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러시아
러시아의 지난달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5년1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잇따른 금융안정화 조치로 진정됐던 루블화 가치도 다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유가와 정치·외교 등 모든 변수가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12월 31일 한국경제신문
☞ 러시아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자칫 1998년처럼 국가 부도라는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1998년 러시아 정부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적이 있다.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빚을 갚을 능력이 안돼 빚 상환을 연기하는 채무지급유예를 뜻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지는 양상이다. 러시아 경제가 왜 이처럼 어려움에 봉착했을까?
경제규모는 뒷걸음질치고 화폐 가치도 급락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11월 GDP(국내총생산)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5% 줄었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009년 10월 이후 5년여 만에 마이너스 성장이다. 이로써 러시아의 지난해 1~11월 성장률은 0.6%에 그쳤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추세라면 러시아의 올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60달러 수준에 머문다면 올해 성장률이 -4.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HSBC은행이 발표한 12월 러시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반 년 만에 처음 하락세로 돌아서 향후 전망도 어둡게 했다. PMI는 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다.
GDP가 쪼그라들었다는 러시아 정부의 발표는 러시아 중앙은행(CBR)의 잇단 대책에 힘입어 잠시 안정세를 보이던 루블화 가치를 또다시 끌어내렸다. 루블화는 이날 장중 달러당 57.5090달러까지 하락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이 ‘루블화 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한 지 1주일도 안 돼 다시 폭락세를 보인 것이다.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 미 달러화에 대해 70%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이유는?
러시아 경제를 위기에 빠트린 요인으로 △유가 폭락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가 꼽힌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에스워 프레사드는 “석유자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과 이에 따른 투자자들의 신뢰 부족이 러시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보리스 슐로스버그 미국 BK자산운용 외환전략담당 전무는 “러시아 운명이 유가에 달려 있다”며 “올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머물면 러시아에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는 현재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2014년 6월(115달러)의 절반 가격이다. 유가가 이처럼 떨어진 이유는 셰일 혁명으로 세계 원유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러시아 경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GDP의 25%, 수출의 67%를 원유가 차지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만약 올해 국제유가가 연평균 60달러 수준으로 하락하면 무역수지는 1470억달러, 30달러로 급락하면 2600억달러 악화될 것으로 추정된다.(러시아 경제의 에너지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유가 하락은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 수입과 외환유동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정부는 수입(재정 수입)의 약 절반을 원유 수출에 의존한다. 국제유가가 올해 6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 재정수지는 1160억달러(GDP 대비 5.5%포인트), 30달러로 하락하면 2050억달러(GDP 대비 9.8%포인트)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수출액이 줄어들면 외국빚 갚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러시아가 갚아야 할 외국빚(대외 채무)은 총 7312억달러에 이른다. 2015년에 갚아야 할 빚만도 1583억달러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이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 비중도 급등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들은 러시아에서 돈을 빼내가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규모는 1180억달러로 추산된다. 2009년 이후 최대다. 올해도 작년과 동일한 유출 증가폭을 나타낼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은 21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러시아 내에서 달러가 귀해지면서 러시아 은행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지배했던 크림 반도를 올초 전격 병합한 데 따른 서방의 제재로 이마저 여의치 않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러시아 국영 은행과 방위산업체, 에너지 업체 등에 대한 금융제재와 자산동결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달러가 없어 난리다. 러시아 기업들이 올해 갚아야 하는 해외 채무 원금과 이자는 1200억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700억달러 정도는 기업 스스로 갚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 정부의 대응
러시아 정부는 위기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고 금융권과 기업들에 달러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비상시에 대비해 정부가 비축하고 있는 외환자금인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20일 현재 3989억달러로 5년 만에 처음 4000억달러 밑으로 줄었다. 2013년 12월 말 5165억달러였으니 1년 만에 1000억달러 이상이 감소한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10.5%에서 17%로 무려 6.5%포인트 올렸다. 달러 자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트러스트 뱅크(Trust Bank)에 300억루블(5억4000만달러)을 긴급 수혈하는 등 은행권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긴급 자금을 수혈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항공사 트란스아에로에 향후 3∼7년간 90억루블(1800억원)의 정부 보증을 제공하는 등 기업 살리기에도 안간힘이다.
이와 함께 오는 2월부터 수출용 밀에 대해 1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독립국가연합(CI) 소속 국가들의 영토 밖으로 수출되는 곡물에 적용된다. 빵이나 우유, 달걀 등 주요 생필품 가격을 동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달러 부족에 따른 물가급등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전망과 교훈
러시아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이르면 1월 중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정크본드) 수준으로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신용등급은 현재 BBB-로 투자등급의 맨 아래 단계다. 모스크바 ING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드리트리 펠로포프는 “지금으로서는 낙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경제 위기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유럽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EU(유럽연합)는 러시아의 3대 교역 파트너로 러시아로 유입되는 자금의 절반 이상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자금이다. 또 신흥국 경제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9년 금융위기 당시처럼 우리나라의 대러 및 대유럽 수출이 각각 57%, 20% 감소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은 2.9%포인트 줄고 성장률은 0.6%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경제위기는 ‘자원부국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원유와 가스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키우는 데 등한시 했다는 얘기다. 네덜란드 경제가 한때 원유 수출로 흥청망청대다 위기를 맞았던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과 유사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러시아의 지난달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5년1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잇따른 금융안정화 조치로 진정됐던 루블화 가치도 다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유가와 정치·외교 등 모든 변수가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12월 31일 한국경제신문
☞ 러시아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자칫 1998년처럼 국가 부도라는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1998년 러시아 정부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적이 있다.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빚을 갚을 능력이 안돼 빚 상환을 연기하는 채무지급유예를 뜻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지는 양상이다. 러시아 경제가 왜 이처럼 어려움에 봉착했을까?
