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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옛글과 관련한 글에서 나타나는 한문의 직역을 이해해 보자

    동양에서는 인식론을 거론할 때 흔히 주자의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거론한다. 격물의 기본 의미는 구체적 사물에서 나아가 그 극한에까지 사물의 이치인 리(理)를 탐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치지란 나의 지식을 극한까지 연마하고 확장해 앎의 내용에 미진한 바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주자는 사람의 마음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어서 격물을 통해 마음속에 본디 있던 앎을 밝혀내면 치지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유가 철학의 전통적인 격물론이다. (중략)당초 퇴계는 격물을 추구한 결과의 상태, 즉 물리가 전부 파악된 경지를 뜻하는 물격(物格)을 ‘물에 격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물을 인식 대상으로 보고 인식 주체인 사람의 마음이 대상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 하지만 만년에는 물격에 대한 해석을 ‘물이 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즉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고자 하면 사물에 내재한 리가 마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일방적으로 사물에 내재한 리에 다가가서 리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고자 하면 사물의 리가 사람의 마음에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이를 퇴계는 리가 마음에 직접 이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탐구하는 것에 따라 이른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본 까닭은 만약 리가 리의 자발성만으로 마음에 이른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사람들은 마치 리가 물리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식 과정에서 인식 대상인 리의 능동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인식 주체로서의 마음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리자도(理自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버림받아도 순종하는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한생 연분(緣分)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평생(平生)애 원(願)하요데 한데 녜쟈 하얏더니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엇그제 님을 뫼셔 광한뎐(廣寒殿)의 올낫더니그 더데 엇디하야 하계(下界)예 나려오니올 저긔 비슨 머리 헛틀언 디 삼 년일쇠연지분(脂粉) 잇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 할고마음의 매친 실음 ??(疊疊)이 싸혀 이셔짓느니 한숨이오 디느니 눈믈이라인생(人生)은 유한(有限)한데 시름도 그지업다무심(無心)한 셰월(歲月)은 믈 흐르듯 하는고야염냥(炎凉)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동풍이 건듯 부러 ?셜(積雪)을 헤텨 내니창(窓) 밧긔 심근 매화(梅花) 두세 가지 ?여셰라갓득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황혼의 달이 조차 벼마테 빗최니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뎌 매화 것거 내여 님 겨신 데 보내오져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정철, 사미인곡 - 님을 조차 삼기시니 … 님을 뫼셔 … 연지분(脂粉) 잇네마는 … 달조선 시대에는 남녀가 유별하였다. 남녀를 분별, 즉 구별하여 나눴던 것이다. 말이 분별이지 그것은 차별에 가까워서, 여자는 남자를 따르고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이를 고려하면 시적 화자 ‘나’는 여자이고 ‘님’은 남자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님을 조차(좇아) 삼기(‘삼기다’는 생기게 하다는 뜻의 옛말인데, 자주 나오는 어휘이니 외워 두자)’게 된 존재이고, ‘님을 뫼시’고 있었다. ‘나’는 임에 종속되고 임은 &lsqu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彌縫策(미봉책)

    ▶ 한자풀이彌 : 두루 미縫 : 꿰맬 봉策 : 꾀 책터진 곳을 임시로 깁는다는 뜻으로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처리함-《춘추좌씨전》춘추시대 주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 때의 일이다. 환왕은 제후국들의 패권 싸움으로 명목상의 천자국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자 정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莊公)은 나라가 날로 강성해지자 천자인 환왕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환왕은 침공에 앞서 장공의 위세를 꺾고자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적 실권을 박탈했다. 장공은 이런 조치에 분개해 조현(朝見: 신하가 조정에 들어가 임금을 배알하는 일)을 중단했고, 환왕은 이를 빌미로 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들에게도 참전을 명했다.왕명을 받고 진나라 위나라 등 여러 제후국의 군사가 모이자 환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 천자가 직접 자기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에 나가는 자장격지(自將擊之)는 춘추시대 240여 년 동안 전무후무한 일이다. 정나라 수갈에 도착한 왕의 군대는 장공의 군사와 마주했다. 정나라 공자인 원(元)이 장공에게 진언했다. “지금 좌군에 속한 진나라 군사는 국내 정세가 불안해 전의를 잃었습니다. 하오니 먼저 진나라 군사부터 공격하십시오. 그러면 진나라 군사들이 달아날 것이고, 환황이 지휘하는 중군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럼 채나라의 우군도 맞서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니다. 이때를 노려 중군을 치면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원의 진언은 적중했다. 장공은 물고기들이 떼를 짓는 것처럼 촘촘한 원형의 진을 쳤고 전차와 전차 사이의 틈은 보병으로 미봉(彌縫:두루 메움)했다. 결국 왕군은 대패하고 환왕은 어깨에 화살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책요' 대 '책이요'…언중의 선택은?

