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특별한 조건이 없다면 받침이 뒤에 오는 모음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특별한 조건'하에서는 발음이 첨가되거나 바뀌는 등 음운변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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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대통령선거를 치러 올해 큰일 하나를 마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곧이어 지방선거라는 또 다른 큰일을 앞두고 있다. ㉠“그는 큰일을 맡길 만큼 믿음직하다.” ㉡“아드님 장가보냈으니 큰일 하나 치르셨습니다.” ‘큰일’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어법적으로는 간단치 않다. 형태는 같지만 두 예문에서 쓰인 ‘큰일’은 서로 의미가 다르다. 발음 또한 다르다. 하나는 [크닐]이고 다른 하나는 [큰닐]이라고 한다. ‘막일, 담요, 신여성’ 등 발음할 때 ‘ㄴ’음 첨가돼말의 태생으로 보면 둘 다 ‘큰(大)+일(事)’이 결합한 합성어다. ㉠에서는 통상 ‘중대한 일’이라고 하는 의미를 담았다. 흔히 “큰일 났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큰일’이라고 하면 이 의미로 쓰인다. ㉡의 ‘큰일’은 ‘결혼, 회갑, 초상 따위의 큰 잔치나 예식을 치르는 일’을 말한다. “잔치와 같은 큰일이 있을 때 도와주는 것을 부조(扶助)라고 한다”처럼 쓴다. 한자어로는 두루 ‘대사(大事)’로 통하는데, 순우리말에선 각각을 구별한다.

두 말을 구별하는 핵심은 발음에 있다. ㉠[크닐]과 ㉡[큰닐]로 달라진다. 그러니 “작은 일에 꼼꼼해야 큰일[크닐]도 잘한다”고 하고, “덕분에 큰일[큰닐] 무사히 치렀습니다”라고 말한다. ‘잔손이 많이 드는 자질구레한 일’을 뜻하는 ‘잔일[잔닐]’은 ‘큰일[큰닐]’에 대응하는 말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이를 [자닐]이라고 하지 않으므로 [큰닐]-[잔닐]로 묶어 외우는 게 요령이다.

어떻게 똑같은 음운환경에서 발음이 달라졌을까? 그 차이에는 우리말 어법의 원리가 담겨 있다. 우선 우리말에서 특별한 조건이 없다면 받침이 뒤에 오는 모음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큰+일’의 결합에서 [크닐]로 발음하는 게 그것이다. ‘절약’이나 ‘석양/답안/민요’ 등 몇 개 단어만 읽어봐도 금세 드러난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연음(連音)해 발음하는 게 많다고 알아두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한 조건’하에서는 발음이 첨가되거나 바뀌는 등 음운변동이 일어난다. ‘큰일[큰닐]’의 경우가 그렇다. ①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②앞말에 받침이 있고 ③뒷말의 첫음절이 ‘이, 야, 여, 요, 유’로 시작하는 경우, ‘ㄴ’음을 첨가해 발음한다는 게 표준발음법 규정이다(제29항). ‘막일[망닐]’을 비롯해 ‘내복약[내봉냑], 담요[담뇨], 신여성[신녀성], 식용유[시굥뉴]’ 등을 발음해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ㄴ’음 첨가 현상이다. 고유명사 ‘윤석열’은 [서결] 아닌 [성녈]로 발음‘큰일’이 [크닐]과 [큰닐]로 달라지는 것은 어떤 규칙에 의한 게 아니라 단어의 실제 발음을 반영한 결과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표기와 발음이 다른 단어는 개별적으로 발음을 표시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말 발음에서 연음과 ‘ㄴ’음 첨가 현상에 관해 대략적인 개념이 섰다면, 이를 응용해보자. 20대 대선에서 새 대통령으로 뽑힌 윤석열 당선인 이름을 어떻게 발음할지에 관한 논란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여전히 [성녈]과 [서결]이 뒤섞여 발음된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지만 표준발음법을 살펴볼 겸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그 안에 담긴 우리말 어법이 여러 가지다.

실마리를 풀기 위해 우선 이름의 표기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의 이름은 ‘주석 석(錫), 기쁠 열(悅)’이란 점을 염두에 두자. 이를 ‘윤석렬’로 잘못 적는 이들도 있다. 표기는 발음을 따라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일 것이다. 많은 이가 [윤성녈] 발음에 이끌려 두음법칙을 생각해 ‘윤석렬’로 적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고유명사는 정확히 적어주는 게 생명이다. 가령 우리 정부 부처 가운데 산업 발전과 무역 증대 등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다. 이를 무심코 산업자원부라고 해선 곤란하다. 심지어 지식경제부니 상공부니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그리 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성의 없는 일이다. 다음 호에서 발음에 담긴 표준발음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