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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습 길잡이 기타

    ☞ 포인트

    “… 듣기에 따라서는 궤변 같지만 그분은 남하구 다른 묘한 철학을 지니구 계셨습니다.” “그걸 한번 들려줄 수 없소?” “그분은 세상이 어지럽구 더러울 때는 그것을 구하는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다구 하셨습니다. 세상을 좀 더 썩게 해서 더 이상 그 세상에 썩을 것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썩지 않게 고치려구 했다가는 공연히 사람만 상하구 힘만 배루 든다는 것입니다. ‘모두 썩어라, 철저히 썩어라’가 그분이 세상을 보는 이상한 눈입니다. … 그분은 사람만이 지닌 이상한 초능력을 믿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를 송두리째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철저히 썩어서 더 썩을 것이 없게 되면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언젠가는 스스로 자구책을 쓴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 자기 생각을 부정(不正)의 미학이라는 묘한 말루 부르시기두 했습니다.” “… 그분을 언제나 ‘미련한 놈’이라구만 부르셨습니다.” 오일규다. “… 그 미련한 놈이 죽어 버렸으니 자기도 앞으로는 미련하게 살밖에 없노라구 하셨습니다. 당신이 미련하다고 말씀하는 건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착한 일을 뜻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이곳에 오신 후로는 그분은 거의 남을 위해서만 사셨습니다. 제가 생명을 구한 것두 순전히 그분의 덕입니다.” 나는 다시 기범이 지껄였던 과거의 요설들이 생각난다. 세상을 항상 역(逆)으로만 바라보던 그의 난해성이 또 한 번 나를 혼란 속에 빠뜨린다. 그는 어쩌면 이 세상을 역순(逆順)과 역행(逆行)에 의해 누구보다 열심으로 가장 솔직하게 살다 간 것 같다. 그에게 악과 선은 등과 배가 서로 맞붙은 동위(同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힘 있는 문장은 어디서 나오나?

    신문언어가 이 땅에 선보인 지 벌써 1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글 전용으로 발행된, 최초의 민간 일간지 독립신문이 1896년 창간된 것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 그 오랜 세월 저널리즘언어는 간단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에 비해 독자들의 ‘신문언어 독법(讀法)’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판단어법과 전달어법의 차이 이해해야지난 호들에서 소개한 ‘단어의 선택’도 실은 신문언어를 읽는 여러 기법 중 일부에 해당한다. 저널리즘언어는 계도성, 규범성 등 공공재로서의 특성을 띠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그중 전달어법과 판단어법에 대한 이해는 독자들이 신문언어 독법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편의점 매출은 2012년 10조9000억원으로 처음 10조원을 넘어선 뒤 4년 만인 올해 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편의점 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시장 상황을 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얼핏 보면 별 문제 없이 흘려보내기 십상인 문장이다. 하지만 서술어 ‘예상된다’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글쓴이가 판단하고 규정하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판단어법). 신문언어에서, 특히 뉴스를 전달하는 언어는 객관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문장 형식 중 하나가 인용하는 어법을 취하는 것이다(전달어법). 가령 “편의점 매출은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처럼 쓰면 된다. 이를 “업계에서는 편의점 매출이 ~것으로 예상한다”처럼 써도 좋다.판단어법으로 쓸지, 전달어법으로 쓸지는 결국 그동안 우리가 살펴온, ‘누구의 말’로 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군자표변(君子豹變)

    ▶ 한자풀이君 : 군자 군子 : 아들 자, 어르신 자豹 : 표범 표變 : 변할 변표범이 털가죽 색깔을 자주 바꾸듯군자는 잘못을 고치는 데 매우 신속함 - 《주역》주역(周易)은 중국 지식인의 필독서로 꼽히는 오경(五經)의 하나다. 효(爻)는 주역의 바탕이다. 우리나라 태극기 네 모서리에 그려진 형상이 효다. 끊어지지 않고 긴 것이 양효, 중간이 끊어진 것은 음효다. 효의 조합이 괘(卦)다. 그러니 태극기에는 4개의 괘가 그려져 있는 셈이다. 각 괘의 뜻을 풀어 놓은 것이 효사(爻辭)다. 주역은 단순한 역서(易書)가 아니라, 음양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한 일종의 철학이기도 하다. 말년에 주역에 심취한 공자는 “생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주역을 더 알고 싶다”고 했다. 주역을 읽고 또 읽어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 위편삼절(韋編三絶)도 공자에게서 유래했다.주역 64괘 중 혁괘(革卦)에는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 소인혁면(小人革面)”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인호변은 호랑이가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털을 갈고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처럼 대인은 천하를 혁신해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군자표변은 표범 역시 가을이 되면 털이 바뀌지만 호랑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군자는 잘못을 고쳐 표범의 털처럼 아름답고 선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소인혁면은 소인의 경우는 혁면(革面), 즉 얼굴 표정만 바꾼다는 것이다. 대인-군자-소인, 호변-표변-혁면은 주역이 보는 인간상의 순서이자 바람직한 변화의 순서다.군자표변(君子豹變)의 원뜻은 ‘군자의 자기개선이나 자기혁신’으로 좋은 의미를 갖는다. ‘저 사람 보게. 군자표변이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막말하는 北, 남한에 '호통쳤다'고?