    “우리 뭐 먹을까?” “저는 냉면이요.” 식당에서 들을 만한 대화다. “기름은 얼마나 넣을까요?” “가득이요.” 주유소에선 이런 말이 오간다.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이요’(냉면이요/가득이요)는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규범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현실언어에서는 활발히 쓰였지만, 공인된 어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책요?”로 쓰던 말…이젠 “책이요?”도 돼그러던 ‘-이요’가 지난 2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조사’라는 자격을 얻어 표제어로 올랐다. 문장 안에서 ‘주로 발화 끝에 쓰여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한다. 보조사란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말한다. ‘-은/는/도/만/까지/마저/조차/부터’ 같은 게 보조사다. 이들은 문장 안에서 때론 주격으로도, 목적격으로도 쓰이는 등 특정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아 격조사와 구별해 ‘보조사’라고 부른다.예전엔 그런 보조사 중 존칭보조사인 ‘-요’를 써서 “냉면요” “가득요”처럼 쓰던 말이었다. 이를 ‘-이요’로 하는 것은 비문법이었다. 지금은 두 가지 다 어법에 맞는 말이 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층 가세요?”라고 물어올 때 “10층이요”라고 해도 되고 “10층요”라고 해도 된다. “민준이가 올해 몇 살이지? 여섯 살이요/여섯 살요.” “너는 전공이 뭐니? 국문학이요/국문학요.” 이제는 모두 가능하다.이는 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 규정한

  • 영어 이야기

    동사구의 반복을 피하는 방법, 생략

     Because deaf children are unable to hear speech, they do not acquire spoken languages as hearing children do. However, deaf children who are exposed to sign language learn it in stages parallel to those of hearing children learning spoken languages. Sign languages are human languages that do not use sounds to express meanings. Instead, sign languages are visual-gestural systems that use hand, body, and facial gestures as the forms used to represent words. Sign languages are fully developed languages, and signers can create and comprehend unlimited numbers of new sentences, just as speakers of spoken languages do.Victoria Fromkin 외 2인의 《An Introduction to Language》 중에서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말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청각 장애가 없는 아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구어를 습득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화 언어(수어)에 노출된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청각 장애가 없는 아이들이 구어를 배우는 습득 단계와 비슷한 단계로 수어를 배운다. 수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 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인간의 언어이다. 대신에, 수어는 손, 몸, 그리고 안면 몸짓을 사용하는, 어휘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형태로서의 시각-몸짓 체계이다. 수어는 완전히 발달한 언어이고, 말소리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과 마찬가지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무한한 수의 새로운 문장들을 만들어내고 이해할 수 있다. < 해설 >인간은 언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앞에서 사용한 문장이나 담화에서 이미 언급된 동사구를 그대로 반복해 사용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이를 피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동사구를 생략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they do not acquire spoken languages as hearing children do는 원래 they do not acq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세계에 대해 무미함, 권태, 허무를 느꼈니? 그럼 부조리한 거야

    나는 집에 도착한 그 첫 순간에 베일에 가린 듯이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된 나 자신을 느꼈다. 집에서 맞는 첫날 아침을 나는 이상한 비현실감 속에서 맞았다. “이런 전선에서 두부 장수 종소리,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수돗물이 넘치는 소리가 웬일일까?”라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던 것이다. ‘이런 전선에서’란 느낌은 어떤 긴박한 위기에 대처한 생생한 의지였다. 그것은 아직도 내 몸에 밴 전쟁 냄새였다. 그런데 두부 장수 종소리, 유행가 소리 따위를 의식했을 때 나는 뭔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나의 안에 있는 긴박감에 비해서 밖은 너무도 무의미하고 태평스럽고 어쩌면 패덕스럽기까지 했다. 나미도, 학교 공부도, 또 나로부터 그토록 수많은 밤을 앗아 갔던 아틀리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들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하등의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나날이 권태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따금 나는 내 안의 긴장에 대해서, 적어도 숨김없는 그 진실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려 애써 보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가운데 부분 줄거리] ‘나’는 자신의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는 애인 나미와도 거리감을 느끼고 이 세계가 극도로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무력감 속에서 공터를 내려보던 중, 뽑기 과자를 팔고 무엇을 찾는 일에 열중하는 노인을 보게 된다.개는 하루 사이 아주 눈에 띄게 쇠약한 모습이고, 노인도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긴 하나 끈질긴 어떤 힘이 그의 전신에서 면면히 솟아 나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완전히 안정을 잃고 방 안을 오락가락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이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문장을 비트는 서술어 '전망이다'

