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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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한화그룹 빅딜

삼성그룹이 방위산업·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전격 매각했다. 매각 규모는 1조9000억원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간 ‘빅딜’로는 최대 규모다.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삼성과 한화가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그룹 간 사업재편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11월27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삼성, 한화에 화학·방산 계열사 4곳 매각…대기업, 과감한 사업 구조조정 신호탄 쏘다
☞ 국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과 10위인 한화그룹이 26일 깜짝 놀랄 만한 발표를 했다. 삼성이 삼성테크윈 등 4개 회사를 한화 측에 전격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매각 대금은 1조9000억원. 이들 4개사의 지난해 매출은 13조원 수준이다. 이처럼 대기업 간에 서로 사업을 교환하거나 이양하는 것을 ‘빅딜(Big Deal)’이라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차원에서 국내 대기업 간 대규모 빅딜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부의 압박에 따라 반강제적으로 이뤄진 것에 비해 이번 삼성-한화 간 빅딜은 자율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왜 삼성은 급박한 이유가 없는데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들을 한화 측에 넘기기로 한 걸까.

‘빅딜’의 내용

삼성이 이번에 넘기기로 한 회사는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등 4개사로 방위산업(방산)업체와 석유화학(유화)업체다. 삼성테크윈은 예전에 카메라와 항공기 관련 제품을 만든 삼성항공이 전신으로 K-9 자주포, 항공기 엔진, 폐쇄회로TV(CCTV), 반도체 제조장비인 칩마운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탈레스는 레이더와 감시정찰 장비를 만든다.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은 에틸렌,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등 유화 제품을 생산한다.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지분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각각 32.4%, 57.6%(자사주 제외)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삼성테크윈 지분은 8400억원에 (주)한화에, 삼성종합화학 지분은 1조600억원에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에 팔기로 결의했다. 삼성테크윈 자회사인 삼성탈레스와 삼성종합화학 자회사인 삼성토탈 경영권도 함께 한화에 넘긴다.

매매 대금은 1조9000억원이다. 하지만 이들 4개사의 경영 성과가 좋으면 한화가 앞으로 1000억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단서 조항(옵션)이 있어 최종 대금은 2조원이 될 수도 있다. 삼성과 한화는 내년 1~2월 실사와 기업결합 승인 절차 등을 거쳐 6월 말까지 계약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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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경영이 어렵지 않은데도 왜 4개사를 넘기는 걸까. 또 한화는 2조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가며 이를 사들이는 걸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더 높이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그룹의 핵심 사업으론 전자·금융·건설을 꼽을 수 있다. 이번에 팔기로 결정한 화학과 방산 분야는 국내에서도 확고한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유화 부문은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장치산업이지만 삼성종합화학이나 삼성토탈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명함을 내밀기에 역부족이다. 그래서 방산이나 유화가 필요한 한화에 이들 회사를 파는 대신 주력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화는 4개사를 사들여 단번에 유화 산업과 방산 분야에서 선두 위치로 올라설 수 있게 된다.(삼성-한화 빅딜한 이유는) (주)한화는 한화그룹 모기업으로 방산과 무역, 기계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방산 부문에선 다연장 로켓포인 ‘천무’ 등 유도무기와 항법장치, 탄약 등을 생산한다. (주)한화가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사들이면 K-9 자주포(육상), 경공격기 FA-50 엔진과 레이더(항공), 해상시스템(해상) 등 지상·항공·해상·유도무기 등 거의 모든 무기체계를 망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방산업계에서 “한화가 한국의 ‘록히드마틴’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화는 이번 인수로 방위산업 부문 매출이 1조원에서 약 2조6000억원으로 불어나 국내 방산 분야 1위로 도약하게 된다.

한화는 또 유화사업에서도 매출이 18조원 규모로 커져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을 제치고 국내 1위에 오르게 된다. 한화는 현재 한화케미칼 한화폴리드리머 여천NCC 등을 통해 필름 파이프 비닐 등의 주원료인 폴리에틸렌(PE), 폴리염화비닐(PVC)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삼성의 유화사업을 인수하면 에틸렌 중심의 제품군이 폴리프로필렌, 파라자일렌, 스티렌모노머 등으로 다양화된다. 석유화학의 기초연료인 에틸렌 생산능력도 세계 9위 수준인 291만t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와 함께 삼성토탈 인수로 15년 만에 정유사업에 재진출한다. 삼성토탈은 2012년부터 알뜰주유소에 휘발유 경유 등을 공급하며 SK GS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에 이은 ‘제5정유사’로 발돋움했다. 한화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당시 한화에너지의 인천공장과 유통망을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에 팔고 사업에서 철수한 적이 있다.

잘하는 사업에 집중한다

삼성의 이번 계열사 매각은 지난해부터 벌여온 ‘새판짜기’ 작업의 연장선이다. 삼성은 7월 이후 삼성SDS의 삼성SNS 흡수 합병, 삼성SDI의 제일모직 소재 부문 합병 등 여덟 차례의 사업·지배구조 재편 작업을 진행했다. 비슷한 계열사를 묶어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삼성은 화학과 방산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대표이사 직속으로 기존 사업부와 독립된 빅데이터센터와 소프트웨어센터를 신설할 계획이다. 빅데이터와 소프트웨어는 삼성이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꼽고 있는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모바일 헬스케어의 기반이 되는 핵심 기술이다.

삼성의 이번 매각 결정은 지금까지의 ‘하드웨어 중심’의 회사에서 GE IBM 등 글로벌 선진 기업들이 추구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로 변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인 데에서 벗어나 핵심 역량(핵심 사업) 강화를 위해선 적극적으로 M&A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삼성은 2010년 미래 신사업(신수종사업)으로 바이오사업을 선정한 이후 지금까지 초음파진단기 업체인 메디슨을 비롯 레이, 프로소닉, 넥서스, 뉴로로지카 등을 사들였다.

삼성의 이번 매각 결정은 이건희 회장 이후의 후계구도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을, 이부진 사장이 신라호텔을 중심으로 호텔·상사·레저·유통 부문을,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을 축으로 패션·광고·미디어사업을 전담하는 형태로 경영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은 국력의 원천

다른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작업도 가속화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중국 업체가 무섭게 추격해오고 일본 등 선진업체들은 달아나는 ‘넛크래커’ 상황을 돌파하려는 안간힘으로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8월 7개 계열사를 단 하루 만에 3개로 합쳤다. 현대위아를 통해 현대위스코, 현대메티아를 흡수합병해 자산 5조원이 넘는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제조 계열사로 키웠다. 앞서 4월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합쳤으며 작년엔 현대제철이 현대하이스코 자동차 강판사업을 흡수했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통해 2011년 인수한 미국 태양전지 제조업체 헬리오볼트를 올초 매각했다. 포스코도 올해 3월 권오준 회장 취임 직후 강도 높은 사업 재편에 착수했다. KT도 최근 렌터카 운영업체 kt렌탈을 매물로 내놨으며 동부그룹도 동부발전당진, 동부특수강, 동부하이텍 매각을 추진 중이다.

기업은 국력의 원천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국내 기업들이 도태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대기업들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은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