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騎虎之勢 (기호지세)
▶ 한자풀이
騎: 말 탈 기
虎: 범 호
之: 갈 지
勢: 형세 형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
- <수서(隨書)>

독고(獨孤) 씨는 수나라 문제(文帝) 양견의 황후다. 독고 씨 아버지인 신(信)은 북주의 대사마였는데, 양견이 앞으로 크게 될 사람임을 알아보고 열네 살짜리 딸을 양견에게 줘 사위를 삼았다.

독고 씨는 결혼 당초 남편에게 첩의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찌나 질투가 심했던지 후궁에게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고, 그녀가 쉰 살로 죽을 때까지 후궁에게서는 한 명의 자식도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단 한 번 문제가 후궁의 미녀에게 손을 댄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안 독고 씨는 문제가 조회에 나간 사이 그 미녀를 죽이고 말았다.

화가 치민 문제는 혼자 말을 타고 궁중을 뛰쳐나가 뒤쫓아온 신하들을 보며 “나는 명색이 천자(天子)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외치며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과거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고 양견이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업고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고 있을 때, 독고 씨는 환관(宦官)을 시켜 남편 양견에게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 “큰일은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되고 말았소. 이제는 내려올 수도 없으니 최선을 다하시오.”

이 말에 힘을 얻은 양견은 결국 정제를 밀어내고 수나라 황제에 올랐다. <수서(隨書)>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기호지세(騎虎之勢)는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 속담 ‘벌인춤’도 뜻이 비슷하다. 잘 추든 못 추든 추기를 시작했으니, 추는 데까지 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리면 더 큰 낭패를 보기 쉽다. 하지만 거칠게 달리는 말을 타는 것 역시 위험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뛸 때와 멈출 때를 잘 구별하는 게 지혜다. 멀리만 보는 자는 가까이에 화가 있고, 가까이만 보는 자는 먼 곳에 화가 있다고 했다. 두루 봐야 궁지에 몰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