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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입도선매'는 살 때와 팔 때를 가려 써야죠

    ‘입도선매(立稻先賣)’는 지난 시절의 용어로, 궁핍한 농촌생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던 말이었다. 글자 그대로 ‘서 있는 벼를 먼저 파는 일’을 뜻한다. 예전에 돈에 쪼들린 소작농들이 벼가 여물기도 전에 헐값에 미리 판 데서 생겼다.우리 사회의 청년실업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포세대’니 ‘고용절벽’ 같은 말은 이미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운영)에 올라, 여차하면 단어로 자리 잡을 태세다. 하지만 취업난 속에서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전공자들의 몸값은 날로 치솟고 있다고 한다.‘궁핍한 농촌’ 상징하던 말“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한국 이공계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수한 인재라고 판단하면 경력이 없어도 일단 입도선매하고 보는 식이다.”기업에서 미래산업을 이끌 고급 두뇌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때 쓰인 ‘입도선매’는 좀 묘한 단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팖’으로 설명한다. 이 풀이는 입도선매하는 주체가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한자로는 ‘팔 매(賣)’자가 들어간 ‘立稻先賣’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한 대목이 그 용법을 잘 보여준다. “잘 여물었으면 제값을 받고 팔아야지 그렇게 ‘입도선매’ 모양으로 넘길 것이면, 무얼 바라고 공을 들입니까?”(표준국어대사전 용례)입도선매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전까지 농촌경제에 극심한 폐해를 끼쳤다. 당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재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가 아니죠

    초토화는 본래 화재를 당하거나 폭격 따위로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합한 말이다. 수재(水災)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쓰는 게 좋다.한여름을 달구던 불볕더위도 한풀 꺾여 이제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느낌이다. 처서(處暑·8월23일)를 앞두고 있으니 절기상으로는 이미 가을에 접어들었다. 올여름은 늦게까지 이어진 장맛비로 지역에 따라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 그럴 때 무심코 잘못 쓰기 쉬운 말 중에 ‘초토화’를 놓칠 수 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충북지역 초토화.” “호우 피해로 초토화된 농경지.” “최악의 폭우로 기록된 충북 청주지역은 하루에만 300㎜에 가까운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초토화됐다.”‘초토’는 불에 타 그을린 땅태풍으로 폭우가 휩쓸고 지나가거나 집중호우로 홍수가 져 큰 피해를 입었을 때 흔히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가다’란 말을 쓴다. 그리고 거기에 습관적으로 따라붙곤 하는 말이 ‘초토화(焦土化)’다. 하지만 이 말은 물난리로 피폐해진 곳에 쓰기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초토(焦土)’란 글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하기 때문이다. 한자 焦가 ‘(불에)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초미(焦眉)의 관심사’란 게 있는데, ‘아주 다급하고 중요한 관심사’라는 뜻으로 쓰인다.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랍고 애가 타는 상황일지 짐작이 간다.마찬가지로 초토화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얌통머리'는 '얌체'로 변신 중?

    “에이~, 얌치머리 같으니….” “이 얌통머리야!” “이런 얌체를 봤나.” 이런 표현도 많이 쓰지만, 이 가운데 정상적인 표현은 ‘얌체’뿐이다. 나머지 둘은 불완전한 표현이다. 이들은 모두 한자어 ‘염치(廉恥)’에서 온 말이다.지난 호에서 ‘싸가지’가 쓰이는 용법에 관해 살펴봤다. 요약하면, “그 사람 싸가지야”라는 말은 어법적으로 허용된, 바른 어법이 아니다. 불완전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싸가지 없다”라고 해야 하는데 뒤의 부정어를 생략한 채 ‘싸가지’를 의인화해 쓰는, 의미 변화 중에 있는 말에 불과하다. 이 ‘싸가지 없음’이 아주 심해지면 ‘밥맛없음’이 된다. 이때의 ‘밥맛’도 ‘싸가지’와 비슷한 쓰임새를 보인다.‘얌체’는 ‘얌통머리 없는 사람’‘밥맛’은 글자 그대로 ‘밥에서 나는 맛’ 또는 ‘음식이 입에 당기어 먹고 싶은 상태’를 나타낸다. ‘밥맛(이) 좋다’거나 ‘밥맛(이) 있다/없다’라고 한다. 그 가운데 ‘밥맛 없다’를 붙여서 ‘밥맛없다’라고 한 단어로 쓰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아니꼽고 언짢아 상대하기가 싫다’란 뜻이 된다. ‘밥맛’의 본래 의미를 잃고 새로운 말로 바뀌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입말에서 “걔 정말 밥맛이야”라는 말도 쓴다. 이때의 ‘밥맛이다’는 ‘밥맛없다’와 같은 뜻으로 쓰는 것인데, 이런 말은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원래 “밥맛없어”라고 할 것을 뒤의 부정어를 버린 채 변형된 형태로 쓰는 것이지만 아직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왕싸가지 밥맛'은 어디서 왔을까요?

