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음력 열닷새째 날을 다양한 말로 나타냈다. 가장 흔히 쓰는
'보름' 외에 이날 밤을 달리 '십오야(十五夜)'라고도 했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이행(1478~1534)이 지은 시조 '八月十五夜(팔월십오야)'(팔월 보름날 밤에)가 전해온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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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는 어느새 봄비가 내린다는 우수도 지나고 경칩(3월 5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풍습으로는 여전히 새해다. 불과 열흘 전에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인 설을 쇠었고, 며칠 뒤면 열닷새 즉 ‘보름날’이다. 새해 첫 보름달은 연중 가장 크고 밝게 뜬다고 해서 예부터 특히 ‘대보름’이라고 했다. 지금은 ‘대보름(날)’이라고 하면 ‘음력 정월 보름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음력 열닷새…‘오’가 세 개라 ‘삼오야’라 불러우리 조상들은 음력 열닷새째 날을 다양한 말로 나타냈다. 가장 흔히 쓰는 ‘보름’ 외에 이날 밤을 달리 ‘십오야(十五夜)’라고도 했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이행(1478~1534)이 지은 시조 ‘八月十五夜(팔월십오야)’(팔월 보름날 밤에)가 전해온다. ‘십오야’가 예부터 써온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특히 음력 8월 보름을 가리키기도 한다. ‘추석’ 또는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이는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십오야’는 1979년 혼성밴드 와일드캐츠가 같은 제목으로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언중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십오야 밝은 둥근달이 둥실 둥실 둥실 떠오면~ 설레는 마음 아가씨 마음~.”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응원가로도 많이 불린 이 노래의 원곡은 가수 김상희가 불렀던 ‘삼오야 밝은달’이다. ‘십오야’를 ‘삼오야’라고도 부른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어떤 수나 때를 나타내는, 독특한 방식의 말이 꽤 있다. ‘이팔청춘’과 ‘과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16세 무렵의 꽃다운 청춘을 뜻하는 말이라는 점이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나 말을 틀 때 이 얘기가 나온다. 몽룡이 나이를 묻자, 춘향이 “십육 세”라고 대답하고 몽룡은 “나와 동갑 이팔이라”라고 화답한다. 이팔(二八), 즉 ‘팔’이 두 개이니 십육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나 사랑을 나눈 게 16세 때이니 유교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로선 파격적인 애정행각이었던 셈이다. ‘세이레’ 등 사라져가는 말 지키고 보듬어야과년(瓜年)은 ‘결혼하기에 적당한 여자의 나이’를 뜻한다. “딸이 자라 어느덧 과년에 이르렀다”처럼 말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오이 과(瓜)’ 자가 들어갔을까? 과년은 ‘파과지년(破瓜之年)’에서 온 말로 瓜를 파자하면 ‘팔(八)’이 두 개 나오는데 여기서 ‘이팔’과 함께 ‘16’이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세이레’ ‘삼칠일’도 ‘이팔청춘’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세이레는 ‘아기가 태어난 지 스무하루(21일)가 되는 날’을 뜻한다. ‘이레(7일)’가 세 개라는 뜻에서 붙은 말이다. 이를 또 ‘삼칠일’이라고도 했다. ‘칠일’이 세 개라는 뜻이다. 의학이나 위생수준이 열악했던 옛날에는 면역력이 없는 갓난아기의 외부 노출을 극히 조심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난 뒤 세이레 동안은 대문에 특별한 장식을 함으로써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그것이 ‘금줄(禁-)’이다. 태어난 아이가 아들일 때는 금줄에 빨간 고추를 숯과 함께 매달고, 딸일 때는 솔가지를 달았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문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말만은 지키고 보듬어야 할 대상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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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칠칠재(七七齋)’라 한다는 것도 알아둘 만하다. 사십구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재’를 말한다. 이를 자칫 ‘사십구제’로 적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재(齋)란 ‘(절에서) 명복을 빌기 위해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을 말한다. 제(祭)는 ‘제사’를 뜻하는 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