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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전셋값'을 어찌할까요

    연초부터 쌀값, 기름값 등 생활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5억6702만원으로, 새 임대차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7월 말에 비해 1억원 가까이 올랐다. ‘전셋값 상승’은 지난 한 해 수시로 입에 오르내리며 서민 가계에 주름을 깊이 지게 했다. ‘값’은 원래 돌려받지 못하는 돈그런데 ‘전셋값’이란 말은 잘 들여다보면 좀 어색한 단어다. 보통 ‘값’은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말한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에 치르는 돈으로, 돌려받지 못한다. 그게 우리가 아는 ‘값’의 일반적 의미 용법이다. 흔히 말하는 집값이니, 배춧값이니, 옷값, 음식값 같은 게 다 그렇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값’이란 사고파는 물건에 일정하게 매겨진 액수 또는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을 말한다. 또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가격, 대금, 비용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기름값/물값/물건값’ 같은 게 그런 예다.‘전셋값’은 어떨까? 우선 ‘전세(傳貰)’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전세’란 남의 집이나 방을 빌려쓸 때 주인에게 일정한 돈을 맡겼다가 내놓을 때 그 돈을 다시 찾아가는 제도 또는 그 세, 즉 사용료를 말한다. 전셋돈, 전세금, 전셋집, 전세방, 전세권, 전세살이 같은 복합어를 만든다. ‘전세’라는 말은 1957년 한글학회에서 완간한 <조선말 큰사전>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세와 어울려 쓰는 말은 ‘전셋집’ 정도만 있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만 해도 ‘전셋값’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3)

    이맘때 시화호에서 바라보는 철새떼의 군무는 장관이다. 수면 위를 한가로이 노닐다가 한 마리가 날아오르면 일제히 비상해 하늘을 뒤덮는다. 그걸 보고 “새들이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라고 하면 곤란하다. 새가 힘차게 날개를 치는 소리는 ‘푸드덕’이다. ‘푸드득’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말이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들러 ‘볼일’ 볼 때 나는 소리다. 화살표(‘→’)는 바른 표기 찾아가라는 뜻이런 말들은 표기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는 한 틀리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갔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여기에도 잘못 쓴 말이 들어 있다. ‘우르르’ ‘주르륵’이 바른 말이다. 하지만 잘 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국어사전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에서 ‘푸드득’을 찾으면 두 번째 올림말에 ‘→ 푸드덕’으로 설명돼 있다. 이 화살표(‘→’)는 새가 날개 치는 소리로 ‘푸드득’은 비표준어이니 ‘푸드덕’을 찾으라는 뜻이다. ‘우루루’ ‘주루룩’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사전에서 찾으면 각각 화살표가 붙어 있다. 화살표는 맞춤법상 문장부호는 아니다. 단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뜻풀이할 때 표준어인지 아닌지를 나타내기 위한 사전부호일 뿐이다.어떤 단어들은 표제어에 아라비아 숫자로 어깨번호가 달려 있다. 이는 같은 형태의 단어들을 배열한 숫자다. 가령 ‘가사’라는 단어를 알아보자. 아마도 노래 가사, 즉 노랫말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그다음으로 ‘집안일’ 정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2)

    2010년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비장한 소식 하나를 전했다. “인쇄판 사전 시장이 연간 수십 %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제3판은 인쇄판 대신 온라인판으로만 낼 계획입니다.” 120여 년 역사를 자랑하던 옥스퍼드 종이사전에 종말을 고한 셈이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진화하는 국어사전한국은 이보다 좀 더 이르게 종이사전의 조종을 울렸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사전(웹사전)으로만 편찬할 예정입니다.” 국어원은 2006년 한글날을 기해 앞으로 나올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웹사전의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상의 용품이 된 디지털 시대라 ‘내 손안의 사전’이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더 편리하게 사전을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국어원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 외에도 온라인 사전인 <우리말샘>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말샘은 국민 누구나 참여해 새로운 말을 올리고 설명을 달 수 있는, 쌍방향 개방형 사전이다. 이와 관련해 국어사전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 하나. 우리말샘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수많은 말이 올라 있다. 이걸 보고 “사전에 나오는데, 써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규범어가 아니다.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험상 그중 상당 부분은 시일이 흐르면서 사라질 말들이다.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간 광범위성을 비롯해 계층 간/세대 간 통용성, 지속성, 품위성 등 여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1)

