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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동적 조치'는 북한 특유의 표현이죠

    북에서는 의외로 '-적'을 많이 쓴다. 우리 눈으로 보면 어색한 게 꽤 있다. 가령 '(이웃과) 친선적으로 지내다' 같은 표현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냥 '친하게(사이좋게) 지내다'라고 한다.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우리말 순화운동을 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등 상당한 성과도 올렸다. 북에서는 남에서보다 더 강도 높게 순화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성과의 한편으로 특이한 측면도 엿보인다. 한자어 접미사 ‘-적’을 자주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판문점 선언문’에도 ‘OO적’이란 말이 모두 32곳에 나온다. 특히 남에서는 잘 쓰지 않는 ‘전환적 국면’ ‘실천적 대책’ ‘주동적 조치’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남쪽에선 어색한 접미사 ‘-적’ 용법‘-적(的)’은 문법적으로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격을 띠는/그에 관계된/그 상태로 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글쓰기와 관련해 남에서도 이 ‘-적’을 놓고 많은 검토와 논란이 있었다. 일찍이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순화 차원에서 대체어로 고유어 ‘-스런’(‘-스럽다’에서 파생된 접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저술한 국어문법 대작 <우리말본>에서 그는 ‘과학적, 일반적, 역사적’ 같은 말을 ‘과학스런, 일반스런, 역사스런’ 식으로 바꿔 썼다. 하지만 ‘-적’과 ‘-스런’이 늘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라 이런 시도는 실패했다.우리말에서 ‘-적’과 ‘-스럽다/-답다/-롭다’는 용법이 겹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서로 배타적이라 이들을 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판문점 선언문'에서 보이는 북한말투

    '판문점 선언' 전문(前文)에는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나가며…'란 대목이 나온다. 골자만 추리면 '시대를 일어나가다'이다. 이 부분은 금세 그리고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4월27일 남북한 분단의 현장에서 울려 퍼진 ‘판문점 선언’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열려라! 우리말’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그 정치적 의미에 있지 않다. 선언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북한말투’가 관심사다.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으나 남북한 간 선언문을 조율하면서 그리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도 이런 경우 자구 하나라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상례일진대 북한말투가 걸러지지 않은 채 우리에게 공개된 것은 좀 의아스러운 일이다.‘일어나가며’는 ‘일궈 나가며’란 뜻남북이 갈라진 지 70년이 흐르면서 말글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북한말투라고 해도 뜻만 통하면 되지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언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데가 여러 곳 있다. 같은 우리말을 쓰면서도 표현이 어색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다. 선언문에 투영된 북한말투를 통해 남과 북의 어법 차이를 살펴보자.전문(前文)에는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나가며…’란 대목이 나온다. 골자만 추리면 ‘시대를 일어나가다’이다. 이 부분은 금세 그리고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남에서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우선 ‘일어나가며’가 가능하기 위해선 기본형 ‘일어나가다’ 또는 ‘일다’가 있어야 한다. 일단 ‘일어나가다’란 단어는 남북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탄신일'보다 '나신날, 오신날' 어때요?

    '탄신일'보다는 '나신날' '오신날'이 더 맛깔스럽다. 어감상으로나 조어법상으로나 그렇다. 쉽고 친근한 표현이 우리말을 살찌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부처님오신날(22일)을 앞두고 거리에는 벌써 연등이 걸렸다. 이날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는 그동안 석가탄신일이었다. 이를 줄여 석탄일 또는 불탄일이라고도 했다. 달리 초파일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석가탄신일을 명절의 하나로 부르는 이름이다. ‘초팔일(初八日)’에서 음이 변한 말이다. 정부에서 2017년 입법예고를 거쳐 10월10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함으로써 비로소 부처님오신날이 공식 명칭이 됐다. 고유명사화한 말이므로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는 점도 기억해 둬야 한다.탄신일은 ‘생일+일’ 같은 겹말 표현불교계에서 이날을 ‘부처님오신날’로 바꿔 쓴 지는 꽤 오래됐다. “1960년대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돼 있는 불탄일·석탄일을 쉽게 풀이해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는 게 불교계의 설명이다(‘한국세시풍속사전’). 여기서 ‘한자어 명칭을 쉽게 풀어 쓰자’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1968년 봉축위원회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쓰기로 결의했다(법보신문 2017년 10월10일자)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딱 반세기 전 일이다. 쉽고 친근한 말, 대중에게 다가가는 말에 눈뜬 당시 불교계의 ‘우리말 순화운동’(?)이 자못 선구적이었다고 할 만하다.‘탄신일’은 조어법상으로도 바람직한 말이 아니다. ‘탄신(誕辰)’으로 충분하다. 어른한테는 생일이라 하지 않고 생신(生辰)이라고 한다는 걸 어려서부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갑질문화?… 행태는 문화가 아니죠

