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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35) 제임스 웰든 존슨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과거의 나와 마주한 오늘 제임스 웰든 존슨의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은 그 제목만으로도 나를 확 끌어당겼다. 책을 주문해놓고 이 책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몇 번인가, 난에 물을 주거나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다 말고 창밖을 내다보았으며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흑인으로서의 그 한때는 지금, 이 남자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흑인이었음을 철저히 부정하고, 혹은 위장한 채 사는 삶, 그 남자의 오늘의 삶은 아무래도 그러……하겠지.창밖의 나무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잎이 없는 가지들을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린 채 힘겹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그리고 지금 나의 내부의 풍경처럼 보였다. “이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내 삶의 큰 비밀, 지난 몇 년 동안 내 어떤 재산이나 소유물보다도 더 마음 쓰며 지켜온 비밀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음을 잘 안다.”『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은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범행 사실을 털어놓아야만 하는 자의 고백으로 그 첫줄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종의 고백록인 이 자서전의 ‘나’는 백인처럼 보였고, “참 예쁜 아드님을 두셨군요”라는 감탄을 어머니에게 선물하며 살았다. 그러나 운명의 그날, 교장 선생님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의 세계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잠시 모두 일어서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른 백인 학생들과 함께 일어섰다. 교장 선생님은 “넌 잠시 앉아 있다가 나중에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일어나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바로 흑인, 깜둥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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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빙하와 어둠의 공포'

    르포와 소설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미학적 심연 1984년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에게 ‘엘리아스 카네티 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빙하와 어둠의 공포》는 북극 탐험대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라인홀트 메스너의 고비사막 횡단 체험기인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를 읽으면서였다. 메스너는 이 책에서 “북극지방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빙하와 어둠의 공포》만큼 나를 전율케 한 책은 없었다”고 썼다. 메스너는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전설적 산악인이다. 그린란드, 티베트, 남극도 횡단했다. 그동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그런 메스너를 전율시킨 소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빙하와 어둠의 공포》는 란스마이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북극 탐험대 생존자들이 1872년부터 1874년까지 2년에 걸친 체험을 기록하고 스케치한 것에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다. 소설의 화자(話者)는 ‘나’이다. 그러니까 1인칭 소설이다. 《빙하와 어둠의 공포》는 ‘나’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나’가 주인공을 관찰하는 이른바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했다. 그런데 ‘나’가 관찰하는 이는 죽은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죽은 사람이 남긴 기록이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요제프 마치니다. 1948년 이탈리아 북동부 도시 트리에스테에서 태어난 마치니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마치니에게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북극 탐험대원 가운데 한 사람인 어머니의 증조부 안토니오 스카르파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치니의 북극에 대한 환상은 여기에서 피어났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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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미하일 조셴코'감상소설'