    1938년 일제강점기 시절. 엄혹한 우리말 탄압 속에서 국어학자 문세영이 《조선어사전》을 펴냈다. 10만여 어휘를 다룬 이 사전은 한국인에 의해 탄생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흐른 요즘, 우리말에 대한 인식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웹사전이 나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건도 갖춰졌다. 단어 용법 등 사전엔 수많은 정보 담겨하지만 정작 사전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끌어-올리다’는 띄어 쓰는 걸로 나오는데 맞나요?” 의외로 이런 독자 질문에 자주 부딪친다. 이를 비롯해 ‘바른길, 하루걸러, 참다못하다’ 같은 무수한 합성어류는 띄어쓰기를 정확히 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더 의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들이 ‘바른-길, 하루-걸러, 참다-못하다’ 식으로 나온다. 사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이를 띄어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사전에는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사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대부분 표제어를 확인하고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사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품사 정보는 기본이고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 즉 용법을 비롯해 관용구·속담, 어원, 결합구조 등 우리말에 관한 수많은 내용이 집약돼 있다. 그래서 사전을 ‘우리말의 보고(寶庫)’라고 하는 것이다.사전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전부호’를 알아야 한다. ‘끌어-올리다’에 쓰인 붙임표(-)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쓴 여러 부호 중 하나다. 사전의 앞쪽 ‘일러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너라 변칙'의 퇴장

    자식이 커도 부모 걱정은 늘 매한가지다. 그중 하나. “밤늦게 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오너라.” 그런데 어떤 이는 “들어오너라” 하지 않고 “들어오거라”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들어와라” 하기도 한다. ‘오너라/오거라/와라’는 모두 해라체 명령형 서술어다. 같은 뜻을 전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서로 다를까? 틀린 말은 없을까? 예전엔 ‘오너라’만 가능…지금은 모두 허용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모두 맞는 말이다. 예전에 ‘-너라’ 불규칙 활용이 있었다. 명령형 어미 ‘-아라’가 붙을 때 어미가 ‘-너라’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켰다. 이 변칙은 특이하게 동사 ‘오다’류(‘오다’와 ‘건너오다, 들어오다’ 등 ‘-오다’로 끝나는 말)에서만 나타난다. ‘오+아라→오너라’로 바뀌는데, 다른 동사에서는 그런 예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너라’ 불규칙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다’의 명령형은 ‘오너라’ 하나뿐이고, ‘오거라’ 또는 ‘와라’는 인정되지 않았었다.2017년 3월 국립국어원은 이 주제를 놓고 깊이 있게 검토를 했다. 규범과 달리 사람들이 현실 언어에서 ‘오너라’보다 ‘오+아라→와라’를 더 많이 쓰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거라’도 썼다. ‘너라’ 불규칙 활용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법이 바뀌어야 할 차례다. 문법은 언중이 실제로 쓰는 용법을 일반화하고 규칙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다’류에도 명령형 어미 ‘-아라’ 및 ‘-거라’가 결합할 수 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책요? 책이요?…변신 꾀하는 보조사 '-요'

