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칭(僭稱)'은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름'이다.
'참(僭)'이 간단치 않은 말이다. '주제넘을 참', 즉 분수에 넘게 지나침을 이른다.
여기에 '일컬을 칭'이 붙었으니 한마디로 '주제넘은 짓'을 가리킨다.
'참(僭)'이 간단치 않은 말이다. '주제넘을 참', 즉 분수에 넘게 지나침을 이른다.
여기에 '일컬을 칭'이 붙었으니 한마디로 '주제넘은 짓'을 가리킨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참칭'과 '짝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죠](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AA.22427162.1.jpg)
‘주제넘은 짓’ 꾸짖을 때 써

이 僭은 어원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본분을 뛰어넘어 직권을 남용하는 것을 말하며, 이로부터 ‘허위’란 뜻이 나왔다(허영삼, <한자어원사전>). 그래서 참칭은 넓게 봐서 ‘사칭’(詐稱: 거짓으로 속여 이름)에 포함시킬 수 있다. 또는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꾸민다는 점에서 ‘행세’이기도 하고 ‘흉내’ 내는 것이기도 하다. ‘행세’란 ‘자격 없는 사람이 당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짓’을 말한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고, 공무원이 아니면서 공무원인 척하니 ‘공무원 행세’를 한 것이다. ‘흉내’는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옮기는 짓’이다. 동작이나 행동, 목소리를 모방해 따라 할 때 “흉내 낸다”고 한다. 행세를 하든 흉내를 내든 모두 ‘짝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어떤 말을 써도 ‘참칭’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말맛을 살리지 못하는 것도 물론이다.
고유어 ‘고급어휘’ 개발 필요해
‘참칭’은 권위적이고 거창한 느낌을 주는 말이라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거의 쓸 일이 없고 특정한 맥락에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정부나 국민, 민주주의 등 추상적이고 거시적 개념어와 어울려 쓸 때 제격이다. 무겁고 어려운 한자어라 ‘상용어휘’는 아니다. 일종의 ‘고급어휘’에 해당하는 셈이다.
춘원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에 그 용례가 나온다. “참칭왕(僭稱王)을 폐하고 상왕을 복위하시게 하랴고 하얏지오.” 1929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연재소설의 한 대목이다(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여기서 ‘상왕’은 왕위에서 밀려난 단종을 말하고 ‘참칭왕’은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세조)을 가리킨다. ‘참칭왕’은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를 왕이라 이르는 사람’이란 뜻으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같은 신문 1921년 6월 27일 자에 보이는 ‘애란 참칭대통령(愛蘭僭稱大統領)’이란 표현도 눈여겨볼 만하다. ‘애란(愛蘭)’은 예전에 ‘아일랜드’를 음역해 이르던 말이다. 참고로 음역이란 잉글랜드(영국)를 ‘영란(英蘭)’, 네덜란드를 ‘화란(和蘭)’ 식으로, 한자음을 빌려 외국어를 적던 시절의 표기 방법이다(‘화란’은 네덜란드의 영어식 이름인 ‘홀랜드(Holland)’에서 따왔다).
글쓰기에서 ‘참칭’ 같은 말은 일상적인 언어생활에 갇혀 있는 청자나 독자들에게 일순간 ‘언어적 긴장’을 유발케 하는 효과를 준다. 평이한 말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고급어휘’에 토박이말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부분 한자어나 외국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유어 가운데서도 개념어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하는 까닭이 그런 데 있다.