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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鷄鳴狗盜 (계명구도)

    ▶ 한자풀이鷄: 닭 계    鳴: 울 명    狗: 개 구    盜: 훔칠 도닭의 울음소리와 개 도둑이란 뜻으로하찮은 재주도 쓸모가 있음을 의미    - 《사기(史記》전국시대 귀족들은 저마다 세력을 키우려고 인재를 모았다. 특히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과 부(富)를 쥐고 수많은 유세객과 선비를 모아 영향력을 행사한 공자(公子·귀한 집안의 자제) 넷을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라고 부른다. 제(齊)나라 맹상군, 초(楚)나라 춘신군, 위(魏)나라 신릉군, 조(趙)나라 평원군이 그들이다.어느 날, 맹상군 집에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 들어왔다.“그대들은 무슨 재주가 있는가?”맹상군이 묻자 두 사람이 대답했다.“저는 개 흉내를 잘 냅니다.” “저는 닭 울음소리를 잘 냅니다.”다른 식객들이 비웃었지만 맹상군은 둘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맹상군은 왕의 명령으로 진나라에 갔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의 인품에 반해 재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맹상군은 어질지만 제나라 사람입니다. 이참에 그를 아예 없애 버리시지요.”솔깃한 소왕은 맹상군을 옥에 가뒀다. 맹상군은 소왕이 아끼는 후궁에게 사람을 보내 구해달라고 했다. 후궁이 조건을 걸었다. “호백구(여우의 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를 내게 준다면 구해 드리지.” 맹상군은 이미 호백구를 소왕에게 선물로 바친 터였다. 개 흉내를 잘 내던 사내가 나섰다. “제가 다시 가져오겠습니다.”그날 밤, 사내는 개를 흉내 내면서 궁중 창고로 숨어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 나왔다. 후궁의 간청으로 풀려난 맹상군이 서둘러 도성을 빠져나오려는데 이른 새벽이라 관문이 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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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旣往不咎 (기왕불구)

    ▶한자풀이旣 : 이미 기  往 : 갈 왕  不 : 아닐 부  咎 : 허물 구이미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다는 뜻으로지난 잘못을 책망해도 소용 없다는 의미  - 《논어(論語)》《논어(論語)》 <팔일편>에는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의 제자 재아(宰我)에게 사(社)에 대해 묻는 대목이 나온다. 사는 천자나 제후가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을 제사 지내는 제단을 말하는 것으로, 그 제단 주위에는 나무를 심게 돼 있었다.재아는 임금의 물음에 어설프게 설명하고 이렇게 답을 맺었다. “하우씨(夏后氏)는 사에다 소나무를 심고, 은(殷)나라 사람은 사에다 잣나무를 심었는데, 주(周)나라 사람은 사에다 밤나무를 심은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戰慄)하게 하려는 뜻에서였습니다.”이 말은 전해들은 공자는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고, 되어버린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고 했다. 이는 밤나무를 심은 것이 백성들을 전율케 하기 위함이라는 재아의 엉터리 해석을 꾸짖은 것으로, 지나간 일은 나무라봐야 소용 없는 일이니 앞으로는 그런 실언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말이다. 공자는 가뜩이나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애공이 재아 말을 듣고 더 포악한 정치를 할까 염려한 것이다.기왕불구(旣往不咎)는 ‘이미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난 잘못은 책망해도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왕지사(已往之事)로도 쓴다.참고로 <논어>에는 공자가 대낮에 낮잠을 자고 있는 재아를 보고 “지금까지는 너의 말만으로 너를 믿었는데 이제부터는 너의 행실도 살펴야 되겠다”고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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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塗炭之苦 (도탄지고)

