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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붕정만리 (鵬程萬里)
▶ 한자풀이鵬 : 붕새 붕程 : 법 정萬 : 일만 만里 : 마을 리붕새는 단번에 만 리를 난다는 뜻으로앞길이 매우 멀고도 큼을 일컬음 -《장자(莊子)》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道家)는 무위자연(無爲自然) 네 글자로 압축된다. 순리를 인위적으로 거부하지 말고, 자연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다. 장자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장자》다. 장자는 풍자적이고 비유적인 이야기로 도가 사상의 본질을 짚어준다. 그런 점에서 장자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장자》 첫머리에 ‘붕(鵬)’이라는 새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이 곤(鯤)이다. 곤의 크기가 몇천 리인지는 알지 못한다. 곤이 변해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이 붕(鵬)이다. 붕 또한 크기가 몇천 리인지는 알지 못한다. 한데, 이 새가 한번 힘을 써 날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 전체를 뒤덮는 구름과 같고 바다를 뒤집을 만큼 큰바람이 인다. 붕은 그 바람을 타고 북쪽 바다 끝에서 남쪽 바다 끝까지 날아간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는 물결치는 것이 3000리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간 붕새는 6개월 동안 계속 난 다음에 비로소 날개를 쉰다.붕정만리(鵬程萬里)는 ‘붕새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를 올라간다’는 글에서 유래했다. 붕새가 단번에 1만 리를 난다는 뜻으로, 앞길이 매우 멀고도 큼을 일컫는다. 대자연의 웅대함이 형용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붕정(鵬程)은 붕새가 나는 것과 같이 지극히 먼 거리를 뜻한다. 붕새가 9만 리를 날 듯,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원대한 꿈이나 계획을 빗대어 붕정만리라는 표현을 쓴다.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라는 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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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범인(凡人)이면서 우부(愚夫)인 주인공이 장원급제한 비결은?
[앞부분 줄거리] 일자무식에 머슴살이 하던 민시영은 아내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북한산에 사는 월봉대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는다. 10년이 안 돼 월봉대사는 패글제를 가르쳐주며 민시영이 과거에 응시하도록 한다.곧 앞서 이끌며 몰아내자 따라 들어가 전정(殿庭)에 숙배하니 임금이 물으시기를,(중략)“그러하다. 내 어젯밤 몽중(夢中)에 어떠한 도사 한 분이 와 날더러 이르기를 ‘패글제는 이러한 글제를 내라.’ 하되 그 연고를 해득지를 못하였더니 이제야 그 부인의 지성을 상제(上帝)께옵서 감응하시어 내 마음을 깨치게 함이라. 또 몽중 도사는 너의 선생 월봉대사요, 글제의 ‘하득제갈량이라.’ 하는 것은 내 시영을 얻을 징조로다. 오호라,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요, 국난(國難)에 사양상(思良相)이라.’ 하였으니 내 나라가 어지러움을 근심함에 또한 양상을 얻었고 네 가빈하니 또 양처를 얻었도다. …”[가운데 부분 줄거리] 민시영은 사또가 되어 고향에 돌아왔으나,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걸인 행색으로 집을 찾아간다.부인 … 허허 길게 탄식하고 돌아 들어와 이불을 덮어쓰고 스스로 하는 말이,“… 대장부가 아녀자와 더불어 십 년의 기약을 서로 하였는데 저다지 신의 없이 돌아오니 어찌 그러리오? 비록 그러하나 잠깐 용모를 살펴보니 티끌의 때가 없고 정수리에 은은한 정기가 있고, 미간에 아름다운 태도를 감추고 있으니 의관은 남루하나 완연히 진흙 속의 옥이 티끌 밖에 드러나 있도다. 반드시 무슨 거동이 있을 것이라. … 기약을 어겨서 흔연히 받아들이면 이는 반도지폐(半途之廢)가 될 것이니 물리쳐 나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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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단기필마'와 '애매모호'…같으면서 다른 점
삼국지에서 조자룡이 조조 군에 갇힌 유비의 아들을 구출해오는 대목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다. 말 한 필에 의지해 홀로 적진을 돌파하는 조자룡의 위용은 ‘단기필마’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 말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이하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단기+필마’의 결합인데, 합성어로 처리되지 않았다. 둘 다 겹말이지만 사전 처리는 서로 달라대신에 ‘단기’와 ‘필마’가 각각 따로 올라 있다. 단기(單騎)는 ‘홑 단, 말탈 기’ 자다. 혼자서 말을 타고 감을 뜻한다. 필마(匹馬)는 한 필의 말을 가리키는데, 주로 ‘필마로’ 꼴로 쓰여 이 역시 혼자서 말을 타고 가는 것을 나타낸다. 단기나 필마나 같은 뜻인 셈이다.‘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예전에 국어 고전 시험에 자주 등장하던 야은 길재의 시조 ‘오백 년 도읍지’다. 고려 말 충신이 옛 수도인 개성을 돌아보며 망국의 한을 읊은 이 시조에서 ‘필마’의 전형적인 쓰임새를 엿볼 수 있다.‘단기필마’는 잉여적 표현이지만, 이런 형태의 겹말은 눈치 채기도 어렵고 쓸 때 어색함도 별로 없다. 이에 비해 ‘애매모호’는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겹말 표현으로 지목돼 논란이 컸다. 더구나 ‘애매’는 일본어투라는 누명까지 따라다닌다. 잘못 알려진 국어상식의 하나지만, 그 여파로 일각에선 지금도 이 말을 기피 대상으로 여긴다. 우리말 하나에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은 셈이다.애매(曖昧)는 희미해 분명치 않음을 뜻한다. 모호(模糊) 역시 흐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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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3인칭 시점 소설의 내적 독백…인물의 심리 표현 방법
