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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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민족 최대의 명절은 추석? 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궁금해지는 게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은 추석일까 설날일까?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이….” 언론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관련 보도를 쏟아낸다. 설 때가 되면 같은 문장에 ‘추석’ 대신 ‘설날’만 바꿔 넣은 말이 반복된다. 그래도 우리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명절은 법 아니라 관습으로 지켜온 행사그만큼 우리 인식에 추석과 설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양대 명절로 자리잡았다는 뜻일 게다. 실제로 이동인구에도 큰 차이가 없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8년 내놓은 ‘10년간 명절연휴 통행실태’에 따르면 추석 3600여만 명, 설 3200여만 명이었다(2017년 기준).추석이나 설을 명절이라고 하는데, 절기(節氣)와는 어떻게 다를까? 또 기념일이나 국경일, 공휴일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별로 쓸모없을 거 같은 ‘알쓸신잡’류 우리말 몇 가지를 알아보자.우선 명절은 오랜 관습에 따라 해마다 일정하게 지켜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를 말한다. 국경일과 기념일이 법에 의해 정해진 날임에 비해 명절은 ‘관습’에 의한 것이다.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잡아 일정한 행사를 하면서 생겨난 풍속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 민족의 삶과 함께 해 그 자체로 문화가 된 기념일, 그것이 명절인 셈이다. 그래서 명절은 살아가면서 ‘지내는’ 것이고, 국경일과 기념일은 때가 되면 ‘돌아오는’ 날이다. 명절은 또 계절의 바뀜을 알려주는 ‘절기(節氣)’와도 구별된다.우리 명절로는 설과 추석을 비롯해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백중, 동짓날 등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중 동짓날은 24절기에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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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AI'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전 세계 이목을 끌었던 인간 대 인공지능(AI) 간 반상 대결이 펼쳐진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맞붙은 이 대국은 우리 사회에 ‘AI 쇼크’를 불러왔다. 동시에 우리말에는 ‘AI’란 영문약자의 위세를 한껏 떨쳐낸 계기가 됐다. AI는 인공지능·조류인플루엔자 두 가지 뜻우리말 가운데 ‘말 대(對) 말’ 세력싸움으로 주목할 만한 것에 ‘AI(artificial intelligence)’와 ‘인공지능’을 빼놓을 수 없다. 둘 간의 판세가 팽팽하다. 보통은 효율성을 따져 영문약자를 선호하는데 이들 사이는 특이하다. 그 배경에는 AI가 두 가지로 쓰인다는 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과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가 그것이다.애초에는 조류인플루엔자로서의 AI가 인공지능으로서의 AI보다 더 많이 쓰였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97년께다. 초기에는 ‘조류독감’으로 불렸다. 이후 독감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어감이 가금(家禽: 닭 오리 등 집에서 기르는 날짐승) 산업에 타격을 준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따라 대체어로 나온 게 ‘조류인플루엔자(AI)’였다. 완곡어법 효과를 노린 용어인 셈이다.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인공지능으로서의 AI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그런 두 가지 용도로 인한 헷갈림(?) 때문인지는 몰라도 외래어 ‘AI’와 함께 우리말 ‘인공지능’도 꽤 자주 쓰인다. ‘이메일’의 벽을 넘지 못한 ‘전자우편’과 달리 ‘인공지능’이 ‘AI’를 밀어내고 단어로서의 위상을 굳힐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문약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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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커머스'와 '전자상거래'의 한판승부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우리 사회에 소비행태 변화를 촉발했다. 전통적으로 대형마트 등에서 대면 거래를 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비(非)대면 거래에 익숙해져야 한다. 온라인 시장이 확대되면서 필연적으로 떠오른 말이 ‘e커머스’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6월 3조4000억원을 투입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 네이버쇼핑을 뒤쫓는 e커머스 강자로 발돋움해 주목을 끌었다. 외래어와 다듬은말 ‘언어 시장’에서 경쟁e커머스는 ‘electronic commerce’의 약자다. 