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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추석엔 '제사'가 아니라 '차례'를 지내는거죠

    차례(茶禮)와 제사(祭祀)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에서는 다르다. 차례는 명절을 맞아 돌아가신 조상을 공경하는 전통예법이다. 이에 비해 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맞춰 음식을 바치는 의식으로, ‘기제사(忌祭祀)’를 가리킨다.추석이 다가오자 차례상을 준비하는 주부들의 손길도 빨라지고 있다. 올 추석은 10월4일이다. 음력으로 치면 8월 보름날이다. ‘보름’이란 (음력으로) 그달의 열닷새째 되는 날을 가리킨다. 월인천강지곡(1449)에 ‘보롬’으로 나오니 비교적 형태를 유지한 채 500년 이상을 이어온 셈이다. 명절과 관련한 말들은 조상 대대로 써온 생활어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헷갈리고 자주 틀리는 말이 꽤 있다.염불에선 ‘잿밥’, 제사에선 ‘젯밥’보름날 중에서도 달이 유난히 크고 둥글게 뜨는 날을 따로 ‘대보름’이라고 했다. 우리말에는 명절로서의 대보름이 두 개 있다. 일반적으로 ‘대보름날’이라고 하면 정월 대보름(음력 1월15일)을 가리킨다. 우리 조상들은 이와 구별해 추석을 ‘팔월대보름’이라 하여 설에 버금가는 명절로 지냈다.이날은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해 차례를 지낸다. 이 차례(茶禮)를 제사(祭祀)와 혼동하는 경우가 꽤 있다. 차례와 제사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에서는 다르다. 차례는 명절을 맞아 돌아가신 조상을 공경하는 전통예법이다. 이에 비해 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맞춰 음식을 바치는 의식으로, 정확히는 ‘기제사(忌祭祀)’를 가리킨다. 추석에는 송편을 준비하는 데 비해 제사 때 올리는 밥은 ‘메’라고 한다는 것도 알아둘 만하다.‘잿밥&rs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천고마비'엔 유비무환 정신 담겼죠

    중국인들은 가을이 되면 언제 오랑캐가 침입해 올지 모르니 미리 이를 경계해야 했다. 거기서 나온 말이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다. 가을(秋)이 깊고(高) 변방(塞)의 말(馬)이 살찌는(肥) 시절이니 흉노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지난주는 추분(9월23일)을 앞두고 막바지 늦더위가 이어졌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가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져 산에는 단풍이, 들녘엔 오곡이 무르익어 갈 때다. 그래서 예로부터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풍요로운 가을, 활동하기 좋은 시절을 상징하는 말이다.오랑캐 침략 경계한 ‘추고마비’가 원말이 말이 지금 같은 뜻으로 쓰이기까지에는 곡절이 있다. 천고마비의 유래는 《한서(漢書)》 ‘흉노전’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마디로 ‘중원(中原)’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중원은 황허 중하류 유역을 가리킨다. 이곳은 토지가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해 예로부터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지역이었다. 지금의 허난성을 중심으로 산둥성, 산시성(陝西省) 일대를 가리킨다. 허난성의 낙양(뤄양), 산시성의 장안(지금의 시안) 같은 천년 고도가 한가운데에 있다.하지만 중원 북방은 척박한 땅이었다. 말 타고 수렵생활을 하며 노략질을 일삼던 유목민족의 터전이었다. 그중에 흉노족은 몽골고원에서 활약한 기마민족인데, 사납고 거칠기가 그지없었다. 이들은 넓은 초원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말에게 풀을 먹이며 말을 살찌웠다. 추운 겨울이 닥치기 전 그 힘 좋고 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노숙인은 '이슬 맞고 자는 사람'을 말하죠