[앞부분 줄거리] 차나 한잔 하자는 신문사 문화부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그는 다른 신문사의 문화부장을 찾아가 차나 한잔 하면서 일자리를 부탁한다. 그러나 문화부장은 돈을 쓰지 않는 사장을 핑계로 부탁을 거절한다. 그는 만화가인 김 선생을 만나 술을 마신다.“다방에 가서 그 양반이 그러더군요. 사람 웃기는 방법의 몇 가지 패턴을 안다고 곧 만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양반이 그랬어요. 두꺼비 같은 눈알을 부라리면서 말입니다.”찻값을 앞질러 내버리던 그 키가 작달막한 문화부장. 날 무척 무안하게 해줬었지.“그러면서 말입니다. 너는 미역국이다, 이거죠.”자기네 사장이 얼른 뒈져달라는 기도를 하라던 그 사람. 난 참 면목이 없어서 혼났지.“차나 한잔. 그것은 일종의 추파다. 아시겠습니까, 김선생님?” 그는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그 속에서 성실을 다했던 하나의 우연이 끝나고……”그는 술을 한모금 꿀꺽 마셨다.“새로운 우연이 다가온다는 징조다. 헤헤, 이건 낙관적이죠, 김선생님?” 그는 김선생이 방금 비워낸 술잔에 취해서 떨리는 손으로 술을 따랐다. “차나 한잔. 그것은 이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이다. 아시겠습니까? 김선생님, 해고시키면서 차라도 한잔 나누는 이 인정. 동양적인 특히 한국적인 미담 …… 말입니다.”<중략>그는 자기의 술잔을 잡으려고 했다. 잘못해서 술잔이 넘어져버렸다. 그는 손가락 끝에 엎질러진 술을 찍어서 술상 위에 ‘아톰X군’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자, ‘아톰X군’, 차나 한잔 하실까? 군과도 이별이다. 참 어디서 헤어지게 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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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연작홍곡 (燕雀鴻鵠)
▶ 한자풀이燕 : 제비 연 雀 : 참새 작 鴻 : 큰기러기 홍 鵠 : 고니 곡제비가 어찌 기러기의 마음을 알겠냐는 뜻으로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의미 -《사기(史記)》진(秦)나라는 수백 년이나 지속된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기원전 221년에 중국 천하를 통일했다. 하지만 폭정으로 민심을 잃어 15년 만에 망했다. 진 멸망의 첫 봉화는 양성(陽城)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진승(陳勝)이라는 자가 올렸다. 그가 밭에서 일을 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놈의 세상, 뭔가 뒤집어 놓아야지. 이래가지고는 어디 살 수가 있겠나.”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었다. “여보시게, 머슴 주제에 무엇을 하겠다고?” 진승이 탄식하듯이 말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리오(연작안지홍곡지지: 燕雀安知 鴻鵠之志).”진시왕이 죽고 아들 이세(二世)가 왕위를 이었지만 포악함과 사치는 아버지보다 더했다. 백성들은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이 두려워 불만조차 말할 수 없었다. 후에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징발되어 일행 900여 명과 함께 장성(長城)을 수비하러 갔다. 한데 대택(大澤)이라는 곳에서 큰비를 만나 기일 내에 목적지까지 도달하기는 불가능했다. 늦게 도착하면 참형(斬刑)에 처해지니 차라리 반란을 일으키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진승·오광은 뜻을 같이하고 인솔자인 징병관을 죽인 뒤 군중을 모아 놓고 말했다. “어차피 늦었으므로 목적지에 도착해도 우리는 죽게 된다. 이렇게 죽을 바에는 사내대장부답게 이름이나 날리자,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다더냐?”징집자들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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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
remain, stay, feel 뒤에 오는 형용사는 부사처럼 해석
The seeds of many plants undergo a period of dormancy which may be very short (on the order of a few days) or prolonged (several decades or more). The advantage of dormancy is that it allows a plant population to escape from certain environmental disturbances or temporally adverse conditions. Early successional and pioneer plants tend to have delayed seed germination until such time that light or water conditions become favorable for growth. The seeds remain in the soil, forming a soil seed bank, and only germinate when an appropriate environmental cue, such as increased light brought about by a tree fall, is received. Dormancy is also an effective strategy to avoid seedling desiccation during the dry season.