    ‘싸가지’는 사전적으로 ‘싹수’의 사투리로 풀이된다.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한다. ‘싹수가 있다/없다/보인다/틀렸다’처럼 쓰인다.2003년 4월 어느날, 국회 본회의장에 한 국회의원이 흰색 면바지 차림으로 등장했다. 상의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남색 재킷에 라운드 티를 받쳐 입었다. 이날은 며칠 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그가 의원선서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원한 자리였다. 본회의장이 한순간 술렁였다. 곧바로 의원들 사이에서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비난 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의원 수십 명이 퇴장했다. 국회의원 선서도 다음날로 미뤄졌다. 이른바 ‘빽바지 소동’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주인공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이다.‘싹수’의 방언이지만 의미 달라명쾌한 분석력에 달변까지 갖춘 그는 정계에서 은퇴한 뒤 요즘은 방송활동 등을 통해 유머와 여유를 함께 보여주면서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고 있다. 그에게 과거 따라다니던 별명이 ‘싸가지’다. 2005년 한 동료 의원이 그에게 ‘저렇게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재주를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공개편지를 보내면서 ‘싸가지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싸가지’는 우리말에서 특이한 위치에 있는 말이다. 그것은 그동안 살펴본 의미 변화의 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일상에서 그냥 ‘싸가지’라고도 하는데 이는 온당한 말일까? “걔 싸가지야” “이런 싸가지를 봤나”처럼 쓰곤 한다. 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칠칠맞은 사람'은 칭찬하는 말이에요

    ‘칠칠맞다’는 ‘칠칠맞지 못하다’와 의미가 반대이므로 반드시 구별해서 써야 한다. ‘칠칠맞지 못하다/칠칠치 못하다’를 쓸 자리에 이를 쓰면 의미상 틀린 말이다.지난 몇 회에 걸쳐 부정어와 어울려 쓰이는 말과 함께 우리말의 의미변화 사례들에 관해 살펴봤다. 그중에서도 부정어가 생략되는 현상은 특이한 용법이라 할 만하다. ‘주책없다/주책이다’ ‘엉터리없다/엉터리다’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이다’ ‘우연하다/우연찮다’ 같은 게 그런 범주에 드는 말들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다음 같은 표현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주로 ‘칠칠맞지 못하다’로 쓰여“에이, 칠칠맞은 사람 같으니….” “너 왜 그리 칠칠맞냐?” “그는 행실이 좀 칠칠맞아.” 이게 무슨 말일까? 문맥으로 봐서는 누군가를 탓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런데 상대방이 만약 ‘칠칠맞다’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매우 흡족해할 만한 말이다.‘칠칠맞다’를 이해하려면 우선 ‘칠칠하다’를 알아야 한다. ‘칠칠하다’는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란 뜻이다. 애초 나무나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검고 칠칠한 머리’ 같은 표현에 이 ‘칠칠하다’의 본래 뜻이 남아 있다. 물론 지금도 그리 쓰이는 말이다.이 말이 의미가 확대돼 ‘단정하고 야무지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는 주로 ‘못하다, 않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lsq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안절부절하다'는 틀린 말이죠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다’를 쓸 자리에 ‘안절부절하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 사전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주책없다/주책이다’ ‘우연하다/우연찮다’의 관계처럼 언젠가는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하다’도 함께 허용될지 모른다.지난 호에서 ‘주책’의 의미변화에 관해 살펴봤다. 간단히 요약하면 ‘주책없다’로 쓰는 말이 형태를 바꿔 ‘주책이다’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이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단어 본래의 뜻이 변해 또 다른 의미가 더해진 말들이 꽤 있다. 심지어 정반대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주로 부정어(없다, 않다, 못하다 따위)와 어울려 쓰인다는 점도 공통점이다.‘우연히’와 ‘우연찮게’는 비슷한 말‘우연하다-우연찮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식을 10년 만에 (우연히/우연찮게) 친구한테 들었다.” 괄호 안의 ‘우연히’ ‘우연찮게’는 형태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서로 정반대인데 실제로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상식적으로 보면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사전적으로는 ‘우연하다’는 ‘어떤 일이 뜻하지 아니하게 저절로 이뤄져 공교롭다’, ‘우연찮다’는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란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구별은 상당히 모호해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 용례에서도 두 말을 서로 바꿔도 돼 실제론 사람들이 이들을 구별해 쓰지 않는다. 의미변화의 한 현상이다. 어쨌거나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는 모두 허용되는 말이니 무엇을 쓸지 고민할 필요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감투'는 왜 쓴다고 할까요?