    '노천'의 한자는 '이슬로(露)'이다. 이를 자칫 '길로(路)'로 착각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한데에 있어서 이슬을 맞고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절묘한 작법이다.지난 9월7일은 절기상 백로(白露)였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 다음에 든 백로는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하는 때다. 곧이어 추분(秋分·9월23일)이 되면 이때부터 밤의 길이가 낮보다 길어진다. 백로는 글자 그대로 ‘희고 맑은 이슬’이라는 뜻이다. 이맘때가 되면 새벽녘 풀잎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슬이 맺히는 온도를 ‘이슬점’이라고 한다. 대기 온도가 낮아져 수증기가 응결하기 시작할 때의 온도다. 우리가 잘 아는 ‘어는 점(빙점)’, 즉 물이 얼기 시작할 때의 온도인 섭씨 0도가 되기 전이다.노숙은 순우리말로 ‘한뎃잠’노점상(길가의 한데에 물건을 벌여 놓고 하는 장사), 노숙인(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 노천극장(한데에 임시로 무대만 설치해 만든 극장)….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풀이에 힌트가 있다. 모두 ‘한데’와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한데는 주위를 둘러봐도 가리거나 덮을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을 말한다. 즉 집 바깥인 것이다. 한자어로 하면 ‘노천(露天)’이다. 노천극장을 비롯해 노천카페, 노천강당, 노천탕 같은 게 있다. 모두 한데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노천’의 한자가 ‘이슬로(露)’라는 점이다. 이를 자칫 ‘길로(路)’로 착각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한데에 있어서 이슬을 맞고 하늘을 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매점매석' 대신 '사재기'라고 쓰세요

    얼마 전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품귀 조짐을 보이자 중간 유통상인들의 '사재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재기는 한자어 '매점매석'을 순우리말로 순화한 말이다.지난 호에선 ‘입도선매(立稻先賣)’에 담긴,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살펴봤다. 입도선매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말이 ‘매점매석(買占賣惜)’이다. 얼마 전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품귀 조짐을 보이자 중간 유통상인들의 ‘사재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추석을 앞두고는 각종 제수용품의 사재기가 단속 대상이 되곤 한다. 사재기는 한자어 매점매석을 순우리말로 순화한 말이다.어려운 한자어에서 쉬운 우리말로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지은 풍자소설 ‘허생전’에는 이 매점매석이 중요한 대목으로 나온다. 주인공 허생원은 남산골 다 쓰러져가는 초옥에서 글만 읽던 선비다. 부인의 삯바느질로 끼니를 이어가던 그는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돈벌이’에 나선다. 도성 안 갑부에게서 1만 냥을 빌린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전국의 ‘길목’ 분석이었다. 경기도와 충청도가 갈리는 안성 땅에 주목한 허생원은 그곳에 터를 잡은 뒤 삼남(충청·전라·경상)에서 올라오는 과일류를 싹쓸이해 쟁여놓았다. 얼마 뒤 나라 안에 과일이 품귀를 빚자 그제서야 과일을 풀어 열 배 가격으로 되팔았다. 시쳇말로 ‘떼돈’을 번 것인데 그 수법이 바로 매점매석이었다.허생원은 “겨우 만 냥으로 나라 경제를 흔들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겠구나!” 하고 탄식했다. 박지원은 허생원을 통해 매점매석의 폐해와 함께 당시 보잘것없는 나라 경제를 비판하고 양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입도선매'는 살 때와 팔 때를 가려 써야죠

    ‘입도선매(立稻先賣)’는 지난 시절의 용어로, 궁핍한 농촌생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던 말이었다. 글자 그대로 ‘서 있는 벼를 먼저 파는 일’을 뜻한다. 예전에 돈에 쪼들린 소작농들이 벼가 여물기도 전에 헐값에 미리 판 데서 생겼다.우리 사회의 청년실업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포세대’니 ‘고용절벽’ 같은 말은 이미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운영)에 올라, 여차하면 단어로 자리 잡을 태세다. 하지만 취업난 속에서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전공자들의 몸값은 날로 치솟고 있다고 한다.‘궁핍한 농촌’ 상징하던 말“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한국 이공계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수한 인재라고 판단하면 경력이 없어도 일단 입도선매하고 보는 식이다.”기업에서 미래산업을 이끌 고급 두뇌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때 쓰인 ‘입도선매’는 좀 묘한 단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팖’으로 설명한다. 이 풀이는 입도선매하는 주체가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한자로는 ‘팔 매(賣)’자가 들어간 ‘立稻先賣’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한 대목이 그 용법을 잘 보여준다. “잘 여물었으면 제값을 받고 팔아야지 그렇게 ‘입도선매’ 모양으로 넘길 것이면, 무얼 바라고 공을 들입니까?”(표준국어대사전 용례)입도선매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전까지 농촌경제에 극심한 폐해를 끼쳤다. 당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재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가 아니죠

