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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기부'와 '채납'은 주체가 다르니 가려 써야죠

    기부와 채납은 주체가 각각 다른 말이므로 가려서 써야 한다. 넘기는 쪽은 '기부'하는 것이고, 국가나 지자체 등 받는 쪽이 주어가 될 때 비로소 '기부채납'하는 것이다.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면 곧바로 대학 입시의 마무리 단계로 들어간다. 이때 제일 많이 쓰면서도 자주 틀리는 말이 ‘접수(接受)’다. 가령 이 말을 “학생들이 지원서를 접수하려 막판까지 눈치작전을 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접수는 ‘받다’란 뜻인데, 이를 마치 ‘내다’란 의미로 쓰는 데서 오는 오류다.기부는 ‘넘기기’, 채납은 ‘받기’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 중에 ‘기부채납’의 쓰임새도 같은 유형의 오류다. 가령 다음 같은 문장들은 바른 쓰임새일까?가) 부산시에서 철거한 물놀이장은 2년 전 건설사를 통해 ‘기부채납 받은 것이었다’.나) 기부채납은 사업 시행자가 아파트 등을 건설할 때 도로·공원 같은 공공시설을 직접 조성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제도를 말한다’.‘기부채납(寄附採納)’은 ‘기부’와 ‘채납’이 결합된 용어로,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법률용어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써오는 말이다. 예문의 작은따옴표 안은 무심코 넘기기 십상이지만 살펴보면 어딘지 어색한 데가 있다. ‘기부’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채납’은 뜻도 어렵고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단어다. ‘채납(採納)’은 선별해 받는다는 뜻이다. 국유재산법에 따르면 ‘기부채납’이란 ‘국가 외의 자가 재산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국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60돌 맞은 '큰사전'의 역사를 돌아보면 …

    올해 한글날은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격인 ‘조선말 큰사전’ 완간 60돌이기도 했다. 1947년 제1권을 펴낸 뒤 순차적으로 1957년 10월9일 마지막 제6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지난 9일은 571돌을 맞은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 음력 9월 상한에 이를 반포했는데,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 지금의 한글날이다.10월은 우리말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은 달이다. 우선 올해 한글날은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격인 ‘조선말 큰사전’ 완간 60돌이기도 했다. 1947년 제1권을 펴낸 뒤 순차적으로 1957년 10월9일 마지막 제6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큰사전의 출발이 일제 강점기이던 1929년 10월 조선어사전편찬회를 구성하면서 비롯됐으니 28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은 사전 원고우리말 지식의 보고인 큰사전 편찬 과정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통일된 맞춤법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마춤법 통일안’을 발표한 게 1933년 10월이다. 이어 1936년 10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펴냈다. 일제의 감시와 간섭 속에 어렵사리 꾸려오던 편찬작업은 1942년 10월 들어서부터 노골적인 탄압을 받았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학자·후원자 등 30여 명이 체포, 구금되고 사전 원고는 압수됐다. 당시 원고는 16만여 어휘를 풀이까지 마쳐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었다. 일제는 이 원고에서 ‘조선’ ‘임진왜란’ ‘무궁화’ 같은 우리 민족성을 드러내는 말의 설명을 놓고 꼬투리를 잡았다. 또 ‘경성’은 풀이가 긴데 &ls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추석엔 '제사'가 아니라 '차례'를 지내는거죠

    차례(茶禮)와 제사(祭祀)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에서는 다르다. 차례는 명절을 맞아 돌아가신 조상을 공경하는 전통예법이다. 이에 비해 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맞춰 음식을 바치는 의식으로, ‘기제사(忌祭祀)’를 가리킨다.추석이 다가오자 차례상을 준비하는 주부들의 손길도 빨라지고 있다. 올 추석은 10월4일이다. 음력으로 치면 8월 보름날이다. ‘보름’이란 (음력으로) 그달의 열닷새째 되는 날을 가리킨다. 월인천강지곡(1449)에 ‘보롬’으로 나오니 비교적 형태를 유지한 채 500년 이상을 이어온 셈이다. 명절과 관련한 말들은 조상 대대로 써온 생활어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헷갈리고 자주 틀리는 말이 꽤 있다.염불에선 ‘잿밥’, 제사에선 ‘젯밥’보름날 중에서도 달이 유난히 크고 둥글게 뜨는 날을 따로 ‘대보름’이라고 했다. 우리말에는 명절로서의 대보름이 두 개 있다. 일반적으로 ‘대보름날’이라고 하면 정월 대보름(음력 1월15일)을 가리킨다. 우리 조상들은 이와 구별해 추석을 ‘팔월대보름’이라 하여 설에 버금가는 명절로 지냈다.이날은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해 차례를 지낸다. 이 차례(茶禮)를 제사(祭祀)와 혼동하는 경우가 꽤 있다. 차례와 제사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에서는 다르다. 차례는 명절을 맞아 돌아가신 조상을 공경하는 전통예법이다. 이에 비해 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맞춰 음식을 바치는 의식으로, 정확히는 ‘기제사(忌祭祀)’를 가리킨다. 추석에는 송편을 준비하는 데 비해 제사 때 올리는 밥은 ‘메’라고 한다는 것도 알아둘 만하다.‘잿밥&rs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천고마비'엔 유비무환 정신 담겼죠