    ‘단어의 선택’은 글쓰기의 시작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살펴본 사례들도 바로 이 단어 용법에 관한 것이었다. 글 쓰는 이가 구사하는 단어의 폭에 따라, 여기에 최적의 단어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 여하에 따라 글의 품질이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글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문장론적 방법은 무엇일까? ‘호통치다’는 ‘꾸짖다’는 뜻…北막말엔 옳지 않아글쓰기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나 표현을 쓰는 능력은 중요하다. 글에 신뢰감을 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각종 논문류를 비롯해 보고서, 설명서 등 실용문을 작성할 때 더 그렇다. 하지만 ‘객관성’은 상대적 개념이라 이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 비교적 검증된 방식이 공인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가령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봉기’ 등 비슷비슷한 용어 앞에서 무엇을 쓸지 고민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동학농민운동’을 선택하면 된다. 예전에는 ‘제주도 4·3폭동’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정부에서는 이를 버리고 ‘제주도 4ㆍ3사건’으로 정리했다. ‘폭동’이란 표현이 자칫 지역주민 전체를 폭도로 몰아 사건 자체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5·16혁명’이라 쓸지‘5·16쿠데타’로 쓸지 망설인다면 불법적 찬탈의 의미를 배제한 ‘5·16 군사정변’을 쓰는 게 좋다. 모두 교육부에서 채택한 교과서 편수용어라 공공성을 확보한 말이다.‘천황’은 일본에서 그 왕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 우리 언론에서 또는 국민이 천황이라 할지, 일왕이라 표기할지에 관한 논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넌 개념에서 뭘 생각하니? 난 그 속성과 사례를 생각해

    야구공을 던지면 땅 위의 공 그림자도 따라 움직인다. 공이 움직여서 그림자가 움직인 것이지 그림자 자체가 움직여서 그림자의 위치가 변한 것은 아니다. 과정 이론은 이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정은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이다. 날아가는 야구공은 물론이고 땅에 멈추어 있는 공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기에 시공간적 궤적을 그리고 있다. 공이 멈추어 있는 상태도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과정이 인과적 과정은 아니다. 어떤 과정은 다른 과정과 한 시공간적 지점에서 만난다. 즉, 두 과정이 교차한다. 만약 교차에서 표지, 즉 대상의 변화된 물리적 속성이 도입되면 이후의 모든 지점에서 그 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과정이 인과적 과정이다.가령 바나나가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과정 1이라고 하자. a와 b의 중간 지점에서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내는 과정 2가 과정 1과 교차했다. 이 교차로 표지가 과정 1에 도입되었고 이 표지는 b까지 전달될 수 있다. 즉, 바나나는 베어 낸 만큼이 없어진 채로 줄곧 b까지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과정1은 인과적 과정이다. 바나나가 이동한 것이 바나나가 b에 위치한 결과의 원인인 것이다. 한편, 바나나의 그림자가 스크린에 생긴다고 하자. 바나나의 그림자가 스크린상의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움직이는 과정을 과정 3이라 하자. 과정 1과 과정 2의 교차 이후 스크린상의 그림자 역시 변한다. 그런데 a′과 b′사이의 스크린 표면의 한 지점에 울퉁불퉁한 스티로폼이 부착되는 과정4가 과정3과 교차했다고 하자. 그림자가 그 지점과 겹치면서 일그러짐이라는 표지가 과정 3에 도입되지만, 그 지점을 지나가면 그림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