온라인상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을 말한다. electronic의 머리글자 e만 살리고 commerce는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적었다.e커머스가 우리말 체계에 등장한 것은 이미 20여 년 전이다. 1990년대 후반께부터 언론에서 ‘전자식 상거래(electronic commerce)’ ‘전자상거래’ ‘E-커머스’ ‘e커머스’ 등의 명칭으로 소개했다. 곧이어 다듬은말이 제시됐다. 국립국어원은 2001년에 순화한 용어 ‘전자상거래’만 쓰도록 했다(국어순화자료집). 하지만 살아 있는 말의 사용을 어느 한쪽으로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e커머스와 전자상거래는 여전히 ‘언어의 시장’에서 경합 중이다.지금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e커머스는 한글화해 ‘이커머스’로 표기가 굳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호에서 살핀, 초기의 ‘e메일’이 나중에 ‘이메일’로 자리 잡은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결국 ‘이커머스’와 ‘전자상거래’의 싸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굳이 ‘순화’의 관점을 덧씌우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로운 언어 시장에서의 경쟁에 자칫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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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다듬은말 '전자우편'에 대한 우울한 전망
1990년대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이메일’도 자연스럽게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말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툼’ 하나가 전개됐다. 그것은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기 위해 벌어진, 말과 말 사이의 세력 싸움이었다. 주인공은 ‘이메일’과 ‘전자우편’이다. 외래어 ‘이메일’에 대응해 20년 넘게 경쟁지금 우리가 ‘이메일’이라고 쓰는 이 용어는 처음부터 그리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electronic mail’의 약어인 이 말은 초기에 주로 ‘e메일(또는 ‘E메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e메일은 물론 영어 ‘e-mail’을 머리글자 e만 놔두고 나머지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외래어 ‘e메일’이 우리말 안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해 가자 곧바로 다듬은말이 나와 경쟁을 벌였다. 순화어로는 ‘전자우편’이 제시됐다. 1997년 전산기용어(국어순화용어자료집)를 비롯해 2002년 국어순화자료집에 이어 2012년 국어심의회 국어순화분과 회의에서 될 수 있으면 ‘전자우편’을 쓰도록 심의 확정했다.외래어 표기 지침을 정하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는 이보다 앞서 2000년 12월 회의에서 ‘이메일’을 인정했다. 당시 결정사항을 보면 이 용어 표기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전자 우편, E-mail, EM(electronic mail). ※‘이 메일’로도 쓰되 특수한 경우 ‘e메일’로 쓸 수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외에 누리편지, 전자메일, 전자편지 등 예닐곱 가지의 표기가 띄어 쓰는 경우와 뒤섞여 어지럽게 사용되고 있었다.그러던 게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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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 봉투엔 '단자'를 써야 제격이죠
코로나19 사태는 이미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경조사 문화도 그중 하나다. 결혼식장이든 장례식장이든 직접 찾아가서 하는 대면인사가 줄어들었다. 대신 마음으로 축하하고 위로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때 필요한 게 ‘봉투’다. 주위 친인척이나 지인 중 누군가 참석하는 이를 통해 마음을 전한다. 예전에 낱낱의 물품을 적어 보낸 데서 유래모바일 송금이 점차 늘긴 하지만 그러기엔 아쉬움이 크다. 직접 봉투라도 써서 전해야 그나마 참석지 못하는 마음이 풀릴 것 같다. 우리 문화에선 부조금을 넣는 봉투를 만들 때도 격식을 차렸다. 요즘은 봉투에 바로 돈을 넣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종이로 부조금을 싸서 넣는 게 우리 예법이다. 이 종이를 ‘단자(單子)’라고 한다.단자는 부조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돈의 액수나 선물의 품목, 수량, 보내는 사람의 이름 따위를 써서 물건과 함께 보낸다. 지금이야 경조사 때 부조를 대부분 돈으로 하지만, 옛날에는 현금보다 물품을 주로 보냈다. 이때 그 내용을 모아 쓴 속지를 봉투에 담아 함께 전했는데, 이게 단자의 유래다.‘단(單)’은 ‘홑 단’ 자로, ‘낱낱’의 의미를 뜻한다. ‘자(子)’는 크기가 작은 생활용품이나 도구를 나타내는, 접미사 같은 기능을 하는 말이다. 의자(椅子), 탁자(卓子) 같은 데 이 말이 쓰였다. 그러니 단자란 물건 하나하나의 목록, 즉 낱낱의 물품을 적은 종이를 가리킨다.‘단자’가 본래의 용어지만, 한자 의식이 점차 흐려지는 요즘 세대에 이 말은 제법 어려울 것 같다. 그냥 ‘속지’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속지란 편지 봉투 따위에 들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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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힘 있는 문장은 어디서 나오나?
