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어로 볼지, 구의 구조로 볼지를 판단하는 요령 중 하나는
'단어끼리 어울려 무언가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는지'를 보는 것이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잘사는 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처럼 쓴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1970년대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기록적 경제 발전 뒤에는 국민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 노래가 있었다. 새마을운동 하면 떠오르는 이 노래 ‘잘살아 보세’가 그것이다. 전국 어디를 가든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잘살아’ 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단어끼리 어울려 무언가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는지'를 보는 것이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잘사는 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처럼 쓴다.
‘못살다’는 합성어…‘가난하다’란 뜻 담아
요즘은 잊혀가는 이 노래를 새삼 끄집어낸 까닭은 노래 제목에 띄어쓰기의 요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무수한 합성어와 파생어들의 구별에 있다. 어떤 말이 합성어인지 혹은 파생어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띄어 쓰든 말든 할 것이다. ‘잘살다’와 ‘잘 살다’, ‘못살다’와 ‘못 살다’의 구별은 글쓰기에서 누구나 부딪치는 곤혹스러운 문제다.
우선 ‘잘 살다’와 ‘잘살다’를 어떻게 구별할까?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잘 살고 있다.” “병이 깊어 잘 살아봐야 1년이다.” 이런 데 쓰인 ‘잘 살다’는 잘 지낸다는 뜻이다. ‘살아가는 방식(행태)’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잘살다’는 재물이 많다, 즉 부유하게 산다는 뜻이다. ‘잘’과 ‘살다’가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담았다. 합성어로 볼지, 구의 구조로 볼지를 판단하는 요령 중 하나는 ‘단어끼리 어울려 무언가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는지’를 보는 것이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잘사는 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처럼 쓴다.
같은 방식으로 ‘못살다’와 ‘못 살다’를 구별해 보자. 합성어 ‘못살다’는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잘살다’의 반대, 즉 가난하게 산다는 뜻이다. “못사는 형편에 낭비해선 안 된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성가셔서 견디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쓴다. “억울해서 못살겠다” 같은 게 그것이다.
그러면 띄어 써야 할 때는 언제일까? 우리 속담에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라는 게 있다. 가뭄보다 장마 피해가 더 무서움을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글자 그대로 삶을 나타내는 말을 할 때는 띄어 쓴다.
‘안절부절못하다’는 한 단어라 붙여 써
‘잘하다’와 ‘잘 하다’도 같은 요령이다. ‘잘하다’는 단순히 행위를 뜻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의미, 가령 ‘훌륭하다’란 뜻을 더한 말이다. “공부를 잘한다/노래를 잘한다/처신을 잘해라” 같은 데서 이 말의 쓰임새를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잘 하다’는 “그는 요즘 새로운 각오로 공부를 잘 하고 있다” 같은 데 쓰인다. 아무 탈 없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못하다’와 ‘못 하다’도 자연스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노래를 못해/음식맛이 예전만 못해요” 같은 데서는 ‘못하다’이다. 합성어로서 능력이 없거나, 비교 대상에 미치지 않는다는 새로운 의미를 띤다. ‘못 하다’와 비교해 보면 분명히 구별된다. “그날 시간이 없어 노래를 못 해 아쉬웠다.” “미안해서 차마 말을 못 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다.” 이처럼 단순히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다’의 반대말로 쓰일 때는 띄어서 쓴다.
특히 ‘-다 못해’ ‘-지 못하다’ 구성으로 쓰일 때 뒤에 있는 말을 붙여 쓸지(‘못하다’) 띄어 쓸지(‘못 하다’)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늘 붙여 쓰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보조용언으로 쓰인 것이라 ‘못하다’가 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되지못하다/마지못하다/참다못하다’는 ‘못하다’가 앞말(본용언)과 어울려 한 단어(합성어)로 굳어진 말이므로 언제나 붙여 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안절부절못하다’도 한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