    중국인들은 가을이 되면 언제 오랑캐가 침입해 올지 모르니 미리 이를 경계해야 했다. 거기서 나온 말이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다. 가을(秋)이 깊고(高) 변방(塞)의 말(馬)이 살찌는(肥) 시절이니 흉노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지난주는 추분(9월23일)을 앞두고 막바지 늦더위가 이어졌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가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져 산에는 단풍이, 들녘엔 오곡이 무르익어 갈 때다. 그래서 예로부터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풍요로운 가을, 활동하기 좋은 시절을 상징하는 말이다.오랑캐 침략 경계한 ‘추고마비’가 원말이 말이 지금 같은 뜻으로 쓰이기까지에는 곡절이 있다. 천고마비의 유래는 《한서(漢書)》 ‘흉노전’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마디로 ‘중원(中原)’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중원은 황허 중하류 유역을 가리킨다. 이곳은 토지가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해 예로부터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지역이었다. 지금의 허난성을 중심으로 산둥성, 산시성(陝西省) 일대를 가리킨다. 허난성의 낙양(뤄양), 산시성의 장안(지금의 시안) 같은 천년 고도가 한가운데에 있다.하지만 중원 북방은 척박한 땅이었다. 말 타고 수렵생활을 하며 노략질을 일삼던 유목민족의 터전이었다. 그중에 흉노족은 몽골고원에서 활약한 기마민족인데, 사납고 거칠기가 그지없었다. 이들은 넓은 초원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말에게 풀을 먹이며 말을 살찌웠다. 추운 겨울이 닥치기 전 그 힘 좋고 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노숙인은 '이슬 맞고 자는 사람'을 말하죠

    '노천'의 한자는 '이슬로(露)'이다. 이를 자칫 '길로(路)'로 착각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한데에 있어서 이슬을 맞고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절묘한 작법이다.지난 9월7일은 절기상 백로(白露)였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 다음에 든 백로는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하는 때다. 곧이어 추분(秋分·9월23일)이 되면 이때부터 밤의 길이가 낮보다 길어진다. 백로는 글자 그대로 ‘희고 맑은 이슬’이라는 뜻이다. 이맘때가 되면 새벽녘 풀잎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슬이 맺히는 온도를 ‘이슬점’이라고 한다. 대기 온도가 낮아져 수증기가 응결하기 시작할 때의 온도다. 우리가 잘 아는 ‘어는 점(빙점)’, 즉 물이 얼기 시작할 때의 온도인 섭씨 0도가 되기 전이다.노숙은 순우리말로 ‘한뎃잠’노점상(길가의 한데에 물건을 벌여 놓고 하는 장사), 노숙인(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 노천극장(한데에 임시로 무대만 설치해 만든 극장)….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풀이에 힌트가 있다. 모두 ‘한데’와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한데는 주위를 둘러봐도 가리거나 덮을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을 말한다. 즉 집 바깥인 것이다. 한자어로 하면 ‘노천(露天)’이다. 노천극장을 비롯해 노천카페, 노천강당, 노천탕 같은 게 있다. 모두 한데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노천’의 한자가 ‘이슬로(露)’라는 점이다. 이를 자칫 ‘길로(路)’로 착각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한데에 있어서 이슬을 맞고 하늘을 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매점매석' 대신 '사재기'라고 쓰세요

