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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삐는 채우는 게 아니라 채는 거죠~

    고삐는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을 말한다. 의미에 따라 '고삐를 채다(잡아채다)/매다/잡다/당기다/늦추다/조이다/틀어쥐다' '고삐가 풀리다' 등 다양하게 쓰인다.요즘 시골은 한창 바쁜 농사철이다. 예전에 농가에선 소가 재산 1호이자 무겁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던 존재였다. 동고동락을 함께한 반려동물이었다. 요즘은 트랙터 등 기계화에 밀려 시골에서도 일소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한 가지를 살펴보자. “가사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굴레” “대북 제재 고삐는 쥐고 있어야” “류현진, 패전의 멍에 썼다” “비판 여론에 재갈 물리는 중국”….굴레, 멍에 등과 함께 ‘속박’ 나타내언론 보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말들에는 공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두루 구속이나 억압, 속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굴레, 고삐, 멍에, 재갈이다. 이들은 마소를 부리기 위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거기서 연유해 ‘굴레를 씌우다, 고삐가 풀리다, 멍에를 메다, 재갈을 먹이다’ 같은 관용 표현들이 나왔다. 이들 관용구는 비슷한 것 같지만 미세하게 그 쓰임새가 다르다. 또 함께 어울려 쓰는 서술어에도 차이가 있어서 이를 잘 구별해 써야 한다.재갈은 말을 부리기 위해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를 말한다. 보통 쇠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고삐를 매어 말을 부렸다. ‘재갈을 물리다(채우다/먹이다)’라고 하면 ‘사람의 입막음을 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돼 쓰인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재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내년 다음 해는 내후년이 아니라 '후년'이에요

    내후년은 3년 뒤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2021년이다. 내년 다음 해를 가리키는 말은 '후년'이다. '내년→후년→내후년'으로 나간다.“최저임금을 내후년까지 계속 급격하게 인상하면 일자리 14만 개가 줄 수 있다.” 지난 4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보고서를 하나 내놨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그것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자료였다. 그동안의 정부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파장이 컸다. 언론에서도 이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우리의 관심은 언론에 인용된 ‘내후년’에 있다.2년 뒤는 후년, 3년 뒤가 내후년KDI 자료를 보도한 언론의 문맥은 이렇다. ‘최저임금이 2020년 1만원이 되도록 내년과 내후년에도 15%씩 인상된다면 고용감소 영향이 내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으로 확대되고….’ 2019년 내년에 이어 2020년을 내후년으로 쓴 것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내후년은 3년 뒤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2021년이다. 내년 다음 해를 가리키는 말은 ‘후년’이다. ‘내년→후년→내후년’으로 나간다. 사람들이 후년의 존재를 잊고 내년 다음을 내후년으로 착각하고 쓰는 경우가 흔하니 조심해야 한다.대부분의 신문이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말글의 정확한 사용에 취약한 인터넷 언론일수록 오류가 심했다.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충 두루뭉술하게 쓰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오류는 이해 관계가 걸려 있거나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경우일수록 치명적이 된다.지난 6일 한 방송사 뉴스에선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세계은행이 내후년까지 세계 경제가 점진적으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랑'과 '고랑'의 차이

    이랑은 두둑과 같은 말이다. 논이나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은 곳이다. 고랑은 두둑한 땅과 땅 사이의 길고 좁게 들어간 곳을 이른다.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자 덩달아 모내기 철도 빨라졌다. 농촌진흥청에서 나서서 지나치게 이른 모심기는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고 걱정할 정도다. 원래 우리 선조들은 이맘때 까끄라기 곡식, 즉 익은 보리를 베고 벼농사를 짓기 위해 모를 심었다. 그래서 절기상 망종(芒種·6월6일)이라고 한다. 까끄라기 망(芒), 씨 종(種)이다. 까끄라기란 벼, 보리 따위의 낟알 껍질에 붙은 깔끄러운 수염을 말한다. 한 해 먹거리를 준비하는 시기이니 1년 중 농사일로 가장 바쁜 때다.고랑은 오목한 골, 이랑은 볼록한 두둑‘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조선시대 문신인 약천(藥泉) 남구만(1629~1711)이 운치 있게 읊은 이즈음의 농촌 풍경이다. 동트는 시골 아침의 고즈넉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권농가(勸農歌)로 잘 알려진 이 시조에 나오는 ‘재’는 ‘높은 산의 고개’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서울의 무악재, 만리재, 충북 제천의 박달재 같은 게 유명한 고갯길이다.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을 잇는 고개는 새재라고 부른다. 지명을 넣어 문경새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재를 한자어로 하면 ‘영(嶺)’이다. 그래서 새재를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흔히 영남지방이니, 강원도 영동/영서니 할 때의 ‘영’이 이 ‘재’를 이르는 말이다. ‘재/영’이 지역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경상남북도를 이르는 영남(嶺南)은 조령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에게 어색한 북한의 여러 표현들 (3)

