 중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됩니다. 정부는 지급액을 소득에 따라 차등화하고 수급 대상을 기준중위소득과 연계해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기존 소득 하위 70% 지급 틀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소득 하위 30%에는 월 3만원을 더 지급하기로 했습니다.기초연금 수급자는 제도가 도입된 2014년 435만 명에서 올해 779만 명으로 크게 늘고, 투입되는 재정도 5조2000억원에서 23조1000억원으로 네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왜 기존 복지 지출을 줄이는 데 소극적일까요? 비난받기 싫은 정치인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비난 회피 동기(blame avoidance motivation)’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켄트 위버는 유권자가 정책으로 얻는 이익보다 잃는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이 인기 없는 결정에 따른 비난을 피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새로운 복지 혜택을 만들면 수혜자는 늘어난 소득을 직접 체감합니다. 정치인도 정책의 성과를 알리기 쉽습니다. 반면 기존 혜택을 줄이면 손실을 보는 사람이 분명해집니다. 기초연금만 하더라도 매달 일정 금액을 받던 고령자 중 일부가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면 그 손실을 바로 체감하게 됩니다.반대로 복지 지출을 줄여 정부가 돈을 아껴도 국민 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크지 않습니다. 아낀 돈은 다른 복지나 교육, 국방 등 여러 곳에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그 효과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복지 축소는 수혜자의 반발을 불러올

  • 회원 키워드 시사경제

    다시 관심 모으는 스테이블 코인

    암호화폐의 일종으로 기존 법정화폐를 대체할 것처럼 급부상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이 외국인 가사 도우미 등의 급여로 지급되면서 작년 중반 큰 화제를 모았죠. 급여 지급, 대금 결제, 해외 송금 등에서 기존 화폐를 넘어서는 편리함과 이점이 컸기 때문입니다. 금융경쟁력 차원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스테이블 코인이 지난 6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톱 기사로 나오며 다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올들어 기업 간 대금 지급과 해외 송금, 급여 등의 결제에 스테이블 코인이 최소 4010억달러(약 540조원) 어치 활용됐다는 보고서(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바레즈앤마살)가 계기였습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2% 급증한 규모입니다.일반 개인보다는 아무래도 기업이 돈을 받는 수단, 즉 B2B(기업 간 거래) 결제 수단으로 널리 활용됐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을 이용한 결제 추정액의 60% 가량이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과 연결된 신용카드로 대금을 치르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자가 세계에서 지원하는 스테이블 코인 연계 카드 서비스만 160개 이상에 이릅니다.스테이블 코인의 유용성은 작년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암호화폐이면서도 달러와 같은 통화가치에 안정적으로 연동되기 때문에 현금이나 다름없는 금융거래 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주를 이뤘습니다. 기억이 조금 흐릿해졌을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스테이블 코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치가 안정적인 암호화폐’입니다. 일반적인 암호화폐(cryptocurrenc

  • 회원 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박지원·조세희부터 AI까지, 논술고사 제시문의 모든 것

    2026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마친 수험생들이 연세대 정문을 나서고 있다. 한경DB최근 대입논술에는 고전 소설과 인공지능을 다룬 글이 함께 제시문으로 출제된다. 박지원의 「허생전」은 시장과 분배의 문제를 다루는 제시문으로 쓰이고, 로봇을 다룬 글은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묻는 문항에 쓰인다. 소재는 서로 다르지만, 여러 대학의 제시문을 함께 정리하면 반복 출제된 작가와 작품, 대학들이 공통으로 다룬 주제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출제 자료의 통계는 대학이 어떤 글과 주제를 제시문으로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분석 대상과 집계 기준이번 분석은 확보한 21개 대학의 2025~2027학년도 인문계열 논술 자료를 대상으로 했다. 대학, 학년도, 시험 유형의 조합을 하나의 시험으로 세면 모두 154개이며, 본고사 81개와 모의논술 73개로 나뉜다. 공식 배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별도 자료는 집계에서 제외했다. 세 학년도에 걸친 분석이지만 2027학년도는 모의논술만 포함하며, 모든 대학의 모든 시험을 빠짐없이 담은 전수조사는 아니다. <표 1> 분석 대상 시험 수 학년도 본고사 모의논술 합계 2025 41 25 66 2026 40 24 64 2027 — 24 24 합계 81 73 154 아직 시험을 시작하지 않은 2027학년도 본고사는 이번 분석에 포함되지 않았다. 학교별 자료 확보 범위가 다르므로 연도 간 단순 증감을 출제 추세로 해석할 수 없다. 또한 빈출을 판단할 때는 출제 횟수와 출제 대학 수를 구분해야 한다. 한 대학이 계열별 시험에 같은 글을 공동으로 수록할 수 있고, 한 작품에서 여러 대목을 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이런 차이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 회원 유승호의 경제야 놀자

    석유 펑펑 쏟아지는데도 가난한 나라, 그 이유는?

