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하루를 밤·낮으로 나눠 해가 떠 있는 동안을 말하니 대략 12시간이다. 나절은 그 낮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안이다. 오전이나 오후 어느 한쪽의 낮을 가리켜 '한나절'이라고 한다. 6시간쯤 되는 셈이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6월12일.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이들의 만남 결과를 전하는 소식들이 보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중 한 통신사와 한 방송사의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140분 담판→화기애애한 오찬→역사적 서명 … 숨가쁜 한나절’ ‘트럼프·김정은, 역사를 만들었다 … 그들이 보낸 숨가쁜 반나절’.
하룻낮>한나절>반나절로 줄어들어
같은 시간을 전하면서 한 곳에선 한나절, 다른 데선 반나절이라고 했다. 한나절과 반나절은 다른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옛날에는 시간 개념이 지금처럼 시, 분, 초로 세분화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활동하는 동안’을 어림잡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생겨난 게 한나절이니 반나절이니, 한식경이니 일다경이니 하는 말들이다. 그중 한나절과 반나절은 유난히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다.
한나절, 반나절에서 핵심어는 ‘나절’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나절은 어원이 확인되지 않은 말이다. ‘낮+알(파생접미사)’ 또는 ‘낮+절(折/切)’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낮’은 하루를 밤·낮으로 나눠 해가 떠 있는 동안을 말하니 대략 12시간이다. 그것을 ‘하룻낮’이라고 한다. 나절은 그 낮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안이다. 오전이나 오후 어느 한쪽의 낮을 가리켜 ‘한나절’이라고 한다. 6시간쯤 되는 셈이다. 이를 자칫 ‘해가 떠 있을 때의 하루’로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한나절의 절반이 ‘반나절’이다. 얼추 3시간으로 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예전부터 써오던 한나절과 반나절의 원래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사전에서도 그리 풀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다르게 풀었다. 한나절을 ‘하룻낮의 반’이라 하면서 동시에 반나절과 같은 말로 쓸 수 있게 했다. 한나절을 아예 ‘하룻낮 전체’란 의미로도 쓸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한나절과 반나절, 한나절과 하룻낮의 구별이 사실상 사라졌다.
디지털세상의 아날로그적 말들 잊지 말길
사전을 편찬할 때 기술적(descriptive) 관점을 취한 결과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을 사전에 반영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규범적(prescriptive) 접근과 늘 충돌해 왔고 논란거리가 돼 왔다. 기술적 관점에서의 사전 풀이는 얻는 게 많지만 잃는 것도 있다. 자칫 구성원 간 인식 체계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안을 나타내는 또 다른 고유어 ‘새벽’도 그중 하나다. 새벽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동틀 무렵의 어슴푸레한 때다. 사전상으로는 다르다. 밤 12시 이후 일출 전까지를 뜻하는 말로도 쓸 수 있게 돼 있다. 그래서 ‘새벽 한 시, 두 시’ 같은 표현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 시간을 뜻하는 말은 원래 따로 있다. 한밤중이나 오밤중, 야밤중이라고 한다.
“오늘 오후 반나절 안에 일을 끝내라.” 이 말은 어떻게 해석될까? 말한 이는 오후 한때, 즉 3시간 정도로 생각했는데, 듣는 이는 오후 내내, 즉 6시간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업무였다면 그 결과는 심각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초래하는 셈이다.
‘어림잡은 동안’으로 한식경이니 일다경이니 하는 말도 일상에서 여전히 쓰인다. ‘한식경(-食頃)’은 밥 한끼 먹을 시간, ‘일다경(一茶頃)’은 차 한잔 마실 시간을 가리킨다. 굳이 따지자면 한식경은 30분, 일다경은 15분 정도다. 빛살처럼 빠른 디지털 세상이지만 우리 주위에 아날로그적 표현은 여전히 살아있다. 잘 쓰면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좋은 우리말이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6월12일.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이들의 만남 결과를 전하는 소식들이 보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중 한 통신사와 한 방송사의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140분 담판→화기애애한 오찬→역사적 서명 … 숨가쁜 한나절’ ‘트럼프·김정은, 역사를 만들었다 … 그들이 보낸 숨가쁜 반나절’.
하룻낮>한나절>반나절로 줄어들어
같은 시간을 전하면서 한 곳에선 한나절, 다른 데선 반나절이라고 했다. 한나절과 반나절은 다른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옛날에는 시간 개념이 지금처럼 시, 분, 초로 세분화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활동하는 동안’을 어림잡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생겨난 게 한나절이니 반나절이니, 한식경이니 일다경이니 하는 말들이다. 그중 한나절과 반나절은 유난히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다.
한나절, 반나절에서 핵심어는 ‘나절’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나절은 어원이 확인되지 않은 말이다. ‘낮+알(파생접미사)’ 또는 ‘낮+절(折/切)’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낮’은 하루를 밤·낮으로 나눠 해가 떠 있는 동안을 말하니 대략 12시간이다. 그것을 ‘하룻낮’이라고 한다. 나절은 그 낮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안이다. 오전이나 오후 어느 한쪽의 낮을 가리켜 ‘한나절’이라고 한다. 6시간쯤 되는 셈이다. 이를 자칫 ‘해가 떠 있을 때의 하루’로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한나절의 절반이 ‘반나절’이다. 얼추 3시간으로 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예전부터 써오던 한나절과 반나절의 원래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사전에서도 그리 풀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다르게 풀었다. 한나절을 ‘하룻낮의 반’이라 하면서 동시에 반나절과 같은 말로 쓸 수 있게 했다. 한나절을 아예 ‘하룻낮 전체’란 의미로도 쓸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한나절과 반나절, 한나절과 하룻낮의 구별이 사실상 사라졌다.
디지털세상의 아날로그적 말들 잊지 말길
사전을 편찬할 때 기술적(descriptive) 관점을 취한 결과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을 사전에 반영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규범적(prescriptive) 접근과 늘 충돌해 왔고 논란거리가 돼 왔다. 기술적 관점에서의 사전 풀이는 얻는 게 많지만 잃는 것도 있다. 자칫 구성원 간 인식 체계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안을 나타내는 또 다른 고유어 ‘새벽’도 그중 하나다. 새벽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동틀 무렵의 어슴푸레한 때다. 사전상으로는 다르다. 밤 12시 이후 일출 전까지를 뜻하는 말로도 쓸 수 있게 돼 있다. 그래서 ‘새벽 한 시, 두 시’ 같은 표현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 시간을 뜻하는 말은 원래 따로 있다. 한밤중이나 오밤중, 야밤중이라고 한다.
“오늘 오후 반나절 안에 일을 끝내라.” 이 말은 어떻게 해석될까? 말한 이는 오후 한때, 즉 3시간 정도로 생각했는데, 듣는 이는 오후 내내, 즉 6시간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업무였다면 그 결과는 심각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초래하는 셈이다.
‘어림잡은 동안’으로 한식경이니 일다경이니 하는 말도 일상에서 여전히 쓰인다. ‘한식경(-食頃)’은 밥 한끼 먹을 시간, ‘일다경(一茶頃)’은 차 한잔 마실 시간을 가리킨다. 굳이 따지자면 한식경은 30분, 일다경은 15분 정도다. 빛살처럼 빠른 디지털 세상이지만 우리 주위에 아날로그적 표현은 여전히 살아있다. 잘 쓰면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좋은 우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