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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100) 자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 <끝>

    인간의 불행은 나무와 숲을 파괴하면서 시작됐다 살아가면서 가장 솔직한 경외심을 품게 되는 순간은 바람에 춤추는 나무들을 보고 있을 때이다. 그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려면,아니 무엇인가가 넘실넘실하게 가득한 그 충만한 느낌의 언저리라도 언어로 접근해 보려면 '경외심'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느낌은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고용한 응시로 만나게 되는 위무이기도 하고,세상이 나무와 함께 춤추면서 나에게 다가올 때 그 다가오는 걸음 한 발자국마다 커지는 서늘한 엄숙함이기도 하다. 나뭇가지들은 그 손아귀로 하늘을 움켜쥐었다가 풀어놓으면서 거대한 세상을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혹여,경외심 외에 다른 단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들이 그 군무 속에서 일렁이는 빛의 향연을 펼치면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관통하고 지나간다. 바라보는 이를 꿰뚫는 그 순간을 드러내기 위한 적절한 말이 생명의 찬란함인지 기쁨인지는 확실치 않다. 비단 나처럼 몇 시간이고 매혹되어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만 그러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모든 이들이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만은 다채로운 감동의 발원과 마주한다. 릴케도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을 이렇게 남겼다. "마치 나무의 내면으로부터,거의 감지할 수 없는 떨림들이 그의 가슴속을 지나간 것 같다. 그는 한 번도 이보다 더 부드러운 움직임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이를 테면 하나의 영혼처럼 다루어졌으며,물리적인 명료함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사소한 움직임마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느낌에 덧붙여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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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토르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부자들의 과시적 욕망을 자유로운 언어로 질타1899년 출간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정치한 경제 분석서라기보다는 부자들에 대한 조롱과 야유에 가까운 이단적 일갈이었다. 이 책에서 그가 거머쥔 유일한 이론적 수단은 고전에 대한 학자적 겸양도 죽어 버린 책들의 고답적 축적도 아닌,천박하고 세속적인 일상적 사례와 언어들이었다. 그것은 베블런의 학문적 소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오히려 그러한 학문적 소양들이 지니는 유한계급적 낭비성을 경멸했던 그가 의도적으로 생활세계 내부의 직접적 사례들을 통해 부(富)의 경제사를 재구성해 보려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사회 경제학의 이론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언어들은 부자들의 사치와 낭비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마음껏 직격탄을 날린다. 결코 마르크스적이지 않은 그 무기의 가장 중요한 제원은 바로 '과시'다. 유한계급(有閑階級·leisure class)의 구성원들은 그 이름 그대로 한가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의무적으로 한가해야 한다. 생산 활동과 육체적 노동 행위를 천박하고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야만 하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은 여가와 사치와 낭비와 소비다. 물론 그들에게 한가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책무가 강요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무는 그들이 속한 계급 집단 내부의 과시적 아비투스(habitus)에 따른 다분히 자발적인 의지와 실천의 결과다. 이러한 실천 행위를 통해 그들은 하위 계급과 자신들이 속한 집단을 구별짓고, 그들의 집단 내부에서도 여러 국면들을 통해 좀 더 과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욕망한다. 이 같은 과시적 욕망은 오늘날의 부자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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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육도삼략(六韜三略)

    강태공이 전하는 천하를 낚는 법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낚시꾼을 꼽아보자. 동양 고전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게 영예의 1위가 돌아갈 것이다. 요즘 인터넷의 바다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 분의 이름은 공자,맹자도 아니요,노자나 장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석가모니는 더더욱 아니다. 그 이름마저도 친숙하기 그지없는 이 유명인은 3000년 동안 낚싯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지내는 전설의 낚시꾼 강태공이다. 노련한 낚시꾼이었던 강태공은 기원전 12세기 그의 나이 70이 훨씬 넘었을 때 주나라무왕을 위수 북쪽에서 가볍게 낚아 올리고 중국 문화의 기틀을 잡는다. 본래 강태공의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인데,문왕의 아버지 태공(太公)이 오랫동안 기다리며 바라던(望)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태공망(太公望) 또는 강태공(姜太公)이라는 유명한 별칭이 생겨났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문왕이,"나의 돌아가신 아버지 태공께서 '성인이 주나라로 올 것이다. 주나라는 그의 덕택으로 일어나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그대야말로 그 사람이다. 나의 아버지 태공이 당신을 기다린 지 오래 되었다."라고 강태공에게 말했다고 한다.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 문화가 중국의 표본으로 자리 잡게 한 강태공의 가르침을 담은 병서로는 <육도삼략>이 전해지는데 <육도삼략>은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으로 내용이 구분된다. 육도(六韜)는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태공망 여상(呂尙)에게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통솔하는 방법을 질문하면 태공망이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삼략(三略)은 '군참'이라는 미상의 병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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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손자병법]下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

