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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유감'은 사과가 아니라 섭섭할 때 쓰는 말이죠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유감은 '遺憾'이다.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이다. 즉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미투 운동’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 와중에 우리말 ‘유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사과한다고 말한 속에, 또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대개 이런 투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런데 썩 자연스럽지가 않다. 사과의 진정성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유감’이란 말의 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본래 쓰임새는 서운하다는 뜻‘유감’의 정체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감을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 자칫 ‘有感’ 정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말이고,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유감은 ‘遺憾’이다.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이다. 즉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한마디로 ‘섭섭하다’ 또는 ‘언짢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감정(憾情·이 역시 感情과 구별해야 할 말이다)이 있다는 뜻이다. “너, 나한테 유감 있냐?”라고 하면 “나한테 불만 있냐?”는 뜻이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 말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 쓰기 시작했다. 유감의 감(憾)은 ‘대단히 강하게 느끼는(感) 감정(心)’이란 뜻을 담았다. 기쁨보다는 한스럽고 분한 감정에 나타나는 느낌을 말한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손모아장갑·엄지장갑… 우리말이 풍성해져요

    평창패럴림픽에서 인기를 끈 '손모아장갑' 같은 대체어는 의미도 살아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점잖은 표현이라 좋다. 또 다른 대체어인 '엄지장갑'과 함께 일상어로 자리잡도록 힘을 모을 만하다.2013년 9월 SBS 새 월화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제작진은 방영을 앞두고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제작진은 좀 특별한 해명을 했다. “제목에 쓰인 ‘가정부’라는 말이 이 직업군을 비하하는 것으로 여겨질지 몰랐다”며 “논란이 되는 부분은 가사도우미나 가정관리사라는 말로 순화해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가정부라는 제목으로 인해 방영 전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았다.의미 살리고 표현도 점잖아‘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은 사전적으로 가정부 또는 파출부다. 하지만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공식 명칭은 가사도우미다. 사전에 오른 정식 ‘단어’는 아니다. 여성단체에서 가정부와 파출부를 비하어로 지목하자 이를 대체한 용어로 쓰고 있는 것이다.그런 배경에는 우리말에서 ‘-부’가 험하고 힘든 일이나 직업군에 많이 쓰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광부, (공사장)인부, 청소부, 접대부, 간호부 등이 그런 예들이다. 이 중 청소부는 청소원을 거쳐 (환경)미화원이 됐다. 간호부 역시 간호원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간호사로 불린다. 이들이 애초부터 비하어여서 바꾼 게 아니다.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좀 더 점잖게 부르는 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사회 발전에 따른 언어의 분화·진화인 셈이다.‘장님→시각장애인’ 등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장님'은 원래 낮춤말이 아니었죠

    1990년대 초까진 장님이 소경의 높임말이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에도 낮잡는다는 뜻이 없었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2년 펴낸 <조선말대사전>도 마찬가지다.“KBS 방송심의위원회의 케이윌 ‘최면’ 방송불가 판정을 적극 환영한다. 소속사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벙어리에 비유한 것일 뿐’이라며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대중가요를 접하는 수많은 시민과 청소년들은 ‘벙어리’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청각장애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비하용어를 사용할 우려가 있다.”1990년대 말 사회적 인식 변화 반영2009년 11월 7일 한국농아인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말에서 장님이나 귀머거리, 벙어리 같은 말은 일종의 ‘금기어’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 용어를 장애인 비하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인식이 커지면서 호칭어(또는 지칭어)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바뀌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2009) 등의 풀이가 그렇다. 두 사전은 이들 용어를 ‘~을 낮잡는(얕잡는) 말’로 풀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연세한국어사전>(1998)은 좀 다르다. ‘낮잡는 말’이란 표현이 없다.애초부터 이들이 낮잡는 말로 쓰인 게 아니라는 점은 다른 사전에서도 확인된다. 1961년 나온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을 비롯해 <국어대사전>(금성출판사, 1991),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1992) 등 1990년대 초까진 장님이 소경의 높임말이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에도 낮잡는다는 뜻이 없었다. 북한 사회과학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패럴림픽은 "함께 열리다"는 뜻이죠

