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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광주는 전라도 光州…광:주는 경기도 廣州 가리키죠

    20대 대통령선거가 막을 내렸다. 늘 그렇듯이 나라 안 크고 작은 행사는 끝난 뒤에도 우리말과 관련해 곱씹어볼 과제들을 남긴다. 이번 대선에서도 맞춤법 표기에서부터 발음 문제, 외래 약어 사용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기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시시비비가 분명한 발음상 오류부터 살펴보자. ‘사전투표’에서 ‘사전(事前)’은 길게 발음해야대선 당일 직전 치러진 사전투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 관리로 유권자들의 혼란을 초래했다. 그와 별개로, ‘사전투표’에서 드러난 우리말 발음 혼란은 국민의 언어생활에 못지않은 주름을 지게 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방송인들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사전투표의 ‘사전’은 일(事)이 일어나기 전(前), 한자로 ‘事前’이다. ‘일 사(事)’ 자라는 게 핵심이다. 이 말은 길게 발음 [사:전]이라고 발음해야 한다. ‘사후(事後)’도 마찬가지로 [사:후]라고 발음한다(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 밑에 있는 발음 정보에서 쌍점(‘:’)으로 표시된 것은 그 말이 장음임을 나타낸다. 아무 표시가 없는 것은 단음으로 발음한다). 이를 짧게 [사전]이라고 말하면 국어사전, 영어사전 할 때의 ‘사전(辭典)’을 가리킨다.대선 기간 막판에 쟁점이 된 ‘사표’ 논란도 우리말 발음에서 주의해야 할 단어다. 한 후보는 “사표(死票)는 없다. 저한테 찍는 표만이 생표(生票)가 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때의 ‘사표’는 ‘죽을 사(死)’ 자로, 이는 길게 [사:표]라고 발음하는 말이다. “이번 선거는 1년여 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표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충전기(充電機) vs 충전기(充電器)

    탄소중립이 화두다. 이와 맞물려 최근 전기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 보급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이를 전하는 언론 보도 역시 낯설지 않다. “서울시는 올해 환경부 등과 함께 모두 3만5000기의 전기차 충전기를 보급할 계획입니다. 이 중 2만2000기를 서울시에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작은 도구는 ‘그릇 器’, 큰 장치엔 ‘기계 機’ 써이때 충전기의 ‘-기’는 우리말에서 쉽지 않은 용법이다. 그 정체를 짐작하기가 꽤 까다롭다는 점에서다. 충전기의 ‘-기’가 접미사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도구나 기구, 또는 기계 장비의 뜻을 더한다. ①비행기/세탁기/기중기/경운기/발동기를 비롯해 ②녹음기/면도기/주사기/각도기/세면기 등에 붙은 ‘-기’가 그런 예들이다. 접미사 ‘-기’는 우리말에서 무수한 파생어를 만들어 부족한 명사를 풍성하게 해준다.우리말 사용에 예민한 이들은 눈치챘겠지만, ①과 ②에 쓰인 ‘-기’는 형태는 같지만 내용물은 서로 다르다. 우선 어떤 도구나 장치를 나타내는 우리말 접사에는 ‘-기(機)’와 ‘-기(器)’ 두 가지가 있다. 사전적 풀이는 구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용례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출해 보자. ①에 쓰인 ‘-기’는 機, 즉 ‘기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비교적 규모가 큰 기계장비에 붙인다고 알아두면 된다. 이에 비해 器는 ‘기구’ ‘도구’ ‘그릇’의 뜻을 나타낸다. ②에 해당하는 말로, ‘-機’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물건에 쓰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전기차 충전기는 어디에 해당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V자形 경기회복'과 '일본型 장기침체'