    나라의 역량을 총 결집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 개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손자병법>은 적과 나의 전쟁수행 조건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서 '승리 가능성'을 진단한다. 전쟁을 시작할 것인지를, 말 것인지를 가늠할 때에도 철저한 '계산'을 앞세웠던 손자는 전쟁의 실제 전략 수립에 있어서도 역시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손자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전쟁터에서 발휘하는 용맹으로 쟁취하는 무훈이 아니었다. 전쟁은 전장에 나가기 이전에 준비성 여하에 따라 이미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국가사업이었고,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한 계획 아래 빈틈없는 전략이 시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승리를 위해서는 고도의 능동적인 준비 자세와 함께 치밀하고 다양한 계획이 요구되었다. ⊙ 원문읽기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조정에서 전략을 수립하면서 승리를 예측하는 자는 그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전략을 수립하면서 승리를 예측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계획이 치밀하거나 충분하지 못하다. 계획이 다양하면 이기고,계획이 다양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하물며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그 결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측면을 살펴보면 어느 편이 이기고 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 해석전쟁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조정에서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다. 운명의 여신은 전쟁터에서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주사위는 운명의 여신이 전운이 감돌던 각국의 조정을 돌아보던 때 벌써 던져졌다. 전장에 나가서 하는 일은 각국의 전쟁 설계도가 얼마나 훌륭한지 혹은 조잡한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는 것뿐이다. 전쟁은 우연과 혈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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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손자병법>上 "최고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오나라 왕 합려와 손자가 만났다. 합려는 손자가 보낸 병법 13편을 이미 읽어본 상태였다. 군사전략가로서의 손자를 실제 상황에서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합려는 궁녀도 지휘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손자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합려가 불러 모은 궁녀 180명에게 군율을 설명한다. 왕의 전권 위임을 상징하는 도끼를 설치하고 궁녀들은 두 부대로 편성돼 합려가 총애하는 후궁 둘이 각 부대의 대장을 맡았다. 그리고 큰 북이 울리면서 손자의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궁녀 무리는 어색한 상황에서 마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합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누각 위에서 구경하는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손자의 표정은 아마 무덤덤했을 것이다. 손자는 담담한 어조로 군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명령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않는 것은 장수의 죄이니 그 죄를 물어 양 부대 대장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경실색한 합려는 그 후궁 둘이 죽으면 자신이 밥을 먹어도 맛을 전혀 모르게 된다며 말린다. 하지만 손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합려가 아끼는 후궁 둘의 목을 그 자리에서 베어버린다. 참수된 두 후궁의 머리가 내걸린 가운데 남은 궁녀들은 이제 명령이 울려 퍼질 때마다 북소리에 맞추어 자로 잰 듯이 완벽하게 움직였다. 손자는 궁녀들이 합려를 위해 불구덩이나 물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게 훈련되었다고 보고한다. 망연자실하게 사열 광경을 지켜보던 합려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손자의 얼굴이 이 때도 무표정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기록에 남아 있기로는 손자가 합려는 그저 병서의 말장난만 즐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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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앙리 베르그송<창조적 진화>(L'Evolution Creatrice)

