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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千篇一律(천편일률)

    ▶ 한자풀이 千 : 일천 천 篇 : 책 편 一 : 한 일 律 : 법 률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 어떤 것들이 특성 없이 엇비슷함을 일컬음 -《예원치언(藝苑言)》 등 개성의 시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차 낡은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이 시대는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일상에서 또는 신문기사 등에서 자주 쓰이는 천편일률(一律千篇)은 ‘천 가지 작...

  • 영어 이야기

    대조를 이룰땐 접속사 whereas, while을 써요

    Archaeology is the study of history as written not with ink on paper but with the debris of human activity found where it fell. Whereas historians read the written records of our ancestors, archaeologists read the material record, either to augment t...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임대료'를 어찌 '체납'하나요?

    “SK바이오, 미 노바백스 백신 ‘위탁생산’…전 세계에 공급” “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으로 돌파구 찾는다” “르노삼성차는 2020년 닛산의 로그 ‘위탁생산’이 종료되면서 일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위탁/수탁’은 분명히 구별되는 말이다. 위탁은 남에게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다. 반...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千載一遇(천재일우)

    ▶ 한자풀이 千 : 일천 천 載 : 해 재, 실을 재 一 : 한 일 遇 : 만날 우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를 의미 -《삼국명신서찬》 중국 동진시대에 원굉(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집안이 어려워 배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어느 가을밤, 강에 나가 시 한 수를 읊었다. 마침 사상이라는 귀족이 배를 띄우고 달구경을 하다 그 시를 듣고 원굉을 찾았다. 이 인연으로 원굉은 동양군 태수가 되...

  • 영어 이야기

    ~ly로 끝나면 다 부사 아니었어?

    Journalism or what is often called the news business the gathering, the processing, and delivery of important and interesting information and developments by newspapers, magazines, or broadcast media is inextricably entangled in that giant, whirling ...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千里眼 중국 위나라 광주 관청 앞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관원이 놀라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리 소란이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오늘 관청 창고를 열고 저장된 곡식을 나눠준다고 들었소. 연속된 흉년으로 가족들이 모두 굶어죽을 지경이오.” 관원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관청의 창고를 연다고? 누가 그런 황당한 소리를 했소?” 그때 뒤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랬네.” 얼마 전 광주 지사로 부임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실업률 증가 '효과'가 있다고 쓰면…

    말에도 생태계가 있다. 그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우리말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지재권 면제’는 어휘 측면에서 우리말을 교란한 사례다. 단어(‘권리’와 ‘면제’) 간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부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이번 호에서는 글쓰기에서 단어들의 선택과 나열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지는지 좀 더 알아보자. 부정적 문맥에 ‘효과&rsq...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수필의 묘미? 뜻만 생각지 말고 어감도 고려해 봐야

    지나간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학자(이 안에는 물론 신학자도 포함되어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불필요한 접속사와 수식어로써 말의 갈래를 쪼개고 나누어 명료한 진리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묻어 둔 채, 이미 뱉어 버린 말의 찌꺼기를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생동하던 언행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