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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10) 오에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용서하지않고,하지만 더 없이 깊은 자비로…독자 입장에서 문학은 유력한 인생의 동무가 될 수 있다. 한 작가를 집중해서 깊이 읽을 때 때로 가능해 보인다. 독서에도 어떤 경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테면 문학에서 인생의 스승을 발견하는 일보다 동무를 찾는 일이 훨씬 어렵다. 소설에서 제 삶을 읽어내는 일도 썩 훌륭하다. 그러나 소설에서 타인의 삶을 온전히 겪어내는 독자라면 더 훌륭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작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문학이 없으면 호흡이 불가능한 사람처럼 보인다.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세상을 읽어낸다. 문학으로 삶의 형식을 이룬 사람이며, 그에게서 삶의 형식과 문학적 형식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작품보다 작가를 얘기해야만 훨씬 명확해지는 문학세계를 지닌 작가다. 이런 세계는 작가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오에가 등단 50년을 기념해 일흔둘에 내놓은 작품이다. 스스로 만년 3부작이라 일컬은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에 잇대어 태어났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문학 인생 50년에 대한 자기 정리이자, 큰 기획인 만년작의 연장이기도 하다. 오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만년의 문학에 대해 독특하고 원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독자는 흔히 작가의 만년 작업에서 일정한 패턴을 기대한다. 일테면 원숙함과 조화로움을 지향한다. 노년의 작가들 역시 그 방향으로 작품을 창작하고자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모성, 혹은 고향으로 회귀한다.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사회와 화해한다. 그러나 오에는 만년은 한 인간이 개인으로서 끌어안은 모순과 파국을 초월하기도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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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在美작가 김은국 ‘순교자’

    동물적 본성만 남은 인간···신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할까 '순교자'는 유령처럼 떠도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런 것 있지요, 명성만 있고 실체는 찾을 수 없어서 소설이 가진 진정한 의미보다 필요 이상 확대되거나, 혹은 절하되어 소문으로만 떠도는 책 말입니다. 제겐 '순교자'가 그러했는데요, 이번이 그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책을 펴든 내내 독서하면서 잊고 있던 설렘 같은 것도 다시 찾을 수 있었고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흥미를 느낀 점은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재미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그러니까 1964년에 출판되어 미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책도 이력이란 걸 갖게 되면 독자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책에 운명 지어진 수식어보다도 그 본문의 텍스트만으로 생명력이 없다면 작품은 존재하기 힘든 법입니다. 자, 이제 왜 '순교자'가 순교한 것인지, 천천히 책장을 넘겨봅니다. 저는 이 책을 여행하면서 읽었습니다. 최근에 몽골로 열흘간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책이라곤 '순교자' 한 권만 들고 갔습니다. 다짐은 열흘 동안 꼼꼼하게 읽기, 두 번도 좋고, 가능하면 세 번 읽어도 좋겠다, 했었지요. 그러나 다짐과는 달리 비행기의 이륙과 동시에 시작한 독서는 여행 내내 더디기만 했습니다. 내용이 재미없어서가 아닙니다. 문장이 어려워서도 아니었습니다. 읽었던 페이지를 이상하게도 반복해서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이 쏟아내는 대사와 화자의 서술문 안에 깃든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곱씹어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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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프란츠 카프카 ‘소송’

    자살처럼,우리에게 다가오는··· 카프카를 생각하면 늘 오후 두 시가 떠오른다. '산업재해보험공단'에서 십사 년 동안 근무했던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을 했다지. 한동안 나는 오후 두 시에 출근을 했던 적이 있다. 오후 두 시 사무실로 향하면서 나는 종종 카프카를 떠올리곤 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는지 모르겠다. 퇴근길의 카프카가 방금 나를 지나쳐간 것 같은 착각에 휩싸여. 오후 두 시는 틀림없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어스름과 차가운 안개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카프카의 「소송」을 기다리던 시간도 오후 두 시쯤이었다. 나는 「소송」을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내가 꼭 「소송」을 읽어야만 한다는 그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알려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깐 엉뚱한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거의 날마다 먹는 소와 돼지와 닭들이 어떻게 키워지고 도살되는지 그 과정을 취재한 방송을 나는 얼마전에 본 적이 있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번식되고 살찌워지는 가축들의 공포에 사로잡힌 눈. 그 눈에 비친 인간은 절대의 권위를 부여받은 심판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축은 자신들이 왜 도살되는지 모르는 채, 심지어 곧 도살되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도살장에 끌려가고 처형당한다. 내게 그 과정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다 못해 그릇된 심판의 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송」의 K가 겪는 소송과 심판의 과정이 가축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그 과정과 어쩐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에 대해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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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 '동물농장'

