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비싸다"며 최저임금 인상 요구
기업 인건비 부담, 결국 소비자 전가
최저 시급 18% 뛸 때 김치찌개 25% 올라
'물가상승→임금상승→물가상승' 악순환
“최저임금이 점심값보다 낮아선 안 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면서 내세운 근거다. 간편 결제 서비스 업체 NHN페이코가 분석한 결과, 작년 상반기 강남·여의도 등 수도권 주요 업무 지구 12곳의 직장인 평균 점심값은 1인당 1만1583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 1만320원보다 비싸다. 1시간 일하고 번 돈이 점심값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서글프기는 하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을 올리면 점심값 부담이 줄어들까.임금은 소득이자 비용
[경제야 놀자] '점심값 2만원 시대' 부를 최저임금 인상
임금인상은 근로자로선 소득이 증가하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 요인이다. 임금이 오르면 기업의 생산 원가가 상승한다.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한 생산자는 시장을 떠난다. 결국 공급이 감소해 물가가 오른다. 이렇게 생산 원가가 올라 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임금인상은 원자재 가격 상승, 이자 비용 증가, 세금 증가 등과 함께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의 한 원인이다.

더구나 임금은 하방 경직성에서 물가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자재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내리기도 하지만, 한 번 오른 임금은 웬만해선 내리지 않는다.

반면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해 물가가 오르는 것을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임금인상은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임금이 늘어난 만큼 가계의 소비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막대한 성과급 지급이 산업 전반의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지며 물가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물가상승이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지고, 임금인상이 다시 물가를 밀어 올리는 현상을 ‘임금 인플레이션(wage push inflation)’이라고 한다.임금과 물가의 관계여러 경제학자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임금과 물가 사이에는 ‘장기 균형 관계’가 존재한다. 임금과 물가가 단기적으로는 따로 놀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물가상승은 약 1년의 시차를 두고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 1년 정도 시차가 생기는 것은 임금 협상이 보통 1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 임금상승은 약 1년 반의 시차를 두고 개인 서비스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률이 높을 때 더 많이 발생한다. 물가가 안정돼 있다면 기업이 다른 비용을 줄임으로써 인건비 부담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물가 오름폭이 클 땐 그렇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 최근 경제 상황이 그렇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2%로 2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도 오른 상황에서 인건비마저 증가하면 기업은 그 부담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이 생산성 향상을 동반한다면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 인상 속도는 생산성 향상 속도를 추월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5~2025년 최저임금이 79.7% 올랐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12.4% 상승하는 데 그쳤다.점심값 2만원 시대 온다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도 인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임금 인플레이션으로 실제로는 임금이 상승한 만큼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단적인 예로 최저 시급이 2021년 8720원에서 올해 1만320원으로 5년 만에 18.3% 오르는 동안 서울의 김치찌개 백반 평균 가격은 6904원에서 8654원으로 25.3% 뛰었다.

10여 년 전 노동계에선 ‘최저 시급 1만원’을 주장했다. 그때도 최저임금이 점심값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된 근거 중 하나였다. 몇 년이 지나 최저 시급이 1만원을 돌파했지만, 웬만한 외식 메뉴 역시 줄줄이 오른 탓에 여전히 최저 시급으로는 점심값을 감당하기 힘들다. 최저임금 인상 요구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최저임금 올리면 점심값이 2만원으로 오르겠지.” 지금까지 현실에서 확인된 결과를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NIE 포인트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1. ‘임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해보자.

2. 음식값이 최저임금보다 큰 폭으로 뛴 이유는 무엇일까?

3.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