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도 좋은 말이 아니다.
정부에서 고시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 자료'(문화체육부, 1997년)를 보면
품절 대신 될 수 있으면 다듬은 말 '물건 없음' '없음'을 쓰라고 했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발생되다'는 잘못…'~일어났다', '~생겼다'가 더 좋죠
집 근처 족발집은 맛이 좋아 늘 손님이 붐빈다. 어느날 가게 앞에 안내문이 붙었다. 그 문구가 좀 이상하다. ‘품절현상이 자주 발생됩니다.’ 이런 문장은 우리말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쓴 게 아니다. 그저 한자어에 휩쓸려, 거기에 말을 맞춰 만든 어색한 표현일 뿐이다.

‘품절됐다’보다 ‘동났다’가 자연스러워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우리말을 비틀어 쓰는 사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선 어휘 사용이 자연스럽지 않다. ‘발생하다’는 자동사다. ‘무엇이 발생하다’가 기본형이다. 굳이 ‘-되다’를 쓸 필요없는데 습관적으로 ‘-되다’를 사용한다.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했다’ ‘공사장에서 발생한 소음’ 식으로 쓰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

‘-되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말을 피동으로 만드는 접미사다. 자동사는 주어의 동작을 나타낼 뿐 객체를 필요로 하지 않아 피동형으로 쓸 이유가 없다. 서술어를 고유어로 바꿔보면 이런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건이 터졌다’ ‘화재가 일어났다’ ‘공사장에서 생긴 소음’이라 하는 게 본디의 우리말이다. ‘발생하다’란 말은 ‘터지다, 일어나다, 생기다’ 같은 토박이말을 대체한 한자어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품절현상이 자주 생깁니다’라고 하면 훨씬 자연스럽다.

‘품절’도 좋은 말이 아니다. 정부에서 고시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 자료’(문화체육부, 1997년)를 보면 품절 대신 될 수 있으면 다듬은 말 ‘물건 없음’ ‘없음’을 쓰라고 했다. ‘고쳐진 행정용어 고시 자료’(총무처·문화체육부, 1996년)에서는 ‘동남’ ‘동이 남’을 제시했다. ‘품절’은 비교적 널리 쓰는 말이라 비록 일본어투일지라도 굳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생각해볼 거리는 우리 서술어에 ‘동나다’란 멋진 말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고유어는 예전부터 써오던, 누구에게나 입에 익은 말이라 글에 감칠맛을 더한다.

몸에 익은 고유어 자주 써야 우리말 강해져

문장 구성도 허술하다. ‘현상’을 주어로 잡으니 억지스러운 문장이 나왔다. 주체를 살려 쓰는 게 중요하다. 그게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드는 요령이다. 품절이란 동나는 것이므로 ‘물건이(또는 OO가) 자주 동납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쓸 때 우리말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고 말 자체도 오른다.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어 중에 고유한 서술어를 살려 쓰면 더 좋은 말이 많다. 의미가 명료해지고 좀 더 친숙한 표현이 된다. ‘발전’을 예로 들어보자. 이 말은 본래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업이 크게 발전하고, 나라가 발전했다 식으로 쓰는 게 전형적 쓰임새다. ‘발전’이란 단어에는 본래 긍정자질이 담겼다. 근데 이 말에 ‘일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다’란 뜻의 쓰임이 더 있다. ‘사태의 발전 양상을 보니’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발전했다’ ‘노사 갈등이 파업으로 발전했다’ 등에서는 이런 의미다. 이때는 ‘발전’의 의미자질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발전했다’보다는 ‘~어른 싸움으로 커졌다’라고 하는 게 더 우리말다운 표현이다.

‘한·일 갈등이 경제전쟁으로 비화했다’란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를 ‘비화됐다’로 쓰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 서술어를 고유어로 바꿔보면 동사의 자질이 드러난다. ‘비화(飛火)’는 곧 번지는 것이다. 그러니 ‘한·일 갈등이 경제전쟁으로 번졌다’라고 하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다. 서술어가 자동사임도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