    패럴림픽은 '옆의,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패러(para-)'와 올림픽이 결합한 말이다.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장외 주인공을 꼽으라면 한글과 우리말을 들을 만하다. 올림픽 휘장과 메달을 비롯해 대회장 곳곳에 한글 자음 ㅍ과 ㅊ을 형상화한 문양을 새기거나 내걸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한껏 알렸다. ‘손모아장갑’도 눈에 띄었다. 무심코 써온 ‘벙어리장갑’을 순화한 대체어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패럴림픽이란 용어도 우리에게 ‘말의 진화’란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장애·비장애 가르지 않는 세상 염원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인식이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그 전에는 장애자로 많이 불렸다. 서울올림픽 당시만 해도 공식적인 표기는 장애자올림픽이었다. 장애자란 말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말을 다소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즈음이었다. 이후 1989년 장애자복지법을 전면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이 나오면서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공식용어로 등장했다.이번 대회에선 한걸음 더 나아가 패럴림픽이 자리 잡았다. 패럴림픽은 ‘옆의,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패러(para-)’와 올림픽이 결합한 말이다.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네이버 두산백과). 애초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리지아(paraplegia)와 올림픽의 합성어였으나 점차 다른 장애가 있는 선수들도 참가함에 따라 의미가 바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후'와 '후'는 의미가 달라요

    말을 할 때 정교한 구별이 필요하다.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우리말의 발전, 나아가 논리적·합리적 사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연임하게 됐다. 언론들은 지난 3월3일자에서 이 소식을 전했다. 한은 역사에서 총재가 연임한 경우가 드물어 이 뉴스는 더욱 화제가 됐다. 김유택 전 총재(1951년 12월18일~1956년 12월12일)와 김성환 전 총재(1970년 5월2일~1978년 5월1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사례라고 한다. 이것을 짧게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이후 세 번째다”라고 말할 수 있다.‘이전/이후’는 기준 시점 포함해언론사에 따라 이를 조금 달리 표현한 곳도 있었다.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이후 처음이다.” 이는 맞는 것일까? 어찌 보면 두 사람이 연임한 뒤로는 처음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일한 문장에서 ‘처음’과 ‘세 번째’는 분명히 다르다. 둘 중 하나는 틀린 표현이지만 현실언어에서 우리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두루뭉술 섞어 쓰는 경향이 있다.‘이전(以前)/이후(以後)’와 ‘전/후’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가령 “그는 2010년 이후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라고 하면 2010년부터라는 뜻일까? 아니면 2011년부터를 뜻하는 것일까? 이전/이후는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2010년부터 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전/후’는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지 않는다. ‘2010년 후’라고 하면 2011년부터를 가리킨다.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개념에 대한 이해는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합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남에선 '깃발', 북에선 '기발'로 쓰죠

    우리 맞춤법은 형태주의를 기반으로 해 표음주의를 절충했다. 한글 맞춤법은 총칙 제1항에서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했다.지난호에선 ‘한라산-한나산’의 사례를 통해 우리말 적기 방식인 표음주의와 형태주의의 차이를 살펴봤다. 표음주의란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뜻이다. 형태주의란 소리와 상관없이 같은 단어는 언제나 같은 형태로 적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말을 적는 규칙인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일까? 형태주의일까? 한글이 소리글자(표음문자)이니 맞춤법도 표음주의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한글맞춤법은 형태·표음주의 절충우리 맞춤법은 형태주의를 기반으로 해 표음주의를 절충했다. 한글 맞춤법은 총칙 제1항에서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때 ‘어법에 맞도록 함’이란 단어 기본형을 밝혀 적는다는 뜻이고, 그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그 바탕에서 표준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한 게 현행 맞춤법의 원리다.표기를 자주 틀리는 말 중 하나인 ‘얽히고설키다’를 통해 구체적인 방식을 알아보자. 이 말을 ‘얽히고?히다’ ‘얼키고설키다’ 식으로 잘못 쓰기도 한다. 두 단어인 줄 알고 띄어 쓰는 경우도 흔하다. 우선 ‘얽히고’는 ‘얽다’를 어원으로 한 피동형(얽히다)임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발음은 [얼키고]로 나지만 적을 때는 원형을 살려 ‘얽히고’로 한 것이다(형태주의). 이에 비해 뒤따르는 ‘설키다’는 어원을 찾을 수 없다. 우리말에 ‘?다’ 또는 ‘설키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라산'과 '한나산'… 남북은 왜 달리 쓸까요?

