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글로벌 공급망 위기
13세기 벌어진 향신료 분쟁
21세기 공급망 갈등으로 재연
미·중 힘겨루기로 공급망 위축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심화
반도체·배터리·희토류·바이오
美 4대 안보 산업으로 규정도
13세기 중반 베네치아는 당시 첨단 교역 품목인 향신료를 독점 공급했습니다. 인도 등 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향신료는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됐지요. 베네치아의 막대한 부(富)는 동남아로 가는 지름길(지중해~홍해~인도)을 지배한 결과였습니다.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베네치아의 독점 공급에 치를 떨었습니다. 한마디로 “못살겠다”였죠. 15세기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동남아로 가는 새 항로를 개척하자 영국, 스페인 등이 이 길을 통해 향신료를 수입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수입처 다변화입니다.13세기 벌어진 향신료 분쟁
21세기 공급망 갈등으로 재연
미·중 힘겨루기로 공급망 위축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심화
반도체·배터리·희토류·바이오
美 4대 안보 산업으로 규정도
대항해 시대에 벌어진 공급망 분쟁이 최근 재연되고 있어서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이것을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급망 패권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다툼은 오늘날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바이오 등 4개 영역에서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1세기 경제와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첨단 부품이며 핵심 물질입니다. 이것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국가 안보의 최대 현안이 됐습니다. 이런 부품과 물질을 잘 생산하고 많이 보유한 나라들은 ‘힘 자랑’을 하고,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급망 분쟁이 국가 간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최대 변수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힘 겨루기는 글로벌 공급망을 위축시키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13세기 베네치아와 서유럽의 관계와 비슷하죠. 중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다양한 물질을 많이 생산하고 수출합니다. 희토류와 마그네슘은 대표적인 물질입니다. 중국은 이런 물질을 앞세워 세계 공급망을 중국 중심으로 구축하려고 합니다. “중국 편에 서지 않으면 공급을 줄이거나 안 하겠다”는 것이지요. 중국에 우리나라는 좋은 먹잇감입니다. 최근 벌어진 ‘요소수 파동’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나라는 요소수 물량의 98%를 중국에서 수입해 씁니다. 중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요소수 수출을 중단하자 한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중국의 일부 언론은 “중국의 위대함을 알겠지?”라고 보도하며 힘자랑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요소수를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기존 공장들이 환경문제 등으로 문 닫음), 중국산이 워낙 싸기 때문에 수입해서 쓰고 있을 뿐인데, 중국이 괜히 힘자랑을 한다 싶습니다. 중국은 희토류 공급도 줄일 수 있다면서 엄포를 놓은 지 꽤 됐습니다. 중국에 줄서지 않으면 희토류 공급을 줄이겠다는 겁니다. 반도체 주요 생산국인 한국을 위협으로 포섭하려는 거지요.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미국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미국도 여러 부품과 물질 공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들을 흔들려 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거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바이오 4개 부문을 국가 안보 산업으로 규정하고 공급망 재구축에 나섰습니다. 삼성을 불러서 반도체 공급 계획을 내라고 한 이유죠. 미국 경제와 군사동맹 라인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선 공급망 강화가 필수인 겁니다. 미국은 이참에 자국 내에서 모든 것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조업 재구축 방안’도 마련 중입니다.
미국과 중국 간 공급망 분쟁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더 악화됐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물자가 원활하게 생산·거래되지 않으면서 여러 영역에서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부족한 물량을 단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수출을 금지하고 자국 이기주의에 충실한 겁니다. “나 살고, 너 죽자”식이죠. 한국의 요소수 파동은 좋은 예입니다. 요소수는 경유를 쓰는 모든 차량에 들어가는 배출가스 정화제인데, 중국이 자국 물량 확보를 위해 수출을 막았습니다.
반도체와 배터리의 안정적 확보는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전기차 생산이 급증하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이 많이 부족해졌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는 서로 연결돼 있어서 어느 것 하나가 부족하면 끝입니다. 이런 것에 강점을 가진 나라들은 ‘초크 포인트(choke point)’로 활용하려 합니다. 핵심 기술을 앞세워 상대의 목을 조이는 것이죠. 오늘날의 ‘향신료’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한 우리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① 13~15세기에 벌어진 향신료 공급 전쟁이 어떤 과정에서 벌어지게 됐는지를 알아보자.
② 대항해 시대에 나타난 향신료 공급 분쟁과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분쟁 사이에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를 조사해보자.
③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분쟁이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어떻게 악화됐는지를 토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