    지난 호에 이어 우리말 문장을 왜곡하는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관형어를 많이 쓰면 필연적으로 명사구 남발로 이어지고, 이는 문장의 리듬을 깨고 글을 허술하게 만든다. 부사어를 살려 쓰면 동사·형용사가 활성화돼 문장의 구색이 갖춰지고 글에 운율이 생긴다. 짜임새 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힘 있고 매끄럽다. 주어와 서술어 호응하지 않아 비문관형어를 남발하는 현상은 다양하게 발생한다. 다음 문장을 비교해보자.①그는 내일 떠날 ‘계획이다’. ②그는 내일 떠날 ‘전망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명사문인데, 두 문장은 비문 여부의 판단이 좀 다르다. ①은 서술어가 주어의 동작,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동사문으로 바꾸면 ‘그는 내일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다’로, 이게 기저문장이다. 그에 비해 문장 ②의 서술어 ‘전망이다’는 주어 ‘그’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①과 같이 ‘그는 내일 떠나려고 전망하고 있다’로 해선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다. ‘전망’의 주체는 제3의 누군가로 인식되는데, ‘그’가 주어인 문장에서 서술어로 행세하고 있으니 마치 머리 따로 꼬리 따로인 셈이다. 비문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오류는 글쓰기에서 흔히 일어난다. ‘수출이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 분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물가가 오를 전망이다’, ‘대북 관계가 악화될 전망이다’ 등이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이다’ 부분을 ‘~ㄹ 것으로 보인다’, ‘~ㄹ 것으로 전망된다’, ‘~ㄹ 것으로 예상된다’처럼 피동형으로 바꿔 동사문으로

  • 영어 이야기

    go on, go after, go by, go off …

     Neil talked in low tones to Charlie and Knox in the dorm hall as the evening parade of prebedtime activity went on around them. Boys moved about the hallway in pajamas, carrying pillows under one arm and books under the other. Neil threw his towel over his shoulder, patted Knox on the back, and headed toward his room. He tossed the towel aside and noticed something on his desk that wasn’t there before. He hesitated momentarily, then picked up an old, well-worn poetry anthology. He opened it and, inside the cover, written in longhand, was the name J. Keating. Neil read aloud the inscription under the signature. “Dead Poets.” He stretched out on his bed and began skimming the thin yellowed pages of the old text. He read for about an hour, vaguely aware of the hallway sounds quieting down, doors slamming shut, and lights being turned off.N. H. Kleinbaum의 《Dead Poets Society》 중에서닐은 기숙사 복도에 있는 찰리와 녹스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왜냐하면 일련의 취침 전 저녁 활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들은 잠옷 바람으로 복도를 돌아다녔는데, 한쪽 팔에는 베개를, 다른 한쪽 팔에는 책을 끼고 있었다. 닐은 수건을 그의 어깨에 걸쳤고, 녹스의 등을 토닥인 후에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가 수건을 한쪽으로 치우고, 전에 없었던 무언가가 그의 책상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잠시 망설인 후 오래되어 해진 시집을 집어 들었다. 그는 시집을 펼쳤는데 표지 안쪽으로 J. Keating이라는 이름이 손으로 쓰여 있었다. 닐은 서명 아래에 적혀 있는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죽은 시인.” 그는 침대에 몸을 뻗고 누워 오래된 글이 있는 얇고 누런 페이지들을 넘겨 가기 시작했다. 그는 한 시간 정도 그것을 읽었는데, 복도의 소리가 잠잠해지고, 문들이 닫히고, 불빛이 꺼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