    ▶ 한자풀이塗 : 진흙 도炭 : 숯불 탄之 : 어조사 지苦 : 괴로울 고진흙 수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한 고통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가리킴   - 《서경(書經)》하(夏)나라 걸왕(桀王)은 미녀 말희에게 빠져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학정을 일삼다가 상(商)의 탕왕(湯王)에게 망했다. 탕왕은 상을 세운 후 무력 혁명으로 왕위를 얻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나는 후세 사람들이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구실을 삼을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러자 왕을 모시고 있던 중훼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백성을 내신 것은 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으로, 임금이 없으면 곧 어지러워지나이다. 오직 하늘이 총명함을 내시어 그로써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라가 있었으나 덕이 부족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므로(有夏昏德 民墜塗炭) 하늘이 곧 왕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어 만방에 올바름을 나타내게 하고, 우왕 때의 아름다운 관습을 복구하게 하셨으니, 그 떳떳함을 따르시고 하늘이 시키는 바를 따르셔야 하나이다.”이는 이른바 천명사상(天命思想)으로, 백성들을 괴로움에서 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것은 정당하며, 모름지기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에게서도 천명사상이 엿보인다. 여기서 유래한 도탄지고(塗炭之苦)는 ‘진흙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한 고생’이라는 뜻으로, 생활이 몹시 곤궁하거나 비참한 처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 고사는 《서경(書經)》의 상서(尙書) 중훼지고(仲之誥)를 비롯해 여러 문헌에 나온다.도탄지고에 관련된 또 다른 고사도 있다. 남북조시대 전진(前秦)은 후연(後燕)과 후진(後秦)의 공격을 받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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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亡羊補牢 (망양보뢰)

    ▶ 한자풀이亡 : 달아날 망羊 : 양 양補 : 기울 보牢 : 우리 뢰양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일을 그르친 뒤 뉘우쳐도 소용없음  - 《전국책(戰國策)》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하루는 초양왕(襄王)에게 사치하고 음탕해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또한 사치한 생활을 그만두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했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장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신은 결국 조(趙)나라로 갔는데, 5개월 뒤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해 양왕은 성양으로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양왕은 그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이 답했다.“‘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고 했습니다. 옛날 탕왕과 무왕은 백 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걸왕과 주왕은 천하가 너무 넓어 끝내 멸망했습니다. 이제 초나라가 비록 작지만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 수천 리나 되니, 탕왕과 무왕의 백 리 땅과 견줄 바가 아닙니다.” 중국 전한(前漢) 때의 학자 유향(劉向)이 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편집한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다.여기서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실패 또는 실수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이처럼 원래는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뜻이 강했지만, 뒤로 가면서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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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名不虛傳 (명불허전)

    ▶ 한자풀이名 : 이름 명 不 : 아닐 불 虛 : 빌 허 傳 : 전할 전이름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이름이 알려진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음 - 《사기(史記)》중국 전국시대에 이른바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가 있었다. 제나라 맹상군, 조나라 평원군, 위나라 신릉군, 초나라 춘신군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식객 3000여 명을 거느리고, 인재를 초빙해 우대하고, 의리를 중시한 인물들이다.이 중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제(齊)의 왕족으로 진(秦), 제(齊), 위(魏)의 재상을 역임한 실력자였다. 식객(食客)을 대등하고 진솔하게 대우해 다양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그의 영지(領地)로 모여들었다. 《사기(史記)》에는 맹상군이 식객들을 얼마나 잘 대우했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그는 손님을 접대할 때에는 병풍 뒤에 늘 보좌하는 이를 두었고, 손님에게 거처하는 곳이나 친척 등에 관해 묻는 내용을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손님이 떠나면 사람을 보내 집안 형편을 살펴 그 친척들에게 선물 등을 보내주었다. 어느 날은 맹상군이 밤에 손님들과 함께 밥을 먹는데, 한 손님이 맹상군만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오해하여 떠나려 했다. 그러자 맹상군이 스스로 밥상을 가져와 비교하니 손님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이 일로 수많은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맹상군에게 더욱 몰려들었고, 맹상군은 손님을 가리지 않고 잘 대우해 사람마다 모두 맹상군이 자기와 친하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그가 진(秦)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가 모함을 받아 진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유래한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古事)처럼, 그에게는 도둑질을 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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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杯中蛇影 (배중사영)