    # 삼성전자는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쇼 ‘CES 2022’에서 32형 게이밍 모니터를 선보였다. 퀀텀 미니 LED(발광다이오드)를 적용한 이 제품은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LG전자는 졸업·입학 시즌을 맞아 ‘2022년 아카데미 페스티벌’을 열고 성능과 디자인을 향상시킨 노트북 ‘LG그램’ 14·15·16·17형 신모델을 내놨다.  ‘-형(形)’과 ‘-형(型)’ 구별하기 쉽지 않아두 사례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말할 때 흔히 접하는 내용이지만 자칫 이해하는 데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특히 ‘32형’이니 ‘14·15·16·17형’이니 하는 표현은 사전 지식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다. 우리말에서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방황하는 말’이라고 할 만하다.32형 모니터는 32인치 크기의 모니터를 말한다. ‘인치’는 영미에서 쓰는 야드파운드법에 따른 길이의 단위다. 1인치는 미터법으로 바꾸면 약 2.5cm이니, ‘32형’은 대략 80cm 크기의 모니터를 가리킨다. 인치를 인치라 부르지 못하게 된 까닭은 물론 우리나라가 미터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인치는 비(非)법정단위라 ‘공식적’으로는 사용이 금지된 말이다. 하지만 법정용어는 바뀌었어도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인치’를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편법으로 생긴 게 ‘-형’이다. 미터법으로 넘어가기 전, 부족하지만 일종의 과도기적 표현인 셈이다.문제는 이런 모호성이 우리말을 좀 더 ‘쉽고 편하게’ 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32형’ 같은 표현은 그 자체로는 구체적 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계절'은 왜 봄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지난 주 설을 보냈는데 절기상으론 어느새 ‘입춘’(양력 2월 4일)이 지났다. 입춘(立春)은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대한(大寒)이라는 ‘큰 추위’가 풀린 뒤 이어지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다. 느낌으론 아직 한겨울 같아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은 눈이 녹아 비가 돼 내린다는 ‘우수(雨水)’를 향해 달려간다. 설은 음력 1월 1일로 날짜가 고정돼 있지만, 절기는 양력으로 따져 정하는 데서 오는 인식상의 차이다. 입춘은 설을 전후로 들어서는데, 지구 공전으로 인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절기가 정해지기 때문에 해마다 날짜가 조금씩 달라진다. 입춘은 봄의 시작 … 농사짓는 기준으로 삼아절기는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구별이다. 그것은 곧 절기를 ‘농사짓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곡우(穀雨·양력 4월 20일)에 농사비가 내리고, 망종(芒種·6월 6일)에 씨를 뿌리며, 추분(秋分·9월 23일) 즈음에는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이는 식이다. 서양에서는 1주일을 단위로 해 한 달을 따지지만 우리 조상들은 한 달에 두 번, 대략 15일을 기점으로 바뀌는 절기에 맞춰 삶을 영위했음을 알 수 있다. 입춘은 그 24절기가 시작하는 때다. 사계절을 말할 때 봄·여름·가을·겨울로 봄을 제일 먼저 치는 게 그런 까닭이다.옛날에는 동지를 새해 첫날로 삼기도 했다. 동짓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은 가장 짧다.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진다는 뜻이다. 양(陽)의 기운이 커진다는 점에서 이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봤다. 겨울을 알리는 입동에 들어선 뒤 소설, 대설을 거쳐 겨울 한가운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 자·1척·영척은 30cm 이르는 말…전통적 단위어들, 일상 속에 살아있죠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이 수출 640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낭보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무역 규모는 1조2600억달러로,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8위로 뛰어올랐다. 수출 최전선에는 오대양을 누비는 대형 컨테이너선들이 있다. 국내 1위 해운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세계 최대인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등을 포함, 지난해 선복량 80만TEU를 돌파했다. 야드법 기반 TEU, 세계적으로 통용돼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TEU는 언론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단위어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직 없고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는 올라 있다. 해운 물동량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인데, 일반 독자들에겐 여전히 어렵다. 우선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래서 신문에서는 독자들이 알기 쉽게 주석을 단다. “부산신항은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으로, 지난해에 227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처리했다” 식이다. 이때 괄호 안 풀이를 ‘6m짜리 컨테이너 1개’라고 해도 같은 뜻이다. 야드파운드법으로 쓰느냐 미터법으로 하느냐에 따른 차이다.TEU는 ‘twenty-foot equivalent units’의 약자로,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낸다. 컨테이너선의 적재능력이나 하역능력, 컨테이너 화물의 운송실적 등 컨테이너와 관련한 통계 기준으로 사용되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미터법에 익숙해져 있어서 영미에서 주로 쓰는 전통적 단위인 ‘피트’로 표시해선 쉽게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다.1피트는 미터법으로 바꾸면 약 30cm에 해당한다. 20피트이니 대략 6m다. 야외에 가건물로 쓰이는 컨테이너 박스를 떠올리면 크기를 짐작하기 쉽다. 2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기압 단위로 쓰는 '밀리바'는 옛말···'헥토파스칼'은 아직도 낯설어

