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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라산'과 '한나산'… 남북은 왜 달리 쓸까요?

    우리가 아는 '한라산(漢拏山)'은 북에선 '한나산'이라고 한다. 한자 拏는 '붙잡을 나'자로, '나포(拿捕: 붙잡아 가둠)' 할 때 쓰인 글자다. 拿는 拏의 속자(俗字: 획을 간단히 해 더 널리 쓰이는 글자)다.평창동계올림픽은 선수들의 열전 못지않게 북한의 음악공연도 화제였다. 삼지연관현악단은 강릉과 서울에서 두 차례 공연을 통해 ‘노래련곡(연곡)’ ‘락엽(낙엽)’ 등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다. 비록 공연의 정치적 의미와 논란에 가려 부각되진 않았지만 거기엔 간과해선 안 될 게 하나 있었다. 달라진 남북한 말과 글의 일부가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가곡으로 알려진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은 주목할 만하다. 애초 이 노래를 몰랐던 사람일지라도 문맥으로 보아 ‘한나’가 ‘한라산’을 뜻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한나산은 본음, 한라산은 속음우리가 아는 ‘한라산(漢拏山)’은 북에선 ‘한나산’이라고 한다. 한자 拏는 ‘붙잡을 나’자로, ‘나포(拿捕: 붙잡아 가둠)’ 할 때 쓰인 글자다. 拿는 拏의 속자(俗字: 획을 간단히 해 더 널리 쓰이는 글자)다. ‘한나산’이 변해 지금의 ‘한라산’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속음(俗音)이라고 한다. 속음이란 한자 음을 읽을 때, 본음과는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을 말한다. ‘六月’이나 ‘十月’을 육월, 십월이라 하지 않고 유월, 시월로 읽고 적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우리말에는 이처럼 한자어 발음이 변해 굳은 게 꽤 있다. 그중에서도 희로애락(喜怒哀樂, 희노애락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덕담'은 웃어른이 건넬 때 쓰는 말이에요

    "복 많이 받으세요"는 새해 덕담으로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말. "한 해 동안 보살펴주셔서 고마웠습니다"라는 과거시제보다 '~ 고맙습니다'가 나은 표현입니다.2001년은 우리나라 경제가 암울했던 외환위기의 긴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온 시기였다. 그해 말 비씨카드사는 정체돼 있던 카드사업을 돌파할 새 광고를 준비했다. 한 해를 새롭게 맞는 시기에 맞춰 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메시지를 담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여러분, 부~자 되세요”란 광고 문구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새해 덕담’은 엄혹한 시절을 지나온 국민 가슴에 공감을 자아내며 일약 ‘국민 덕담’으로 떠올라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오래 사세요”는 자칫 거부감 줄 수도나흘 앞으로 설이 다가왔다. 설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은 설을 단지 명절로 쇠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전통적인 의식에선 여전히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정초에는 덕담을 준비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풍속 편’(1948)에 따르면 새해 덕담은 과거형의 말을 통해 그렇게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한국세시풍속사전). 이를테면 “올해엔 돈 많이 벌었다지요?” “올해는 장가갔다지?” 하는 형식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늘 말하던 것이 마침내 사실대로 됐을 때를 이르는 말)’고 했는데 그것과 같은 표현이다. 덕담에 주술적 힘을 담아 바라는 바를 전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이런 덕담은 찾아보기 힘들다. 풍속도, 말법도 세월 따라 바뀌는 것이라 예전에 그런 게 있었다고 해서 얽매일 필요는 없다.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부음보다 부고가 옳은 표현이죠

    우리 전통적인 장례 절차에 '호상'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호상은 '초상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책임지고 맡아 보살피는 사람'을 말한다.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이는 누구였을까? 정대일이란 사람이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조선팔도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실존 인물은 아니다. 가공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될 수 있었을까? 후대로 오면서 부풀려졌겠지만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그 이름이 부고(訃告)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護喪(호상) 丁大一(정대일)’로 쓰였다.상주 대신해 장례 절차 진행신문들은 지난 주초 ‘제약 1세대’로 알려진 정형식 일양약품 창업주의 별세 소식을 크게 전했다. 이와 함께 일양약품의 부고 광고를 게재했다. 이 부고는 요즘 보기 드물게 토씨 정도만 빼고 죄다 한자로 작성됐다는 점이 특이했다. 한자 의식이 점차 흐려져 가는 때라 이를 제대로 읽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중 하나로 쓰인 ‘護喪’도 눈에 띄었다. 이 말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우리 전통적인 장례 절차에 ‘호상’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호상은 ‘초상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책임지고 맡아 보살피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은 시절이 달라져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직접 주변에 부고를 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건 예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부모가 돌아가면 자식은 졸지에 ‘죄인’이 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곡(哭)을 하고 문상객을 받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그래서 양반가에서 상을 치를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역할이 호상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켕긴다'는 마음을 다잡을 때도 쓰죠

