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받다/편지 받다'와 '귀염받다/벌받다' 등….
'받다'와 어울리는 말 가운데 어떤 것을 띄어 쓰고, 어떤 것을 붙여 쓸까?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앞의 경우는 '받다'를 동사로 보고,
뒤의 경우에는 접미사로 보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더 좋다. 이 즈음엔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연말 의미를 더한다. “선물을 받았다”라고 한다. 곧 이어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때의 ‘받다’는 물론 동사다. 그런데 이 말은 접미사로도 쓰여 우리말에 부족한 동사를 풍성하게 생성한다. 파생어들이다.'받다'와 어울리는 말 가운데 어떤 것을 띄어 쓰고, 어떤 것을 붙여 쓸까?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앞의 경우는 '받다'를 동사로 보고,
뒤의 경우에는 접미사로 보기 때문이다.
피동 뜻 더하면 접미사 용법이라 붙여 써
접사는 독립성이 없어 언제나 어근에 붙여 쓰는 말이다. 문제는 ‘받다’가 동사와 접미사 양쪽으로 쓰이다 보니 이들의 띄어쓰기가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앞에서 본 예만 해도 가운데 낀 조사와 부사를 생략하고 쓸 때 “선물받았다” “복받으세요”처럼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선물 받았다” “복 받으세요”라고 띄어 써야 할까? 답부터 말하면 이들은 띄어 써야 맞는 말이다. 아무 말에나 ‘받다’가 붙어 파생어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세금 받다/편지 받다/월급 받다’와 ‘귀염받다/벌받다/주목받다’ 등 …. 이들을 구별해야 한다. ‘받다’와 어울리는 말 가운데 어떤 것을 띄어 쓰고, 어떤 것을 붙여 쓸까?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앞의 경우는 ‘받다’를 동사로 보고, 뒤의 경우에는 접미사로 보기 때문이다.
접미사 ‘받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피동의 뜻을 더하고 그 말을 동사로 만드는 구실을 한다. 그러니 동사인지 접미사인지를 가르는 핵심은 당연히 ‘피동성’ 여부에 있다. 피동성을 판별하는 요체는 그 말이 누군가에게 ‘당하다, 입다’란 의미를 띠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가령 ‘강요받다/미움받다/사랑받다/인정받다/차별받다/버림받다/지배받다’ 같은 데 붙은 ‘받다’는 모두 피동 의미다.
이에 비해 ‘세금 받다, 편지 받다, 월급 받다’는 다르다. 이때의 ‘받다’는 피동을 만드는 접사로 기능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응한다는 주체의 행위를 나타낸다. ‘세금 받다’에서는 정부에서 세금을 ‘맡아 두다, 가지다’란 뜻으로 쓰였다. 능동적 행위다. 편지와 월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늘 수학시험을 봤는데 만점 받았다.” 여기서도 ‘받다’는 어떤 가치에 해당하는 것을 ‘따내다’란 뜻이다. ‘A등급 받다/박사학위 받다’라고 할 때도 같은 범주의 말이다. 피동 개념이 아니라 주체의 능동적 행위라는 게 드러난다.
‘선물 받다’는 주체의 움직임이라 띄어 써
이제 이를 응용해 보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 받는 비정규직, 소상공인들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정부의 공약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데 쓰인 ‘고통 받는’의 띄어쓰기가 헷갈릴 것이다. 하지만 ‘고통 받는’이 타인에 의해 ‘당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 말은 피동 의미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고통받는’으로 붙여 쓴다. ‘도전받다/안내받다’도 마찬가지다. 주체의 행동이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입는’ 것이다. 그러니 접사로 처리해 붙여 쓴다.
그러면 ‘결재 받다/선물 받다/전화 받다/(좌회전)신호 받다’는 능동적 행위일까 피동일까? 이들은 피동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결재/선물 받다’는 구체적 행위나 물건을 따내거나 가진다는 의미로, 이는 주체의 행동에 해당한다. ‘상(을) 받다’ 할 때의 그 ‘받다’와 같다. ‘전화/신호 받다’에서는 ‘응하다’의 뜻이다. 전화 온 것에 내가 응했다는 것이고, 신호가 들어와 거기에 반응했다는 뜻이다. “복 받으세요”에서는 복이라는 가치를 자기가 따낸다는 뜻이다. “손님 받아라”에서는 ‘맞아들이다’란 의미다. 모두 능동개념이다. 이 차이를 구별해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