    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운동이며 흐름이고 지속이다 1907년에 출판된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의 <창조적 진화>는 방대한 규모의 우주론과 형이상학을 구축한 대작으로 베르그송 철학의 집대성이라 불린다. 베르그송은 이 책에서 현실과 괴리된 순전한 사변적 기초 위에서 이론을 전개하려 한 것이 아니라,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등 당대의 자연과학적 지식에 충실하면서도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결합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며,내용 자체도 우주론과 형이상학을 담고 있어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독해해내기에 그리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특히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철학 교과에서 필수로 다루어질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시험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는 필독 독서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학생들이 읽는다면 우리 학생들이라고 못 읽을 이유는 없다. 우리 학생들이 이 책에서 얻어야 할 것은 전문가 수준의 이해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베르그송의 참신한,아니 혁명적 시각과 그 시각을 우주에 대한 통찰까지 확대하는 베르그송 사유의 방대한 스케일을 경험하면 족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도 베르그송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 참신하고 혁명적이었는지를 소개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제논의 역설 중에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이 있다. 이 역설은 거북이가 먼저 출발한 상황에서 아킬레스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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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유토피아는 왜 다스토피아로 끝나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에서 미란다가 외친다."아아,얼마나 신기한가! 여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 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 그리고 이 대사는 시간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속을 흐르다가 1932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의 작품 제목으로 다시 탄생한다.헉슬리가 집필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야만인 존은 희망에 가득 차 들뜬 목소리로 이 대사를 읊는다.어머니의 실족사고로 자연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존은 곰팡이 핀 셰익스피어 전집을 벗 삼아 고독과 싸우다 우연히 문명인 관광객 눈에 띄어 문명세계에 발을 디딘다.20년간 어머니에게 말로만 듣던 멋진 신세계가 그의 눈앞에 열리게 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누군가의 꿈이 반드시 다른 이에게도 꿈이 되는 것은 아니다.문명세계에서 존은 다시 한번,'오 멋진 신세계여!'라고 외치나 말을 마친 후 미친 듯이 달려가 구토를 한다.존에게 구토를 유발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원문 읽기83명의 짧은 머리 검은 델타가 냉각 압연 작업을 하고 있었다.네 개의 스핀이 달린 기계 5, 6대가 덜컹덜컹하고 돌아가고,56명의 허리가 굽고 조심성이 많은 감마들이 기계를 운전하고 있었다.주물 공장에서는 열에 대해 습성훈련을 받은 세네갈 종의 엡실론 107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머리가 길쭉하고 골반이 좁고 얼굴이 황토색이며,모두 1m69㎝보다는 20밀리가량 모자라는 키를 가진 33명의 델타 여성들이 나사못을 끊고 있었다.조립실에서는 두 줄의 감마 플러스의 난쟁이들이 발동기를 조립하고 있었다.낮은 작업 책상 두 줄이 서로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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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조지 오웰 <1984년> (下)

    감시받는 현대인, 상상속의 디스토피아만은 아니다? 《1984년》에서 '존재'라는 말의 의미는 극히 기만적이다.당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날조된다.당이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공표하면 비록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실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이러한 숨 막힐 것 같은 현실에 윈스턴은 반발한다.그는 자신의 언어를 토하며 일기를 써내려 가고,막연하기만 하던 그의 불만과 의문을 점차 구체적으로 다듬는다.또한 감시의 눈을 피해 쾌활한 줄리아와 연애하면서 사랑을 금지하는 체제를 비웃고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생각을 나눈다.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당당히 쓴다."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유이다.그것이 용납된다면,그 밖의 다른 모든 것도 이에 뒤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도 잠시,밀월을 즐기던 현장에서 윈스턴은 줄리아와 함께 체포당해 애정성(愛情省)으로 끌려가 고문과 세뇌를 받는다.놀랍게도 세뇌 담당자는 윈스턴이 한때 반체제주의자라고 믿어 마음을 터놓았던 오브리엔이다.애정성이라는 역설적인 명칭의 감옥 안에서 윈스턴과 오브리엔은 실재와 가공,권력과 인간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만 고문을 앞세운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 대립의 한 축이던 윈스턴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만다.⊙ 원문 읽기"자넨 겸손하지도 않고 자기 훈련을 하지도 못해 이 꼴이 되었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복종도 하지 못했어. 정신 이상이 되어 단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소수파가 되려고 했지. 오직 훈련된 사람만이 실재를 볼 수 있는 거라네 윈스턴. 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