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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파경 (破鏡)

    ▶ 한자풀이破: 깨뜨릴 파 鏡: 거울 경'깨진 거울'이라는 뜻으로부부가 금실이 안 좋아 이혼함  - 《태평광기(太平廣記)》남북조시대 남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이 망할 즈음 낙창공주는 태자사인(太子舍人) 서덕언의 부인으로 미모가 뛰어났다. 서덕언은 부인과 헤어질 것을 늘 염려했는데, 수나라 대군이 진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더 커졌다. 진이 망하면 부인은 수의 권력자에게 넘어갈 게 뻔했다. 그는 거울을 반으로 잘라 부인과 나눠 가졌고 후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진나라는 망했고, 낙창공주는 수나라 건국 일등공신인 월국공(越國公) 양소(楊素)의 첩이 되었다. 오랜 피난 끝에 장안으로 돌아온 서덕언은 정월 보름날 장에 나가 부인이 있는지 살폈다. 그곳에는 낙창공주가 보낸 하인이 깨진 거울(破鏡)을 팔고 있었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불러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 서덕언은 하인에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고 물었다.“내 아내는 어디 있소?” “낙창공주는 수나라 월국공 양소의 첩이 되어 있습니다. 공주께서 소인을 시켜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장에 나가 이걸 비싼 값에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서덕언은 부인이 이미 남의 첩이 됐다는 말에 탄식하면서도 시 한 수를 지어 하인에게 주며 당부했다. “이 반쪽 거울과 함께 시를 내 아내에게 전해주시오.” 시는 애절했다.거울이 당신과 함께 떠났으나거울만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는구나보름달 속 항아의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건만밝은 달빛은 속절없이 휘영청하구나시를 받아 읽은 낙창공주는 슬피 울면서 곡기를 끊었고, 사정을 들은 양소가 서덕언을 불러 낙창공주를 되돌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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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신성인 (殺身成仁)

    ▶한자풀이  殺: 죽일 살  身: 몸 신  成: 이룰 성  仁: 어질 인자신의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다자기를 희생해 옳은 도리를 행함    - 《논어(論語)》유가(儒家)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인(仁)이다. 인은 효(孝) 충(忠) 지(智) 용(勇) 예(禮) 공(恭) 등을 포괄하는 완전한 덕이다. 유교의 근본으로, 쉽게 이룰 수 없는 최고의 덕목이다. 공자는 당시 누구에 대해서도 ‘인(仁)’의 경지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그 경지를 자처하지 않았다.공자는 사람들이 예를 행하지 않는 까닭을 자신의 욕구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예를 실천하려면 반드시 극기(克己), 즉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바탕과 형식을 고루 갖춘 사람으로, 인 역시 바탕과 형식을 모두 아우른 ‘완전한 덕(全德)’을 이른다.《논어》 위령공편에는 인을 보는 공자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려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고 했다. 지사(志士)란 도의(道義)에 뜻을 둔 사람을 일컫고 인인(仁人)이란 어진 덕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사와 인인은 삶이 소중하다고 하여 그것 때문에 지(志)나 인(仁)을 잃는 일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때로는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인을 달성하려 한다(殺身成仁).”살신성인(殺身成仁)은 ‘자기 몸을 죽여 인을 행한다’는 뜻으로, 자기를 희생해 옳은 도리를 지키는 것을 일컫는다. 사생취의(捨生取義) 살신입절(殺身立節)도 뜻이 비슷하다.공자는 “자기 마음을 미뤄 남을 헤아리고, 자기가 싫은 것을 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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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連理枝 (연리지)

    ▶한자풀이連: 이을 연 理: 이치 리 枝: 나뭇가지 지나무가 맞닿아 하나가 됨애뜻한 남녀의 정을 이름- 백거이의 시 《장한가》양귀비(楊貴妃)는 당나라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권세를 누린 인물이다. 그는 안사의 난으로 도주 중 자결 아닌 자결로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데, 양귀비도 그중 한 인물이다.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시다.칠월칠일 장생전에서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기를 원하고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기를 원하네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이 한(恨)은 끝없이 계속되네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이다.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각별함을 비유한다.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이르기도 했다. 효성과 관련해서는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이런 얘기가 전해온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은 효성이 지극했다. 그는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3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살펴드렸다. 병세가 악화되자 100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옹의 방 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고 결(理)이 이어져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해 부모와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라고 했다.시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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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落花流水 (낙화유수)

    ▶한자풀이 落: 떨어질 낙 花: 꽃 화 流: 흐를 유 水: 물 수힘이나 세력이 쇠퇴해 간다는 의미남녀 간의 애틋한 그리움도 비유           - 고변의 시 《방은자불우》하나의 고사성어가 여러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낙화유수(落花流水)가 그 사례다. 뜻 그대로는 ‘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로 가는 봄의 경치를 나타내거나 힘과 세력이 약해져 보잘것없이 쇠해 가는 것을 비유한다. 이는 당나라 시인 고변이 지은 시(詩)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다.‘떨어지는 꽃이 강물 위로 흐르는 데서 넓은 세상을 알고(落花流水認天台) 술에 반쯤 취하여 한가하게 읊으며 혼자서 왔다(半醉閑吟獨自來)’늦봄의 풍경을 묘사한 시로 쇠잔영락(衰殘零落)하며 흐르는 세월을 읊고 있지만 쇠락해져 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뜻도 담고 있다. 또한 낙화유수는 떨어지는 꽃에 정(情)이 있으면 물에도 정이 있어 떨어지는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기를 바라고 물은 떨어지는 꽃을 띄워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구곡간장(九曲肝腸)도 아홉 번 구부러진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굽굽이 사무친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전전반측(轉轉反側)은 이리저리 뒤척인다는 의미로,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지만 원래는 사모하는 마음에 잠이 들지 못한다는 뜻이다.백구과득(白駒過隙)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순간을 본다는 뜻으로,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또는 덧없는 인생을 이르는 고사성어로 《장자》 지북유에 나오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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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風樹之歎 (풍수지탄)

