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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조지 오웰 <1984년> (上)

    전체주의 권력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형상화 이 세상에는 실존하지 않는 곳이 있다.천국과 지옥이다.천국은 너무 완벽해서 존재하지 않고,지옥은 너무 끔찍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따금 천국이 시공의 틈새로 얼핏 나부끼다 사라지는 찰나가 있고,말 그대로 생지옥이 세상을 찾아올 때도 있다.다만 천국은 개인의 현실에나 가끔씩 출현하지만,지옥은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크메르루즈처럼 사회집단적으로도 종종 현실 세상을 찾아온다는 점에서 인간의 어리석은 세상살이가 자아내는 씁쓰레함이 못내 아린 맛을 띤다.천국과 지옥에 대한 서사시는 유토피아(Utopia) 작품과 디스토피아(Dystopia) 작품으로 구체적인 모양을 입고 형상화된다.토마스 모어가 그의 작품을 위해 조어(造語)한 '유토피아'는 책 제목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지만,그 반대말인 역 이상향(逆 理想鄕) '디스토피아'는 존 스튜어트 밀이 그리스어 디스(dys; 나쁜)와 토포스(topos; 장소)를 결합한 단어를 의회 연설에서 사용하면서 공식어로 등장하였다.동경의 이상향(理想鄕) 유토피아가 사람들의 꿈을 자양분으로 줄기를 뻗어나간다면,그에 대립하는 절망향(絶望鄕) 디스토피아는 불안과 근심을 집어삼키며 어두운 형체를 갖춘다.상상의 불길함이 구불구불 펼쳐나가는 디스토피아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학과 영화 작품을 그 음험한 자식으로 낳았는데,누구나 첫 손에 꼽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있다.1945년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예리하게 희화화한 동물우화 <동물농장>을 집필하여 정치소설가로서 부동의 입지를 굳힌 조지 오웰-사실 조지 오웰은 필명이고 본명은 에릭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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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下)

    21세기 유토피아는 어떻게 그려질까?⊙ 원문 읽기 나는 남의 돈을 좀 훔쳤다고 해서 목숨을 뺏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어떤 재산도 생명에 버금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만일 그 형벌이 돈을 훔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법을 위배하고 정의를 침해한 것에 대한 것이라고 하면,"극단적 법은 극단적 불의"라는 법언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어떤 사소한 일로 법을 어긴다고 하여 죽음으로 처벌한다는 만리우스의 법을 용인해서는 안 되고,또한 모든 범죄는 동일하다고 보아 절도와 살인은 형평상 완벽하게 상이한데도 불구하고 양자 간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하는 스토아적인 계율에 근거한 법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석토머스 모어는 궁지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되는 사람들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엄벌주의로 일관하는 영국의 가혹한 법제는 범죄 형평성과 처형의 효과 측면에서 부당하다는 것이다.모어 스스로 법학을 공부하면서,그리고 법관 생활을 하면서 피부로 생생하게 느꼈을 사법제도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지적한다.범죄의 경중에 따른 책임의 비례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절도에 대한 처벌도 사형이고 살인에 대한 처벌도 사형이라면 절도에 그칠 자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또한 정의롭지 못한 사회현실은 나 몰라라 도외시하면서 그러한 현실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범죄는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하게 처단하는 비정한 제도에 대해서 분개한다.그리고 '극 중 라파엘'은 사법제도 비판에 연이어 사유재산의 폐지 및 공동 소유제도를 거침없이 주장한다.이에 대해 소심한 '극 중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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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上)

