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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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임대료'를 어찌 '체납'하나요?
“SK바이오, 미 노바백스 백신 ‘위탁생산’…전 세계에 공급” “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으로 돌파구 찾는다” “르노삼성차는 2020년 닛산의 로그 ‘위탁생산’이 종료되면서 일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위탁/수탁’은 분명히 구별되는 말이다. 위탁은 남에게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다. 반대로 수탁은 남한테서 무언가를 맡는 것이다. 예문에서는 모두 ‘위탁생산’이라고 했으니 각각의 문장 주어가 남한테 생산을 맡겼다는 뜻이어야 정상적인 어법이다. ‘임대료’는 주인의 용어…빌린 쪽에선 ‘임차료’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니다. 실제로는 SK바이오가 노바백스의 백신 생산을 맡은 것이다. 인텔이 반도체 생산을 남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맡는다는 뜻이고, 르노삼성차가 닛산의 로그 생산을 맡았다는 얘기다. 그러니 모두 ‘위탁생산’이 아니라 ‘수탁생산’인 셈이다. 위탁생산과 수탁생산의 차이를 개념상으로는 알고 있을지 몰라도 막상 실생활이나 현업에서 쓰다 보면 마구 뒤섞이는 것 같다. 요즘 우리말에는 이처럼 본래의 용법을 잃어버린 채 엉뚱하게 쓰는 말들이 꽤 있다. 이른바 ‘방황하는 말’들이다. 단어의 변별성을 잘 살려 써야 논리적이고 합리적, 과학적 글쓰기가 이뤄진다.일상에서 흔히 쓰는 ‘임대/임차’도 단어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말 중 하나다. ‘임대(빌려줌)’와 ‘임차(빌려 씀)’는 명백히 다른 말인데도 이를 두루 ‘임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의 말인가’를 생각하고 써야 한다. ‘임대&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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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증가 '효과'가 있다고 쓰면…
말에도 생태계가 있다. 그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우리말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지재권 면제’는 어휘 측면에서 우리말을 교란한 사례다. 단어(‘권리’와 ‘면제’) 간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부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이번 호에서는 글쓰기에서 단어들의 선택과 나열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지는지 좀 더 알아보자. 부정적 문맥에 ‘효과’ 쓰면 의미 어색해져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과정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먹다, 익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계열체)이 올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권리’라는 단어는 행사하거나 보호, 유예, 포기 같은 말과 어울린다. ‘의무/책임’은 면제하거나 부과, 추궁, 회피 등과 호응한다. ‘지재권 면제’라는 표현이 어색한 까닭은 이런 ‘어휘 선택과 구성’의 질서가 무너진 데서 온다.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자주 발생한다.‘효과’ 또는 ‘영향’은 누구나 아는 단어다. 기초적인 어휘인데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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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면제'할 수 없어요
지난 5월 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즉각 전 세계 언론에 알려져 큰 반향을 몰고 왔다. 백신의 특허 보호를 풀어 세계 각국에서 복제 백신을 쉽게 만들게 하면 백신 보급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면제란 책임·의무를 지지 않게 하는 것한국시간 5월 6일 새벽 4시14분. 연합뉴스가 로이터통신을 인용해 관련 소식을 속보로 띄웠다. 핵심어는 ‘지재권 면제’였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후속 보도를 하면서 ‘백신특허 면제/포기/유예/해제/중단’ 등 용어상의 혼란을 보였다. ‘특허 면제’와 ‘포기’ 또는 ‘유예’ 등의 표현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어법상의 타당성만 살펴보기로 하자.우선 ‘권리를 면제하다’라는 표현은 이상하다. 직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 ‘권리’와 ‘면제’를 결합시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면제’라는 말은 책임이나 의무 같은 것을 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세금 면제, 지하철 요금 면제 같은 데에 이 말을 쓴다. 