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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외래어 남발은 글의 의미 전달을 방해하죠

    지난여름 어린이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통학차량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어린이가 폭염 속에 갇혀 사망하는 일까지 생겼다.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 성동구에서 안전장치를 한발 앞서 도입했다. 이름이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이었다.표현은 어색하고 뜻도 잘 드러나지 않아“서울 성동구청 관계자가 2일 성수동 경일고등학교에서 어린이집 차량 30여 대에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날 행사를 대개 이런 식으로 전했다. 장치에 붙인 표지문의 문구도 난감했다. ‘전원 하차 후 태깅해 주시기 바랍니다.’ 좀 더 쉽게 쓰는 방법은 없었을까?이 ‘어린이 보호장치’는 미국, 캐나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우리에겐 낯선, 처음 도입되는 장치다. 외래 용어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문화로 소화해 더 좋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잠자는 아이 확인장치’나 ‘어린이갇힘 방지장치’ 정도면 어땠을까? 또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본다면 ‘어린이안전 관리장치’로 해도 무난했을 듯하다.외래어 사용을 가능한 한 줄이자는 것은 단순히 영어투라서 또는 일어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요즘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꽤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말다운,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외래어 남용은 ‘건강한 글쓰기’ 관점에서 병적 요소다. 글의 명료성과 간결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의미 전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치하하다'보다 '칭찬하다' '격려하다'가 옳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하사품’이란 게 있었다. 명절이나 특별히 기념할 일이 있을 때 관련 단체나 소속원들에게 하사품 또는 하사금이 지급됐다. ‘하사(下賜)’란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주는 것을 말한다. 조개 패(貝: 돈, 재물을 뜻한다)가 들어간 ‘사(賜)’가 주다, 베풀다란 뜻을 담고 있다. 왕조시대의 용어라 지금은 이런 말을 쓸 이유도 없고, 잘 쓰지도 않는다.일상의 언어 사용해야 ‘좋은 글’그 시절에는 ‘금일봉’(金一封: 금액을 밝히지 않고 종이에 싸서 봉해 주는 상금)이니, ‘(노고를) 치하’(致賀: 남이 한 일에 대해 고마워하고 칭찬함)한다느니, ‘시달’(示達: 상부에서 하부로 명령이나 통지 따위를 문서로 전달함)한다느니 하는 말도 많이 쓰였다. 요즘도 쓰이는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은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권위적 표현이라는 것이다.지금은 이런 말을 쓴 글이 많이 사라졌다. 말글에 대한 언중(言衆)과 언론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일봉은 상황에 따라 축하금, 격려금, 성금, 기부금 등 구체적인 말로 쓰면 된다. ‘치하하다’도 격려하다, 칭찬하다, 고마워하다 식으로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다. ‘시달하다’는 전달하다, 권고하다 등 좀 더 쉽고 편한 말로 쓰는 추세다.보도자료 등에서 이른바 ‘관급(官給) 용어’로 쓰이는 ‘실시하다’도 마찬가지다. ‘일제 조사(단속) 실시’ 같은 표현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사, 단속 따위는 동작성 명사라 그 자체로 서술어 기능을 한다. ‘일제 조사(단속)’라고 하면 충분한 말이다.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입장'을 자주 쓰면 글이 모호해져요

    일자리 창출이 우리 경제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고용참사’란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이와 관련한 언론보도문 가운데 다음 같은 유형의 문장이 꽤 있다. “청와대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큰 틀의 변화는 없지만 상황에 따라 정책수단을 수정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목해야 할 곳은 서술어로 쓰인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이다.의미 모호하고 우리말 구조 망가뜨려여기에 ‘입장’이 왜 들어갔을까? 이어지는 문장에서 청와대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이 근본적인 방향성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분명하게 그리 말했으니 ‘~있다고 밝혔다’라고 하면 될 일이다. 간결하고 알아보기도 쉽다. 상투적으로 ‘입장’을 가져다 붙이는 것은 잘못된 글쓰기 습관 탓이다.지난 3월 한창 ‘미투 운동’이 펼쳐질 때도 이런 오류가 많았다. 이런 것을 보면 ‘입장’은 어딘지 찜찜한 상황에서, 말하기 곤혹스러운 처지를 드러낼 때 자주 쓰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입장’은 대표적인 일본어 투다. 그러나 딱히 외래어 투라고 해서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이 말의 문제점은 두 갈래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말에 대한 폐해다. 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입장’은 우리말 문장을 왜곡한다.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쓰는 게 가장 좋은 글쓰기 방법이다. 그런데 굳이 ‘입장’을 넣어 말을 비틀어 쓴다. 우리말 구조를 망가뜨리는 일이다.또 하나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막는다는 점이다. ‘입장’은 모호한 말이다. ‘처지, 형편, 속셈, 의견, 태도, 생각, 주장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모던뽀이'에서 'X세대'…진화하는 우리말