    화살을 쏠 때 시위에 화살을 걸어 힘껏 당기는데, 이걸 '켕긴다'고 한다. '켕기다'는 본래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연줄을 힘껏 당겨 단단히 켕기는 것이다.한 해를 시작하는 즈음엔 누구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진다. 그럴 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화두로 즐겨 올리는 말이 ‘해현경장(解弦更張)’이다. 낡은 줄을 걷어내고 새 줄을 팽팽하게 맨다는 뜻이다. 사사로이는 초심을 잃지 않고 각오를 단단히 할 때 꺼내드는 말이다. 정치적·사회적으로는 묵은 제도를 개혁해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쓴다. 중국 한나라 때 유학자인 동중서가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는 무제(武帝)에게 올린 글에서 유래했다.시위 한껏 켕기는 마음가짐이 말은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다는 그 의미도 새겨야 하지만 우리말과 관련해서도 살펴볼 게 꽤 있다. 현(弦)은 본래 활시위를 말한다. 시위란 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이다. 화살을 쏠 때 시위에 화살을 걸어 힘껏 당기는데, 이걸 ‘켕긴다’고 한다. ‘켕기다’는 본래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연줄을 힘껏 당겨 단단히 켕기는 것이다. 잔뜩 긴장을 하면 목줄기가 뻣뻣하게 켕기기도 한다. 여기서 쓰임새가 넓어져 ‘마음속으로 찜찜한 게 탈이 날까 봐 불안스럽다’란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거짓말한 게 켕겨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할 때의 그 ‘켕기다’다. 지금은 이 말을 이렇게 더 많이 쓴다.상현달(上弦-), 하현달(下弦-) 할 때도 이 ‘현’이 쓰였다. 순우리말로는 모두 반달이다. 이에 비해 쟁반같이 둥근, 꽉 찬 달은 온달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보름달이다. 달은 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잘생기다'는 형용사 같지만 동사예요

    '잘생기다'가 동사라고 해서 '잘생겨지는 중이다' '잘생겨라' 같은 표현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잘생기다'는 형태상 동사에 해당하지만 전형적인 동사의 특징을 갖추지는 않았다.지난 4일 국립국어원이 올해 3분기 표준국어대사전 정보수정 사항을 공개했다. 그중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잘생기다’였다. 품사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바꿨다. 누리꾼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웃했다. ‘잘생기다’에 동작성이 있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 아닌가? 이게 의문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잘생기다’를 동사로 분류해 왔다.의미는 품사 가르는 기준 안 돼국어에서 품사를 분류하는 기준은 단어 의미와 형태, 기능이다. 이때 의미는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객관적으로 품사를 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그보다 형태와 기능을 중심으로 살핀다.‘잘생기다’를 형용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의미가 동작이 아니라 상태를 나타낸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동작성이 있으면 동사,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면 형용사라고 구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별은 안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늙다’는 동사일까 형용사일까? 대부분은 ‘늙다’가 동작성보다 상태의 의미를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형용사로 보면 될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동사다. “너, 그렇게 고민 많이 하면 빨리 늙는다” 같은 데서 보듯이 동사의 대표적 활용 지표인 ‘-는다’가 가능하다.‘잘생기다’도 마찬가지다. 의미상으로는 상태를 나타내지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카드는 긋지 말고 긁으세요"