    사회 비판 통해 구체적으로 설계된 이상향 제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 흔히들 이 문구가 근대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다면 인류의 전 역사를 만든 문구는 무엇일까? 정리해 보건대 '나는 불만족스럽다. 나는 욕망한다.' 이 문장으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인간은 꿈을 호흡하며 살아간다.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의 불완전성을 깨닫고 그 불만 속에서 이상향을 욕망한다는 의미이다.기존 현실에서 만족을 찾지 못할 경우 우리의 상상력은 욕망과 희망이 날줄과 씨줄로 팽팽히 쳐진 세계를 창조해 낸다.신화,종교적 약속,환상 동화,가공 여행담 등은 현실에서의 결핍이 표출된 결과이다.현실의 불만은 그 모든 꿈의 모태가 된다.그런데 이상적 국가라는 에레원(Erehwon)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눈치 빠른 이라면 Erehwon이라는 이름이 Nowhere를 뒤집은 단어임을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이상향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시금털털한 깨달음에서 나온 재치 있는 작명이다.우리는 어떠한 결핍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이상향에 가 닿고자 꿈꾸지만,완벽한 이상향은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다만 우리는 그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며 그 끊임 없는 경주 속에서 우리들의 역사가 태어난다.완전성에 대한 추구는 우리를 여기 이곳까지 치달리게 한 힘이다.오늘 소개하는 고전은 토머스 모어가 그린 이상향인 '유토피아'이다.출간 이후 500년 가까이 흐르는 세월 동안 가공의 나라 '유토피아'는 무수한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그 뒤를 잇는 모든 유토피아 저술의 모태가 되었다.유토피아(Utopia)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즉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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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숫타니파타(Suttanipata, 경전을 모은 것)

    평안한 삶으로 인도하는 주옥같은 가르침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저마다 위로가 되는 것들이 따로 있겠지만 경전의 좋은 구절도 그 중의 하나이다.수타니파타는 불교의 수많은 경전들 중에서 가장 최초의 경전에 속하며 팔리어(남방불교 경전에 쓰이는 종교언어)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성전(聖典)이다.수타니파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경이다.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읽다보면 주옥 같은 구절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그리고 부처님의 진면목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이를테면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있는 스승들을 찾아 헤매다,결국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이,대단히 과격한 태도로 부처님께 질문한다."제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만일 당신이 제게 대답을 못한다면,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당신의 심장을 찢은 뒤,두 다리를 붙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지겠소." 부처님께서는 뭐라 답하셨을까?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수타니파타의 수많은 명문들 중에서 우리의 팍팍한 삶에 윤기를 주고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평안한 삶으로 인도해줄 '자비경'과 '행복경'을 소개한다.1. 자비경(Metta Sutta)⊙ 원문 읽기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유능하고 정직하고,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만족할 줄 알고,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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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르네 데카르트 '성찰'

    개인 중심 세계관 선언…중세 神중심 세계관에 중지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가 '방법서설'과 '철학의 원리'에서 언급한 유명한 이 구절은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도래를 포고하는 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사유의 주체로서의 '나'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신 중심적인 중세적 세계관에서 개인 중심적인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며,'사유'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중세적 신앙성과 결별하는 근대적 합리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하지만 '성찰'의 표준 판본인 1642년 라틴어 재판본의 원제가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여기에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이 증명됨'이며 '제3성찰'에서 신의 존재를 논하고 있는 점,그리고 신의 존재가 물체는 현존하며 사유와 상이하다는 논증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적인 신의 그림자가 아직까지도 데카르트의 머리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신념 때문에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던 갈릴레오의 사망 연도,'성찰'의 재판본 출판 연도,그리고 근대 자연과학을 완성한 뉴튼의 출생 연도가 모두 1642년이라는 것 역시 중세와 근대에 한 쪽 발을 각각 걸치고 있으면서 중세와 근대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노정하고 있는 데카르트의 위치를 말해주는 듯하다.데카르트의 탁월함이 빛나는 곳,그리고 인류가 데카르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런 중세와 근대의 긴장에 대처한 그의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중세적 권위를 지키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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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미래'

