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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따라 희비 엇갈린 일본과 중국
지난 12일 일본 도쿄 증시는 3년 6개월 만에 시가총액에서 중국 상하이 증시를 제쳤다고 합니다. 일본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지수(사진)도 33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기세가 무섭습니다. 주식시장은 외국인투자자가 해당 나라의 미래 성장성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장기 불황과 극복일본은 1980년대까지 세계 곳곳에 일본 상품을 수출하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요. 물론 이에 반발하는 나라도 생겼습니다. 바로 미국이었죠. 당시 미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이루어냈죠.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해지자 금리인하로 경기침체에 대응했지요.일본의 가계와 기업은 낮은 대출 금리로 국내외 부동산 및 주식에 집중 투자하자 이들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우려한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출을 규제하고 금리를 올리자 일본 장기불황이 시작됐습니다. 경제주체는 불황이 오자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빚을 갚아야 했죠. 이에 따라 기업은 투자와 고용 감소, 가계는 소비 감소로 물가 수준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물가가 상승하고, 정부가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 투자 장려와 주식 시장 활성화에 나서는 등 기나긴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하는 모습입니다.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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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환본위제에서 달러기축통화로 변화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지요. 현재도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은 IMF에 요청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IMF가 설립될 당시 궁극적 목적은 달랐습니다.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체제 구축IMF는 1944년 미국에서 열린 44개국 연합회의(사진)에서 발족한 브레턴우즈체제의 결과로 탄생한 국제기구입니다. 브레턴우즈체제 이전, 세계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지요. 세계대전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로 국가 간 보호무역주의와 이에 따른 경기침체도 있었습니다. 전쟁 이후 지도자들은 또다시 비극을 겪지 않으려면 자유무역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각국 사이의 환율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하지요. 당시 막대한 금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레턴우즈체제는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고, 각국은 달러화를 통해 환율이 결정되는 금환본위제도인 고정환율제가 중심이었습니다.이때 환율 및 국제결제 시스템의 안정을 주된 목적으로 한 IMF가 설립되었습니다. 브레턴우즈체제에서의 고정환율은 상하 1%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고, 국제수지불균형이 발생한 국가는 IMF와 협의 후 일정 수준 이상 환율을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없듯이, 브레턴우즈체제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로 인해 완벽하지 못했죠.두 번의 변화와 페트로 달러기축통화는 세계가 가장 신뢰하는 통화지요. 그래서 미국 달러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공급이 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제 거래가 줄어들고 세계는 경기침체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유동성 공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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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금리·자본이동 목표 동시달성은 불가능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페소화 가치를 50% 이상 평가절하했습니다. 1달러당 800페소로 조정해 공식 환율과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 사이에 극심한 차이를 조정했습니다. 국가가 경제를 운용할 때 환율은 중요한 요소이지요. 환율은 안정될 수 없을까요? 세 마리 토끼 모두 잡을 수 없을까밀레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중 하나는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화를 법정통화로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이었죠. 미국 달러화는 ‘기축통화’로 세계가 가장 신뢰하는 통화지요. 달러화를 아르헨티나 법정통화로 사용하면 페소화를 무차별적으로 발행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고,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가 없으니 경기변동에 따른 통화정책이 불가능해집니다.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하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독자적인 통화정책과 환율 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는 없을까요?세계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각국은 거시경제를 운용할 때 △자유로운 자본 이동 △환율 안정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달성하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통해 보듯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삼위일체 불가론’으로 설명할 수 있지요. 결국 하나는 포기해야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A국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려고 한다고 해봅시다. 환율 안정은 보통 1달러를 1000원에 고정하는 식의 고정환율제를 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국내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렸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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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의도 정부개입이 오히려 부작용 일으켜
17세기 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책을 이끈 재무장관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상인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했습니다. “국가가 상인들의 사업을 더 잘 도와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는지요?” 그러자 상인들은 “레세페르(laissez faire)!”라고 한마디만 했다고 합니다. 미국도 시행했던 극단적인 정부개입레세페르는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부국강병을 위해 산업육성과 해외 식민지 개척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콜베르는 수출을 진흥하고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에 반발한 상인도 많았겠지요. 콜베르와 상인들 사이의 대화는 정부가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민간의 경제활동에 개입하려 하면 오히려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죠. 이렇게 정부와 민간 사이의 대립은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1970년대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기에도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서 부작용이 일어났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1971년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모든 가격과 임금을 3개월간 동결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했지요.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가격을 억제하자 각 부문에서 공급자들은 생산을 줄이면서,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더 급등하는 상황을 초래했지요. 게다가 1970년대 중동의 석유파동이 발생하면서 물가는 용수철처럼 튀었고, 이는 그대로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왔습니다. 정부는 완벽한 해결사일까?보통 정부가 개입할 때,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합니다. 독과점, 외부효과, 공공재, 물가상승, 실업 등 시장에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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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스티프닝, 가격과 거래량 추론 등 까다로워
