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14)
"커피 나오셨습니다" "5000원이십니다"류의 사물존대 표현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전에도 비슷한 오류가 일상에서 있었다.
"다음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같은 말을 흔히 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우리말에서 ‘되다’의 유용성은 매우 크다. 활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남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호에서 살핀 “좋은 하루 되세요”가 그런 사례다. 동사 ‘되다’의 쓰임새는 역사적으로 확장돼 왔다.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 당시만 해도 ‘되다’ 풀이에 ‘물건이 다 만들어지다’ 등 세 가지밖에 없었다. 1990년대 나온 국어사전들에서는 열 가지가 넘는 풀이로 넓어졌다."커피 나오셨습니다" "5000원이십니다"류의 사물존대 표현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전에도 비슷한 오류가 일상에서 있었다.
"다음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같은 말을 흔히 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시’는 주어를 높이는 말…사물에는 안 써
“5000원 되겠습니다” “다음 역은 서울역이 되겠습니다” 같은 표현은 괜찮을까? 어법에 틀리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되다’ 항목에 이들을 용례로 올리고 있다. ‘되다’는 어원적으로 ‘다(如)’에서 온 말이다(김민수 편, 우리말 어원사전). 쓰임새가 많이 확장됐다 해도 그 본질은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5000원 되시겠습니다” “다음은 서울역이 되시겠습니다”라는 말은 곤란하다. 이런 용법은 우리말 경어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사물존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어법은 크게 나눠 주체존대, 객체존대, 상대존대 방식이 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나오셨습니다’의 ‘-시’는 주체를 존대하는 데 쓰는 어미다. ‘선생님께서 오시었다’처럼 서술어미 앞에 온다고 해서 선어말어미라고 한다.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 높을 때 이 ‘-시’를 사용한다. ‘커피(가) 나오셨습니다’이니 ‘커피’를 높인 셈이다. 사물을 존대할 수는 없으니 이 표현이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습니다’는 상대방을 존대하는 요소다. 듣는 이가 말하는 이보다 윗사람임을 알려준다. 상대존대는 높임의 정도에 따라 ‘해라체’ ‘하게체’ ‘하오체’ ‘하십시오체’ ‘해체’ ‘해요체’ 따위가 있다. 그중에서도 ‘-습니다’는 ‘하십시오체’이다. 가장 높여 이르는 표현이다. 합쇼체라고도 한다.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함으로써 상대를 충분히 높인, 온전한 표현이 된다. 마찬가지로 5000원이나 서울역에도 ‘-시’를 붙이지 못한다.
“5000원이십니다”는 5000원을 높인 격
“커피 나오셨습니다” “5000원이십니다”류의 사물존대 표현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전에도 비슷한 오류가 일상에서 있었다. “다음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같은 말을 흔히 쓴다. 이 역시 사물존대의 오류다.
‘아버지가 집에 있다’는 비문이다. 이를 바로 쓰면 어떻게 될까? 선어말어미 ‘-시’를 써서 “아버지는 집에 있으십니다”로 바꿔보자. 여전히 어색하다. “아버지께서 집에 계십니다”가 바른말이다. 주어인 아버지를 높이기 위해 주격조사 ‘-는’을 ‘-께서’로, 존재사인 ‘있다’를 ‘계시다’로 바꿔야 한다. ‘-께서, 계시다’가 주체존대의 한 요소다. ‘-ㅂ니다’는 듣는 이를 높이는 상대존대법의 하나다.
그러니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고 하면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높인 격이다. ‘말씀’과 ‘-님’을 통해 ‘교장 선생’을 충분히 높였다(이들은 어휘를 통해 주체를 존대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다). ‘말씀’ 자체는 존대의 대상이 아니므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우리 어법이다. 이를 주체를 살려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라고 하면 더 좋다. 형한테 돈이 많으면 “형님은 돈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한다. 이를 “형님은 돈이 많이 계십니다”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안에 ‘계실’ 수 있지만 돈은 ‘계실’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