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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3)

    이맘때 시화호에서 바라보는 철새떼의 군무는 장관이다. 수면 위를 한가로이 노닐다가 한 마리가 날아오르면 일제히 비상해 하늘을 뒤덮는다. 그걸 보고 “새들이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라고 하면 곤란하다. 새가 힘차게 날개를 치는 소리는 ‘푸드덕’이다. ‘푸드득’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말이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들러 ‘볼일’ 볼 때 나는 소리다. 화살표(‘→’)는 바른 표기 찾아가라는 뜻이런 말들은 표기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는 한 틀리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갔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여기에도 잘못 쓴 말이 들어 있다. ‘우르르’ ‘주르륵’이 바른 말이다. 하지만 잘 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국어사전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에서 ‘푸드득’을 찾으면 두 번째 올림말에 ‘→ 푸드덕’으로 설명돼 있다. 이 화살표(‘→’)는 새가 날개 치는 소리로 ‘푸드득’은 비표준어이니 ‘푸드덕’을 찾으라는 뜻이다. ‘우루루’ ‘주루룩’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사전에서 찾으면 각각 화살표가 붙어 있다. 화살표는 맞춤법상 문장부호는 아니다. 단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뜻풀이할 때 표준어인지 아닌지를 나타내기 위한 사전부호일 뿐이다.어떤 단어들은 표제어에 아라비아 숫자로 어깨번호가 달려 있다. 이는 같은 형태의 단어들을 배열한 숫자다. 가령 ‘가사’라는 단어를 알아보자. 아마도 노래 가사, 즉 노랫말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그다음으로 ‘집안일’ 정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2)

    2010년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비장한 소식 하나를 전했다. “인쇄판 사전 시장이 연간 수십 %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제3판은 인쇄판 대신 온라인판으로만 낼 계획입니다.” 120여 년 역사를 자랑하던 옥스퍼드 종이사전에 종말을 고한 셈이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진화하는 국어사전한국은 이보다 좀 더 이르게 종이사전의 조종을 울렸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사전(웹사전)으로만 편찬할 예정입니다.” 국어원은 2006년 한글날을 기해 앞으로 나올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웹사전의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상의 용품이 된 디지털 시대라 ‘내 손안의 사전’이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더 편리하게 사전을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국어원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 외에도 온라인 사전인 <우리말샘>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말샘은 국민 누구나 참여해 새로운 말을 올리고 설명을 달 수 있는, 쌍방향 개방형 사전이다. 이와 관련해 국어사전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 하나. 우리말샘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수많은 말이 올라 있다. 이걸 보고 “사전에 나오는데, 써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규범어가 아니다.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험상 그중 상당 부분은 시일이 흐르면서 사라질 말들이다.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간 광범위성을 비롯해 계층 간/세대 간 통용성, 지속성, 품위성 등 여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1)

    1938년 일제강점기 시절. 엄혹한 우리말 탄압 속에서 국어학자 문세영이 《조선어사전》을 펴냈다. 10만여 어휘를 다룬 이 사전은 한국인에 의해 탄생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흐른 요즘, 우리말에 대한 인식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웹사전이 나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건도 갖춰졌다. 단어 용법 등 사전엔 수많은 정보 담겨하지만 정작 사전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끌어-올리다’는 띄어 쓰는 걸로 나오는데 맞나요?” 의외로 이런 독자 질문에 자주 부딪친다. 이를 비롯해 ‘바른길, 하루걸러, 참다못하다’ 같은 무수한 합성어류는 띄어쓰기를 정확히 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더 의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들이 ‘바른-길, 하루-걸러, 참다-못하다’ 식으로 나온다. 사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이를 띄어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사전에는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사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대부분 표제어를 확인하고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사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품사 정보는 기본이고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 즉 용법을 비롯해 관용구·속담, 어원, 결합구조 등 우리말에 관한 수많은 내용이 집약돼 있다. 그래서 사전을 ‘우리말의 보고(寶庫)’라고 하는 것이다.사전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전부호’를 알아야 한다. ‘끌어-올리다’에 쓰인 붙임표(-)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쓴 여러 부호 중 하나다. 사전의 앞쪽 ‘일러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차[함수] 혹은 이차[함쑤]