테샛관리위원회는 올해 11월에 시행한 테샛 84회 성적 평가 회의를 열고 부문별 성적 우수자를 확정해 테샛 홈페이지에 발표했다.필립스곡선 문항 정답률 낮아84회 시험은 상황 판단의 난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경제이론에서는 <보기>에서 필립스곡선과 관련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르는 문항의 정답률이 30%대로 낮았다. <보기>의 내용 모두 정답이다. ‘필립스곡선은 1958년 영국의 경제학자인 필립스가 실업률과 명목임금 상승률 간에 상충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곡선(ㄴ)’이다. 현재는 명목임금 상승률 대신 물가 상승률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단기와 달리 장기 필립스곡선은 단기에 재량적인 정책으로 실업률을 줄이는 정책을 쓰더라도 경제주체의 기대로 임금이 상승하고 물가가 오른다. 이에 따라 실업률도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돌아오고, ‘장기 필립스곡선은 자연실업률 수준에서 수직선(ㄱ)’ 형태를 띤다. 1970년대에는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는 기존 필립스곡선에서 나타난 실업률과 명목임금 상승률 사이에 음(-)의 관계가 양(+)의 관계(ㄷ)’로 나타난 사건이었다.경제 시사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합친 용어 ‘잘파세대’, 장기채 금리가 단기채 금리보다 더 빨리 오르는 현상인 ‘베어 스티프닝’ 등의 정답률이 낮았다.상황판단은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신문 기사의 상황을 읽고, 시장에서 호주 소의 가격과 거래량의 변화를 알맞게 짝짓는 문항의 정답률이 40%대로 낮았다. 이상기후로 목초지가 타들어가고 사육비가 급증하자 소를 시장에 내다 팔고 있는 목장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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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의 경제자율화 실험, 아르헨티나 살릴까
○아르헨티나(Argentina)=아르헨티나는 무분별한 정부지출로 연간 최고 14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국민은 살인적인 물가로 고통에 빠졌지만, 정부는 적절한 대응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하비에르 밀레이(사진) 후보가 여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중앙은행 폐쇄, 공기업 민영화, 법정 통화로 달러화를 채택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그의 대통령 취임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 정책 행보가 주목된다.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미국에서 11월 넷째 주 목요일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일컫는 용어다. 미국 대다수 소매업체가 이날을 기점으로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연말에서 새해 초까지 대규모 할인 판매를 한다. 1년 내내 적자였던 회계장부가 적자(red)에서 흑자(black)로 돌아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매도(Short Stock Selling)=가격 하락을 예상해 주식이나 채권을 빌려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증권회사 및 증권금융회사로부터 빌린 주식을 파는 것으로서, 형태는 어디까지나 실물거래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팔기 때문에 공매도라고 한다. 판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면 그 주식을 다시 사서 차액만 얻을 수 있다. 공매도는 한국예탁결제원이나 한국증권금융 등 제 3자로부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와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매도 주문을 내는 무차입 공매도로 구분된다. 대부분 국가에서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공매도는 합리적인 주가 형성에 기여하지만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불공정거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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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성공하려면 견고한 카르텔 무너뜨려야
11세기 중국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앞세워 상대적으로 국방력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북방의 거란이 세운 요나라의 강력한 힘에 눌린 송은 ‘전연의 맹약’이라 불리는 화친을 맺고 각종 물품을 바치게 되었죠. 송의 신종은 부국강병을 위해 나라를 개혁하려는 열망을 갖게 됩니다. 이때 신종의 개혁에 앞장선 인물이 있었습니다.왕안석의 개혁과 좌절그는 바로 왕안석이었습니다. 그는 각종 개혁 정책을 시행합니다. 국가가 공물의 수송을 직접 관할해 중간 과정에서 상인이 백성에게 취하는 폭리를 차단하는 균수법, 춘궁기 농민에게 저리로 식량과 종자를 빌려주는 청묘법, 기병 육성을 위한 보마법, 농한기 농민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한 보갑법 등의 정책으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강력한 군대를 육성해 북방 이민족의 침략을 막으려 했지요. 하지만 개혁에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죠. 왕안석이 시행한 정책은 대지주와 대상인, 이들과 결탁한 관료에게 타격을 주었기에 반발이 극심했습니다. 이들은 왕안석을 비판했지요. 왕안석을 지지하는 당은 ‘신법당’, 이에 반대하는 당은 ‘구법당’이라 불렸습니다. 황실의 외척도 구법당 편에서 왕안석을 비난했지요. 결국 신종은 왕안석을 지방으로 좌천하고, 복귀한 후에도 지주·상인·관료·외척들의 견고한 힘에 막혀 개혁이 좌절되었습니다. 관직을 내려놓은 왕안석은 자신의 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후 약 40년 뒤 송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수도인 개봉을 함락당하고 황제가 끌려가는 비극을 겪습니다.변화를 막는 견고한 연합개혁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지 왕안석의 신법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죠. 이 과정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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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성 있는 독점,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
조선의 개혁 군주로 유명한 정조는 1791년 신해년에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금지하는 ‘신해통공’을 시행합니다. 당연히 시전 상인, 이들과 결탁한 조정 대신들의 반발은 극심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정조는 이를 밀어붙였을까요?나라에서 부여한 독점판매권조선은 상업을 가장 아래로 보았지만, 도성인 한양의 인구가 늘어나고 필요한 물품이 많아지면서 상인의 역할이 필요해졌지요. 그래서 도성 안에서 6개 품목(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어물)에 대해 해당 상인에게 독점권을 주고 제품을 나라에 공급하게 했습니다. 이를 ‘육의전’이라 했지요.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시전 상인들은 나라에서 준 독점권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죠. 하지만 임진왜란과 두 번의 호란을 경험한 조선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광해군 때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수공업과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을 판매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으로 허가받지 않은 난전을 규제했습니다. 그리고 특정 물품을 독점해서 팔 수 있기에 가격을 높여 팔아도 대체할 상품이 없었죠. 이에 따라 물가는 오르고 백성의 고통은 커졌지요. 조선 후기로 가면서 난전이 활발해진 것도 바로 시전 상인들의 이러한 행태 때문입니다. 정조는 이러한 폐해를 잡기 위해 신해통공을 실시해 백성이 어디를 가든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구할수 있도록 했지요.독점에 대한 상반된 시선우리가 독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도 시전 상인과 비슷한 행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지요. 하지만 독점을 바라보는 상반된 주장이 있습니다.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