    관용구로 “감투(를) 썼다”고 하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감투의 본래 의미를 알고 나면 서술어로 ‘쓰다’가 온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한자어인 줄 알고 있는 이도 많은데, 우리 고유어다.지난 호에서 ‘주책’과 어울린 말의 변화 과정을 살펴봤다. “주책은 본래 주착(主着)에서 온 말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주착은 버리고 주책으로 통일해 쓴다. 그것이 만드는 말 가운데,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실없는 것을 과거엔 ‘주책없다’라고만 썼는데 지금은 ‘주책이다’도 함께 허용했다. ‘주책맞다, 주책스럽다’도 표준어가 됐으며, 다만 ‘주책 떨다, 주책 부리다’는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써야 한다”는 게 요지다.원래 ‘모자’를 가리키던 말주착이 주책으로 바뀐 것처럼 우리말에는 한자말이 형태를 바꿔 표준어가 된 게 꽤 많다. 가령 초생(初生)달이 변한 ‘초승달’, 음(陰)달이 변한 ‘응달’도 모두 같은 경우로 뒤의 바뀐 말이 바른 말이고 앞의 것은 비표준어다. 설마(雪馬)가 썰매로, 이어(鯉魚)가 잉어로, 침채(沈菜)가 김치로, 고초(苦椒)가 고추로, 염치(廉恥)가 얌치로, 그게 또 한 번 바뀌어 얌체로, 지룡(地龍)에 접미사 ‘-이’가 붙어 지렁이로 바뀐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그런데 주책이 한자에서 온 말이라는 데는 이설이 있다. 언론인이자 한글학자이신 고 정재도 선생은 ‘주책’이 본디부터 쓰던 고유어인데 억지로 한자를 가져다 붙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접떨다(욕심을 부리며 추하고 염치없게 행동하다), 주체스럽다(짐스럽고 귀찮다) 따위가 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책없다'와 '주책이다'는 둘 다 쓰죠

    ‘주책’은 본래 한자어 ‘주착(主着)’이 변한 말이다. 주착은 ‘줏대가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해 흔들림이 없다’란 뜻이지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의미와 형태가 모두 변했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주착’을 버리고 ‘주책’으로만 쓰게 했다.흔히 쓰는 말인 ‘주책’은 우리말을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의미와 형태가 변하고 규범적 용법도 달라지는 등 중요한 문법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음 문장에서 괄호 안의 표현 중 옳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그 양반도 참 (주책없다/주책이다/주책맞다/주책스럽다/주책을 떤다/주책을 부린다).’부정어와 어울려 쓰던 말 ‘주책’답부터 말하면 지금은 모두 맞는 표현이다. ‘지금은’이라고 한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는 틀린 표현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4월 표준국어대사전 수정 정보를 공개했다. 모두 34개 항목에 대해 표제어를 추가하거나 풀이를 보완했는데, 그 중에는 ‘주책’과 관련해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우선 그동안 사전에서 다루지 않던 ‘주책맞다’와 ‘주책스럽다’를 단어로 인정해 표제어로 올렸다. ‘-맞다’와 ‘-스럽다’는 접미사로서, 어떤 말 뒤에 붙어 ‘그런 성향이나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해준다. ‘궁상맞다/능글맞다/방정맞다/쌀쌀맞다/익살맞다/청승맞다/앙증맞다’ ‘복스럽다/걱정스럽다/자랑스럽다/거북스럽다/조잡스럽다’ 등 수많은 파생어를 만들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주는 일등공신이다. 접미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