    우리말 역사에서 1933년은 꼭 기억해야 할 해이다. 그해 10월 2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면서 비로소 우리말 정서법의 토대가 마련됐다. 당시 통일안을 발표할 때 외래어 표기법과 띄어쓰기는 본문에 함께 다뤄졌다. 표준어와 문장부호는 따로 부록으로 실렸다. 그뒤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오면서 표준어는 독립 규범으로 떨어져 나왔다. [함쑤]가 예전 표준발음…이젠 [함수]도 허용문장부호는 지금도 한글맞춤법의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표준발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표준발음법이 따로 독립 규범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로부터 50년도 더 흐른 1988년 와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은 발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표기에 비해 발음은 훨씬 더 각양각색이고 불분명하기 때문이다.가)“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나)“아는 문제였는데 마지막 ‘분수’ 계산에서 분모와 분자를 헷갈려서 틀렸다.” 두 문장에 쓰인 ‘분수’는 한글 형태도 같고, 한자도 ‘分數’로 똑같다. 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안다. 가)에선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란 뜻이다. 나)는 수학에서 ‘몇 분의 몇’ 할 때의 그 분수다. 우리는 그 차이를 문맥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별할 수 있다.그런데 구별하는 수단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발음’에 의한 것이다. 가)의 분수는 예사소리로 [분ː수], 즉 ‘분~수’라고 길게 읽는다. 나)의 분수는 [분쑤], 즉 짧게 된소리로 읽는 말이다. ‘분수를 지키다’라고 할 때의 ‘분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달다' 자리 넘보는 '주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미국의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가 한 말이다. 그의 이 한마디는 이후 전 세계인의 가슴에 새겨져 자유의 가치를 일깨우는 명언이 됐다. 잘 알려진 이 문장에서 서술어로 쓰인 ‘달라’는 특이한 동사다. 기본형이 ‘달다’인데 의외로 낯설다. 더구나 이 말은 문장에서 ‘달라, 다오’ 딱 두 가지로만 활용한다. 어미의 활용이 온전하지 못한, 이른바 ‘불완전동사’다. “나한테 알려 줘라”는 비문…‘-다오’ 써야 돼주목해야 할 것은 요즘 이 ‘달다’가 동사 ‘주다’로 종종 대체된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오’를 써야 할 곳에 ‘줘라/주라’가 쓰이는 것이다. 가령 “나도 끼워 다오”, “나한테 알려 다오”라고 할 것을 “나도 끼워 줘라”, “나한테 알려 주라” 식으로 말한다. 이것은 현행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이다. 하지만 언어 현실은 ‘다오’보다 ‘줘라/주라’를 훨씬 더 많이 쓴다.2020년 6월 국립국어원은 ‘달다’ 자리에 ‘주다’가 쓰이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우선 ‘주다’와 ‘달다’의 의미 용법부터 살펴보자. ‘주다’는 말하는 이가 무언가를 남에게 건네는 것을 요청하는 경우에 쓴다. 이에 비해 ‘달다’는 자기에게 건네기를 요청할 때 쓴다. 전형적 용례로 보면 좀 더 쉽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려서 많이 불러본 동요다. 여기서 ‘줄게’는 다른 사람한테 건네는 것, ‘다오’는 나한테 건네는 것임이 확연히 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너라 변칙'의 퇴장