    문학과 선동···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당신이 평생 한 권의 책만을 읽어야겠다면 '이솝우화'를 권한다. 이제껏 수천년 동안 살아남은 명작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어라. 앞으로 수천년 동안 살아남을 이야기다. 그 후에는 무엇을 읽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우화가 하는 일이 바로 그거니까. 상징마저 진부해진 요즘 감각으로 볼 때, 칠십 가까이 먹은 이 고령의 알레고리 소설은 어쩐지 표적이 빤하게 드러난 느낌이다. 게다가 공산주의 혁명 전후의 러시아 상황을 거의 일대일로 우의하고 있지 않은가. 문학예술과 선동구호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듯한, 거칠고 도식적인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이 소설이 풍자하는 바가 단지 러시아의 근현대사에 국한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 자체라는 걸 알게 된다. 아니,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사회가 악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은 매번 이토록 도식적이라고, 악당들이 우리를 착취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놀라우리만치 진부하며 창의성이 없다고.그런데도 왜 우리는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걸까? 바로 그게 문제다. 제아무리 얄팍하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속임수일지라도 십중팔구 먹혀들어 간다. 왜냐하면 반짇고리를 차고 다니며 우리의 성난 입술을 꿰매는 범인이 바로 우리 중에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이게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양'인 것이다. 지배계층은 결코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피지배계급 중에서도 '양'이 꼭 필요하다. 저희들을 경호하는 한 줌의 '개'들보다 훨씬 필요하다. 의심과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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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헤르타 뮐러 '숨그네'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1945년 겨울,누군가와 '사랑'을 나눈 죄로 러시아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추방된 남자가 있습니다. 독일계 루마니아인이고 아직 앳된 청년이에요. 앞으로 우리에게 '숨그네'라 불리는 다소 낯선 조합의 단어에 엮인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청년의 얼굴을 잘 기억해두도록 하세요. 그가 떠날 때 본 세상과 돌아온 뒤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 돼 있을 테니까요. 이 소설의 첫 대목에는 이송 열차에 관한 일화가 나옵니다. 물론 모든 이야기는 저 루마니아 청년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요. 청년 말에 따르면 그날 밤 그는 군인들의 총구를 뒤로 한 채 바지를 내리고 사람들과 나란히 똥오줌을 눴다고 해요. 어두운 설원 위론 지린내 나는 김이 무럭 올라오고…… 그 와중에도 '자신들을 버려두고 열차가 떠날까봐 미칠 듯이 두려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수치와 공포를 느꼈다고 하고요. 당시의 풍경은 '그 밤의 세계가 얼마나 인정머리 없고 고요하던지'라는 문장으로 정리돼 있네요. 그런데 그 사이 누군가가 외칩니다. -이것들 보라고,살고들 싶지.황량한 겨울밤,누군가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웁니다. 열흘 넘게 갇혀 있던 기차 안에서도 노래하고,농담하고,이성의 몸을 더듬기까지 했던 사람들이 말이에요. 더욱이 저 얘기를 한 사람은 러시아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저들과 같이 용변을 보던 또 한 명의 추방자였지요. 그런데 저 사내,그렇게 말해놓고 자기도 웁니다. 대체 말(言)이 뭐기에,사람 맘을 이리도 송두리째 흔들고 그것도 모자라 무너지게 하는 걸까요. 어쨌든 작가는 저 사내로 하여금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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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알베르 카뮈 [이인] (이방인)

    완성하지 못할 퍼즐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그래,난 공부 못한다. 여집합,교집합,공집합.아름다운 미인들을 집합으로 표시하세요. 아름다운 미인의 집합이라.집합으로 묶을 기준을 찾을 수가 없어요. 제 눈에는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데요. 그래? 그렇다면 얘야,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저는 미대에 가고 싶어요. 친구 세정인 소방관이 되고 싶어 하고요. 얘야,미대에 가려고 해도 수학은 해야 한단다. 소방공무원이 되려고 해도 영어,한국사,국어 하다못해 물리학개론 · 화학개론,건축학이나 형사소송법 중 두 과목 이상은 시험을 쳐야 한단다. 에이,설마요. 불 끄고 사람 구하는데,그런 게 왜 필요해요?얘야,미대는 왜 가려고 하니?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고전주의,낭만주의,초현실주의를 뛰어넘는 화법을 찾고 싶어요. 후후,얘야,아니란다. 미대에 가려면 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단다. 