    국제단위계(SI)상의 용어도 우리말을 구성하는 수많은 말 중 하나다. 하지만 언중(言衆)이 이해하기에 유난히 취약한 분야로 남아 있다. ‘헥토파스칼’처럼 낯선 말들이 꽤 있다. 언론을 통해 제법 알려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기상청은 내년 1월 1일부터 이제까지 기상통보에 사용하던 기압단위 밀리바(mb)를 헥토파스칼(hpa)로 변경한다고 20일 밝혔다.” 태풍 기압 뜻할 때 쓰지만 여전히 어려워1992년 11월 언론들은 우리나라가 기압 단위를 밀리바에서 헥토파스칼로 바꾼다는 소식을 전했다. 헥토파스칼이 그나마 대중에 알려진 것도 이즈음부터다. 헥토파스칼은 SI의 기압 단위로, 기호는 ‘hPa’다. 하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를 제대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소문자 ‘hpa’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hPa’은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물리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긴 바로 그 파스칼이다. 압력의 전달 법칙인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1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그의 업적을 기려 압력의 단위로 ‘파스칼(Pa)’을 사용하기로 했다. 전통적으로 써온 ‘밀리바’가 공식 무대에서 사라진 배경이다. 미터법상 인명에서 유래한 단위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게 원칙이라 기호는 Pa로 정해졌다.파스칼은 크기가 너무 작아 일상에서 이용하기에 불편했다. 이에 따라 세계기상기구는 1983년 그 100배에 해당하는 ‘헥토파스칼(hPa)’을 쓰기로 결정했다. ‘헥토’는 ‘100배’를 뜻하는 접두어다.하지만 우리 기상청에서는 그후로` 기상통보를 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킬로'는 무게일까? 길이일까? 배수 뜻하는 접두어…부피·전력에도 사용

    지난달 말 삼성전자가 미국 제2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투자비만 170억 달러(약 20조 원)로, 삼성전자의 해외 단일 투자로는 최대 규모다. 업계에서는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이 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밀리·센티·킬로는 배수 나타내는 접두어‘㎚’는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미터법상의 단위기호 가운데 하나다. 일상에서는 쓸 일이 드물어 언론에서 보도할 때는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통상 괄호 안에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말에서 ‘나노미터’는 1990년대 들어 언론을 통해 활발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한국 반도체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그해 시장점유율 세계 1위에 올랐다. 덩달아 ‘나노미터’란 용어도 90년대를 거치면서 신문 지면을 달궜다.나노미터의 나노(n)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접두어로, 소문자 n을 기호로 쓴다. 단위기호와 마찬가지로 접두어도 대문자·소문자를 엄격히 구별해 써야 한다. n을 자칫 대문자 N으로 쓰면, 이는 자석이나 나침반 따위에서 북쪽을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또는 ‘질소’의 원소기호이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킬로미터)를 대문자 KM 또는 Km으로 잘못 쓰는 사례가 많다. K는 ‘켈빈’이라는 전력 단위고, M은 ‘메가(100만 배)’를 뜻하는 접두어라 이상한 표기가 되고 만다.전력을 표시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가령 ‘100㎽’를 무심코 ‘100㎿’라고 적었다면 어떻게 될까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시범 보이다'에 씌워진 겹말의 굴레

    모든 언어에서 잉여적 표현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국어에서는 대개 한자어를 중심으로 토박이말이 덧붙는 경우가 많다. 한자어만으로는 의미가 충분히 살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홍성원의 소설 《육이오》에는 ‘넓은 대로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오직 불길만이 휘황하게 타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대목이 나온다(표준국어대사전). 군더더기 비판하지만 ‘시범하다’는 어색해‘대로(大路)’는 크고 넓은 길이다. ‘대로’만 써도 되는데 앞에 ‘넓은’을 더했으니 중복 표현이다. 하지만 구의 형태로 이뤄져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읽고 쓰는 데 거슬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글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어떤 표현이 의미 중복에 해당한다는 것과 그런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입말을 비롯해 수필 등 시적 표현이 허용되는 글이라면 ‘넓은 대로’라고 한들 시비 걸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결함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방송이나 보도자료 등 공공언어를 쓰는 데라면 기피 대상이 된다.그중 중복어로 자주 지적되는 ‘시범(을) 보이다’ ‘박수(를) 치다’ 같은 말은 관용적 표현으로 인정돼 사전에도 올랐다. 현실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라 그 용법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다만 단어가 아니라 구(句) 형태의 말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피해(를) 입다’ ‘부상을 입다/당하다’ ‘허송세월을 보내다’ 같은 표현도 겹말 시비에 오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다 용례로 올라 있다. 관용적으로 굳어 그리 쓸 수 있다고 본 것이다.순전히 토박이말 사이에서도 잉여적 표현을 찾아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