    자식이 커도 부모 걱정은 늘 매한가지다. 그중 하나. “밤늦게 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오너라.” 그런데 어떤 이는 “들어오너라” 하지 않고 “들어오거라”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들어와라” 하기도 한다. ‘오너라/오거라/와라’는 모두 해라체 명령형 서술어다. 같은 뜻을 전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서로 다를까? 틀린 말은 없을까? 예전엔 ‘오너라’만 가능…지금은 모두 허용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모두 맞는 말이다. 예전에 ‘-너라’ 불규칙 활용이 있었다. 명령형 어미 ‘-아라’가 붙을 때 어미가 ‘-너라’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켰다. 이 변칙은 특이하게 동사 ‘오다’류(‘오다’와 ‘건너오다, 들어오다’ 등 ‘-오다’로 끝나는 말)에서만 나타난다. ‘오+아라→오너라’로 바뀌는데, 다른 동사에서는 그런 예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너라’ 불규칙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다’의 명령형은 ‘오너라’ 하나뿐이고, ‘오거라’ 또는 ‘와라’는 인정되지 않았었다.2017년 3월 국립국어원은 이 주제를 놓고 깊이 있게 검토를 했다. 규범과 달리 사람들이 현실 언어에서 ‘오너라’보다 ‘오+아라→와라’를 더 많이 쓰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거라’도 썼다. ‘너라’ 불규칙 활용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법이 바뀌어야 할 차례다. 문법은 언중이 실제로 쓰는 용법을 일반화하고 규칙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다’류에도 명령형 어미 ‘-아라’ 및 ‘-거라’가 결합할 수 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십시요"라는 말은 없어요

    몇 해 전 이른바 ‘다나까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대화에서 말의 끄트머리를 ‘-다’나 ‘-까’로만 맺는다고 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 ‘그렇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같은 게 대표적인 다나까체다. 주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언어 예절로 알려졌지만,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 경어법 중 하나다. 우리 문법에서는 ‘하십시오체(體)’ 또는 줄여서 ‘합쇼체’라고도 한다. ‘-요’는 문장 종결 어미로 쓸 수 없어합쇼체는 종결 어미로 ‘-습니다/ㅂ니다’(평서형), ‘-습니까/ㅂ니까’(의문형) ‘-십시오’(명령형) 등이 많이 쓰인다. 이 가운데 ‘-십시오’는 자칫 ‘-십시요’로 잘못 적기 십상이니 주의해야 한다. 가령 “말씀해 주십시요”, “도와주십시요” 라고 하는 식이다.‘-십시오’는 상대를 가장 높여 말하는, 정중한 명령이나 권유를 나타내는 말이다. 신문 등 인쇄매체의 인터뷰 글에서 질문할 때 자주 쓴다. 이를 ‘-십시요’로 잘못 쓰는 까닭은 매우 정중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오’로 끝나기 때문인 듯하다. 마치 하오체(體)의 ‘-오’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해요체’의 ‘-요’를 붙이고 싶어진다. 또 한 가지는 ‘-십시오’가 명령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정중해도 명령형이라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불편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십시오’는 종종 해요체인 ‘-시지요’나 ‘-세요’로 대체되곤 한다.‘-시지요’는 권유형이라 덜 부담스럽다. 실제로 일상 대화에서는 “~해 주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책요? 책이요?…변신 꾀하는 보조사 '-요'

    지난 9일은 574돌 한글날이었다. 이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삼아 제정됐다. 한글이 탄생한 지 500년이 훨씬 넘었으나 우리 정서법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한글마춤법 통일안’을 내놓은 게 밑거름이 됐다. 종결형으로 쓰인 ‘책이요’는 규범에서 벗어나그 사이 우리 맞춤법은 많이 변했다. 그중 하나로 요즘도 늘 헷갈리는 게 어미 ‘-이요’와 ‘-이오’, 그리고 보조사 ‘-요’ 용법의 구별이다.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는 이를 어떻게 제시했을까? <‘이요’는 접속형이나 종지형이나 전부 ‘이요’로 한다.>고 했다. 가령 “이것은 붓이요, 저것은 먹이요, 또 저것은 소요.”처럼 썼다.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다르다. 제15항 어간과 어미를 적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고 했다. “이것은 책이오./이리로 오시오.”(책이요×/오시요×)가 현행 규범이다. 또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오.”처럼 구별해 써야 한다. 정리하면 ‘-이요’는 연결어미로만, ‘-이오’는 종결어미로만 쓸 수 있게 했다. 이들은 모두 [이요]로 소리 나지만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구별해 적도록 한 것이다. 현실언어에서는 쓰임새 활발…규범화 진행 중2019년 5월 국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