경제규모는 뒷걸음질치고 화폐 가치도 급락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11월 GDP(국내총생산)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5% 줄었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009년 10월 이후 5년여 만에 마이너스 성장이다. 이로써 러시아의 지난해 1~11월 성장률은 0.6%에 그쳤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추세라면 러시아의 올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60달러 수준에 머문다면 올해 성장률이 -4.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HSBC은행이 발표한 12월 러시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반 년 만에 처음 하락세로 돌아서 향후 전망도 어둡게 했다. PMI는 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다.
GDP가 쪼그라들었다는 러시아 정부의 발표는 러시아 중앙은행(CBR)의 잇단 대책에 힘입어 잠시 안정세를 보이던 루블화 가치를 또다시 끌어내렸다. 루블화는 이날 장중 달러당 57.5090달러까지 하락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이 ‘루블화 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한 지 1주일도 안 돼 다시 폭락세를 보인 것이다.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 미 달러화에 대해 70%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이유는?
러시아 경제를 위기에 빠트린 요인으로 △유가 폭락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가 꼽힌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에스워 프레사드는 “석유자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과 이에 따른 투자자들의 신뢰 부족이 러시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보리스 슐로스버그 미국 BK자산운용 외환전략담당 전무는 “러시아 운명이 유가에 달려 있다”며 “올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머물면 러시아에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는 현재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2014년 6월(115달러)의 절반 가격이다. 유가가 이처럼 떨어진 이유는 셰일 혁명으로 세계 원유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러시아 경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GDP의 25%, 수출의 67%를 원유가 차지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만약 올해 국제유가가 연평균 60달러 수준으로 하락하면 무역수지는 1470억달러, 30달러로 급락하면 2600억달러 악화될 것으로 추정된다.(러시아 경제의 에너지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유가 하락은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 수입과 외환유동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정부는 수입(재정 수입)의 약 절반을 원유 수출에 의존한다. 국제유가가 올해 6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 재정수지는 1160억달러(GDP 대비 5.5%포인트), 30달러로 하락하면 2050억달러(GDP 대비 9.8%포인트)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수출액이 줄어들면 외국빚 갚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러시아가 갚아야 할 외국빚(대외 채무)은 총 7312억달러에 이른다. 2015년에 갚아야 할 빚만도 1583억달러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이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 비중도 급등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들은 러시아에서 돈을 빼내가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규모는 1180억달러로 추산된다. 2009년 이후 최대다. 올해도 작년과 동일한 유출 증가폭을 나타낼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은 21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러시아 내에서 달러가 귀해지면서 러시아 은행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지배했던 크림 반도를 올초 전격 병합한 데 따른 서방의 제재로 이마저 여의치 않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러시아 국영 은행과 방위산업체, 에너지 업체 등에 대한 금융제재와 자산동결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달러가 없어 난리다. 러시아 기업들이 올해 갚아야 하는 해외 채무 원금과 이자는 1200억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700억달러 정도는 기업 스스로 갚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 정부의 대응
러시아 정부는 위기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고 금융권과 기업들에 달러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비상시에 대비해 정부가 비축하고 있는 외환자금인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20일 현재 3989억달러로 5년 만에 처음 4000억달러 밑으로 줄었다. 2013년 12월 말 5165억달러였으니 1년 만에 1000억달러 이상이 감소한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10.5%에서 17%로 무려 6.5%포인트 올렸다. 달러 자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트러스트 뱅크(Trust Bank)에 300억루블(5억4000만달러)을 긴급 수혈하는 등 은행권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긴급 자금을 수혈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항공사 트란스아에로에 향후 3∼7년간 90억루블(1800억원)의 정부 보증을 제공하는 등 기업 살리기에도 안간힘이다.
이와 함께 오는 2월부터 수출용 밀에 대해 1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독립국가연합(CI) 소속 국가들의 영토 밖으로 수출되는 곡물에 적용된다. 빵이나 우유, 달걀 등 주요 생필품 가격을 동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달러 부족에 따른 물가급등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전망과 교훈
러시아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이르면 1월 중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정크본드) 수준으로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신용등급은 현재 BBB-로 투자등급의 맨 아래 단계다. 모스크바 ING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드리트리 펠로포프는 “지금으로서는 낙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경제 위기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유럽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EU(유럽연합)는 러시아의 3대 교역 파트너로 러시아로 유입되는 자금의 절반 이상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자금이다. 또 신흥국 경제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9년 금융위기 당시처럼 우리나라의 대러 및 대유럽 수출이 각각 57%, 20% 감소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은 2.9%포인트 줄고 성장률은 0.6%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경제위기는 ‘자원부국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원유와 가스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키우는 데 등한시 했다는 얘기다. 네덜란드 경제가 한때 원유 수출로 흥청망청대다 위기를 맞았던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과 유사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