    '갑질문화'도 신중하게 써야 할 말이다. '갑질'이란 단어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갑'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접미사 '-질'을 붙여 '갑질'이란 말을 만들었다.문화가 넘치는 시대다. 웬만한 말에 갖다 붙이면 다 ‘OO문화’가 된다. 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고도로 추상화된 단어다. 개념적으로도 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서 문화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써도 되는 말일까? 요즘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갑질문화’도 그런 점에서 들여다볼 만하다. 찬찬히 보면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강간문화, 조폭문화 등 아무데나 갖다 붙여‘미투 운동’이 한창 보도될 때 일각에서 ‘강간문화’가 튀어나왔다. 영어로는 rape culture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 말이 낯설지만 영어권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용어다. 1970년대 미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쓰기 시작해 단행본과 영화로도 많이 소개됐다. ‘강간문화’란 말은 인류역사와 강간의 사회적 환경을 조명한 학술적 개념에서 비롯됐다. 이 말을 쓰려면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갑질문화’도 신중하게 써야 할 말이다. ‘갑질’이란 단어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갑’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접미사 ‘-질’을 붙여 ‘갑질’이란 말을 만들었다. ‘-질’은 노름질, 서방질, 싸움질 같은 데서 보듯 주로 좋지 않은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저희 나라'?… 같은 국민끼리는 '우리나라'죠

    같은 국민끼리 '저희 나라'는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저희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심리적으론 그러고 싶겠지만 이치상 맞지 않는다.우리가 ‘저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를 낮춰 이르는 말이란 것쯤은 누구나 안다. 그런 관점에서 ‘저희 나라’의 문법성 논란이 꾸준히 있어 왔다. 핵심은 국가 간에 이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하냐에 모아져 있다. 지난해 말에는 대통령 부인과 외교부 장관의 ‘저희 나라’ ‘저희가~’ 발언이 알려져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다.외국인에겐 써도 어법상 문제없어전통적으로 국가 간에는 ‘우리나라’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뤄왔다. 국립국어원의 <표준화법해설(1992)>에서 “나라를 표현할 때는 언제나 ‘우리나라’로 해야 한다”고 설명한 것도 그중 하나다. 언중 사이엔 그 이유로 ‘나라마다 존엄성을 지킬 필요가 있기 때문’(리의도, ‘올바른 우리말 사용법’)이라는 시각이 꽤 설득력 있게 알려져 있다.‘저희’ 용법을 이해하려면 그 근원인 ‘우리’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우리’는 세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①단수로 쓴 우리다. “우리 집은 대전에 있어.” “우리 아내는 명품을 너무 좋아해.” 이때의 ‘우리’는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실제로는 ‘나의’의 뜻인데 이게 집단화해 ‘우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어법은 수사학의 ‘일반화’ 기법과 비슷한데, 우리말에선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쓰인다. 둘째는 진짜 복수형으로 쓴 &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죄의 뜻을 전했다'와 '사죄했다'의 차이