    우리 사회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상전벽해와 같은 발전을 이뤄왔다. 말과 글도 이에 못지않은 변화를 겪었다. “근일에 와서는 조선에서도 ‘모던껄’이니 ‘모던뽀이’니 하는 말이 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진정한 의미의 ‘모던’은 아즉 업다고 생각한다.” 동아일보는 1929년 5월 25일자에서 당시 새로 등장한 모던걸, 모던보이의 행태를 이렇게 전했다. 한글 맞춤법도 없던 시절이다 보니 표기는 뜻만 통하면 될 정도였다.사전에는 말과 함께 사회 변천 담겨‘모던껄’ ‘모던뽀이’는 1920~1930년대 선진문물 유입과 함께 유행을 선도한, 지금으로 치면 신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신문에선 이를 줄여 모껄, 모뽀 식으로도 썼으니 언론의 약어 선호는 꽤나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경성의 모던뽀이들은 머리에 ‘포메드’(포마드)를 바르고 ‘맥고모자’(밀짚모자)로 한껏 멋을 낸 뒤 ‘끽다점’(찻집)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이런 말들은 모두 1940년 문세영의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단어가 됐다.새로운 유행의 흐름은 1950년대 ‘단스바람’으로 이어졌다. 당시 큰 인기를 끈 영화 ‘자유부인’의 영향으로 댄스 열풍이 분 것이다.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인 <큰사전>(한글학회, 1957년)을 비롯해 이즈음 간행된 사전은 ‘단스’ ‘단스홀’ ‘유한마담’ 등과 같은 낱말을 실었다. 춤바람 풍조는 1982년 민중서림의 <국어대사전>에서 올린 ‘제비족’으로 이어졌다.1960~1970년엔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과 히피문화 등 자유를 중시하는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장발족’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같다'를 남발하는 글은 잘못된 거죠

    “경직된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지만 선수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잘해준 거 같다.” 2018 아시안게임에서 선동렬 야구 국가대표 감독이 우승한 뒤 한 말이다. 선수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렸다. 그런데 끝말이 자꾸 귀에 거슬린다. 잘했으면 잘한 것이지 ‘잘한 거 같다’는 무슨 뜻일까?느낌 나타내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벌집 쑤신 것 같다’란 말이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느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란 말도 많이 쓴다. 다 괜찮은 표현들이다. 그런데 ‘엄청 좋은 것 같다’느니, ‘기쁜 것 같다’ ‘슬픈 것 같다’ 따위는 매우 어색하다.‘같다’는 10여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는 것’ ‘-을 것’ 뒤에 쓰여 추측, 불확실한 단정의 뜻을 나타내는 용법이다. ‘사고가 난 것 같다/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처럼 쓰는 게 전형적인 용법이다. 이 말은 또 ‘그렇게 느껴지는 바가 있음’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날씨가 좋아 고기가 잘 낚일 것 같아” 등이 그런 것이다.‘같다’는 확실치 않을 때, 자신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입말에서도 공식적 대화에서는 쓰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수사학적으로는 완곡어법의 하나로 사용된다. 하지만 요즘 글쓰기에 보이는 ‘~인 것 같다/같아요’ 표현은 그런 것과도 상관이 없다. 그저 잘못 익힌 말투가 글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예쁜 거 같아요, 아픈 거 같아요, 화나는 거 같아요, 맛있는 거 같아요.’ 느낌을 나타내는 감정어는 ‘같다’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다 강세부사 ‘너무&r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2) '가지다'를 다른 말로 바꿔 보자