    참을 수 없이 우스운, 웃지 못할 이야기들 요건 틀림없이 아주 재밌는 소설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구미가 당겼다. 《감상소설》. 과연 내 독서영감은 절륜해! 뭐, 이런 재밌는 소설 제목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런데 책을 마주한 순간부터 예상과 달리 장편이 아니어서,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작품 한 편 한 편이 어디 한 줄 흘려 읽을 만한 데가 없어서, 괜히 이 책을 골랐다는 후회가 독서의 즐거움을 묽혔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아, 아무 책무 없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복되도다. 《감상소설》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이 책 한 권을 고스란히 옮겨야 할 것 같은 공포가 필력의 허술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게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아, 내게 의무 지어진 분량이 딸랑 400자라면 작히 좋으랴. 얼렁뚱땅 위 문단으로 마칠 수 있었으련만. 이럴진대, 그럼 다른 책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하는 유혹도 들었지만, 《감상소설》을 소개하는 영광의 한 구석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글감에 압도당하면 시시콜콜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딴소리로 초를 치며 시종일관하게 된다. 아마 나는 이 짧은 글을 그렇게 채우게 되리라. 「아폴론과 타마라」「사람들」「무서운 밤」「꾀꼬리는 무엇을 노래할까」「즐거운 모험」「라일락 꽃이 핀다」「지혜」「암염소」 이렇게 여덟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감상소설》에는 총 네 개의 서문이 실렸는데 1927년 3월 초판 서문에는 콜렌코르프, 1928년 5월 2판 서문에는 ‘K. y.’로 보이는 키릴문자, 같은 해 7월 3판 서문에는 ‘C.’와 파이 기호 같은 모양의 키릴문자, 1929년 4월의 4판 서문에야 비로소 ‘미하일 조셴코’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이 책, 이 《감상소설》은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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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안토니오 타부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이 사람을 보라! 하루가 멀다 하고 좁아지는 혈관, 뇌 주름 사이마다 쌓이는 먼지, 순환을 포기하고 몸속 어딘가에 응고되는 노폐물들, 우편함을 가득 채운 각종 세금 고지서들(게다가 납기일이 서로 다르기까지!)에다 엄습해오는 모든 사물과 갈등을 어떻게든 조율하여 아이는 무사히 키워야겠고, 친근하지는 않으나 밀착되다 못해 거기 매몰되고 마는 일상-이것들이 오늘 두개골까지 굳어버린 생활인으로서의 나를 이루는 결정(結晶)들이다. 써놓고 보니 한심하나 맘속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변명한다-십년 전만 해도 나는 이렇게까지 최저는 아니었으며 나아가야 할 길과 뛰어들어야 할 거리가 어디인지, 뻗어야 할 손길과 그것이 닿아야 할 곳을 고민할 줄 알았다고. 지금처럼 슬며시 소액 입금이나 구매 후원 같은 행위로써 죄의식을 ‘땜빵’하며 숨어드는 소심인이 아니었다고. 소시민을 자청하다 정말 소심인이 되어버린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으며, 과거에 알고 지내던 거의 대부분의 이들과 차마 연락하지 못하고 지내는 건 이 때문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으레 그런 거라고 자조하다가 이 남자를 보았다. 그의 행동과 결론은 현실의 나로선 엄두를 낼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놓인 처지는 이랬다. 그러니까 가쁜 호흡과 삭아가는 심장에다 아내와 사별한 뒤 극심한 영양 불균형으로 몸이 비대해지기도 했고 문학인의 사망 기사에 촉각을 곤두세움으로써 얻어지는 직업병의 일종이겠으나 삶보다는 죽음에 더 관심 있는 남자, 지금처럼 사람의 육체와 정신에 스펙을 들이대는 세속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전후좌우 잘나가는 남자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박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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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탕달 '적과 흑'

    문제적 인간의 탄생 천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던 크고 작은 활자들 속에서 ‘스땅달’과 ‘적과 흑’이라는 글자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던 습관이 있던 때였다. 그 자세가 힘들어지면 옆으로 누워 읽었다. 반대쪽 페이지를 읽으려면 몸을 반대로 돌렸다. 그러다 잠깐 고개를 들면 작은 창 너머로 저 멀리 빛나고 있는 불빛들이 보였다. 1980년 초였다. 밝다고 해봐야 30와트짜리 백열등이었을 것이다. 밤이 깊어도 몇 점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을 생각하다 읽던 책은 그대로 엎어두었다. 대신 나는 천장을 향해 몸을 바로 했다. 《적과 흑》이 소개된 그 팸플릿은 하필이면 내 코 바로 위에 붙어 있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적과 흑》이라는 제목이 싫었다. 직감적으로 적과 흑으로 대변될 그 무언가에 대한 반감이 작동했을는지도 모른다. 대신 제목 아래 달린 줄거리 요약 속에 등장하는 줄리앙(쥘리앵이 아닌)이란 이름은 감미로웠다. 오, 나의 줄리앙. 줄거리 요약에서는 글의 결말을 감춘 채 여운을 남겨두었다. ‘그 사실을 안 줄리앙이 교회로 달려가는데……’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그 방 도처에 감미로운 글자들이 있었다. ‘사랑’이란 단어도 쉽게 눈에 띄었다. 뺨 왼쪽 위엔 ‘닥터 지바고’가 발치 아래쯤엔 ‘천일야화’가 있었다. 열네 살이었다. 팸플릿에 밀가루풀을 발라 도배를 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것인지, 아버지의 속에도 쥘리앵과 같은 열정과 자존심이 살아 펄떡이던 시절이 있었으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여러 출판사를 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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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아무도 이별을 사랑하지 않지만…그랬네. 한트케의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속의 주인공처럼 곧 서른이 되는 즈음에 나는 떠나왔네. 나에게는 이런 편지를 보내왔던 아내는 없었지만.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서울을 떠나오던 1992년 늦가을, 나는 내 방에 있던 가구와 책과 편지와 사진들을 정리했다. 어수선한 방 안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짐 싸는 것을 멈추었다. 책을 읽다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면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보였다. 키가 큰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 나를 방문하던 사람들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들 모두와 이제 이별을 깊숙이 하며 나는 이 책을 읽었지. 결국 우리는 생애의 어떤 순간과 동일시할 수 있는 책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까? 이 책이 그랬다.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처음 왔던 나에게는 이 책이 있었지. 받았던 짧은 편지는 없었으나 해야 할 긴 이별은 있었기에. 이 책 속의 주인공과 함께 마음속에서 로드무비를 찍다보면 한 시절과 이별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기에. 책 속의 편지는 짧지만 긴 이별 여행으로 주인공을 이끌었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뿐 아니라 서른이 될 때까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시간들을 한꺼번에 환기시킨 저 짧은 문장. 그리고 그 시절과 이별을 하지 않으면 더이상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으리라는 불안. 나 역시 그랬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스스로를 바꿀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지. 스스로를 바꿀 힘이 내 안에 없다면 떠나는 방식이라는 외부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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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오노레 드 발자크 '나귀 가죽'