    '사의를 표하다'는 곧 '고맙다고 하다'이다. '사죄의 뜻을 전했다'라고 하지 말고 바로 '사죄했다'라고 쓰면 된다. 그것이 우리말다운, 자연스러운 표현이다.정치·외교적으로 쓰이는 ‘유감(遺憾)’은 말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의미적 모호성이 특징인 이 말이 일상적 상황에까지 퍼져 다양한 기존 어휘 사용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실언어에서 유감이 쓰이는 영역은 꽤 넓다. ‘아쉽다, 안타깝다, 안쓰럽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언짢다, 불만스럽다’ 등 섬세하게 구별해 써야 할 말들을 대신한다. 심지어 ‘미안하다, 사과하다, 사죄하다, 죄송하다, 송구하다’ 등 용서를 구하는 말을 써야 할 때도 ‘유감’이 자리를 차지한다.유감·입장은 얼버무릴 때 쓰기 편한 말우리는 이미 ‘입장(立場)’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이 말이 들어와 대체한 우리말이 꽤 많다. ‘처지, 견해, 의견, 태도, 형편, 생각, 주장, 방침, 상황…’ 등 문맥에 따라 달리 쓸 말 10여 가지를 ‘입장’이 대신한다.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라고 해야 할 때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식으로 써서 우리말을 망가뜨리기도 한다.입장처럼 유감도 모호하게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모호함은 어휘적·통사적 양쪽으로 실현된다. 우선 어휘적 측면에서 ‘유감’은 지난호에서부터 살폈듯이 일반적 상황에서 사과의 의미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마음에 차지 않고 서운한 감정이 남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다른 하나는 통사적 차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유감'은 사과가 아니라 섭섭할 때 쓰는 말이죠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유감은 '遺憾'이다.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이다. 즉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미투 운동’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 와중에 우리말 ‘유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사과한다고 말한 속에, 또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대개 이런 투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런데 썩 자연스럽지가 않다. 사과의 진정성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유감’이란 말의 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본래 쓰임새는 서운하다는 뜻‘유감’의 정체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감을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 자칫 ‘有感’ 정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말이고,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유감은 ‘遺憾’이다.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이다. 즉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한마디로 ‘섭섭하다’ 또는 ‘언짢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감정(憾情·이 역시 感情과 구별해야 할 말이다)이 있다는 뜻이다. “너, 나한테 유감 있냐?”라고 하면 “나한테 불만 있냐?”는 뜻이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 말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 쓰기 시작했다. 유감의 감(憾)은 ‘대단히 강하게 느끼는(感) 감정(心)’이란 뜻을 담았다. 기쁨보다는 한스럽고 분한 감정에 나타나는 느낌을 말한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손모아장갑·엄지장갑… 우리말이 풍성해져요

    평창패럴림픽에서 인기를 끈 '손모아장갑' 같은 대체어는 의미도 살아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점잖은 표현이라 좋다. 또 다른 대체어인 '엄지장갑'과 함께 일상어로 자리잡도록 힘을 모을 만하다.2013년 9월 SBS 새 월화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제작진은 방영을 앞두고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제작진은 좀 특별한 해명을 했다. “제목에 쓰인 ‘가정부’라는 말이 이 직업군을 비하하는 것으로 여겨질지 몰랐다”며 “논란이 되는 부분은 가사도우미나 가정관리사라는 말로 순화해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가정부라는 제목으로 인해 방영 전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았다.의미 살리고 표현도 점잖아‘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은 사전적으로 가정부 또는 파출부다. 하지만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공식 명칭은 가사도우미다. 사전에 오른 정식 ‘단어’는 아니다. 여성단체에서 가정부와 파출부를 비하어로 지목하자 이를 대체한 용어로 쓰고 있는 것이다.그런 배경에는 우리말에서 ‘-부’가 험하고 힘든 일이나 직업군에 많이 쓰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광부, (공사장)인부, 청소부, 접대부, 간호부 등이 그런 예들이다. 이 중 청소부는 청소원을 거쳐 (환경)미화원이 됐다. 간호부 역시 간호원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간호사로 불린다. 이들이 애초부터 비하어여서 바꾼 게 아니다.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좀 더 점잖게 부르는 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사회 발전에 따른 언어의 분화·진화인 셈이다.‘장님→시각장애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