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과 호랑이는 그 연원이 다른 말이다. 범은 순우리말이고 호랑이는 한자어다.
'虎狼이(범 호+이리 랑+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는 호랑이가
더 익숙해 오히려 호랑이가 순우리말, 범이 한자어인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까랭이 나마리 발가숭이 안질뱅이 자마리 짬자리 초리 잠드래비….’ 모두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우리 땅에는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전국에 21개나 있었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 표준을 세움으로써 민족어의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했다. 1936년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내놓은 것은 그 시작점이었다. 그때 지금의 잠자리가 표준어로 자리잡았다.'虎狼이(범 호+이리 랑+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는 호랑이가
더 익숙해 오히려 호랑이가 순우리말, 범이 한자어인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호랑이’는 한자어, ‘범’은 순우리말
범과 호랑이의 운명도 이때 갈렸다. 범이 표준어로 채택됐고 호랑이는 비표준어로 밀렸다. 비표준어로 분류되면 이후 말의 세력이 약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범과 호랑이 관계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사람들이 범보다 호랑이를 더 많이 썼다. 그 결과 1957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최초의 국어대사전 <조선말 큰사전>에서는 범과 호랑이를 함께 표준어로 올렸다. 물론 사전 풀이는 여전히 ‘범’이 주된 말이었다. 호랑이는 쓰임새에 차이를 둬 ‘범을 특히 사납고 무서운 뜻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지금은 오히려 호랑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범은 잘 안 쓰는 말이 됐다.
범과 호랑이는 그 연원이 다른 말이다. 범은 순우리말이고 호랑이는 한자어다. ‘虎狼이(범 호+이리 랑+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는 호랑이가 더 익숙해 오히려 호랑이가 순우리말, 범이 한자어인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한자 의식은 희박해지고 거의 토박이말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란 말을 한다. 하도 가난해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기조차 힘들다는 뜻이다. 이때의 ‘풀칠하다’도 한자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다. ‘풀+칠(漆)+하다’ 구성이다. 漆은 ‘옻 칠’이다. ‘칠(漆)하다’라고 하면 ‘옻을 바르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그 쓰임새가 넓어져 지금은 ‘무언가 바르는 일’을 죄다 ‘칠’이라고 한다. ‘풀칠’도 거기서 왔다. ‘칠흑 같은 밤’이라 할 때의 ‘칠흑(漆黑)’ 역시 한자어다. 이를 자칫 ‘칠흙’으로 잘못 쓰기 십상이지만, 이 말이 한자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틀릴 일이 없다.
고유어 같은 한자어, 정확히 알고 써야
“어짜피 해야 할 일이라면 미리미리 하는 게 좋아.” 여기에도 잘못 쓴 말이 있다. ‘어차피’가 바른 말이다. 이런 오류는 모두 단어의 유래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어차피(於此彼)’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를 뜻하는 말이다. 차(此)가 ‘여기, 이쪽, 이것’을 뜻하고 피(彼)는 ‘저기, 저쪽, 저것’을 나타낸다. “차일피일 시간만 끌다”라고 할 때 이 ‘차’와 ‘피’가 쓰였다. 그러니 ‘차일피일’이라 하면 ‘이날 저날 하고 자꾸 기한을 미루는 모양’을 가리킨다. 이런 말들은 완전히 우리말화해 굳이 한자를 알고 쓸 필요는 없다. 다만 말의 유래와 의미를 알고 나면 글쓰기에서 어휘를 더 정확히,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일피일’을 쓸 때가 있고 ‘이날 저날’이 더 좋은 문맥이 있다.
‘여차여차하다’도 한자 ‘如此如此하다’인 것을 알면 이 말이 ‘이러이러하다’란 뜻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몇 가지 변이 형태가 있는데, ‘여차저차하다’와 ‘이차저차하다’는 정식 단어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표준국어대사전> 기준). ‘이러저러하다’란 고유어 표현이 제격이므로 이 말을 쓰는 게 좋다(다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여차저차하다’를 단어로 인정했다). ‘여차직하다’도 바른 표현이 아니므로 ‘여차하다’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