사람들에게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는 디자인을 공부하든,아니면 소더비 경매에 나갈 만큼 값이 뛰어난 그림을 그리든. 고흐나 고갱도 수학을 잘했나요? 글쎄.사람들에게 왜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죠? 얘야,그렇게 해야만 너도 네 자식을 과외시킬 수 있지 않겠니?사춘기 시절,세상은 무거웠고 고민은 많았다. 그 무렵 나를 구원해준 책 중 하나가 바로 「이인」이었다. 살인을 왜 저질렀느냐는 물음에 "태양 때문"이라는 유명한 대답을 한 이인(異人)이자 이방인인 뫼르소. 내가 이 작품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해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겪었을 테지만 학창시절의 대부분은 정답 찾기로 보낸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님의 침묵]에서 '님'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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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멀리, 반짝이는, 다다를 수 없는···나 어릴 적 읍내에서 야산으로 올라가는 그 동네엔 담장 높은 집이 몇 채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장 때문에 안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이층집들.그 주변엔 어른 키 높이만 하거나 그보다 낮은 담을 두른 그만그만한 집들이 있었고,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야산 산비탈엔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집들이 나란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바로 앞마당인 격이어서,오가는 사람의 눈앞에 좁다란 마루 구석에 놓인 요강이며 누추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집들.그 산비탈에서 내려다보면 그만그만한 집들 사이에 자리한 담장 높은 이층집은 성채처럼 오만했다. 길에 나서면 너나없이 한 마을 사람인데,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각자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느낌.뉴욕 롱아일랜드, 아주 작은 만(灣)을 사이에 두고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가 마주 보고 있다. 웨스트에그에 있는 개츠비의 궁전 같은 저택에선 파티가 자주 열린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넘쳐나는 술과 음식,화려한 옷을 입고 북적이는 사람들.사람들이 개츠비에 대해 아는 건 그가 부자라는 것,누구나 와도 되는 파티를 자주 연다는 것 정도다.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둥,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둥,1차 대전 때 독일군 스파이였다는 둥.사람들은 파티장에 모여 집주인의 정체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쑥덕거린다. 농사꾼의 아들 제임스 개츠는 제이 개츠비라는 이름을 쓰던 장교 시절 상류층 여성 데이지를 만난다. 가난하고 야심만만한 이가 선망하는 상류층의 세계,아름다운 여성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그 세계로 가는 통로이자 그것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상징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소유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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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거기엔 꽃이 있을지도… 어쩌면 이 고백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요. 그러나 하지 않고서는,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에 관해 말하기 어렵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나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소수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의 순례자였던 학창시절부터,그의 책들을 읽어왔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운명이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지금까지도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쓴 기간은 말년의 십 년 남짓한 시간뿐이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때가 1916년,오십 세였으니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십 세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이전부터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자이자 하이쿠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00년,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해 일찍부터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가 서양문물을 접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2년 동안의,다소 충격적이며 고독했던 체류 경험을 통해 그는 일본,동양의 '문학예술론'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일본문학에 대해 흔히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소설(私小說)'입니다. 주로 자신의 체험,경험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은 소설을 뜻합니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쓴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이 '사적인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학을 '인식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생각한 그의 문학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