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스럽다'를 우리가 잘 모르는 까닭은 이 말을 남에서 버렸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은 그 배경을 "방언이었던 '역겹다'가 표준어였던 '역스럽다'보다
널리 쓰이므로 '역겹다'를 표준어로 삼고 '역스럽다'를 표준어에서 제외하였다"라고 설명한다.
남북한 관계가 극도로 얼어붙었다. 우리 관심은 정치적 배경보다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막말’들에 있다. 북한의 폐쇄적 사회주의 체제가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독특한 기사 형식인 <만평> 같은 것을 보면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주기 위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에 나온 ‘역스럽다’도 그런 대외용 표현 가운데 하나다.국립국어원은 그 배경을 "방언이었던 '역겹다'가 표준어였던 '역스럽다'보다
널리 쓰이므로 '역겹다'를 표준어로 삼고 '역스럽다'를 표준어에서 제외하였다"라고 설명한다.
남에서는 ‘역겹다’를 훨씬 더 많이 써
‘역스럽다’가 무슨 뜻인지 남한에서는 알 듯 말 듯할 것이다.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 북한에서 내놓은 담화문 제목인데, 문맥을 통해 보면 대충 짐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역겹다’라고 하는 말이다. ‘역겹다’는 한자말 ‘역(逆)’과 고유어 ‘겹다’가 결합한 합성어다. ‘역스럽다’는 접미사 ‘-스럽다’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어다. 두 말 다 한자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여러 방식 중 하나다.
‘역스럽다’를 우리가 잘 모르는 까닭은 이 말을 남에서 버렸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은 그 배경을 “방언이었던 ‘역겹다’가 표준어였던 ‘역스럽다’보다 널리 쓰이므로 ‘역겹다’를 표준어로 삼고 ‘역스럽다’를 표준어에서 제외하였다”라고 설명한다.
우리 표준어규정 제24항은 방언이었던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받는 경우를 보여준다. “방언이던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표준어이던 단어가 안 쓰이게 된 것은, 방언이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했다. 이때 보통은 기존의 표준어와 함께 방언도 복수표준어로 인정받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나, ‘역겹다’는 아예 기왕의 표준어를 밀어내 버렸다. ‘역스럽다’란 말이 (적어도 남한에서는) 사라진 배경이다. 이는 언중(言衆)의 어휘 선택에 따른 결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빈자떡’이 ‘빈대떡’으로 바뀌고, ‘코보’ ‘생안손’이 ‘코주부’ ‘생인손’으로 대체된 것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다.
북에서는 ‘역겹다’ ‘역스럽다’ 함께 사용해
‘역겹다’와 ‘역스럽다’가 우리말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글학회에서 1957년 완간한 <조선말 큰사전>에는 ‘역겹다’ ‘역스럽다’가 올림말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이 말이 거의 쓰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봐도 신문에 ‘역겹다’(활용형 포함)가 활발히 등장하는 것은 1970년대 들어서부터다.
사전에는 1985년 <새국어대사전>(일중당), 1986년 <새한글사전>(한글학회), 1992년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등에서 올림말 ‘역겹다’ ‘역스럽다’가 동의어로 나타난다. 그러다가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초판(종이사전)에서 ‘역스럽다’는 ‘역겹다의 잘못’ ‘역겹다의 북한말’로 정리됐다. 공식적으로 ‘역스럽다’가 퇴출된 셈이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두 말을 모두 문화어(우리의 표준어에 해당)로 처리했다(사회과학출판사, <조선말 대사전>, 1992년).
북한말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에 비해 방언을 폭넓게 문화어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가령 북한의 교과서를 보면 ‘건느게’ ‘건늘 때’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 북에서는 ‘건느다’와 ‘건너다’가 동의어로, 함께 문화어로 올라 있다. 실제로는 ‘건느다’를 더 많이 쓴다. 이에 비해 남에서는 ‘건너다’만 인정한다. 북에서 ‘건너다’ 외에 ‘건느다’를 인정한 것은 중부방언을 수용한 결과다. 표준어든 방언이든 어휘는 많을수록 좋다. 모두 우리말을 풍성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