    자연은 생명과 이익을 동시에 낳는 어머니다 지구상에 괴물이 나타났다.이 괴물은 다른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무참하게 파괴하고 생명을 도륙한다.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괴물의 광포한 탐욕성은 급기야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를 초래해 대규모 멸종이 일어나고 생태계가 붕괴된다.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이 괴물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 괴물마저도 이제 종말의 어두운 운명을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괴물의 이름은 바로 우리,인간이다.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틀림없이 끔찍한 괴물로 비쳐질 우리 인간이 자업자득의 결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위험한 시대를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병목(bottleneck)의 세기'라고 이름 붙였다.'병목의 세기'는 인류가 우리 자신과 모든 지구 생명을 절멸시킬 수 있는 '병목'으로 몰아넣은 치명적 시대이다.'인간 본성에 대하여''개미''통섭' 등 유명한 저술에서 깊이 있는 혜안을 보여준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인류의 그간 행보를 비판하며 우리가 감당하여야 하는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어쩌면 우리는 윌슨의 말대로 22세기의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장을 남겨야 할지도 모른다."여기저기 사용하지 않고 남겨 놓은 얼마 안되는 야생 환경과 함께,하와이의 합성 정글, 그리고 한때는 삼림으로 울창했던 아마존 잡목 지대를 우리는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남깁니다.당신들이 할 일은 유전공학으로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하고 이들을 독립적인 인공 생태계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임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부디 우리의 사과와 함께, 과거에 존재했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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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물유전학에 물음을 던진 물리학자의 모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노동 분업의 원리는 학문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한 분야의 전문가는 그의 학문 영역에만 집중하고,다른 전문가의 노작(勞作)은 이견 없이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일반 원칙이다.심지어 프랜시스 베이컨은 체계적인 분업을 통해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까지 했다.베이컨의 주장을 무시하고 싶더라도,근대 이후로 심화된 학문의 복잡성과 전문성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형인 전인적 인간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수백년 후인 지금에 태어났더라도 다재다능한 천재였을지 살짝 의문이 든다.현대에는 협소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하기도 힘겨운 실정이다.그런데 조지프 테인터가 '문명의 붕괴'에서 정리한 것처럼,지금까지 등장했던 무수한 문명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 '복잡성과 한계수익 체감의 원리'라면,현대 사회의 복잡성은 뭔가 답답한 전망을 가지게끔 한다.그러나 이 와중에 다음과 같은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다."과학자는 한 분야에 대해 완벽하고 철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따라서 자신이 정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그것은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여겨진다.나는 이 책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귀한 지위(노블레스)를 기꺼이 포기하고 그에 따른 의무(오블리주)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나의 변론은 이러하다.우리는 통일적이고 포괄적인 앎을 향한 강한 열망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다.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의 명칭,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말 자체가 고대로부터 수많은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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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사회과학의 명저를 찾아서 ⑪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 사회'

    갈등하는 현대인의 삶…희망의 처방전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하다.전근대적인 신분적 속박도 없고,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모를 상실감과 몰락의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왜 그럴까?현대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찰스 테일러(캐나다 맥길 대학 교수)는 '불안한 현대 사회(The Malaise of Modernity)'라는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는 저서에서 근대성의 병폐에서 기인하는 현대사회의 불안 원인을 세 가지로 진단하고,이런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처음으로 제시되는 불안 원인은 개인주의의 만연과 그에 의한 삶의 의미 상실이다.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불안해하고 방황하게 마련이다.전근대적인 전통적 질서들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었지만,개개인들의 개별적 삶을 초월한 의미를 세계와 사회적 행위에 부여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현대의 개인주의는 모든 관심을 자기에게만 집중하고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진다.그 결과 개인을 초월한 삶의 의미는 실종되고 개인은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두 번째는 삶의 목표들이 도구적 이성의 지배에 의해 소멸하는 사태다.도구적 이성이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을 때 의지하게 되는 일종의 합리성이다.현대는 도구적 이성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를 확대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까지도 지배하게 되리라는 불안감이 폭넓게 깔려 있다.이런 불안감은 인간 역시도 효용,즉 비용-소득 분석의 맥락에 의해 재단되리라는 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