    ▶ 한자풀이杯 : 술잔 배中 : 가운데 중蛇 : 뱀 사影 : 그림자 영술잔 속에 비친 뱀 그림자라는 뜻으로쓸데없는 일로 근심하는 것을 비유     - 《진서(晉書)》진(晉)나라 악광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생활이 어려웠지만 한눈팔지 않고 학문에 전념해 벼슬길에 올랐다. 지혜로운 악광은 관리가 되어서도 매사에 일처리가 신중했다.악광이 하남(河南) 태수로 재임했을 때 일이다. 악광에게는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악광에게 자주 놀러와 술자리를 같이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한동안 발걸음이 뜸해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악광은 몸소 친구에게 찾아가 보니 얼굴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요사이 어째서 놀러오지 않나?”라고 물으니 친구가 답했다. “전에 자네와 술을 마실 때 내 잔 속에 뱀이 보이지 않겠나(杯中蛇影). 그렇지만 자네가 무안해할지 몰라 할 수 없이 그냥 마신 이후 몸이 별로 좋지 않네.”이상하다고 생각한 악광은 지난번 술을 마신 그곳으로 다시 가보았다. 그 방의 벽에는 뱀이 그려진 활이 걸려 있었다. 비로소 악광은 친구가 이야기한 뱀의 정체를 알았다. 친구의 술잔에 활에 그려진 뱀이 비추어진 것이었다. 악광은 친구를 다시 초대해 예전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술을 따른 다음 “무엇이 보이지 않나”라고 물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뱀이 보이네.” 친구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그러자 악광이 웃으면서 “자네 술잔 속에 비친 뱀은 저 벽에 걸린 활에 그려진 뱀의 그림자네”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활에 그려진 뱀을 쳐다보는 순간 친구의 마음 병은 씻은 듯 나았다. 중국 진(晉)나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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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약무인 (傍若無人)

    ▶ 한자풀이傍 : 곁 방若 : 같을 약無 : 없을 무人 : 사람 인곁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함 -《사기(史記)》형가(荊軻)는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자객이다. 중국이 진(秦)나라를 중심으로 통일되려고 할 전국시대 말기. 연(燕)나라 태자 단은 진왕 정(후의 진시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어린 시절엔 조나라에 함께 인질로 잡혀 있었지만, 후에 강대국이 된 진왕 정이 수모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단은 복수의 칼을 갈며 때만을 기다렸다. 그런 와중에 형가를 만난다.형가는 당시 축이란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 고점리와 날마다 악기를 연주하고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놀 때는 곁에 누구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방약무인(傍若無人)은 이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글자 그대로 ‘곁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한자 약(若)은 같다는 의미다. 노자의 어법을 흔히 정언약반(正言若反)이라고 하는데, 바른말은 마치 반대처럼 들린다는 뜻이다. ‘빛나도 눈부시지 마라.’ ‘곧아도 찌르지 마라.’ 등이 대표적 사례다.단과 형가의 만남은 어찌 되었을까.태자 단을 만난 형가는 정을 암살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철통보안의 진왕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형가는 결국 그 무렵 진나라에서 연나라로 망명해 온 번어기라는 장수를 찾아간다. 번어기는 그의 목에 황금 1000근과 1만 호의 영지가 현상금으로 붙어 있을 만큼 진왕의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형가는 번어기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놨고, 번어기는 선뜻 스스로의 목을 잘라 형가에게 바쳤다. “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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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면서생 (白面書生)

    ▶ 한자풀이白 : 흰 백面 : 얼굴 면書 : 글 서生 : 날 생글만 읽어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세상 물정에 어둡고 경험이 없는 자를 이르는 말 -《송서(宋書)》중국 남북조시대(420~589)는 진(晉)나라와 수(隨)나라 중간 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대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의 왕조가 교체해서 흥망을 거듭했다. 특히 남조(南朝)의 송(宋)나라와 북조의 북위(北魏)는 강남(江南)의 요지를 둘러싸고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의하는 외교적 관계를 유지했다.북위의 태무제(太武帝)는 북쪽을 무력으로 통일한 다음 유연(柔然)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서역(西域)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송나라 제3대 문제(文帝)는 남쪽의 임읍(林邑)을 평정해 북위와의 일대 결전에 대비했다. 북위의 태무제가 449년에 유연을 선제 공격하자 문제는 이때가 숙적 북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문제는 문신들과 북위를 공격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다. 이때 무관인 심경지는 이전에 결행한 북벌 출병의 예를 들어 북위 공격을 반대하고 문제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 “폐하,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白面書生)과 일을 도모하면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문제는 심경지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을 강행했고, 결과는 대패였다. 《송서(宋書)》 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얼굴이 검은 무관과 대비해 집 안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얼굴의 문신을 가리키며, 말로만 떠들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또는 초년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