그런데 권리란 통상 책임이나 의무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책임 또는 의무는 면제할 수 있어도 권리는 면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특허(지재권) 면제’ 같은 말은 우리 어법상 이치에 맞지 않는, 성립하기 어려운 표현인 셈이다.외신을 통해 들어온 원어는 ‘waiver(웨이버: 권리 등의 포기)’다. 웨이버는 ‘권리와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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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개념의 틀에 갇힌 '두텁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정부 재난지원금도 이미 네 차례에 걸쳐 나왔다. 그 과정에서 나온 정부·여당의 “더 넓게, 더 두텁게”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단어 사용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언 맥락은 이랬다. “받는 액수도 더 높여서 ‘더 넓게 더 두텁게’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언론 보도는 달랐다. ‘더 두텁게’를 ‘더 두껍게’로 바꿔 전달했다. 왜 그랬을까? 신의·우애 등 추상적 의미로만 쓰게 제한‘두텁다/두껍다’는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이라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쓰임새가 꽤 까다롭다. 우선 ‘더 두텁게’란 표현은 지원금을 어떻게 준다는 것인지, 뜻이 금세 와닿지 않는다. 아마도 지원하는 액수를 넉넉하게, 많이 준다는 의미로 말한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두껍게’를 대체할 수 있을까? ‘두텁게’ 지원하는 것도 모호한데, ‘두껍게’ 지원한다는 것은 아예 어색하기까지 하다.‘두텁다’의 전형적 용법은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직원과 고객, 지역사회와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는 기업일수록 위기 회복력이 빠르고, 생산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상공의 날’ 기념식 발언인데, 이때의 ‘두터운 신뢰’ 같은 게 대표적 사례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두텁다’는 이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한정돼 쓰인다. 매우 제한적인 쓰임새다.그러다 보니 언어 현실과 자주 충돌한다. ‘더 두텁게&r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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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니오' 말고 '예/아니요'로 답하세요
기업인들이 국회에 불려가 진땀을 빼는 것은 미국도 비슷한 모양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거대 정보기술(IT)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얼마 전 미 의회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다. SNS에서의 가짜뉴스 확산에 대해 집중추궁을 받으면서였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CEO들에게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며 일방적으로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예’ 상대어는 ‘아니오’가 아니라 ‘아니요’일상에서도 퀴즈풀이 등 ‘예/아니오’ 답변을 요구받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 이런 데 쓰이는 ‘예/아니오’는 실은 틀린 말이다. ‘예/아니요’라고 해야 바르다. “다음 물음에 ‘예/아니요’로 답하시오”와 같이 ‘예’에 상대되는 말은 ‘아니요’를 쓴다. 이때의 ‘예/아니요’는 각각 감탄사로 독립적인 단어다.우리말에서 ‘아니오’와 ‘아니요’는 서로 다른 말이다. 지난 호에서 살핀 ‘책요?/책이요?’의 관계와도 연관성이 있어 많이 헷갈리는 사례 중 하나다. ‘아니오’와 ‘아니요’는 어떤 상황에서 쓰일까? 다음과 같은 대화를 그려보자.“이게 당신 책이오?” “아니오.”(또는 “그건 내 책이 아니오.”) 이때의 ‘책이오/아니오’가 종결어미로 쓰인 ‘-오’다. 경어법으로는 ‘하오체(體)’다. 즉 ‘아니오’는 형용사 ‘아니다’의 활용형으로써, 어간 ‘아니-’에 하오할 자리에 쓰이는 종결어미 ‘-오’가 결합한 형태다. 하오체는 상대가 친구이거나 아랫사람일 때 격식을 갖춰 대접해 말하는 표현이다. 게다가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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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요' 대 '책이요'…언중의 선택은?