    초토화는 본래 화재를 당하거나 폭격 따위로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합한 말이다. 수재(水災)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쓰는 게 좋다.한여름을 달구던 불볕더위도 한풀 꺾여 이제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느낌이다. 처서(處暑·8월23일)를 앞두고 있으니 절기상으로는 이미 가을에 접어들었다. 올여름은 늦게까지 이어진 장맛비로 지역에 따라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 그럴 때 무심코 잘못 쓰기 쉬운 말 중에 ‘초토화’를 놓칠 수 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충북지역 초토화.” “호우 피해로 초토화된 농경지.” “최악의 폭우로 기록된 충북 청주지역은 하루에만 300㎜에 가까운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초토화됐다.”‘초토’는 불에 타 그을린 땅태풍으로 폭우가 휩쓸고 지나가거나 집중호우로 홍수가 져 큰 피해를 입었을 때 흔히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가다’란 말을 쓴다. 그리고 거기에 습관적으로 따라붙곤 하는 말이 ‘초토화(焦土化)’다. 하지만 이 말은 물난리로 피폐해진 곳에 쓰기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초토(焦土)’란 글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하기 때문이다. 한자 焦가 ‘(불에)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초미(焦眉)의 관심사’란 게 있는데, ‘아주 다급하고 중요한 관심사’라는 뜻으로 쓰인다.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랍고 애가 타는 상황일지 짐작이 간다.마찬가지로 초토화

  • 학습 길잡이 기타

    복더위 찌는 날은 무더위일까요, 강더위일까요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어울린 말이다.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비도 없이 불볕더위만 계속되면 ‘강더위’다. 이때의 ‘강-’은 한자말 강(强)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다.초복이 지나면서 한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리고 불볕더위로 인한 피해도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여기에는 선조들이 즐기던 지혜로운 피서법이 담겨 있다. 이른바 ‘탁족(濯足)’이다. 맑은 계곡을 찾아 옥 같은 물에 발을 담그며 무더위를 잊는 탁족은 우리 민족에게 고래부터 내려온 ‘자연친화적’ 여름나기였다.무더위는 ‘물+더위’가 어울린 말‘탁족만리류(濯足萬里流)’란 중국 서진(西晉)의 시인 좌사가 쓴 시에 나오는 말이다. 만 리를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단순히 피서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품에서 세속에 찌든 마음의 때까지 씻는다는 뜻이 담겼다. 김수장의 시조는 이 ‘탁족만리류’를 멋들어지게 읊어낸 작품이다. 시문에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부채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고상한 선비들은 ‘탁족만리류’란 시구가 적힌 합죽선으로 시원한 계곡 바람을 일으켜 무더위를 쫓으면서 풍진세상을 함께 경계했다. 피서를 즐기면서 교훈도 담은 셈이다.푹푹 찌는 더위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얌통머리'는 '얌체'로 변신 중?

    “에이~, 얌치머리 같으니….” “이 얌통머리야!” “이런 얌체를 봤나.” 이런 표현도 많이 쓰지만, 이 가운데 정상적인 표현은 ‘얌체’뿐이다. 나머지 둘은 불완전한 표현이다. 이들은 모두 한자어 ‘염치(廉恥)’에서 온 말이다.지난 호에서 ‘싸가지’가 쓰이는 용법에 관해 살펴봤다. 요약하면, “그 사람 싸가지야”라는 말은 어법적으로 허용된, 바른 어법이 아니다. 불완전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싸가지 없다”라고 해야 하는데 뒤의 부정어를 생략한 채 ‘싸가지’를 의인화해 쓰는, 의미 변화 중에 있는 말에 불과하다. 이 ‘싸가지 없음’이 아주 심해지면 ‘밥맛없음’이 된다. 이때의 ‘밥맛’도 ‘싸가지’와 비슷한 쓰임새를 보인다.‘얌체’는 ‘얌통머리 없는 사람’‘밥맛’은 글자 그대로 ‘밥에서 나는 맛’ 또는 ‘음식이 입에 당기어 먹고 싶은 상태’를 나타낸다. ‘밥맛(이) 좋다’거나 ‘밥맛(이) 있다/없다’라고 한다. 그 가운데 ‘밥맛 없다’를 붙여서 ‘밥맛없다’라고 한 단어로 쓰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아니꼽고 언짢아 상대하기가 싫다’란 뜻이 된다. ‘밥맛’의 본래 의미를 잃고 새로운 말로 바뀌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입말에서 “걔 정말 밥맛이야”라는 말도 쓴다. 이때의 ‘밥맛이다’는 ‘밥맛없다’와 같은 뜻으로 쓰는 것인데, 이런 말은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원래 “밥맛없어”라고 할 것을 뒤의 부정어를 버린 채 변형된 형태로 쓰는 것이지만 아직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