    '-ㄹ데 대한/대하여'는 북한의 글말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가령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데 대하여' '기록영화를 잘 만들데 대하여'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을 발전시킬데 대한~' 식이다.‘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지난 4월27일 오후 ‘판문점 선언’ 전문(全文)이 공개됐을 때 가장 혼선을 빚은 대목은 이 문장이었다.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은 우리에게 낯선 표현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사용하지 않을 때 대한’으로 바꿔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남에선 ‘~데’보다 ‘~것’에 익숙해‘-ㄹ데 대한/대하여’는 북한의 글말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북한에선 ‘아는것이 힘이다’처럼 의존명사를 앞 단어에 붙여 쓴다. 선언문 원본도 ‘~하지 않을데 대한’으로 붙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데 대하여’ ‘기록영화를 잘 만들데 대하여’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을 발전시킬데 대한~’ 식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관형형 어미 ‘-ㄹ’과 의존명사 ‘데’, 동사 ‘대하다’를 살펴봐야 한다.우선 ‘대하다’는 타동사로서, 앞에 오는 ‘무엇’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때 ‘무엇’에 해당하는 것은 통상 구체적인 대상(체언)이 오는 게 우리 어법이다. ‘전통문화에 대한/건강에 대하여/이 사건에 대하여’처럼 쓴다. 이에 비해 의존명사 ‘데’는 추상성이 강한 단어라 ‘대하다’ 앞에 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동적 조치'는 북한 특유의 표현이죠

    북에서는 의외로 '-적'을 많이 쓴다. 우리 눈으로 보면 어색한 게 꽤 있다. 가령 '(이웃과) 친선적으로 지내다' 같은 표현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냥 '친하게(사이좋게) 지내다'라고 한다.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우리말 순화운동을 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등 상당한 성과도 올렸다. 북에서는 남에서보다 더 강도 높게 순화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성과의 한편으로 특이한 측면도 엿보인다. 한자어 접미사 ‘-적’을 자주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판문점 선언문’에도 ‘OO적’이란 말이 모두 32곳에 나온다. 특히 남에서는 잘 쓰지 않는 ‘전환적 국면’ ‘실천적 대책’ ‘주동적 조치’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남쪽에선 어색한 접미사 ‘-적’ 용법‘-적(的)’은 문법적으로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격을 띠는/그에 관계된/그 상태로 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글쓰기와 관련해 남에서도 이 ‘-적’을 놓고 많은 검토와 논란이 있었다. 일찍이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순화 차원에서 대체어로 고유어 ‘-스런’(‘-스럽다’에서 파생된 접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저술한 국어문법 대작 <우리말본>에서 그는 ‘과학적, 일반적, 역사적’ 같은 말을 ‘과학스런, 일반스런, 역사스런’ 식으로 바꿔 썼다. 하지만 ‘-적’과 ‘-스런’이 늘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라 이런 시도는 실패했다.우리말에서 ‘-적’과 ‘-스럽다/-답다/-롭다’는 용법이 겹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서로 배타적이라 이들을 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판문점 선언문'에서 보이는 북한말투