    우리가 아는 '한라산(漢拏山)'은 북에선 '한나산'이라고 한다. 한자 拏는 '붙잡을 나'자로, '나포(拿捕: 붙잡아 가둠)' 할 때 쓰인 글자다. 拿는 拏의 속자(俗字: 획을 간단히 해 더 널리 쓰이는 글자)다.평창동계올림픽은 선수들의 열전 못지않게 북한의 음악공연도 화제였다. 삼지연관현악단은 강릉과 서울에서 두 차례 공연을 통해 ‘노래련곡(연곡)’ ‘락엽(낙엽)’ 등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다. 비록 공연의 정치적 의미와 논란에 가려 부각되진 않았지만 거기엔 간과해선 안 될 게 하나 있었다. 달라진 남북한 말과 글의 일부가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가곡으로 알려진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은 주목할 만하다. 애초 이 노래를 몰랐던 사람일지라도 문맥으로 보아 ‘한나’가 ‘한라산’을 뜻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한나산은 본음, 한라산은 속음우리가 아는 ‘한라산(漢拏山)’은 북에선 ‘한나산’이라고 한다. 한자 拏는 ‘붙잡을 나’자로, ‘나포(拿捕: 붙잡아 가둠)’ 할 때 쓰인 글자다. 拿는 拏의 속자(俗字: 획을 간단히 해 더 널리 쓰이는 글자)다. ‘한나산’이 변해 지금의 ‘한라산’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속음(俗音)이라고 한다. 속음이란 한자 음을 읽을 때, 본음과는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을 말한다. ‘六月’이나 ‘十月’을 육월, 십월이라 하지 않고 유월, 시월로 읽고 적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우리말에는 이처럼 한자어 발음이 변해 굳은 게 꽤 있다. 그중에서도 희로애락(喜怒哀樂, 희노애락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덕담'은 웃어른이 건넬 때 쓰는 말이에요

    "복 많이 받으세요"는 새해 덕담으로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말. "한 해 동안 보살펴주셔서 고마웠습니다"라는 과거시제보다 '~ 고맙습니다'가 나은 표현입니다.2001년은 우리나라 경제가 암울했던 외환위기의 긴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온 시기였다. 그해 말 비씨카드사는 정체돼 있던 카드사업을 돌파할 새 광고를 준비했다. 한 해를 새롭게 맞는 시기에 맞춰 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메시지를 담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여러분, 부~자 되세요”란 광고 문구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새해 덕담’은 엄혹한 시절을 지나온 국민 가슴에 공감을 자아내며 일약 ‘국민 덕담’으로 떠올라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오래 사세요”는 자칫 거부감 줄 수도나흘 앞으로 설이 다가왔다. 설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은 설을 단지 명절로 쇠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전통적인 의식에선 여전히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정초에는 덕담을 준비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풍속 편’(1948)에 따르면 새해 덕담은 과거형의 말을 통해 그렇게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한국세시풍속사전). 이를테면 “올해엔 돈 많이 벌었다지요?” “올해는 장가갔다지?” 하는 형식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늘 말하던 것이 마침내 사실대로 됐을 때를 이르는 말)’고 했는데 그것과 같은 표현이다. 덕담에 주술적 힘을 담아 바라는 바를 전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이런 덕담은 찾아보기 힘들다. 풍속도, 말법도 세월 따라 바뀌는 것이라 예전에 그런 게 있었다고 해서 얽매일 필요는 없다.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