    욕망, 인간 이해의 첫걸음 어떤 작가들은 한번 만나면 혈육보다도 더 깊고 오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나의 경우, 보들레르와 플로베르, 발자크 등이 그들이다. 발자크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소설 쓰기에 매달려 괴물처럼 살다 간 작가인 만큼, 독자로서 그의 전작(全作)을 읽어내기란 한평생으로 모자란다. 근래에 한국어로 초역된 《루이 랑베르》와 《나귀 가죽》은 인류사의 전무후무한 소설 프로젝트인 ‘인간극’의 서막을 차지한 의미심장한 작품들이다.여기 한 소년이 있다. 루이 랑베르라는 이 소년은 다섯 살 때 우연히 구약성경을 접한 뒤 오직 책만을 끼고 살아온 유별난 존재. 발자크의 대표작 《외제니 그랑데》나 《고리오 영감》처럼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표제(表題)로 삼은 이 소설이 한층 흥미로운 것은 이 예사롭지 않은 소년의 신비로운 예지력과 광기가 발자크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곧 《루이 랑베르》(1832)는 발자크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셈. 로댕이 조각으로 재현한 괴팍하고 완고해 보이는 발자크의 모습을 깜박 잊어버릴 정도로 작가 자신이 그린 소년의 초상은 매우 신비롭고 비장하다. 지금까지 한국 독자들에게 발자크와 그의 소설에 대한 인상은 실체보다 훨씬 편협하고 고리타분한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자크 소설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는 《루이 랑베르》와 《나귀 가죽》의 등장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발자크는 백 편에 이르는 총체소설 ‘인간극’을 집필하면서, 마치 과학자처럼 획기적인 작법을 창안해 적용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인물재등장 수법’이다. 루이 랑베르가 18세에 방돔기숙학교를 나와 만난 여인 폴린은 《나귀 가죽》의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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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외젠 이오네스코 '외로운 남자'

    부조리한 삶에 갇힌 자의 고독글만 써서 먹고 사는 전업작가 생활 25년에 딱 한 번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 길지도 않은 6개월에 불과한 그 직장생활 덕분에 나는 어쩌면 거의 모험에 가까운 ‘위험하고 고독한’ 전업작가의 길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고 3년쯤 지난, 결혼을 앞둔 때였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를 만들고 있었는데 불현듯 ‘가장’이라는 단어가 뒤통수를 가격했다. 느닷없는 습격에 나는 계란 프라이가 바짝 타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자취집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혼자 사는 동안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체증과도 같은 무거운 압박감에 1주일을 내리 시달렸다. 취직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다.첫 직장이자 ‘내 생애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직장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두어 달쯤 지났을 때 결혼을 했고, 미어터지는 출근버스를 피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서는 데도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더 지났을 때, 뭔지 모르게 이상했다. 가장이라는 압박감과는 또 다른 종류의 체증이 가슴 한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청탁받은 원고의 마감 기한은 맹렬한 속도로 다가왔고, 속절없이 지나갔다. 몇 번 기한을 연장했지만 끝내 원고를 넘기지 못한 채 펑크를 내는 일이 되풀이되었고, 나는 6개월 동안 단 한 줄의 ‘내 글’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사직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서른두 살 때의 일이다.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다시 전업작가로 돌아온 봄날 오후, 서가로 무심히 뻗친 내 손에 얇은 책 한 권이 잡혔다. 한 해 전, 출판사 편집장으로 있던 친구가 신간을 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