  • 영어 이야기

    채식주의자의 세계…vegetarian·vegan·ovo-vegetarian

    “So you’re saying that from now on, there’ll be no meat in this house?”“Well, after all, you usually only eat breakfast at home. And I suppose you often have meat with your lunch and dinner, so…it’s not as if you’ll die if you go without meat just for one meal.”Her reply was so methodical, it was as if she thought that this ridiculous decision of hers was something completely rational and appropriate.“Oh good, so that’s me sorted then. And what about you? You’re claiming that you’re not going to eat meat at all from now on?” She nodded. “Oh, really? Until when?”“I suppose…forever.”- Han Kang의 《The Vegetarian》 (Deborah Smith 역) 중에서“그래서 이 시간부로 이 집에서는 고기를 못 먹는다는 얘기야?”“어차피 당신은 집에서 주로 아침만 먹잖아. 그리고 점심이나 저녁에 고기를 자주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 끼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아내의 답은 꽤나 체계적이었다. 마치 자신은 이 엉뚱한 결정이 매우 이성적이고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좋아, 나는 그렇다 치자고. 그럼 당신은? 당신도 지금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거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언제까지?”“아마도… 영원히.” 해설우리나라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채식주의자라는 하나의 용어로 지칭하곤 합니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어휘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얼마 전 tvN 채널 프로그램인 ‘윤스테이’에서 배우 윤여정 씨는 고기를 먹지 않는 한 외국인 손님을 위해 vegan 메뉴를 준비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드는 하나의 궁금증은 윤여정 씨는 왜 vegetar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大義滅親(대의멸친)

    ▶ 한자풀이大 : 클 대義 : 옳을 의滅 : 멸할 멸親 : 육친 친대의멸친大義滅親큰 뜻을 이루기 위해 친족도 죽인다는 의미국가를 위해선 부모·형제 정도 돌보지 않음 -《춘추좌씨전》석작(石)은 춘추시대 위나라의 충신이다. 그는 장공(莊公)을 섬기다 환공(桓公)의 시대가 되자 은퇴했다. 환공의 배다른 아우 주우(州)가 역심을 품고 있음을 알고는 아들 석후(石厚)에게 주우와 교제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듣지 않았다.주우는 끝내 환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지만 귀족과 백성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주우의 참모가 된 석후는 아버지에게 민심을 되돌릴 방법을 물었다. “아비 생각에는 주우 공자께서 천하의 종실인 주(周)의 천자를 배알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러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무조건 주나라로 가면 천자께서 알현을 허락해 주시지 않을 테니 먼저 네가 공자를 모시고 진나라 환공(桓公)을 찾아가거라. 그분은 천자와 절친한 관계이시니, 그분의 호감을 산 후에 다리를 놓아 달라면 호의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주우와 석후는 즉시 진나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석작은 환공에게 밀서를 전달했다. “주우와 석후 두 사람은 임금을 시해한 역적이니, 귀국에 도착하면 즉각 사형에 처하소서.”진나라에 도착한 주우와 석후는 체포돼 오랏줄에 묶였다. 하지만 처벌이 문제였다. 자칫 남의 나라 내정에 끼어들어 주변국의 눈총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대부 자침이 처벌은 위나라에 맡기자고 조언했고, 환공의 동의를 얻어 위나라에 그 뜻을 전했다.석작은 대신들을 소집해 즉시 사형 집행인을 진나라로 보내자고 했다. 한 대신이 조심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전승절’과 ‘이른바 전승절’의 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승절(7월 27일) 67주년을 맞아 군 지휘관 주요 성원들에게 ‘백두산 권총’을 하사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지난해 이즈음 우리 언론들은 노동신문 보도를 인용해 북한 지도부의 동향을 이렇게 전했다. 문장 안에는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띈다. ‘이른바’는 ‘남들이 그리 말하더라’라는 뜻 더해그중에서도 ‘전승절’은 이 문맥에서 부적절한 표현이다. 왜 그럴까? 나의 관점이 아니라 남의 관점이 투영된 말이기 때문이다.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그것을 우리는 ‘정전기념일’이라고 한다. 남침을 감행해 전쟁의 참상을 불러온 북한에서는 이를 미화하고 자화자찬해 스스로 ‘전승절’이라고 부른다.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관점(point of view)’이라고 한다.특히 신문언어는 공공언어라 이 ‘관점’을 매우 중요시한다. ‘전승절’은 북한의 관점이 반영된, 북한의 용어임이 드러난다. 이를 그대로 인용해 쓰면 본의 아니게 타인의 표현이 나의 말로 둔갑해 전달되는 오류가 발생한다.이를 피하려면 ‘소위’ ‘이른바’ 같은 말을 넣어 남의 용어임을 나타내면 된다. ‘이른바’는 ‘세상에서 말하는 바’란 뜻이다. 즉 ‘이른바 전승절(7월 27일) 67주년을 맞아~’ 식으로 써서 그 말이 북한의 용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문장론적 기법인 셈이다.지난 호에서 살핀 ‘기념’의 쓰임새 역시 문장 성패를 가르는 수많은 단어 용법 중 하나다. 요지는 6·25전쟁, 국권피탈, 천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