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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1) '만들다'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언어를 다듬는 데는 조화롭고 아름다우며 정결하고 정미하게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 형태가 다양해 한 가지로 개괄할 수 없고, 내용이 명료해 여러 가지로 나눠지지 않으며, 형태와 내용이 적절하게 알맞아야 합니다.”(이건창, ‘조선의 마지막 문장’) 조선 후기 3대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건창(1852~1898)이 말하는 작문 비법 한토막이다. 학자이자 문신인 여규형이 작문에 대한 가르침을 달라고 청하자 편지로 답하는 형식을 빌려 썼다.10여 가지로 쓰는 ‘만들다’, 의미 모호해그의 문장론은 요즘의 글쓰기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 지금의 눈으로 해석하면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다양한 ‘말’을 쓰되 ‘뜻’이 명료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문장을 병들게 하는 표현들을 살펴보자. 언제부터인지 이런 말들이 시나브로 널리 퍼졌다.△어린이들이 ‘한가위 음식 만들기’ 체험행사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팔꽃이 자라면서 창문에는 그늘이 만들어져 시원했다. △시민도 정부도 행복한 지속가능한 해법을 만들었다. △실내에서 운동을 하도록 체육관을 만든다.예문에는 서술어로 모두 ‘만들다’가 쓰였다. 이 말이 왜 문제가 될까?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은 올림말 ‘만들다’에 13개의 풀이를 올렸다. 뜻풀이 첫 항목은 ‘노력이나 기술 따위를 들여 목적하는 사물을 이루다’이다. ‘음식을 만들다/오랜 공사 끝에 터널을 만들었다/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다’ 같은 게 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학회 110돌… 되돌아 보는 우리말 수난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는 어디일까? 1908년 8월31일 서울 돈의문 밖 봉원사에 하기 국어강습소 졸업생들을 비롯해 우리말 연구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아는 주시경 선생이 있었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겨레 말글을 지키고 살려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자리에서 ‘국어연구학회’가 탄생했다.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한글학회가 지난 8월31일 창립 110돌을 맞았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1911년 배달말글?음, 1912년 한글모, 1921년 조선어연구회, 1931년 조선어학회란 이름을 거쳐 1949년 지금의 한글학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때의 개명은 남쪽의 한국과 북한이 ‘대한’과 ‘조선’으로 말을 달리 사용하는 분단 현실도 한 원인이었다(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한글 새소식’ 552호).한글과 우리 글자, 우리말, 국어의 수난사는 곧 우리 민족의 질곡의 역사였다. 그중에서도 1942년 터진 ‘조선어학회 사건’은 우리말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갔다.그 발단은 다소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그해 여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한 청년이 조선총독부의 지령인 단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불순분자 혐의로 청년의 집을 수색하던 일제 경찰은 그의 조카가 2년 전에 쓴 일기장에서 “오늘 국어를 사용하다가 벌을 받았다”란 글귀를 찾아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는 일본어가 곧 ‘국어’였다. 일경으로서는 ‘국어인 일본어를 썼다’고 해서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오자 담임교사를 내사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실제론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처서(處暑)란 "더위, 물렀거라!"란 뜻이죠