    '판문점 선언' 전문(前文)에는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나가며…'란 대목이 나온다. 골자만 추리면 '시대를 일어나가다'이다. 이 부분은 금세 그리고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4월27일 남북한 분단의 현장에서 울려 퍼진 ‘판문점 선언’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열려라! 우리말’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그 정치적 의미에 있지 않다. 선언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북한말투’가 관심사다.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으나 남북한 간 선언문을 조율하면서 그리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도 이런 경우 자구 하나라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상례일진대 북한말투가 걸러지지 않은 채 우리에게 공개된 것은 좀 의아스러운 일이다.‘일어나가며’는 ‘일궈 나가며’란 뜻남북이 갈라진 지 70년이 흐르면서 말글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북한말투라고 해도 뜻만 통하면 되지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언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데가 여러 곳 있다. 같은 우리말을 쓰면서도 표현이 어색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다. 선언문에 투영된 북한말투를 통해 남과 북의 어법 차이를 살펴보자.전문(前文)에는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나가며…’란 대목이 나온다. 골자만 추리면 ‘시대를 일어나가다’이다. 이 부분은 금세 그리고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남에서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우선 ‘일어나가며’가 가능하기 위해선 기본형 ‘일어나가다’ 또는 ‘일다’가 있어야 한다. 일단 ‘일어나가다’란 단어는 남북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탄신일'보다 '나신날, 오신날' 어때요?

    '탄신일'보다는 '나신날' '오신날'이 더 맛깔스럽다. 어감상으로나 조어법상으로나 그렇다. 쉽고 친근한 표현이 우리말을 살찌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부처님오신날(22일)을 앞두고 거리에는 벌써 연등이 걸렸다. 이날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는 그동안 석가탄신일이었다. 이를 줄여 석탄일 또는 불탄일이라고도 했다. 달리 초파일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석가탄신일을 명절의 하나로 부르는 이름이다. ‘초팔일(初八日)’에서 음이 변한 말이다. 정부에서 2017년 입법예고를 거쳐 10월10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함으로써 비로소 부처님오신날이 공식 명칭이 됐다. 고유명사화한 말이므로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는 점도 기억해 둬야 한다.탄신일은 ‘생일+일’ 같은 겹말 표현불교계에서 이날을 ‘부처님오신날’로 바꿔 쓴 지는 꽤 오래됐다. “1960년대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돼 있는 불탄일·석탄일을 쉽게 풀이해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는 게 불교계의 설명이다(‘한국세시풍속사전’). 여기서 ‘한자어 명칭을 쉽게 풀어 쓰자’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1968년 봉축위원회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쓰기로 결의했다(법보신문 2017년 10월10일자)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딱 반세기 전 일이다. 쉽고 친근한 말, 대중에게 다가가는 말에 눈뜬 당시 불교계의 ‘우리말 순화운동’(?)이 자못 선구적이었다고 할 만하다.‘탄신일’은 조어법상으로도 바람직한 말이 아니다. ‘탄신(誕辰)’으로 충분하다. 어른한테는 생일이라 하지 않고 생신(生辰)이라고 한다는 걸 어려서부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갑질문화?… 행태는 문화가 아니죠

    '갑질문화'도 신중하게 써야 할 말이다. '갑질'이란 단어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갑'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접미사 '-질'을 붙여 '갑질'이란 말을 만들었다.문화가 넘치는 시대다. 웬만한 말에 갖다 붙이면 다 ‘OO문화’가 된다. 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고도로 추상화된 단어다. 개념적으로도 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서 문화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써도 되는 말일까? 요즘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갑질문화’도 그런 점에서 들여다볼 만하다. 찬찬히 보면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강간문화, 조폭문화 등 아무데나 갖다 붙여‘미투 운동’이 한창 보도될 때 일각에서 ‘강간문화’가 튀어나왔다. 영어로는 rape culture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 말이 낯설지만 영어권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용어다. 1970년대 미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쓰기 시작해 단행본과 영화로도 많이 소개됐다. ‘강간문화’란 말은 인류역사와 강간의 사회적 환경을 조명한 학술적 개념에서 비롯됐다. 이 말을 쓰려면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갑질문화’도 신중하게 써야 할 말이다. ‘갑질’이란 단어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갑’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접미사 ‘-질’을 붙여 ‘갑질’이란 말을 만들었다. ‘-질’은 노름질, 서방질, 싸움질 같은 데서 보듯 주로 좋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