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국채)을 한국은행이 직접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을 금융시장에 팔아 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국채 직매입’ 방식이다. 이유는 코로나 충격이 상대적으로 더 큰 자영사업자들의 영업 손실에 대한 보상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원, 즉 돈 문제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지원해 주자”고만 외친 선심 구호가 난무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진일보한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어떤 돈을, 어떻게 조달해서’라는 근본적 문제를 고민하면서 지원을 주장했다는 차원에서 특히 그렇다. 이와 비슷한 주장으로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인상해 그 돈으로 자영사업자 손실을 보상하자’는 제안도 있다. 하지만 증세(增稅)는 어떤 경우에도 신중해야 하고, 동서고금 어디서나 납세자 저항감도 있게 마련이어서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이 여권 내에서 조금 더 논의가 진행되는 분위기다.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한마디로 “국가가 돈을 찍어 코로나를 보상하자”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에 따르는 파급력이나 부작용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보상재원 마련을 위한 한은의 발권력 동원은 가능한 방법인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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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절실한 자영업자 손실보상…'재원 문제'로 계속 늦출 수 없어한은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세운 중앙은행이다. 중앙은행은 돈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제1의 임무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한은 업무에 ‘고용 창출을 위한 노력’을 명시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은행법을 바꾸더라도 일자리 만들기에 금융정책이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실제로 미국도 그렇게 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는 실업률을 금리 조정이나 자금 풀기 결정을 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삼는다.

그만큼 중앙은행은 돈의 가치 유지와 물가 안정 외에도 종합적인 차원에서 경제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적자 국채)을 매입하게 되면 정부로서는 재원조달이 좀 더 용이해지지 않겠나. 더구나 그 돈으로 코로나 충격을 많이 받은 식당 카페 헬스장 학원 등 자영사업자에게 지원해 주자는 것 아닌가. 이들 자영사업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주요 방역 대책의 하나인 ‘집합금지’ 조치에 따라 영업할 수 없게 되면서, 매출이 줄어들고 소득도 감소한 것이다.

한은에 국채 직매입을 요구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고유한 통화정책 운용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은도 그 정도 협조는 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위기 극복에 중앙은행이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증권·금융시장에서 조달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시장의 자금 흐름을 왜곡시키는 등의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정부의 채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중앙은행이 돈을 더 찍어내는 것이 간편한 측면도 있다.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국민 지갑에서 세금을 더 걷게 되면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 부채를 화폐제도 속으로 적극 수용하자는 것이다. [반대] 화폐 신뢰 흔들면 경제 약자가 피해외국 자본 이탈 불러올 수도각국이 중앙은행의 독립을 강조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독립적·중립적이면서 전문적인 통화정책이어야 화폐·금융 제도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 발전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치권력은 통상 인기영합적 입장을 취해왔다. 선거를 의식하는 상황이 되면 더 심해진다. 화폐·금융 제도에 문제가 생겨도 집권에 도움이 된다면 나쁜 결정도 서슴지 않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습성이다. 이런 일을 예방하고, 정치권력이 중앙은행을 마구 휘두르지 못하도록 하는 유무형의 장치·제도가 중앙은행 독립이다. 사법부나 감사원·선거관리위원회 같은 헌법기구의 독립을 보장하고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영사업자 지원 명분이 그럴듯해도 적자국채 발행부터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 갚아야 하는 빚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적자국채를 시장이 아니라 한은이 그대로 인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발권력으로 사실상 적자국채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는 나쁜 길이 트일 것이며, ‘정부부채의 화폐화’가 진행되면 한국의 돈 가치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폐는 1%, 5% 더 발행한다고 해서 가치가 1%, 5%만 하락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신뢰를 잃어버릴 때 종이돈은 휴지가 된다. 미국 달러나 유로화처럼 기축통화가 아닌 경우에는 더 그렇다. 국가가 나서 돈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어떤 외국인이 원화에 투자할 것이며, 한국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것으로 보겠나. 한은 발권력을 동원한 국채 인수 방식은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경제교란 행위는 국가적 자해 행위다. 끝내 강행할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다. 돈 가치가 떨어지면 자산이 없는 서민이 더 큰 고통을 받게 되고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자영사업자가 더 큰 애로에 봉착할 수 있다. √ 생각하기 - 대외신인도와도 직결…후진국형 인플레이션 경계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코로나 보상' 위해 한국은행 발권력도 동원해야 하나
자영사업자들을 지원하자는 취지는 좋다. 그럴 필요성도 있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즉 돈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무조건 주자는 주장은 쉽게 하면서도 재원 문제에서는 ‘모르쇠’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세금 더 내기가 국민 부담을 늘린다는 사실 만큼이나 한은 발권력 동원이 국민 부담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직접 납부하는 세금도 있지만, 통화증발 등 인플레이션을 통한 징세도 있다. 돈을 찍어내 초래하는 후진국형 인플레이션은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서민 자영사업자를 돕자면서 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켜서는 곤란하다. 국가 경제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외환위기 때 우리는 똑똑히 체험했다. 정부 지출의 씀씀이를 줄이는 등 재정 구조조정을 하면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지원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조차 중앙은행의 국채 직매입을 불허하는 상황도 참고할 만하고, 한은이 강력 반대하는 현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