    '긁다'는 원래 '손톱이나 뾰족한 기구로 바닥이나 거죽을 문지르다'는 뜻이다. 근래에는 신용카드 등의 사용이 보편화되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됐다. '물건 따위를 구매할 때 카드로 결제하다'란 의미가 더해졌다.2018학년도 수능 국어시험 15번 문항은 어문규범 중 표준어에 대한 이해 정도를 묻는 내용이었다. 표준어와 표준발음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력을 갖췄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우리말 규범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1933년 ‘한글마춤법통일안’을 마련하면서 비로소 체계를 갖췄다. 이를 토대로 1936년 10월28일 ‘조선어표준말모음’이 나왔다. 이들이 모태가 돼 지금 쓰고 있는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이 틀을 잡을 수 있었다.단어는 시대 따라 의미 바뀌어표준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생성과 전파, 소멸의 단계를 거친다. ‘말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15번 문항 <보기>에 나온 ‘긁다’는 원래 ‘손톱이나 뾰족한 기구로 바닥이나 거죽을 문지르다’는 뜻이다. 여기서 점차 의미가 확대돼 ‘남을 헐뜯다’(그 착한 사람을 왜 긁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리다’(긁어 부스럼)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근래에는 신용카드 등의 사용이 보편화되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됐다. ‘물건 따위를 구매할 때 카드로 결제하다’란 의미가 더해졌다(2014년). 문법 용어로 이를 의미변화(확대, 이동, 축소 등이 있다)라고 한다. ‘카드를 긁다’는 ‘긁다’에 또 하나의 용법이 추가된 것이니 의미확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심적 쓰임새는 여전히 “등을 긁었다” 같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설사엔 '설사약'을 먹는다?

    요즘은 임대(돈을 받고 자기 물건을 남에게 빌려줌)와 임차(돈을 내고 남의 물건을 빌려 씀)를 구별 못하는 경우도 잦다. 사무실을 월세로 빌려 쓰는 사람이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다"고 말한다.최근 북한의 감염병 실태가 알려져 화제가 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5세 미만 아동의 사망 원인 중 설사가 20% 가까이 차지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설사병은 만연한데 치료약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설사약 잘못 먹으면 더 나와설사(泄瀉)가 심하면 그것을 멎게 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한다. 그것을 ‘설사약’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하나 생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사약은 설사를 멎게 하는 약일까, 설사를 나오게 하는 약일까?사전을 찾아보면 두 가지로 나온다. 우선 설사가 날 때 이를 멎게 하기 위해 먹는 약이다. 다른 말로 ‘지사제(止瀉劑)’라고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일부러 설사를 나오게 해야 할 때가 있다. 대장내시경 등 의료적 필요에 따라 장을 비우기 위해, 또는 변비로 고생할 때 등이다. 이때 먹는 것도 설사약이다. 이를 ‘하제(下劑)’라고도 한다. 그러니 설사가 나올 때는 설명을 잘 해야 한다. 자칫 엉뚱한 설사약을 먹으면 오히려 더 심해진다. 이런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 설사약(설사를 멎게 하는 약)과 설사제(설사를 나오게 하는 약)를 구별해 쓰자는 주장도 일각에서 있다. 변비약이 변비에 먹는 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듯하다.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우리말이 안고 있는 모호성, 중의성 때문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지진 발생 '이유'는 '원인'으로 써야 맞죠

    이유(理由)는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는 까닭이나 근거’다. 이에 비해 원인(原因)은 ‘어떤 사물이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일으키게 하는 근본적인 일이나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전 풀이로는 쓰임새를 구별하기 어렵다.지난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대입수학능력시험까지 연기하게 하는 등 큰 피해를 불러왔다. 전문가들은 지진을 예측하기 위해선 단층 연구가 시급하다고 한다. 지구 표면을 이루는 지각은 여러 단층으로 이뤄졌는데, 이 단층들 간의 충돌이 지진의 이유로 꼽히기 때문이다. 해양판과 대륙판의 경계에 있는 일본 같은 데서 지진이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이유’는 까닭이나 구실, 핑계와 같아포항 지진을 설명한 위 도입문에는 ‘이유’가 두 번 나온다. 그런데 어감은 서로 다르다. ‘지진이 잦은 이유’는 자연스러운 데 비해 ‘지진의 이유’란 말은 어딘지 어색하다. 왜 그럴까? ‘이유’와 ‘원인’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유(理由)는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는 까닭이나 근거’다. 이에 비해 원인(原因)은 ‘어떤 사물이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일으키게 하는 근본적인 일이나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전 풀이로는 쓰임새를 구별하기 어렵다. 용례를 살펴보면 두 말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철수가 학교에 지각했다고 치자. 선생님이 철수에게 “오늘 왜 지각했지? 지각한 이유가 뭐야?”라고 물을 것이다. 이때 선생님은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상황에서는 어떨까? 멀쩡하던 다리가 갑자기 무너졌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다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