    석유 한방울 안 나는 나라의 설움?자원은 때로 '저주'가 된다자원 수출비중 높을수록 성장률 낮아베네수엘라 등 초인플레 겪어자원 탓 분쟁 많고 고부가 산업 못 키워사람이 중요…시장경제·법치 확립을두바이유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고공 행진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에 이어 홍해까지 불안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럴 때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설움을 곱씹게 된다. 그런데 동해에서 석유가 나오고, 서해에서 천연가스가 쏟아지면 한국은 정말 더 잘살 수 있을까.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은 오히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말한다. 석유만 많은 나라들지구상에는 석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데 경제 발전 수준은 낮은 나라가 많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오티는 ‘자원의 저주’라고 했다. 제프리 삭스와 앤드루 워너는 1995년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들은 95개국을 대상으로 자원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경제 성장과의 관계를 조사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1971년 기준으로 자원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후 18년간 경제성장률이 낮은 경향이 나타났다.실패한 나라의 대명사처럼 언급되는 베네수엘라가 자원의 저주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나라는 원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데, 물가 상승률이 한때 34만%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석유는 나오지만, 마트 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석유를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석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인 이란

  • 회원 고두현 시인과 함께

    열일곱 어린 임금의 피맺힌 울음, 단종의 ‘자규시’

    자규시(子規詩)단종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떠나온 뒤외로운 홑 그림자 푸른 산중 헤매누나.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이룰 수 없고해마다 한을 풀려 해도 한은 끝이 없네.울음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달빛만 희고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지네.하늘은 귀먹어서 슬픈 하소연 못 듣는데어찌하여 설움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고.비운의 조선 왕 단종(1441~1457)이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詩)’입니다. 피를 토하듯 운다는 자규, 곧 두견새에 자신을 빗대어 읊은 절창이지요. 짧은 시지만 그 속에 어린 임금의 한이 혈흔처럼 응축돼 있습니다.단종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를 여의었고, 열한 살에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요.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단종은 허울뿐인 상왕으로 밀려났습니다.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이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산에 막혀 있는 ‘육지 속의 섬’이지요.청령포에 머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단종은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관풍헌 앞에 누각이 있었는데, 단종은 그곳에 올라 먼 데를 바라보곤 했지요.단종이 누각에서 바라봤을 영월 청령포 모습.이 누각에서 지은 시 중 한 편이 ‘자규시’입니다. 원래 매죽루(梅竹樓)라고 불리던 이 누각은 단종이 여기에서 자규의 한을 담은 시를 읊은 뒤부터 자규루(子規樓)로 불리게 됐습니다.이 시에서 단종은 자신을 ‘한

  • 회원 국가공인 경제이해력 검증시험 맛보기

    시장경제의 요소, 경제성장의 원인은?

    [문제1] 시장경제의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요소가 아닌 것은?① 계약자유의 원칙        ② 사유재산제도③ 분배정의의 원칙        ④ 건전한 통화정책⑤ 거래에 따른 책임의 원칙[해설] 시장경제에서는 개인과 기업이 재산권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자신의 선택과 거래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경제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계약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며, 화폐가치 안정을 뒷받침하는 건전한 통화정책도 필요하다. 이런 제도적 기반이 갖춰져야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생산, 소비, 투자 등의 의사결정을 하고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분배정의는 시장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라기보다 시장경제 활동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소득과 부의 격차 등 분배의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정부는 조세나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분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정답 ③[문제2] 아래 보기 중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원인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① 생산성 향상            ② 특허권 보호③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확대④ 양적완화 등을 통한 시중 통화량 증대⑤ 연구개발(R&D) 지출 세액공제 확대[해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 경제의 생산능력을 높이는 요인이 중요하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동일한 생산요소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으며 교육, 훈련 등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는 근로자의 지식과 기술을 높여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또한 특허권 보호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 회원 커버스토리

    트럼프는 왜 경제학과 싸울까?

    지난 5월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왼쪽)의 취임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축하의 악수를 하고 있다. 외신연합요즘 국제뉴스는 국제유가의 강세, 주요국 국채금리의 급등, 그에 따른 각국 증시의 약세로 연일 채워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란 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기름값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향후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면서 금리는 사상 최고치로 오르고 있습니다.이런 흐름에 가장 뿔이 난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미국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고금리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Fed)은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다시 올렸습니다. 최고 연 4.00%에 달합니다. 시중금리 동향을 나타내는 미국 국채금리 10년물은 지난달 29일 기준 5.26%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트럼프 대통령은 미 Fed가 금리를 올리기 전부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지난달 6일에 이어 13일에도 “미 Fed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는 일부 국가와 교역을 중단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는 “금리가 높으니까 무역적자를 본다”는 평소 그의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금리가 높으면 달러 수요가 늘고, 강달러가 되면 무역에서 불리하다는 겁니다.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금리와 무역수지의 관계를 아주 단순하게 이해한 결과입니다.트럼프식 경제 관념을 트럼프노믹스(Trumpnomics)라고 부른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많습니다. 그는 미국 내 고용지표가 최근 호전된 것으로 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