    기록적 폭염이었던 올여름 무더위도 다 끝났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가을 분위기가 제법 느껴진다. 절기상으론 이미 처서(處暑·8월23일)를 지났다. 처서는 한자로 ‘곳 처(處), 더울 서(暑)’다. 누구나 아는 절기 이름이지만, 이 말의 뜻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더위가 그친다는 뜻으로, 이맘때가 되면 무더위가 물러나고 선선한 기운을 느낀다는 데서 붙여졌다.‘처(處)’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處는 보통 처소(處所) 등 ‘곳’으로 새기는 게 대표적인 훈(訓)이다. 그런데 더위가 물러난다는 뜻의 말에 왜 이 ‘처’가 쓰였을까? 한자의 유래를 알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處는 호랑이()가 뒷발()을 꿇은 채 웅크리고 앉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 ‘(날쌔게 움직이는 호랑이가)멈추다, 머무르다’란 뜻에서 시작됐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처서는 곧 ‘더위가 머무르다, 그치다’란 뜻이다. 순우리말로 풀면 “더위, 물렀거라!”쯤 되는 셈이다. 處는 여기서 다시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돼 거처, 처소 등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말이나 행동이 경솔한 사람을 가리켜 “채신머리없게 굴지 마라”라고 한다. ‘채신머리없다’는 ‘채신없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 말도 한자 處와 관련이 있다.어근 ‘채신’은 지금은 완전히 굳어져 고유어처럼 쓰이지만 본래 ‘처신(處身)’이 변한 말이다. ‘처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말한다. 매우 부끄러울 때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때의 ‘몸 둘 바’가 곧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극장골' '침대축구'도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신어는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말글 자산이다. 다만 신어는 새로운 말일 뿐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다.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 그 말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이 높은 것만이 단어의 지위를 얻는다.‘①상대 선수와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한다. ②일단 부딪치면 넘어져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부림친다. ③드러누운 상태로 심판의 눈치를 살피며 편안히 기다린다. ④상대의 반칙을 얻어내지 못할 땐 즉각 일어나 공을 향해 돌진한다.’ 일명 ‘침대축구’의 공통적인 속성이다. 대개 자신의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시간을 끌기 위해 쓰는 이기적 수법이다.경기 재미 더하는 비공식 경기용어들국제적 규모의 큰 대회나 행사는 신어도 함께 탄생시킨다.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침대축구를 비롯해 극장골, 늪 축구 같은 말이 다시 한번 위력을 떨치며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침대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 나온 말은 아니다. 일상의 눈으로는 낯설지만, 우리 곁에 등장한 지 벌써 10여 년 된 말이다.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는 ‘축구에서, 자기 팀에 유리한 점수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상대 팀 선수와의 작은 몸싸움에도 고의적으로 넘어져 아픈 척하며 시간을 끄는 행위’로 올라 있다. 우리말샘은 어떤 말이 새로 쓰일 때 국민 누구나 참여해 올릴 수 있는 개방형 사전이다. 단어의 지위를 얻어 정식으로 국어사전에 오르기 전 단계인 셈이다.침대축구가 경기를 지루하게 하는 요소라면 ‘극장골’은 축구의 묘미를 더해주는 말이다. ‘종료 직전 승부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승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골’(네이버 오픈사전)을 말한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나절'은 하루 아닌 6시간이죠

    '낮'은 하루를 밤·낮으로 나눠 해가 떠 있는 동안을 말하니 대략 12시간이다. 나절은 그 낮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안이다. 오전이나 오후 어느 한쪽의 낮을 가리켜 '한나절'이라고 한다. 6시간쯤 되는 셈이다.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6월12일.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이들의 만남 결과를 전하는 소식들이 보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중 한 통신사와 한 방송사의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140분 담판→화기애애한 오찬→역사적 서명 … 숨가쁜 한나절’ ‘트럼프·김정은, 역사를 만들었다 … 그들이 보낸 숨가쁜 반나절’.하룻낮>한나절>반나절로 줄어들어같은 시간을 전하면서 한 곳에선 한나절, 다른 데선 반나절이라고 했다. 한나절과 반나절은 다른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옛날에는 시간 개념이 지금처럼 시, 분, 초로 세분화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활동하는 동안’을 어림잡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생겨난 게 한나절이니 반나절이니, 한식경이니 일다경이니 하는 말들이다. 그중 한나절과 반나절은 유난히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다.한나절, 반나절에서 핵심어는 ‘나절’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나절은 어원이 확인되지 않은 말이다. ‘낮+알(파생접미사)’ 또는 ‘낮+절(折/切)’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낮’은 하루를 밤·낮으로 나눠 해가 떠 있는 동안을 말하니 대략 12시간이다. 그것을 ‘하룻낮’이라고 한다. 나절은 그 낮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안이다. 오전이나 오후 어느 한쪽의 낮을 가리켜 ‘한나절’이라고 한다. 6시간쯤 되는 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엄지척'과 '엄지를 치켜들다'의 차이