    문장을 쓰는 방식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일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이 올 수 있다. 모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가지다’라는 함정을 피해야우리가 글을 이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파악해서 아는 것보다 주로 통합체상의 맥락을 통해 이뤄진다. 어떤 말 뒤에 뭐가 올지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단어들 간에 서로 어울리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합 체계가 단단할수록 언어의 생태계는 건강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말 체계를 위협하는 말 ‘가지다’를 살펴보자.‘그는 지난 3일 모교인 OO대를 찾아 후배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이날 대학 본관 200호 강의실서 가진 특강엔….’언제부터인지 ‘~기회를 가지다’란 문구가 우리말에서 상투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잘 들여다보면 매우 어색하다.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보다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이를 ‘(후배들과)만났다’고 하면 더 좋다. 훨씬 간결해진다. 이어지는 ‘~에서 가진 특강’도 ‘~에서 한 특강’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1) '만들다'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언어를 다듬는 데는 조화롭고 아름다우며 정결하고 정미하게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 형태가 다양해 한 가지로 개괄할 수 없고, 내용이 명료해 여러 가지로 나눠지지 않으며, 형태와 내용이 적절하게 알맞아야 합니다.”(이건창, ‘조선의 마지막 문장’) 조선 후기 3대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건창(1852~1898)이 말하는 작문 비법 한토막이다. 학자이자 문신인 여규형이 작문에 대한 가르침을 달라고 청하자 편지로 답하는 형식을 빌려 썼다.10여 가지로 쓰는 ‘만들다’, 의미 모호해그의 문장론은 요즘의 글쓰기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 지금의 눈으로 해석하면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다양한 ‘말’을 쓰되 ‘뜻’이 명료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문장을 병들게 하는 표현들을 살펴보자. 언제부터인지 이런 말들이 시나브로 널리 퍼졌다.△어린이들이 ‘한가위 음식 만들기’ 체험행사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팔꽃이 자라면서 창문에는 그늘이 만들어져 시원했다. △시민도 정부도 행복한 지속가능한 해법을 만들었다. △실내에서 운동을 하도록 체육관을 만든다.예문에는 서술어로 모두 ‘만들다’가 쓰였다. 이 말이 왜 문제가 될까?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은 올림말 ‘만들다’에 13개의 풀이를 올렸다. 뜻풀이 첫 항목은 ‘노력이나 기술 따위를 들여 목적하는 사물을 이루다’이다. ‘음식을 만들다/오랜 공사 끝에 터널을 만들었다/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다’ 같은 게 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학회 110돌… 되돌아 보는 우리말 수난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는 어디일까? 1908년 8월31일 서울 돈의문 밖 봉원사에 하기 국어강습소 졸업생들을 비롯해 우리말 연구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아는 주시경 선생이 있었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겨레 말글을 지키고 살려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자리에서 ‘국어연구학회’가 탄생했다.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한글학회가 지난 8월31일 창립 110돌을 맞았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1911년 배달말글?음, 1912년 한글모, 1921년 조선어연구회, 1931년 조선어학회란 이름을 거쳐 1949년 지금의 한글학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때의 개명은 남쪽의 한국과 북한이 ‘대한’과 ‘조선’으로 말을 달리 사용하는 분단 현실도 한 원인이었다(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한글 새소식’ 552호).한글과 우리 글자, 우리말, 국어의 수난사는 곧 우리 민족의 질곡의 역사였다. 그중에서도 1942년 터진 ‘조선어학회 사건’은 우리말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갔다.그 발단은 다소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그해 여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한 청년이 조선총독부의 지령인 단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불순분자 혐의로 청년의 집을 수색하던 일제 경찰은 그의 조카가 2년 전에 쓴 일기장에서 “오늘 국어를 사용하다가 벌을 받았다”란 글귀를 찾아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는 일본어가 곧 ‘국어’였다. 일경으로서는 ‘국어인 일본어를 썼다’고 해서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오자 담임교사를 내사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실제론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를 사용했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