    얼마 전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품귀 조짐을 보이자 중간 유통상인들의 '사재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재기는 한자어 '매점매석'을 순우리말로 순화한 말이다.지난 호에선 ‘입도선매(立稻先賣)’에 담긴,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살펴봤다. 입도선매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말이 ‘매점매석(買占賣惜)’이다. 얼마 전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품귀 조짐을 보이자 중간 유통상인들의 ‘사재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추석을 앞두고는 각종 제수용품의 사재기가 단속 대상이 되곤 한다. 사재기는 한자어 매점매석을 순우리말로 순화한 말이다.어려운 한자어에서 쉬운 우리말로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지은 풍자소설 ‘허생전’에는 이 매점매석이 중요한 대목으로 나온다. 주인공 허생원은 남산골 다 쓰러져가는 초옥에서 글만 읽던 선비다. 부인의 삯바느질로 끼니를 이어가던 그는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돈벌이’에 나선다. 도성 안 갑부에게서 1만 냥을 빌린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전국의 ‘길목’ 분석이었다. 경기도와 충청도가 갈리는 안성 땅에 주목한 허생원은 그곳에 터를 잡은 뒤 삼남(충청·전라·경상)에서 올라오는 과일류를 싹쓸이해 쟁여놓았다. 얼마 뒤 나라 안에 과일이 품귀를 빚자 그제서야 과일을 풀어 열 배 가격으로 되팔았다. 시쳇말로 ‘떼돈’을 번 것인데 그 수법이 바로 매점매석이었다.허생원은 “겨우 만 냥으로 나라 경제를 흔들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겠구나!” 하고 탄식했다. 박지원은 허생원을 통해 매점매석의 폐해와 함께 당시 보잘것없는 나라 경제를 비판하고 양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입도선매'는 살 때와 팔 때를 가려 써야죠

    ‘입도선매(立稻先賣)’는 지난 시절의 용어로, 궁핍한 농촌생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던 말이었다. 글자 그대로 ‘서 있는 벼를 먼저 파는 일’을 뜻한다. 예전에 돈에 쪼들린 소작농들이 벼가 여물기도 전에 헐값에 미리 판 데서 생겼다.우리 사회의 청년실업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포세대’니 ‘고용절벽’ 같은 말은 이미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운영)에 올라, 여차하면 단어로 자리 잡을 태세다. 하지만 취업난 속에서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전공자들의 몸값은 날로 치솟고 있다고 한다.‘궁핍한 농촌’ 상징하던 말“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한국 이공계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수한 인재라고 판단하면 경력이 없어도 일단 입도선매하고 보는 식이다.”기업에서 미래산업을 이끌 고급 두뇌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때 쓰인 ‘입도선매’는 좀 묘한 단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팖’으로 설명한다. 이 풀이는 입도선매하는 주체가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한자로는 ‘팔 매(賣)’자가 들어간 ‘立稻先賣’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한 대목이 그 용법을 잘 보여준다. “잘 여물었으면 제값을 받고 팔아야지 그렇게 ‘입도선매’ 모양으로 넘길 것이면, 무얼 바라고 공을 들입니까?”(표준국어대사전 용례)입도선매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전까지 농촌경제에 극심한 폐해를 끼쳤다. 당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재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가 아니죠

    초토화는 본래 화재를 당하거나 폭격 따위로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합한 말이다. 수재(水災)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쓰는 게 좋다.한여름을 달구던 불볕더위도 한풀 꺾여 이제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느낌이다. 처서(處暑·8월23일)를 앞두고 있으니 절기상으로는 이미 가을에 접어들었다. 올여름은 늦게까지 이어진 장맛비로 지역에 따라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 그럴 때 무심코 잘못 쓰기 쉬운 말 중에 ‘초토화’를 놓칠 수 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충북지역 초토화.” “호우 피해로 초토화된 농경지.” “최악의 폭우로 기록된 충북 청주지역은 하루에만 300㎜에 가까운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초토화됐다.”‘초토’는 불에 타 그을린 땅태풍으로 폭우가 휩쓸고 지나가거나 집중호우로 홍수가 져 큰 피해를 입었을 때 흔히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가다’란 말을 쓴다. 그리고 거기에 습관적으로 따라붙곤 하는 말이 ‘초토화(焦土化)’다. 하지만 이 말은 물난리로 피폐해진 곳에 쓰기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초토(焦土)’란 글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하기 때문이다. 한자 焦가 ‘(불에)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초미(焦眉)의 관심사’란 게 있는데, ‘아주 다급하고 중요한 관심사’라는 뜻으로 쓰인다.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랍고 애가 타는 상황일지 짐작이 간다.마찬가지로 초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