신문언어가 이 땅에 선보인 지 벌써 1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글 전용으로 발행된, 최초의 민간 일간지 독립신문이 1896년 창간된 것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 그 오랜 세월 저널리즘언어는 간단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에 비해 독자들의 ‘신문언어 독법(讀法)’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판단어법과 전달어법의 차이 이해해야지난 호들에서 소개한 ‘단어의 선택’도 실은 신문언어를 읽는 여러 기법 중 일부에 해당한다. 저널리즘언어는 계도성, 규범성 등 공공재로서의 특성을 띠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그중 전달어법과 판단어법에 대한 이해는 독자들이 신문언어 독법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편의점 매출은 2012년 10조9000억원으로 처음 10조원을 넘어선 뒤 4년 만인 올해 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편의점 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시장 상황을 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얼핏 보면 별 문제 없이 흘려보내기 십상인 문장이다. 하지만 서술어 ‘예상된다’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글쓴이가 판단하고 규정하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판단어법). 신문언어에서, 특히 뉴스를 전달하는 언어는 객관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문장 형식 중 하나가 인용하는 어법을 취하는 것이다(전달어법). 가령 “편의점 매출은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처럼 쓰면 된다. 이를 “업계에서는 편의점 매출이 ~것으로 예상한다”처럼 써도 좋다.판단어법으로 쓸지, 전달어법으로 쓸지는 결국 그동안 우리가 살펴온, ‘누구의 말’로 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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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하는 北, 남한에 '호통쳤다'고?
‘단어의 선택’은 글쓰기의 시작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살펴본 사례들도 바로 이 단어 용법에 관한 것이었다. 글 쓰는 이가 구사하는 단어의 폭에 따라, 여기에 최적의 단어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 여하에 따라 글의 품질이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글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문장론적 방법은 무엇일까? ‘호통치다’는 ‘꾸짖다’는 뜻…北막말엔 옳지 않아글쓰기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나 표현을 쓰는 능력은 중요하다. 글에 신뢰감을 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각종 논문류를 비롯해 보고서, 설명서 등 실용문을 작성할 때 더 그렇다. 하지만 ‘객관성’은 상대적 개념이라 이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 비교적 검증된 방식이 공인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가령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봉기’ 등 비슷비슷한 용어 앞에서 무엇을 쓸지 고민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동학농민운동’을 선택하면 된다. 예전에는 ‘제주도 4·3폭동’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정부에서는 이를 버리고 ‘제주도 4ㆍ3사건’으로 정리했다. ‘폭동’이란 표현이 자칫 지역주민 전체를 폭도로 몰아 사건 자체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5·16혁명’이라 쓸지‘5·16쿠데타’로 쓸지 망설인다면 불법적 찬탈의 의미를 배제한 ‘5·16 군사정변’을 쓰는 게 좋다. 모두 교육부에서 채택한 교과서 편수용어라 공공성을 확보한 말이다.‘천황’은 일본에서 그 왕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 우리 언론에서 또는 국민이 천황이라 할지, 일왕이라 표기할지에 관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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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과 ‘이른바 전승절’의 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승절(7월 27일) 67주년을 맞아 군 지휘관 주요 성원들에게 ‘백두산 권총’을 하사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지난해 이즈음 우리 언론들은 노동신문 보도를 인용해 북한 지도부의 동향을 이렇게 전했다. 문장 안에는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띈다. ‘이른바’는 ‘남들이 그리 말하더라’라는 뜻 더해그중에서도 ‘전승절’은 이 문맥에서 부적절한 표현이다. 왜 그럴까? 나의 관점이 아니라 남의 관점이 투영된 말이기 때문이다.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그것을 우리는 ‘정전기념일’이라고 한다. 남침을 감행해 전쟁의 참상을 불러온 북한에서는 이를 미화하고 자화자찬해 스스로 ‘전승절’이라고 부른다.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관점(point of view)’이라고 한다.특히 신문언어는 공공언어라 이 ‘관점’을 매우 중요시한다. ‘전승절’은 북한의 관점이 반영된, 북한의 용어임이 드러난다. 이를 그대로 인용해 쓰면 본의 아니게 타인의 표현이 나의 말로 둔갑해 전달되는 오류가 발생한다.이를 피하려면 ‘소위’ ‘이른바’ 같은 말을 넣어 남의 용어임을 나타내면 된다. ‘이른바’는 ‘세상에서 말하는 바’란 뜻이다. 즉 ‘이른바 전승절(7월 27일) 67주년을 맞아~’ 식으로 써서 그 말이 북한의 용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문장론적 기법인 셈이다.지난 호에서 살핀 ‘기념’의 쓰임새 역시 문장 성패를 가르는 수많은 단어 용법 중 하나다. 요지는 6·25전쟁, 국권피탈, 천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