- 《Encyclopedia of forest sciences》 중에서 -많은 식물의 씨앗은 일정 기간의 휴면 상태를 겪는데, 그 기간은 (대략 며칠 정도로) 매우 짧을 수도 있고 (몇 십년 또는 그 이상으로) 장기적일 수도 있다. 휴면 상태는 식물 개체가 특정한 환경적 방해나 일시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끔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조기 조성 개척 식물들은 씨앗의 발아를 빛이나 물의 조건이 성장에 유리하게 되는 시기까지 지연시키는 경향이 있다. 씨앗은 흙 속에 남은 채로 토양 씨앗 저장고를 형성하며, 나무가 넘어져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증가하는 것과 같은 적절한 환경적 신호를 받으면 그제서야 씨앗이 발아하게 된다. 휴면 상태는 또한 건기 동안 묘목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전략이다. 해설한국어에서 ‘-하게/-히’라는 형태소를 갖는 어휘는 부사에 해당합니다. ‘빠르게’ ‘깨끗하게’ ‘유리하게’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해석하면서 특정 요소가 ‘-하게/-히’라고 해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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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파죽지세(破竹之勢)
▶ 한자풀이破 : 깨뜨릴 파竹 : 대 죽之 : 갈 지勢 : 기세 세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세력이 강대해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 -《진서(晉書)》사마염(司馬炎)은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를 없애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진(晉)으로 바꿨다. 그가 곧 무제(武帝)로, 서기 265년의 일이다. 이때는 유비가 세운 촉(蜀)나라도 이미 멸망한 뒤여서 삼국 중에서는 오찍 동쪽의 오(吳)나라만 남아서 버티고 있었다. 중국 천하를 놓고 진나라와 오나라가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었다.나라 안을 정비한 무제는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진남대장군 두예(杜預)가 파견 군대의 지휘관으로 사마염의 명을 받아 20만 군대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침공했다. 힘들게 무창을 점령해 교두보를 확보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군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작전 회의를 열었다. 한데 한 장수가 나서 엉뚱한 주장을 했다. “얼마 있으면 봄비로 강물이 범람하고, 장마에 전염병이 돌지 몰라 걱정입니다. 당장 오나라 도읍 점령이 어려우니 일단 회군한 뒤 가을철에 다시 오는 게 어떻겠습니까.”순간, 장수들이 술렁대고 그의 의견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타났다. 그러자 두예가 단호히 말했다. “그 무슨 소린가.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아, 마치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破竹之勢)와 같네. 대나무는 일단 쪼개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해 글자 그대로 파죽지세처럼 단숨에 오나라 수도 건업을 함락시켰다. 오왕 손호(孫晧)는 손을 뒤로 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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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백주대낮'은 곧 '벌건 대낮'이죠
“이제 더 이상 이런 불법폭력이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개혁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이른바 강성 귀족노조로 알려진 노동단체를 비판하며 언급한 대목이다. 정치는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문장 안에 쓰인 ‘백주대낮’이란 표현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좀 어색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백주대로’를 비틀어 ‘백주대낮’이라 말해이 말을 꽤 자주 접한다. “백주대낮에 이런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백주대낮에 버젖이 거짓말하다니….” 그런데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백주대낮’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래 ‘백주대로’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비틀어 변형된 형태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실은 사전에 ‘백주대로’란 말도 없다. ‘백주’와 ‘대로’가 각각의 단어로 있을 뿐이다. 백주(白晝)란 ‘환히 밝은 낮’을 뜻한다. 순우리말로는 ‘대낮’이다. ‘백주의 강도 사건’ ‘술에 취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한다’ 식으로 쓴다. 그러고 보면 주로 부정적인 문맥에서 쓰인다. 용례가 다 그렇다. ‘대로(大路)’는 말 그대로 크고 넓은 길이다. 고유어로 ‘큰길’이라고 한다. 이 두 말이 어울려 ‘백주 대로에…’ 같은 표현이 나왔다. 한 단어가 아니라서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쓴다. 당연히 사전 표제어에는 없고 각각의 단어가 따로 올라 있다.그럼 왜 이 ‘백주 대로’가 ‘백주대낮’으로 바뀌어 나타날까? 고유어 ‘대낮’은 ‘환히 밝은 낮’을 뜻한다. 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