    ▶한자풀이 風: 바람 풍 樹: 나무 수 之: 갈 지 歎: 탄식할 탄바람이 그치지 않음을 나무가 탄식함부모가 돌아가셔 효를 할 수 없음          -《한시외전(韓詩外傳)》공자가 슬피 우는 고어(皐魚)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고어가 답했다.“제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습니다. 첫째는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뜬 것이고, 둘째는 저를 알아줄 군주를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것이며,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를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구절로, 풍수지탄(風樹之歎)은 문구만으로는 ‘바람이 그치지 않음을 나무가 탄식한다’는 뜻이지만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의미로 쓰이는 고사성어다.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이미 돌아가셔 효양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풍목지비(風木之悲)도 뜻이 같다. 풍수지비(風樹之悲), 풍수지감(風樹之感)으로도 쓴다.“어버이 살아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조선 시대 문인으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낸 송강 정철(鄭澈)의 시조는 풍수지탄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세상사에는 때가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효를 할 수 없고, 세월이 너무 지나면 배움도 버겁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만 때를 놓치면 후회가 되고 적기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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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肝膽相照 (간담상조)

    ▶한자풀이肝: 간 간  膽: 쓸개 담  相: 서로 상  照: 비칠 조간과 쓸개를 서로에게 내보이다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     - 《유종원의 묘비명》당나라 헌종 때의 일이다. 유종원은 유주를 관할하는 자사로 좌천된 뒤 내직으로 복직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그와 절친인 유우석이 파주지사로 좌천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파주 땅은 몹시 궁벽한 변방이라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더구나 팔십이 넘은 노모까지 계시니,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홀로 두고 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다. 조정에 상소를 올려 유주지사와 파주지사를 서로 바꿔달라고 간청해야겠다. 이 일로 다시 죄를 물어 내가 죽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헌종이 유종원의 청원을 받아들여 유우석은 형편이 조금 나은 유주지사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죽은 후 당나라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사상가 한유(韓愈)가 그 우정을 세태에 빗대 유종원의 묘지명에 새겼다.“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을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肝膽相照)’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하지만 털끝만큼의 이해 관계가 생기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 더욱이 위험에 빠지면 손을 내밀어 구해주기는커녕 더 깊게 빠뜨리고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세상에 널려 있다.”간담상조는 간과 쓸개를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귀는 것을 이른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의미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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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敎學相長 (교학상장)

    ▶한자풀이敎: 가르칠 교  學: 배울 학  相: 서로 상  長: 성장할 장가르치고 배우면서서로가 성장한다는 뜻   -《예기(禮記)》중국의 오경(五經)은 유교의 대표적 다섯 개 경서로, 공자가 편찬 및 저술에 관계했다고 해 존중되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전통적인 중국 정신문화의 바탕을 보여주며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와 함께 한국의 사상과 학문에 미친 영향도 크다.《예기(禮記)》의 학기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좋은 안주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참된 진리도 배우지 않으면 그 장점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운 뒤에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스스로 반성하고, 어려움을 알아야 스스로 보강할 수 있다. 그러니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敎學相長).”교학상장(敎學相長)은 배우고 가르치면서 서로가 성장한다는 뜻이다. 가르침에도 배움이 있으니 교만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 속담을 연상시킨다. 학문이 아무리 깊어도 가르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도 함의가 비슷하다. 뒤에 오는 자는 젊고 기력이 왕성해 쉬지 않고 배우니 먼저 태어난 사람이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효학반(斅學半)도 교학상장과 뜻이 같다. 효반학은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 부열(傅說)이 한 말로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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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群鷄一鶴 (군계일학)

    ▶한자풀이群: 무리 군  鷄: 닭 계  一: 하나 일  鶴: 학 학닭의 무리 중에 있는 한 마리 학많은 사람 중에 뛰어난 사람          -《진서(晋書)》역사적으로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속세를 떠나 산으로 숨는 선비가 많았다. 중국 위진(魏晉)시대에도 그런 선비들이 있었는데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대표적이다. 죽림칠현은 위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노자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에 심취한 일곱 명의 지식인을 일컫는다. 완적(阮籍)·혜강(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이 그들이다.그중 혜강은 특히 문학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끝까지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죽임을 당했는데, 당시 그에게는 열 살배기 아들 혜소가 있었다. 혜소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닮아 갔다. 세상으로 나와 벼슬살이를 하던 산도가 진나라 무제 사마염에게 혜소를 추천했다.“《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죄는 아들에게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비 혜강이 처형당했지만 그 일은 아들 혜소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혜소의 재능이 뛰어나니 그를 비서랑에 임명하십시오.” 무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이라면 비서랑으로 되겠소? 더 높은 벼슬에 앉혀야겠소.”혜소가 무제에게 부름을 받아 가던 날, 그를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말했다. “어제, 구름처럼 많은 사람 틈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학이 닭 무리에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 혜강을 잘 알던 왕융이 말했다. “자네는 혜소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