    지난 9일은 574돌 한글날이었다. 이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삼아 제정됐다. 한글이 탄생한 지 500년이 훨씬 넘었으나 우리 정서법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한글마춤법 통일안’을 내놓은 게 밑거름이 됐다. 종결형으로 쓰인 ‘책이요’는 규범에서 벗어나그 사이 우리 맞춤법은 많이 변했다. 그중 하나로 요즘도 늘 헷갈리는 게 어미 ‘-이요’와 ‘-이오’, 그리고 보조사 ‘-요’ 용법의 구별이다.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는 이를 어떻게 제시했을까? <‘이요’는 접속형이나 종지형이나 전부 ‘이요’로 한다.>고 했다. 가령 “이것은 붓이요, 저것은 먹이요, 또 저것은 소요.”처럼 썼다.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다르다. 제15항 어간과 어미를 적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고 했다. “이것은 책이오./이리로 오시오.”(책이요×/오시요×)가 현행 규범이다. 또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오.”처럼 구별해 써야 한다. 정리하면 ‘-이요’는 연결어미로만, ‘-이오’는 종결어미로만 쓸 수 있게 했다. 이들은 모두 [이요]로 소리 나지만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구별해 적도록 한 것이다. 현실언어에서는 쓰임새 활발…규범화 진행 중2019년 5월 국립국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는 왜 '역스럽다'를 퇴출시켰나

    남북한 관계가 극도로 얼어붙었다. 우리 관심은 정치적 배경보다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막말’들에 있다. 북한의 폐쇄적 사회주의 체제가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독특한 기사 형식인 <만평> 같은 것을 보면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주기 위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에 나온 ‘역스럽다’도 그런 대외용 표현 가운데 하나다.남에서는 ‘역겹다’를 훨씬 더 많이 써‘역스럽다’가 무슨 뜻인지 남한에서는 알 듯 말 듯할 것이다.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 북한에서 내놓은 담화문 제목인데, 문맥을 통해 보면 대충 짐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역겹다’라고 하는 말이다. ‘역겹다’는 한자말 ‘역(逆)’과 고유어 ‘겹다’가 결합한 합성어다. ‘역스럽다’는 접미사 ‘-스럽다’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어다. 두 말 다 한자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여러 방식 중 하나다.‘역스럽다’를 우리가 잘 모르는 까닭은 이 말을 남에서 버렸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은 그 배경을 “방언이었던 ‘역겹다’가 표준어였던 ‘역스럽다’보다 널리 쓰이므로 ‘역겹다’를 표준어로 삼고 ‘역스럽다’를 표준어에서 제외하였다”라고 설명한다.우리 표준어규정 제24항은 방언이었던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받는 경우를 보여준다. “방언이던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표준어이던 단어가 안 쓰이게 된 것은, 방언이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했다. 이때 보통은 기존의 표준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라면'의 변신은 무죄?

    “지금껏 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격리하는 방식의 방역 전략을 ‘취했다면’ 이제는 재택근무 등으로 사람 간 거리를 넓혀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늦춰야 한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 2월 말.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이 제시됐다.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쓰인 ‘취했다면’에 있다. 이 말이 보는 이에 따라 문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또는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본래 ‘가정적 조건’문에 쓰던 연결어미어미 용법 가운데 최근 들어 ‘-라면/-다면’은 전통적 쓰임새와 좀 다른 양상을 보여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어떤 사실을 가정해 조건으로 삼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내가 너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 “네가 그 꼴을 보았다면 아마 기절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이는 이들의 전형적인 용례다.그런데 앞의 ‘취했다면’ 문장과 다음 사례는 이들과 좀 다르다. ①그동안 우리 경제가 성장에 중점을 둬 왔다면 이제는 분배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②유럽 축구가 힘을 바탕으로 한다면 남미 축구는 기교를 중시한다. ③20세기 제조업 혁신 모델이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시스템이라면 서비스 혁신은 맥도날드가 시발점이었다.모국어 화자들이 느끼는 이 문장의 자연스러움은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 어색하게 느낀다면 그들은 전통적 어법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면 이들은 현실언어에 길들어 있는 사람들이다.‘-라면/-다면’ 용법의 핵심은 ‘가정적 조건’을 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