“우리 뭐 먹을까?” “저는 냉면이요.” 식당에서 들을 만한 대화다. “기름은 얼마나 넣을까요?” “가득이요.” 주유소에선 이런 말이 오간다.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이요’(냉면이요/가득이요)는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규범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현실언어에서는 활발히 쓰였지만, 공인된 어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책요?”로 쓰던 말…이젠 “책이요?”도 돼그러던 ‘-이요’가 지난 2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조사’라는 자격을 얻어 표제어로 올랐다. 문장 안에서 ‘주로 발화 끝에 쓰여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한다. 보조사란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말한다. ‘-은/는/도/만/까지/마저/조차/부터’ 같은 게 보조사다. 이들은 문장 안에서 때론 주격으로도, 목적격으로도 쓰이는 등 특정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아 격조사와 구별해 ‘보조사’라고 부른다.예전엔 그런 보조사 중 존칭보조사인 ‘-요’를 써서 “냉면요” “가득요”처럼 쓰던 말이었다. 이를 ‘-이요’로 하는 것은 비문법이었다. 지금은 두 가지 다 어법에 맞는 말이 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층 가세요?”라고 물어올 때 “10층이요”라고 해도 되고 “10층요”라고 해도 된다. “민준이가 올해 몇 살이지? 여섯 살이요/여섯 살요.” “너는 전공이 뭐니? 국문학이요/국문학요.” 이제는 모두 가능하다.이는 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 규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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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비트는 서술어 '전망이다'
지난 호에 이어 우리말 문장을 왜곡하는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관형어를 많이 쓰면 필연적으로 명사구 남발로 이어지고, 이는 문장의 리듬을 깨고 글을 허술하게 만든다. 부사어를 살려 쓰면 동사·형용사가 활성화돼 문장의 구색이 갖춰지고 글에 운율이 생긴다. 짜임새 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힘 있고 매끄럽다. 주어와 서술어 호응하지 않아 비문관형어를 남발하는 현상은 다양하게 발생한다. 다음 문장을 비교해보자.①그는 내일 떠날 ‘계획이다’. ②그는 내일 떠날 ‘전망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명사문인데, 두 문장은 비문 여부의 판단이 좀 다르다. ①은 서술어가 주어의 동작,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동사문으로 바꾸면 ‘그는 내일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다’로, 이게 기저문장이다. 그에 비해 문장 ②의 서술어 ‘전망이다’는 주어 ‘그’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①과 같이 ‘그는 내일 떠나려고 전망하고 있다’로 해선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다. ‘전망’의 주체는 제3의 누군가로 인식되는데, ‘그’가 주어인 문장에서 서술어로 행세하고 있으니 마치 머리 따로 꼬리 따로인 셈이다. 비문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오류는 글쓰기에서 흔히 일어난다. ‘수출이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 분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물가가 오를 전망이다’, ‘대북 관계가 악화될 전망이다’ 등이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이다’ 부분을 ‘~ㄹ 것으로 보인다’, ‘~ㄹ 것으로 전망된다’, ‘~ㄹ 것으로 예상된다’처럼 피동형으로 바꿔 동사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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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라고?
2018년 11월 나온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저출산 극복이 사회적 현안이 된 지 오래된 터라 신문들은 그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수많은 관련 기사 가운데 <국민의 절반 이상 ‘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혹시 이런 문장을 보면서 아무 이상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필수 아닌 선택’은 무슨 뜻일까? 이게 어색하게 보였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라’를 써야 할 데에 ‘아닌’ 남발‘무엇(이) 아니라 무엇’ 또는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쓰던 말이었다. 이 표현이 요즘은 ‘무엇 아닌 무엇’으로 쓰인다. 이른바 우리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사어의 관형어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어법의 변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잘못된 글쓰기 습관 탓으로 돌려야 할까.글쓰기에서 관형어 남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니라’와 ‘아닌’의 관계는 그런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부사어를 써야 할 곳에 습관적으로 관형어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아 모국어 화자들이 더 이상 어색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전북 익산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유턴 기업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국내가 아닌 해외’가 됐을까? 이런 표현은 정통 어법에 익숙한 사람에겐 낯설다. ‘해외’를 강조하려다 보니 ‘국내가 아닌’을 수식어로 덧붙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내가 아닌 해외’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적어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라고 써야 한다. 그게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