    '엄지척'도 제법 쓰인다.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는 2016년 10월에 등재됐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는 아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회담이 지난 12일 열렸다. ‘역사적 만남’이었던 만큼 화제도 많았다. 그중 트럼프가 김정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린 장면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그동안의 관계에 비춰볼 때 ‘파격적 행동’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 동작은 상대방을 최고라고 치켜세우거나 잘했다고 칭찬할 때 나온다. 우리말과 관련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다.‘엄지를 치켜들다’가 가장 적절영어에서는 이를 ‘썸업(thumbs up)’이라고 한다.(외래어표기법으로 하자면 ‘섬업’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고 말맛도 없다.) 일상에서 자주 하는 동작이지만 아쉽게도 우리말에는 이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 풀어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형화된 표현이 없기 때문에 서술어가 중구난방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엄지를 올리고 있다.’ 이때 엄지를 단순히 ‘올린다’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엄지를 들다/세우다/들어올리다/치켜들다/추켜세우다/추어올리다’ 등 10여 가지 동사가 뒤섞여 쓰인다. 여기에 ‘들어보이다/세워보이다/치켜올려 보이다’ 등 ‘-보이다’ 동사가 결합하기도 한다.‘추키다’와 ‘치키다’는 의미상 거의 같은 뜻으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이다. 공통적인 의미는 ‘위로 올린다’는 것이다. 각각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삐는 채우는 게 아니라 채는 거죠~

    고삐는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을 말한다. 의미에 따라 '고삐를 채다(잡아채다)/매다/잡다/당기다/늦추다/조이다/틀어쥐다' '고삐가 풀리다' 등 다양하게 쓰인다.요즘 시골은 한창 바쁜 농사철이다. 예전에 농가에선 소가 재산 1호이자 무겁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던 존재였다. 동고동락을 함께한 반려동물이었다. 요즘은 트랙터 등 기계화에 밀려 시골에서도 일소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한 가지를 살펴보자. “가사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굴레” “대북 제재 고삐는 쥐고 있어야” “류현진, 패전의 멍에 썼다” “비판 여론에 재갈 물리는 중국”….굴레, 멍에 등과 함께 ‘속박’ 나타내언론 보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말들에는 공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두루 구속이나 억압, 속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굴레, 고삐, 멍에, 재갈이다. 이들은 마소를 부리기 위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거기서 연유해 ‘굴레를 씌우다, 고삐가 풀리다, 멍에를 메다, 재갈을 먹이다’ 같은 관용 표현들이 나왔다. 이들 관용구는 비슷한 것 같지만 미세하게 그 쓰임새가 다르다. 또 함께 어울려 쓰는 서술어에도 차이가 있어서 이를 잘 구별해 써야 한다.재갈은 말을 부리기 위해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를 말한다. 보통 쇠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고삐를 매어 말을 부렸다. ‘재갈을 물리다(채우다/먹이다)’라고 하면 ‘사람의 입막음을 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돼 쓰인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재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내년 다음 해는 내후년이 아니라 '후년'이에요

    내후년은 3년 뒤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2021년이다. 내년 다음 해를 가리키는 말은 '후년'이다. '내년→후년→내후년'으로 나간다.“최저임금을 내후년까지 계속 급격하게 인상하면 일자리 14만 개가 줄 수 있다.” 지난 4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보고서를 하나 내놨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그것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자료였다. 그동안의 정부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파장이 컸다. 언론에서도 이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우리의 관심은 언론에 인용된 ‘내후년’에 있다.2년 뒤는 후년, 3년 뒤가 내후년KDI 자료를 보도한 언론의 문맥은 이렇다. ‘최저임금이 2020년 1만원이 되도록 내년과 내후년에도 15%씩 인상된다면 고용감소 영향이 내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으로 확대되고….’ 2019년 내년에 이어 2020년을 내후년으로 쓴 것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내후년은 3년 뒤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2021년이다. 내년 다음 해를 가리키는 말은 ‘후년’이다. ‘내년→후년→내후년’으로 나간다. 사람들이 후년의 존재를 잊고 내년 다음을 내후년으로 착각하고 쓰는 경우가 흔하니 조심해야 한다.대부분의 신문이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말글의 정확한 사용에 취약한 인터넷 언론일수록 오류가 심했다.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충 두루뭉술하게 쓰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오류는 이해 관계가 걸려 있거나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경우일수록 치명적이 된다.지난 6일 한 방송사 뉴스에선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세계은행이 내후년까지 세계 경제가 점진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